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4)
14화 양심 고백
“방금 그 진동은 뭐죠?”
“무슨 일이죠?”
“여자 목소리가 들리는데?”
사람들의 목소리. 베로니카만 찾아왔다면 어떻게 수습이 되겠지만,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문을 아직 안에서 잠그지 못했다. 누군가 문손잡이를 잡고 여는 소리가 들렸다.
끼익.
에드워드는 결단을 내렸다. 그는 미아의 어깨를 붙든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부욱! 그녀의 상의가 확 찢어지면서 하얀 속옷이 촛불에 드러났다. 미아는 그제야 짧은 감탄사로 말을 멈췄다.
“어?”
에드워드는 모든 소리를 파묻을 만큼 크게 소리쳤다.
“아무것도 아니야!”
에드워드는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미아를 침대로 던졌다. 그리곤 이불로 그녀의 머리를 덮었다. 베로니카가 아직 잠그지 않은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그림은 이미 완성되었다.
이불 밑으로 드러난 여인의 새하얀 속옷과 다리, 옷도 채 다 벗지 않고 그걸 끌어안은 에드워드.
베로니카는 벌레를 본 표정을, 에드워드는 어머니에게 악행을 들킨 말썽꾸러기의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뒤에 있는 다른 눈동자들은 야릇해졌다.
“여러분, 소란을 일으켜 미안합니다.”
베로니카가 말했다.
“제 일행이 여자를 숨겨서 들어왔네요. 새로운 시도인가 봐요. 종마 같은 놈. 질리지도 않는다니까.”
덜컹. 문이 닫히자 에드워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베로니카가 제일 먼저 자리에서 사라졌는지, 복도에서는 사내들의 짓궂은 목소리와 웃음소리만 들려왔다.
“살살 하세요!”
‘아무렴. 살살 다뤄야지.’
에드워드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불을 들추었다. 미아는 기절해버린 상태였다. 질식하지는 않았다. 속옷은 크게 찢어져서 입으나 마나였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는 그녀의 찢어진 옷을 주워다 재갈을 만들었다. 또 소란이 일어나는 건 질색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침묵 속에서 세심하게 여자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그녀의 사지를 속박했다.
이제 선택의 때였다. 재미 좀 볼 것인가, 이야기를 듣고 결정할 것인가. 그러나 자기를 도와달라고 찾아오는 여자를 동의 없이 범하는 건 문제가 있는 행동이었다. 그는 일단 미아의 몸 위에 이불을 덮었다.
“좋아. 일단 이야기 들어 보고, 맘에 안 들면 넌 오늘 천국 간다.”
그는 미아의 발가락 사이에 그녀의 머리카락 몇 가닥을 끼웠다. 준비 끝. 에드워드는 거기에 촛불을 붙였다.
잠시 뒤 미아는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그녀는 깨어나자마자 자신의 처지를 이해했다. 입은 재갈로 막혔고, 손발은 침대 기둥에 묶였으며 몸에는 실오라기 하나 없이 이불로 겨우 몸을 가렸다. 누가 봐도 매우 위험한 모습이었다.
“조용히 해. 아직 안 건드렸으니까. 한 번만 더 소란을 일으키면 그냥 다 포기하고 아침까지 너로 재미 볼 거야. 그럼 십중팔구 넌 여기서 시체로 나가겠지.”
에드워드는 미아의 눈앞에서 체스 말 중 검은색 여왕을 손에 쥐었다. 그의 손이 하얗게 빛나더니 으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 파편과 가루가 손 아래로 흘러나왔다. 미아는 신음 소릴 흘렸다.
“저주받은 손과 ‘안전하고 즐거운 밤을 보내는 방법 찾기’ 열두 번째 시도 같은 건 하기 싫겠지?”
미아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워드는 손을 툭툭 턴 다음 그녀의 입에 물린 재갈을 풀었다.
“다른 연금술사들과 같은 취급 받기는 싫은가 보군?”
“그들이 이상한 겁니다.”
미아가 잔뜩 낮춘 목소리로 답했다. 에드워드는 손사래를 쳤다.
“아무튼, 상관없어. 아까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연금술사들이 상인들과 결탁했다는 부분까지요.”
“그래. 그게 왜 문제지?”
“그들의 실험은 많은 문제가 있었고,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상인들이 제시한 666가지의 약물과 금속을 사용했고, 이 모든 것을 하수구에 무단 투기했죠.”
“숫자 참 불길하네. 왜 하필 666이야?”
“불길하니까요. 그 숫자를 채우고도 안 되면 실험을 포기한다는 의미였습니다. 더 빨리 포기했어야 하는 건데.”
“그러게 말이야. 하나는 빼지 그랬어.”
“여하튼, 그 물질 중 상당수는 본래 별도로 처리한 후 대량의 물로 희석해 버려야 합니다.”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이상한 노래군요.”
“방금 지었어.”
미아는 사람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는 눈으로 에드워드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가 별다른 말을 더하지 않자 자기 말을 더 이었다.
“무두장이들도 지키는 규정을 연금술사들이 안 지켰고, 그 결과는 재앙으로 돌아왔습니다. 역병과 괴물이죠.”
“아, 젠장.”
“네?”
“우리 이단심문관 아가씨가 이 괴변의 원인이 악마나 괴물이면 나 하수도로 내려보낸다고 했단 말이야. 귀찮게 됐네. 혹시 은폐할 방법 없어?”
미아는 품위도 잊고 입을 쩍 벌렸다. 그녀는 잠시 뒤에야 다시 말했다.
“없어요.”
“아, 젠장. 연금술사 아가씨, 기사 다룰 줄 아는군. 그럼, 설명 좀 듣자. 왜 없는데?”
“그 이유가 기사님 뒤에 있어요.”
에드워드는 자신의 등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 전까지 벽이었던 것이 스르륵 움직이더니 어둠 속에서 거대한 더듬이가 방안을 기웃거렸다. 미아가 말하지 않았다면 모를 뻔했다. 에드워드는 열쇠검을 쥐었다. 미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게 밤마다 사람들 몰래 연금술사들을 쫓아다니기 시작했죠.”
더듬이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에드워드는 우선 자신의 현명한 처신을 찬미했다.
“즐기고 있었으면 지금쯤 뒤통수가 근질근질했겠군.”
“네?”
“아무것도 아니야. 걱정 마. 연금술사 아가씨. 기사답게 지켜 줄 테니.”
에드워드는 혀를 한 번 차고는 발을 굴렀다. 쿵!
“덤벼, 새끼들아. 너희들은 정체가 뭐야?”
더듬이들의 움직임이 일순간 멈추었다. 그러더니 그중 하나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몸은 그 긴 더듬이보다 몇 배는 짧았으나 커다란 개 정도의 덩치였다. 번들거리는 껍질은 크게 굽어 있었다. 에드워드는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꼽등이라고?”
일반적인 꼽등이들과 가장 큰 차이점은 덩치였다. 물론 그 외에도 다른 점이 몇 가지는 더 있었다. 놈들은 더듬이와 수염을 정신없이 움직이며 때때로 지지지 소리도 냈다. 에드워드의 눈앞에 있는 놈은 더 특이했다. 그놈은 위험에 도전하려는 것처럼 에드워드 앞에 당당히 섰다.
에드워드의 표정도 진지해졌다. 남자의 본능이 경고를 했다. 이놈은 저 무리에서 가장 용맹한 도전자요, 맨 앞에 선 전사다. 장수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놈이 자세를 낮추자 에드워드는 열쇠검을 겨누었다.
긴장된 순간, 문득 에드워드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 잠깐. 네놈들 아니었으면 난 지금쯤 저 여자로 재미 보고 있었을 것 아냐? 생각해 보니 빡치네, 이거?”
꼽등이가 번개처럼 뛰어올랐다.
* * *
잠시 뒤 에드워드는 도전자를 물리친 승리자의 표정으로, 베로니카의 방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 준 것은 밴시 리안나였다. 그녀는 알몸에 세탁부용 앞치마만으로 앞을 대충 가리곤 졸린 눈을 비비며 말했다.
“이 밤중에 무슨 일이세요?”
“일단, 이 여자부터 당장 그 방에 집어넣어. 네 옷 대여업 첫 손님이다.”
에드워드는 왼손으로 헐벗은 미아를 밀어 넣었다. 찢어진 옷가지로 겨우 몸을 가린 채 복도를 걷는 모험을 해야 했던 그녀는 후다닥 밴시의 뒤로 들어가 버렸다. 안에서는 깜짝 놀란 베로니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다 무슨 일이야?”
당황한 리안나는 설명을 요구하는 표정으로 에드워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는 오른손에 든 ‘설명’을 밴시에게 보여 줬다.
리안나는 납작하게 으깨진 꼽등이를 보자 기절했다.
방 안의 세 여자가 옷을 겨우 차려입은 다음 에드워드는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베로니카는 회색 내장이 질척거리는 꼽등이의 잔해를 보자 이를 갈았다.
“이딴 걸 헐벗은 여자랑 함께 방에 들이미는 기사라니, 정말 최악이야.”
“여행길에 고생이 많겠군요.”
밴시 리안나가 모은 헌 옷 중 하나를 걸친 미아가 맞장구를 쳤다. 리안나는 기절에서 간신히 깨어났지만, 방구석에서 웅크린 채 세상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저는 아무것도 안 봤어요…….”
에드워드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항변했다.
“괴물을 물리치고, 여자를 구해서 안전한 곳으로 달려온 기사에게 이런 대우는 좀 각박한 거 아냐?”
“그러게. 서사만 보면 참 모범적인 기사의 행보네. 노래로 만들어서 불러 주고 싶을 만큼. 그 괴물이 으깨진 대형 꼽등이라는 것 빼고.”
“그게 내 잘못이냐?”
틀린 말은 아니었다. 베로니카와 에드워드의 시선이 연금술사 미아에게 박혔다.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죄송합니다. 전부 제 잘못입니다.”
그녀의 짧은 사과에 만족한 에드워드는 화제를 돌렸다.
“일단 나머지 꼽등이들은 도망간 것 같은데, 비밀 통로를 잠그는 방법을 발견 못 했어. 결국 내 방문과 창문을 다 잠갔지.”
“꼽등이가 그 문을 안에서 열 가능성은?” 베로니카가 물었다.
“없어. 창문 빗장은 촛대를 끼워서 비틀어 놨고, 방문은 밖에서 향로로 고임목을 만들어 막아 놨어. 혹시라도 부순다면, 소리가 나겠지.”
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약간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살면서 그런 건 처음 봤습니다. 촛대가 녹은 밀랍처럼 막 휘어지고, 향로가 세로로 쪼개지는데…….”
“저 망나니가 원래 남는 건 힘밖에 없는 종마라 그래요. 부려먹기는 딱이죠.”
베로니카의 신랄한 평에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힘 없었으면 우리는 벌써 식인 꼽등이의 밥이 되고도 남았을걸?”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베로니카는 화제를 돌렸다. 그녀는 미아에게 질문했다.
“꼽등이들이 왜 연금술사들을 노리는 거죠?”
“모르겠습니다. 그저 자신들을 더 강하게 만들고 싶은 건지도 모르죠.” 그녀가 대답했다.
“시의회는 어디까지 알죠?”
“다 알 겁니다. 몇몇 연금술사들은 시의회의 보호를 요청했으니까. 하지만 저는 그들을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아마…….”
미아는 말끝을 흐렸다. 베로니카가 그다음 말을 대신 꺼냈다.
“그들은 다 죽었겠죠. 그게 연금술사들을 꼽등이들에게 넘기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요. 오염 폐수를 무단 방류했다는 사실은 더 숨기고 싶을 테고.”
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자신이 아는 근거를 하나 더 꺼냈다.
“연금술사들이 성공적으로 지역 유지들의 보호를 받았다면, 그다음엔 자신들의 실험 도구들을 챙겼겠죠. 하지만 대부분의 개인 연구실은 방치되었습니다.”
“그냥 문 잠그거나 버린 거 아냐?”
미아의 진술에 에드워드가 딴죽을 걸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명은 베로니카가 대신했다.
“비싼 장비들을 괴물 벌레나 자경단원들의 손아귀에 넘기고 싶은 연금술사가 어딨어? 게다가 빈집털이범들도 횡행하는데.”
에드워드는 그녀의 설명을 이해했다.
“그럼, 연금술사들은 그 장비들을 챙길 기회도 없이 죽었단 말이군.”
“아마도 그럴 겁니다.” 미아가 긍정했다.
“나라면 실험 장비 위치를 들은 다음에 죽였을 거야.”
에드워드의 말에 베로니카는 불량기사를 흘겨보았다.
“그럴 여유도 없을 만큼 도시 악당들도 급했다는 뜻이겠지.”
“그런가?”
연금술사 미아 루이스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기사님은 어디서 착하단 소리 들을 분은 아닌 것 같군요.”
에드워드는 씩 웃었다.
“기사는 착한 인간이 아니라 착하게 무력을 쓰는 인간이지.”
그는 꼽등이의 뒷다리를 툭툭 발로 찼다. 숙녀들은 모두 인상을 썼다. 에드워드는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그 거대 꼽등이와 이 질병은 무슨 관련이 있나?”
“추측은 해 봤습니다.”
“말해봐.”
“꼽등이들은 잡식성 곤충입니다. 이것저것을 다 먹죠. 지금 그놈들은 하수도 생태계의 정점일 겁니다. 쥐와 벌레 등 더러운 것들이 그 꼽등이들을 피해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이 역병이 시작된 것이라 봅니다.”
“저번엔 악령을 피해 도망치는 망자들이 문제였는데, 이번엔 해충을 피해 도망치는 해충들이 문제군. 시의회의 대책은?”
“뭔가 더 하는 것 같지는 않더군요. 하수도를 봉쇄한 채 시간만 보내는 것 같습니다.”
“내가 봐도 그래.”
베로니카가 말했다.
“시에서는 전염병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릴 뿐이야. 꼽등이 대처도 지금으로 충분하다 생각하겠지.”
에드워드는 다시 꼽등이의 다리를 툭툭 찼다.
“하지만 이놈들, 기회만 되면 지상으로 나오려는 것 같은데. 이 연금술사 아가씨가 들어온 비밀 통로처럼 통제 밖의 출입구도 없다고 못 할 거고. 최악의 경우엔 이 자식들이 출입구 부수고 튀어나오지 말란 법이 없잖아?”
“그래. 그리고 목적이 뭔지는 모르지만, 사람을 납치하는 것 봐서는 가만 놔두기 힘들겠어.”
“좋아. 그럼, 시청으로 쳐들어간다.”
“쳐들어가서 뭐하게?”
“일단, 시장을 붙잡은 다음 시의회를 소집하는 거야. 그다음에 이 꼽등이를 보여 주는 거지.”
“발뺌할걸.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해.”
“더 확실한 증거?”
“공식 조사단이 산 채로 잡아 온 꼽등이 같은 것.”
에드워드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이놈으론 안 되나?”
“안 될 건 아닌데, 다 으깨졌잖아. 기왕이면 산 채로 잡아 와. 난 그동안 서류상 증거를 좀 찾아봐야겠어.”
에드워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하수도행이군. 젠장. 그래서, 공식 조사단은 어떻게 꾸릴 건데?”
“너, 연금술사, 그리고 용병들.”
“연금술사는 시의회에 들키면 죽어. 어떻게 넣으라는 거야?”
베로니카는 대답 대신 리안나의 헌 옷 중 하나를 꺼냈다. 그건 바지였다. 베로니카는 자신이 생각한 방법을 한 단어로 말했다.
“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