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무덤과 보물고의 끝은 항상 돌문
산 사람들은 미라들의 파도를 피해 펠리샤가 지목한 길로 달려갔다. 벽에 난 좁은 통로였다. 에드워드는 허리춤에 꽂았던 지도를 뽑아 펼쳤다.
“이게 어디로 이어지는 길이지?”
지도에 웬만한 길이야 다 표시되어 있지만, 워낙 다급하게 들어온지라 어디로 들어온 건지도 헷갈리는 판이었다. 게다가 항상 그렇지만, 달리면서 지도를 보는 건 고역이었다.
“문이다! 문이 있소! 저걸 닫으면 돼!”
그때 가르달이 소리쳤다. 에드워드도 그것을 보았다. 과연 정면에 보이는 문짝이 보였다. 이 통로의 끝. 반쯤 열린 것. 모두의 다리에 더 힘이 들어갔다. 다들 전력으로 질주한 끝에 문을 통과했다. 카치운과 한 생존자가 마지막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 빗장을 걸었다. 쿠웅!
미라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문 너머에서 울렸다.
“이 문 이거 얼마나 버티지?”
카치운이 말하는 순간, 스텔레가 나섰다. 그녀는 짧은 주문을 외웠다. 문이 반짝거리기 시작하자 가르달이 그 주문의 정체를 물었다.
“뭐했냐?”
“마법 잠금이에요. 정해진 암호가 아니면 안 열려요.”
“효과 있나?”
“잠시는요. 경첩이나 문짝의 내구도가 못 견디는 경우도 있겠지만, 적어도 주문이 지속되는 동안 정면에서 열리진 않을 거예요.”
에드워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거면 됐어. 이제 끝났군. 한숨 돌렸으니 지도나 다시 확인해 봐야겠다.”
에드워드는 도로 지도에 시선을 줬다. 그가 기억을 더듬고 주변을 살피는 동안, 베로니카가 말했다.
“옛날 옛적에 잊혀 유폐된 놈이라고는 하지만, 악마와 거래를 하다니.”
“거래라기보다는 평화협정이지. 서로 건드리지 말고, 곤란한 거 하나씩 ‘우연히’ 해결해 주기로.”
“우연히?”
“별수 없잖아. 걔도 어차피 나랑 싸우는 거 껄끄러워하던데.”
“기분 나쁜 놈이네. 나중에 관련 기록을 뒤져봐야겠어.”
“기록이 있긴 하려나 모르겠다.”
에드워드는 건성으로 말하다 문득 지도의 한 구석을 보았다. 딱 봐도 보물을 뜻하는 그림 문자가 그려진 방.
“오, 이 앞이 보물고네.”
“다쉬사베스의? 혹시 보물 받겠다고 했어?”
“필요하거나 내키는 게 있으면 가져가겠다고는 했어. 맘대로 하라더라. 사람이 들고 갈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으니 상관없대나…….”
“그런 조건이 붙은 이야기는 보통 주인공이 기발한 발상으로 보물고를 통째로 다 털어버리는 게 클리셰인데.”
“웬일로 네가 먼저 희극 클리셰 이야기를 꺼내냐?”
“네가 그런 발상으로 협정을 받아들인 건가 해서.”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건 아니야. 그냥 옵션이지.”
에드워드는 쓰게 웃었다. 들고 나가봤자 바깥 세트렛인들한테 다 내놔야 할지도 모르는 판.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물 중에 위험한 게 있을지도 몰라. 그냥 지나가자. 찬탈자는 죽였으니, 그 녀석도 우릴 내보내 줄 것 아냐? 약속을 지킨다면 말이지만.”
“아니, 그래도 들러 보자.”
“왜?”
“적당한 도구가 없이는 결국 세트렛인들과 협상할 여지가 없을지도 모르니까.”
“……악마의 보물고는 함정일지도 몰라.”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조심해야지.”
일행은 미로 같은 길을 지나쳐 보물고로 향했다. 다들 걱정이 많아졌는지 말이 없었다. 침묵 속에서 리안나가 질문했다.
“만약에 거기서도 세트렛인들을 설득하거나 매수하거나 돌파할 방법 같은 게 없으면요?”
“일단 나가서 생각해 봐야지. 식사도 좀 얻어먹고…… 여기 있으면 굶어 죽을걸.”
에드워드는 펠리샤를 돌아봤다.
“최소한 이 세트렛 아가씨가 협조적이면 좋겠는데 말이야.”
펠리샤는 그 시선을 피했다.
“……나가거든 이야기하지.”
생각보다 틱틱거리진 않았다. 그게 스스로도 조심스러워진 것인지, 아니면 순해진 것인지는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잠시 뒤, 일행은 어느 커다란 바위 문 앞에 섰다. 보물고 문짝이라기보단 사각형으로 잘 다듬은, 작은 건물 크기의 바위였다. 이 바위 문은 세 번 두드리는 걸로 열리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미리 약속된 말을 읊었다.
“이곳 주인의 이름을 빌려, 열려라.”
문은 쿠르릉 소리를 내며 아래로 내려갔다. 문이 열리자마자 에드워드 일행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야, 이건 좀 무시무시한데.”
에드워드가 겨우 말을 완성했다. 하얗게 빛나는 상아가 천장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 가르달은 그 상태를 살펴보더니 말했다.
“이 무덤 안의 것이 다 그러하듯 잘 보존되어 있군. 이 방에 있는 상아만 꺼내 가도 평생 부자로 살기는 문제없겠는데?”
“다쉬사베스가 코끼리 무덤이라도 털었나…….”
스텔라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베로니카는 상아에 눈길도 안 줬다.
“갖고 가지도 못할 것이네. 세트렛 놈들을 현혹시킬 것 같지도 않고. 이게 전부인가?”
“다음 방으로 가보지 뭐.”
에드워드가 말했다. 보물고는 여러 개의 방이 줄줄이 이어진 구조였다. 두 번째 방은 황금방이었는데, 상아방보다 더 컸다. 하지만 대부분의 금이 다쉬사베스의 얼굴을 찍은 주조 금화였다. 에드워드는 불쌍한 앵글리아 예술가의 이름을 말했다.
“자크가 금화 갖고 있다 죽었어. 연관이 없는 건 아닌 듯한데.”
“그 금화 가져왔어?”
베로니카의 물음에 에드워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의심스러운 걸 어떻게 갖고 싸우냐? 너 떨어진 구멍으로 뛰어내리기 전에 던져봤지.”
“잘했어. 이 금화는 안 건드리는 게 좋아.”
“역시 저주받았나?”
“대부분은 그리 큰 문제가 없지만…… 화폐는 질서와 통제의 상징이니까, 고대의 대악마쯤 되면 무슨 짓을 했을지도 모르지. 의심스러운 건 특별한 절차를 거쳐서 다시 녹여야 돼.”
결국 일행은 금화방도 지나쳤다. 그러나 세 번째인 보석방은 앞의 두 방과 비교도 안 되는 규모였다. 그것은 베로니카도 놀라게 했다.
“이건 좀 혹하네?”
헬레나도 동의했다.
“횃불 빛만으로도 광채가 어마어마하군요. 이런 건 본 적이 없어요.”
보석들은 나무상자에 아무렇게나 채워 넣어진 것도 있었고, 보다 깔끔하게 공을 들인 보관대에 들어간 것도 있었다. 에드워드는 그 보석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이거 저주받은 보석은 아니겠지?”
베로니카가 고개를 저었다.
“전부다라고 확신은 못 하지만, 아냐. 다쉬사베스의 얼굴을 새긴 금화보다는 안전할 거야.”
“그래?”
“보석은 그 자체에 힘이 있거든. 악마가 보석에 저주를 거는 건 그 힘을 뺏고 통제하는 데서 시작 돼. 금화주조보다 힘들어. 이만한 양을 일일이 저주했을 것 같지는 않아.”
베로니카는 커다란 루비 하나를 집어 들어보고 말했다.
“일단 내가 보기에도, 저주받은 기색이 느껴지지는 않아.”
“보수로는 나쁘지 않군. 가져갈 수 있는 만큼 챙겨도 티가 안 나겠구먼…….”
가르달이 말하는 순간, 한 생존자가 에드워드한테 질문했다.
“에드워드 경, 악마가 진짜 이걸 가져가도 좋다고 했습니까?”
“원하는 만큼 가져가라 했소. 도전해보시겠소?”
생존자들은 서로를 마주 보더니, 곧 보물에 달려들었다. 그들이 가장 작지만 비쌀 것 같은 보석부터 손대는 모습에 베로니카는 인상을 썼다.
“무슨 일 생길 것 같지는 않지만…….”
“그 다쉬사베스라는 악마는 정말 마음이 후한가 보네요!”
생존자들에게 별 이상이 없는 걸 확인한 스텔라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에드워드는 껄끄러운 표정으로 베로니카를 돌아보았다. 말하지는 않았다. 그 모습에 오히려 그녀가 말을 걸었다.
“넌 안 달려드네? 조심성이 많아졌니?”
“어차피 세트렛 녀석들에게 내놔야 할 거라면, 그다지 욕심이 안 나서. 그리고 다음 방도 안 열어봤잖아.”
“그런 감각만 성장한 건가…….”
그때 찢어지는 듯한 여자의 비명소리가 보물고를 울렸다. 모두의 손길이 멈췄다. 에드워드는 주변을 둘러보다, 생존자 중 하나인 지젤과 펠리샤의 모습이 안 보인다는 걸 알아챘다.
“아, 젠장!”
비명을 지른 건 해방 노예 지젤이었다. 그녀는 계속 비명을 질렀다.
“펠리샤가 도망가요!”
헬레나가 제일 먼저 반응해서 뛰쳐나갔다. 그녀는 이를 갈았다.
“엘프 전사한테서 도망칠 수 있을 리가……!”
“달려라, 토끼 귀!”
가르달이 응원했다. 그러나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에드워드는 움직이는 바위문을 보았다.
“이곳 주인의 이름을 빌려! 멈춰라!”
그러나 문은 멈추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다시 외쳤다.
“이곳 주인의 이름을 빌려, 열려라!”
그러나 문은 여전히 움직였다. 가르달이 씹어 뱉듯 말했다.
“망할, 역시 함정이었나!”
“꺄아아악!”
펠리샤는 칼을 휘둘러 지젤을 난도질했다. 그리고는 반쯤 닫힌 돌문 위로 뛰어올랐다. 그 사이에 카치운이 활을 꺼내 펠리샤를 겨누었다. 막 돌문 위에 올라서 달리던 펠리샤의 오른쪽 허벅지에 큰 화살이 깊게 박혔다. 퍼억!
“아악!”
펠리샤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잠시 뒤, 그녀는 자기가 시간 안에 돌문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도로 보물고 안으로 뛰어내리려 했으나 늦었다.
잠시 뒤 처절한 비명소리가 벽 안을 울렸다. 벽 속에 갇혀버린 펠리샤의 비명이었다.
“안 돼! 멈춰! 그만! 멈춰!”
돌문은 계속 움직였다. 위에 남는 공간 따윈 없는 듯, 곧 뼈 으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돌벽 안에서 펠리샤의 마지막 비명소리가 울렸다.
헬레나는 지젤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그녀는 베로니카를 향해 소리쳤다.
“중태예요!”
베로니카는 서둘러 달려가 피웅덩이 위의 지젤에게 회복 주문을 걸었다. 다른 사람들은 처참하게 난도질당한 지젤의 얼굴을 보고 다시 시선을 돌려야 했다. 에드워드는 혀를 찼고 스텔라는 구석에 가서 헛구역질을 했다.
“치료되겠냐?”
에드워드가 묻자 베로니카는 고개를 저었다.
“남은 주문이 하나뿐이었어. 이걸론 잠시 연명하는 것에 불과해. 내일 아침에 주문이 보충될 때까지 버티길 빌어야지.”
헬레나는 침통한 목소리였다.
“제가 잠시 보석에 한눈 팔린 사이에…….”
“그 보석방에 안 홀리는 연놈이 더 드물 테니까 그건 신경 꺼.”
에드워드는 헬레나의 말을 잘랐다. 그는 굳게 닫힌 돌문을 향해 섰다. 카치운이 두려움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우린 이곳에 갇혀 말라 죽는 건가?”
그건 중요한 문제였다. 에드워드는 잠시 옛 생각을 더듬어봤다. 미라가 소재인 어떤 액션 영화의 소악당은 보물고에 갇혀 죽었다. 옛날 어느 활극 소설에서는 마찬가지로 보물고에 갇힌 주인공들이 어찌저찌 탈출했고.
그는 긴장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이곳 주인의 이름을 빌려, 열려라.”
우르르릉.
문은 거짓말처럼 열렸다.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에드워드는 짧게 투덜거렸다.
“왜 아까는 내 말을 안 들은 거지, 이 문?”
“지금 다시 말해보쇼.”
가르달의 말에 에드워드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곳 주인의 이름을 빌려, 멈춰라.”
하지만 문은 멈추지 않고 계속 내려왔다. 잠시 뒤 납작해진 펠리샤의 시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스텔라는 눈물을 뿌렸다.
“괜히 봤어!”
가르달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텔라의 의견에 동조한 건 아니었다. 그의 생각이 옳았기 때문이었다.
“한 번 작동하면 안 멈추는 마법문이오. 펠리샤는 이걸 알았군. 문이 오르내리는 사이에 도망쳐서 밖으로 나가려던 거요. 우릴 따돌리면 세트렛 동료들과 금방 만날 테니…….”
아무리 날쌘 엘프 전사라도 문이 오르내리는 동안은 쫓아올 수 없으니까. 에드워드는 펠리샤의 시체와 소지품을 뒤져보다 피투성이가 된 금화를 꺼냈다. 다쉬사베스의 금화. 자크 때와 비슷했다.
“다쉬사베스 새끼, 약은 수작을.”
그저 펠리샤의 실수인지도 모르지만, 지금 그걸 따지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 에드워드는 금화를 손에 쥐어 찌그러뜨렸다. 여전히 일행은 자유롭게 무덤을 나갈 수 있지만, 이제 인질이 없다.
리안나는 납작해진 펠리샤를 가리켰다.
“이거 어떻게 하죠?”
에드워드는 생각에 빠졌다. 펠리샤가 죽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다쉬사베스와 여러 논의를 하긴 했다. 하지만 그녀가 한번 움직이면 작동을 안 멈추는 마법문에 눌려 죽는 상황 따위는 별로 생각해두지 않았다. 그녀가 안 죽도록 하는 게 최선이었을 뿐이니까. 악마와의 협정을 되뇌어본 에드워드는 겨우 입을 열었다.
“펠리샤가 다쉬사베스의 잘못으로 죽으면 세트렛인들을 달래거나 시선을 잡아끌 수단을 주기로 하긴 했어. 생각 같아선 어떻게든 보호해달라거나, 죽으면 무조건 다쉬사베스 책임으로 하고 싶었는데, 그런 억지는 안 통하더라고.”
“그야 그렇겠죠. 자신의 잘못이 아닌 것까지는 인정할 수 없다고 했을 거예요. 악마가 아니라 사람이라도 그럴 테니.”
헬레나가 씁쓸한 투로 말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경우는…… 누가 봐도 펠리샤 혼자 죽은 꼴이지. 게다가 죽은 이유 중 하나가 카치운의 화살이야.”
“내 탓이란 거요?”
“다쉬사베스가 그렇게 주장할 거란 뜻이오.”
카치운은 이를 갈았다.
“도로 지하로 내려갑시다. 악마 새끼랑 결판을 짓고 말아야지!”
에드워드는 고개를 저었다.
“식량이 없소. 보물은 산더미인데, 그걸 먹으면서 싸울 순 없잖소. 차라리 밖의 세트렛인들과 싸우는 게 승산이 더 높을걸.”
“젠장!”
카치운은 벽을 걷어찼다. 가르달이 그를 달랬다.
“그녀를 놓쳤어도 골치긴 매한가지요. 그땐 쏘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었소.”
헬레나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감시를 소홀히 한 제 탓도 있어요.”
“그 이야기 하지 말라니까. 보석방이 아니었어도 펠리샤는 기회를 잡았을 거야. 설마 지 혼자서 이 미라 소굴을 탈출하려는 미친 짓을 하겠나 싶어서 풀어둔 게 잘못이지.”
에드워드는 금화를 한 번 더 접어버렸다.
“뭣보다, 걔한테 무기 주고 스스로 몸 지키라고 한 건 나야.”
에드워드는 베로니카에게 찌그러진 금화를 던져줬다. 바닥을 굴러온 금화에 눈길을 힐끗 준 베로니카가 중얼거렸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귀띔만 해줬다면…… 역시 악마야. 책임을 피하는 법을 알아.”
이제 일행은 밖으로 못 나간다. 세트렛인들이 아직 밖을 지키고 있다면. 에드워드는 이를 갈았다.
“세트렛 놈들이 포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뿐인가.”
“지젤도 문제야. 오늘 밤을 넘기기가 힘들지도 몰라. 우리 중엔 의사가 없으니.”
베로니카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그녀는 사제였지만 치료 전문이 아니라 법학 전문이었다. 나름 배운 건 있어 재주껏 상처를 꿰매었지만, 외과 기술보다는 주문에 의존하는 경향이 컸다.
다른 방법이 없으면 지젤도 죽는다.
에드워드는 문득 지젤과 베로니카와 그녀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을 보았다. 한참 생각해 보던 그의 눈길이 한 군데서 멈췄다. 그는 뭔가 깨달은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헤치고 지젤한테 다가갔다.
펠리샤는 해방 노예 지젤이 끔찍히도 싫었는지, 얼굴을 특히 난도질해 놓았다. 주문을 쓰더라도 제대로 된 얼굴 형상을 찾을 것 같지 않았다. 베로니카는 품에서 깨끗한 수건을 꺼내 그녀의 얼굴을 덮었다. 그녀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냥 죽게 내버려 두세요…… 설령 살아도, 이런 얼굴로는…….”
“허튼소리 마요.”
베로니카가 안타까움과 짜증을 담아 말했다. 지젤은 눈물을 흘렸다.
“그만 편하게 해주세요…… 여기서 고통스럽게 죽기는 싫어요.”
에드워드는 아랫입술을 핥았다.
“결말이 ‘빨간 마스크’여서야 안 되지. 해방 노예 아가씨, 내가 실험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베로니카는 에드워드를 흘겨보았다.
“또 무슨 허튼소릴 하려고?”
에드워드는 그녀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네 협조가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