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45)
145화 반갑다 친구야 (2)
리안나는 오아시스 요새에서 대추야자라는 과일을 처음 먹어보았다. 굉장히 단 과일인데 놀랄 만큼 흔하다는 사실은 반가운 것이었다. 그리고 헬레나는 돈주머니를 열어 아낌없이 대추야자를 사줬다.
“요새 저장고에서 꺼낸 거래. 다 익기 전에 잔뜩 수확해서 아껴 먹는다는데…… 좀 천천히 먹어.”
헬레나가 말리는 것도 소용없었다. 거대 미라의 상처에 처박힌 한을 풀기 위해서인지 리안나는 탐욕스럽게 과일을 먹었다. 그러고도 한마디 덧붙였다.
“과자랑 고기랑 과일은 별개!”
“그래, 그래.”
헬레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드워드는 그 모습을 보고 짧게 말했다.
“다 좋은데 실내 들어가서 먹어라. 모래 날린다. 벌레도.”
리안나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입에 대추야자를 가득 물었다.
“밴시의 마법 세탁약은 벌레를 쫓는 힘도 있거든요!”
“그러냐? 내 옷에는 별 효과 없는 것 같은데.”
에드워드는 얼굴로 날아드는 벌레들을 손짓으로 내쫓으며 말했다. 리안나는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곧 그녀의 얼굴로도 벌레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와! 이곳 벌레들 뭐야!”
리안나는 대추야자 과육을 우물거리다 놀라 말을 바꿨다. 베로니카는 피식 웃었다.
“오아시스는 사람한테만 오아시스인 게 아니거든. 온갖 벌레들의 소굴이지. 이 요새도 식수는 내부 우물에서 퍼 올린 지하수를 써. 그리고 사막같이 가혹한 곳에서 살아남는 벌레들은…….”
“무지 독하다?”
에드워드의 말에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계 톱날도 튕겨내는 밴시한테 모기 주둥이가 박힐 것 같지는 않지만.”
“뭘 튕겨내요?”
“아, 넌 기절해서 몰랐겠네. 미라가 네 머리에 제재소 급 기계톱을 들이댔어.”
“으익!”
리안나는 새파랗게 질렸다. 에드워드는 악동의 미소를 지었다.
“머리카락은 잘려나갔더라. 그래서 너 머리에 땜빵 생겼어.”
“어디요? 어디? 엘프 언니, 저 말 사실이에요?”
“그래.”
헬레나가 긍정하자 리안나는 머리를 싸매고 주저앉았다.
“무슨 망신이야! 머리쓰개라도 하나 사야지……!”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손사래를 몇 번 더 쳤다.
“시간이 갈수록 벌레들이 더 달려드네. 일단 실내로 자리를 옮기자. 베로니카가 앞으로의 여행 경로 문제 때문에 설명과 의견이 필요하단다.”
리안나는 대추야자를 바리바리 싸 들고는 헬레나의 뒤에 따라붙었다. 에드워드가 그걸 보고 물었다.
“헬레나한테는 몇 번 더 던져져도 문제없냐?”
“엘프 언니는 최소한 예고 없이 등짝을 걷어차진 않으니까요.”
리안나의 말에 헬레나는 에드워드를 향해 눈을 흘겼다.
“인망은 이런 데서 차이가 나는 법이죠.”
“집요정 상대로 인망 얻어서 뭐하게.”
“너무해!”
리안나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다 파리 한 마리가 그 입으로 돌진해 오는 통에 다시 난리가 나버렸다.
“일단 방충망부터 사야겠어.”
에드워드가 요새 안에 마련된 손님방으로 들어오면서 말했다. 헬레나가 동의했다.
“해가 지면 불빛이 여기밖에 없으니까요. 불 무서운 줄 모르는 벌레들이 난리를 더 치겠죠.”
“아.”
스텔라가 신음 소리를 흘렸다. 에드워드는 그녀를 돌아봤다.
“너 뭐했냐?”
“그게, 피라미드 안에서 써봤던 불꽃 주문 있잖아요?”
“그게 왜?”
“비전문 마법인데도 너무 잘 만들어져서 시약 보충한 김에 재현해서 기록하려고 다시 시도했는데…… 아무래도 벌레들이 그걸 보고…….”
“저런. 어쩐지 벌레가 많이 꼬이더라니. 그래서 주문은 잘됐냐?”
스텔라는 좌절했다.
“아뇨! 대체 어떻게 그런 걸작을 만들었는지 기억이 안 나요! 불꽃 주문 전문 마법사도 그런 광경은 쉽게 못 만들 텐데!”
에드워드는 문득 환생 전 밴드 한다던 친구들을 떠올렸다. 걔들은 자기들끼리 연습할 때 음악계에 길이 남을 즉흥연주를 했는데, 다시는 그 연주를 재현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때는 웃고 말았는데, 스텔라한테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 듯했다.
“거 아쉽군. 궁지에 몰려서 나온 힘인가.”
“그때만큼의 효율이나 완성도가 안 나오더라고요. 아까워!”
에드워드는 낄낄 웃은 다음 주변을 둘러보았다.
“불빛이 문제라.”
원래는 전쟁 시 증원되는 기사들을 위한 방인데, 요새가 작고 궁벽 져서 그런지 침대 같은 건 없었다. 바닥에 싸구려 카페트를 깔아 놓은 게 전부였다. 그래도 촛대 정도는 있었다. 천장에는 이미 들어온 소수의 벌레가 왱왱거렸다.
“과연. 오늘은 벌레들에게 시달리며 잠들겠군.”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궁벽한 요새에서 상급 여관 급 침실을 기대했니? 그건 한참 뒤에나 기대해보자고. 문제는, 거기까지 가는 길이야.”
베로니카는 구석에 쌓인 방석을 끌어다 일행들에게 하나씩 던져줬다. 다들 모여 앉자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곳 지휘관은 찰리 맨슨이라는 앵글리아인 기사고, 현재 약간의 병력을 이끌고 정찰 중이라고 해요. 정확히는, 정찰을 빙자한 약탈을 하러 나간 거지만.”
“흠, 중요한 문제요?”
가르달의 질문에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베레스포드 공작가에서 나와 함께 기사 수업을 받은 자요. 내 친구지. 먼저 성지에 온 줄은 전혀 몰랐지만.”
“오오, 에드워드 경의 친구이며 변경까지 와서 싸우는 자라니! 분명 강하고 용맹한 기사겠군!”
“부정은 안 하겠소. 때로는 나 이상으로 유쾌한 친구지. 어쨌든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선택지가 있소.”
“뭐요?”
“하나는 해로, 하나는 육로요. 그런데 해로는 악마들의 폭풍이나 악령 선장 같은 것을 또 만날까 의심스러워서 못 가겠소. 하지만 육로도 편한 길이라고는 못하는데, 보다 안정적인 영역까지는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오.”
“흠. 그럼 찰리 경한테 호위를 부탁해야겠구려.”
“바로 그거요. 하지만 이 경우 지출도 꽤 나갈 것 같소. 길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의뢰하는 거니까.”
“아, 그렇군. 그럼 다쉬사베스한테서 가져온 보석을 쓰면 되는 거요?”
“여기가 생각보다 더 오지인 데다, 걸리는 문제가 있어서 보석은 안 꺼낼까 하는데…….”
“문제?”
에드워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찰리는 예측이 불가능한 놈이라.”
정신적 충격이 일행을 휩쓸었다.
“세상에 기사님만큼 끔찍한 기사가 또 있어요?”
리안나가 입을 벌렸다.
“경이 예측을 못 하는 작자도 있소?”
가르달은 호기심을 보였다.
“에드워드 경보다 더 막 나가는 기사가 있으면 그냥 악당 아닌가요?”
헬레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재난은 일단 피해야겠죠?”
스텔라가 조심스레 의견을 꺼냈다.
“세상은 끝없이 넓고 종자는 많다더니.”
카치운이 파이프를 연초로 채우기 시작했다.
에드워드는 리안나를 거꾸로 한번 들어준 다음,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쾌락 우선 주의자요.”
베레스포드 공작이 휘하의 기사후보생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다양했지만 그중 거의 빠짐없이 나오는 질문이 하나 있다.
[한 상인의 짐마차가 진창에 빠져 네가 갈 길을 막고 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모범적인 답안은 대충 두 가지다. 짐마차가 진창에서 빠지기를 기다리거나, 내려서 발로나마 밀어주는 것이다.
급하거나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다른 길로 돌아가는 건 기사의 자존심이 상하는 일로 간주 된다. 내려서 도와주더라도, 흙투성이 짐마차를 손으로 미는 건 손을 더럽히므로 품위가 떨어지는 일로 간주 된다.
찰리 맨슨은 [다 때려 부수고 약탈한 다음 지나간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베레스포드 공작은 항상 꺼내는 두 번째 질문을 꺼냈다.
[왜 그런 방법을 선택했나?>찰리 맨슨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게 더 재밌을 것 같으니까요.>“공작님께서 무시무시하게 화를 내셨지.”
에드워드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리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직하지 못한 대답이니 벌 받을 만하네요.”
“아니, 더 큰 문제가 있었어.”
“네?”
“그 녀석이 공작님 앞에서 그런 대답을 한 이유도 [그게 더 재밌을 것 같아서>라는 뜻이거든. 기준도 문제인데, 기사 후보생 주제에 공작님의 반응을 보려고 놀린 거지. 공작님도 그걸 알아차리셨고.”
리안나는 입을 떡 벌렸다. 에드워드는 벽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그 자식은 항상 그런 식이었어. 더 재밌는 게 중요하단 거지. 인생 한 번 사는 스타일이야. 재미를 위해서면 친구 뒤통수를 때릴 수도 있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친근한 척을 해올 수도 있어.”
에드워드는 짧게 요약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재밌긴 한데 위험한 놈이야. 안 좋은 쪽으로 돌아버린 기사의 전형이라고 해야 하나.”
가르달은 술병을 꺼내 말라가는 입술을 적셨다.
“어딘가 드워프 스타일 비슷하긴 한데……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중립적 광기?”
“드워프가 다 미쳤다는 걸 드디어 인정하네.”
헬레나가 비아냥거리자 가르달은 버럭 했다.
“자기 분야와 로망에 ‘미친 듯이’ 몰두할 뿐이다!”
“그게 그거잖아요!”
“너희 도시는 그 땅에 올리브를 키워낼 정도로 식물에 환장했잖아! 그거랑 뭐가 달라!”
“이상한 비유를 들지 마요!”
티격태격하는 엘프와 드워프를 외면하고, 베로니카가 말했다.
“그래서 에드워드의 의견은, 가능하면 그냥 우리끼리만 가자는 쪽이야. 하지만 사막의 여행은 뱃길과 다를 게 없어. 거점과 거점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뭐가 돌아다니는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해. 사막의 폭풍이, 거대 괴물이, 도적이, 심하면 세트렛인 추격대가 따라붙을 수도 있지. 길잡이도 쉽게 못 구해.”
에드워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서 베로니카는 내 친분에 걸고 찰리를 기다려 보자는 입장이다. 질문 있나?”
카치운이 파이프에 불을 붙이면서 물었다.
“에드워드 경은 친구 많소?”
“당시의 기사 후보생 전부가 내 친구였지.”
“그럼 기다려 봅시다. 그 친분에 걸고. 어떤 인간인지 파악한 다음 결정하는 것도 늦지는 않을 거요. 경의 말대로라면, 사람 목숨이 위험한 데다 뒤통수를 친다는 것도 아니잖소.”
“흠.”
에드워드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골탕 먹을 일은 있겠지만…….”
“질 나쁜 친구랑 재회하는 것도 여행의 재미겠지.”
가르달도 어렵게 입을 열었다. 헬레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리 기사님만으로도 감당이 안 되는데 말이죠.”
“사제님이나 엘프님한테 찰싹 붙어야겠네.”
스텔라도 덧붙였다.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러던가.”
베로니카는 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넌 그 질문에 공작님께 뭐라고 답변했는데?”
“뭐? 짐마차?”
“그래.”
에드워드는 잠시 천장을 보며 생각해보다 말했다.
“적당히 고른 모범 답안이었지. 발로 짐마차를 밀어준다.”
“두 번째 질문에는?”
“안 하셨어.”
“뭐?”
“두 번째 질문은 안 하셨어. 그냥 짧게 다른 말씀만 하시더라고.”
“뭐?”
“넌 빨리 정착해야겠다. 설 곳을 찾아라.”
베로니카는 잠시 에드워드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글쎄.”
기사 찰리의 귀환은 일행의 생각보다 빨랐다. 방충망 달린 밀짚모자를 얻어 쓰고 성벽 위에 서 있던 리안나가 소리쳤다.
“인간 군대가 와요!”
에드워드가 물었다.
“문장은 어떻게 생겼어?”
“모래 먼지 때문에 안 보이는데요!”
결국 헬레나가 성벽 위로 뛰어 올라가 확인했다. 그녀는 에드워드를 향해 말했다.
“녹색 바탕에 노란색 교단 문장이 왼쪽…….”
“영주님 문장이오! 찰리 경이 영주님 문장 아래 싸우고 있거든!”
임시 지휘관이 다 듣지도 않고 밝은 투로 소리쳤다. 헬레나는 마저 말했다.
“……오른쪽은 흰색 바탕에 검은색 검이요.”
“맞소, 맞소!”
임시지휘관이 맞장구를 쳤다. 잠시 뒤 요새 정문이 열리면서 기병과 보병이 줄줄이 들어왔다. 에드워드는 그들 중 선두에 선 금발 머리 기사를 향해 말했다.
“어이, 똥개 찰리!”
옆에 서 있던 베로니카는 뿜어버렸다. 기사의 별명치고는 고약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똥개 찰리’는 바로 반응했다.
“에드워드? 언제 왔냐?”
찰리는 미남은 아니었다. 그을린 얼굴에는 크고 작은 흉터가 가득했다. 갓 생긴 것들이 아니라 오래된 것들이었다. 투구로 철저히 보호하는 얼굴에 흉터가 많다는 건 여러 가지로 생각해볼 만한 신호였다. 사적인 결투가 잦다거나.
그는 바로 말에서 뛰어내리더니 에드워드한테로 달려왔다. 두 기사는 가볍게 포옹했지만, 악수는 하지 않았다. 찰리는 반갑다는 듯이 말했다.
“여기 올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오늘 올 줄은 몰랐다!”
“그건 또 뭔 소리야?”
찰리는 설명 대신 베로니카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 있는 이…… 이단심문관이면서 아리따운 분은?”
“베로니카 드 캠벨. 교황청 교리법무성의 이단심문관이야.”
“만나서 반가워요, 찰리 경.”
“명문가의…… 레이디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어째 떨떠름한 반응이시군요? 혹시 사교에 발을 들이셨어요?”
“이단심문관께서 끔찍한 농담을 하시는군요! 농담으로 안 들리는 직업이시니 그만두시죠!”
찰리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사제한테 약한 건 여전하네.”
“까다롭잖아. 특히 교리법무성은. 교회한테까지 찍히고 싶지는 않아.”
찰리가 툴툴거렸다. 에드워드는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은 말이지.’
그래도 생각보다 평이한 반응이다. 에드워드는 내심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런데 이단심문관을 왜 데려왔어? 유니콘 잡는 데 이단심문관도 필요해?”
“뭐? 뭔 소리야?”
“엥? 그러려고 온 거 아냐?”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유니콘이라니?”
찰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니콘 잡으려고 온 거 아니야?”
에드워드는 간만에 이 미친 친구와 대화하는 법을 도로 떠올렸다. 자기 재미를 위해 망상이 폭주하다 보니 중간 단계 논리를 그냥 스킵 해버리는 자. 그는 찰리한테 조심스레 질문했다.
“처음부터 천천히 차근차근 좀 설명해 주겠나, 친구?”
구석에서 기다리던 리안나가 그걸 보고 중얼거렸다.
“불안하다느니 뭐니 해도 결국 친구 찾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