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46)
146화 유니콘은 살아 있다 (1)
찰리는 메뉴가 소박하지만, 양은 절대 소박하지 않은 저녁 만찬을 열었다. 전형적인 기사들의 식탁. 찰리와 에드워드 외 참석자는 임시지휘관부터 스텔라까지.
하지만 대화는 오랜만에 만난 두 친구, 에드워드와 찰리가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주로 앵글리아에서의 추억들, 그리고 아는 이들의 소식.
“항상 그랬지만, 너도 참 특이한 녀석이다. 세트렛 영역을 거쳐 도착하는 기사는 흔치 않을걸.”
“표류자는?”
“표류자가 공포새를 따돌리는 일이 얼마나 되겠어? 토박이라면 한둘 봤을지도 모르겠지만, 난 아냐. 아직 못 봤어.”
“공포새 그거 재밌어 보이더라.”
“말보다 키우기 쉽고 싸다는 이야기는 있더라. 단점도 많지만.”
“여기 사람들은 안 키워?”
“세트렛쪽 특산물이야. 우리한테는 없어.”
“아깝군.”
찰리는 씩 웃었다.
“다행이지 뭐. 새 타고 다니는 꼴을 상상해봐. 로버트 국왕 폐하나, 베레스포드 공작님이나, 패트릭이 새를 타고 다닌다면…….”
에드워드는 뿜어버렸다.
“그것도 충격과 공포군.”
“패트릭? 혹시 패트릭 드 켈러핸?”
베로니카가 그 이름에 반응했다. 에드워드와 찰리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찰리가 먼저 물었다.
“맞는데…… 어떻게 아시는지?”
“시오니아 왕국의 근위기사단장이잖아요?”
“역시 이단심문관이시군.”
“교회 안에서 소문은 들리더군요.”
에드워드는 짧게 말했다.
“걔도 우리 친구야. 베레스포드 공작 아래 있었지.”
“공작이 성지순례를 권한다더니 그건 사실인가 보네.”
“나야 여기 올 줄 알았냐마는.”
에드워드가 쓰게 웃었다. 찰리도 동의했다.
“난 흘러왔지. 야, 패트릭은 시오니아 공주랑 결혼할 수도 있댄다.”
“새끼, 부럽네. 그런데, 할 수도 있다니? 확정 아냐?”
“걔가 자꾸 거절한다네.”
“여전하군. 수도승 같은 놈.”
“어쨌든 왕의 마음에 들었으니, 왕위 계승 1순위를 잡은 거지. 기사 서임하자마자 영지고 뭐고 내팽개친 채 성지로 달려가더니, 오히려 대박이 났어. 젠장. 부러운 녀석.”
“재밌네. 우리가 그 녀석 밑에서 봉신 노릇 하겠는데?”
찰리는 얼굴을 찡그렸다.
“봉신이나 되면 좋겠다.”
에드워드는 술잔을 비웠다. 공주와의 결혼. 부유한 상속녀와 결혼하는 이야기 중에선 가장 급이 높은 이야기다. 물론 골치 아픈 것도 많아지지만.
“언제 결혼한대?”
“몰라. 공주는 지금 비텔리아에 유학 중이라니까…… 패트릭과 만나보지도 못했을걸. 다티니아 해양 공화국이었나?”
“메디올리눔이에요.”
베로니카가 찰리의 말을 정정해 주었다.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야, 얘도 메디올리눔 대학 출신이랜다.”
“오, 그럼 공주님 보셨겠군?”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기간이고, 스쳐 지나갔지만요. 철통 경비라서 접근도 못 하더군요.”
“하긴.”
“그런데 패트릭 경은 어떤 사람이죠? 교회에 도는 소문만으로는 잘 모르겠던데.”
이번엔 찰리와 에드워드 차례. 에드워드가 먼저 말했다.
“자기한테 진흙이 묻든지 말든지, 짐마차를 손으로 밀어줄 친구지.”
“아, 추억이네. 그 질문도.”
찰리는 낄낄 웃으며 말했다.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속의 가치가 아니라 빛의 정의를 쫓는 모범적인 기사라는 뜻으로 해석하지요.”
찰리는 입을 이죽였다.
“에드워드도 말했지만, 기사나 왕보다는 수도사를 해야 할 친구죠. 기사라면 폭식이 미덕인 법인데.”
찰리는 에드워드의 손을 가리켰다.
“난 ‘모범적인 기사’라면 오히려 널 꼽을 거야. 그 손에 걸린 저주만 아니면 말이지.”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아니, 네가 가장 ‘모범적인 기사’지.”
베로니카는 그들이 말하는 ‘모범적인 기사’가 어떤 모습인지 대충 알아차리고 얼굴을 찌푸렸다. 폭력적이고 탐욕스러우며 즉흥적인.
에드워드는 겨우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유니콘은?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 맞다. 이야기하자면 길어지는데…….”
식탁에서 이어진, 찰리의 길고 긴 이야기를 요약하면 간단했다. 어느 정찰병이 사막에서 유니콘을 발견하고 영주한테 보고했다고 한다. 영주는 그 유니콘을 잡으려고 군대를 보냈지만 실패. 찰리는 그 소문이 곧 여기저기로 퍼질 것임을 알았고, 그로써 에드워드가 이곳에 나타나리라고 예측했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나처럼 동북쪽에서 올 줄 알았지. 그런데 서쪽에서 나타나네.”
“일이 뜻대로 안 되더라.”
“어쨌든, 저주 풀어야지? 야, 내가 봐둔 ‘군침 도는 곳들’이 여기저기 있거든? 너랑 나랑 함께 다니면 그곳들 다 작살내는 것, 일도 아냐.”
찰리의 말에 에드워드는 생각에 잠겼다. 베로니카는 찰리를 흘겨보았다.
“어딜 공격하시겠다고요?”
“물론 어둠의 영역에 있거나 간을 보는 중립 종족 놈들 말입니다.”
찰리는 얼른 자세를 낮췄다. 하지만 에드워드가 보기에, 진심은 보이지 않았다. 베로니카도 마찬가지 인상을 받았다.
“그렇다 치지요. 그나저나 유니콘이라.”
베로니카도 생각에 잠겼다.
유니콘. 절대 무리 지어 나타나는 법이 없고, 나타났다가도 사라지며, 동서남북 어디에서 나타나도 이상할 게 없지만, 보기는 더럽게 힘든 동물. 그 뿔은 만병통치약으로 통하는데, 질병뿐만 아니라 독과 저주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에드워드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천재 주술사 니코스도, 고대의 대악마 다쉬사베스도 내 저주는 건드리지 못했지만…….”
찰리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유니콘의 뿔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단 말이지. 게다가 이 녀석, 이상하게도 한 곳에만 가만히 있더라? 난 며칠 안에 사라질 줄 알았거든.”
“며칠째 거기 머무는 건데?”
“한 달 됐어.”
“한 달!”
에드워드는 혀를 내둘렀다. 한 달이나 한 자리를 지키는 유니콘 같은 건 들어본 적이 없다. 잡아달라고 광고하는 셈이다. 영주가 달려갈 만도 했다.
“그런데 왜 아직 못 잡았지?”
“그 자식이 있는 장소가 정말 곤란하기 짝이 없는 곳이거든. 고대인들이 건설한 댐으로 가둔 호수 한복판에 있어. 그 호수는 악어 소굴인 데다, 거리가 멀어서 화살도 안 닿아.”
“호수 한복판에 섬이 있나?”
찰리는 고개를 저었다.
“섬이면 차라리 다행이지.”
“뭐야, 그게.”
“보면 알아. 보면. 가서 직접 봐. 말해줘도 못 믿을 테니.”
“뭔데? 말해봐.”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이 새끼가 감히 내 흉내를?”
찰리는 낄낄 웃어버렸다.
“그게 더 ‘재밌을 것’ 같으니까 말 안 해줄래. 어차피 미리 알아도 준비해줄 수 있는 것 따위, 없어.”
찰리는 술잔을 비웠다. 에드워드는 고민에 빠졌고, 베로니카는 그를 흘겨보았다.
“순전히 네 저주를 풀기 위해서 경로를 잡겠다?”
“왜? 내 저주 풀리면 곤란하냐? 저주 풀면, 나도 이따위 쇠몽둥이 보검이 아니라 제대로 된 검과 창과 방패를 들 수 있다고.”
에드워드는 열쇠검 손잡이를 툭 쳤다.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성지 가서 회개할 생각은 안 하고…….”
“성지는 가야지. 여기까지 왔으니. 성산도 올라보고, 대성당도 가볼 거야. 그런데 그 전에 저주 풀어봐서 나쁠 건 없잖아?”
“흥. 지금 이 상태에서 저주만 풀어봤자…….”
베로니카는 말꼬리를 흐리고는 술잔을 기울였다. 헬레나는 살짝 긴장된 표정이었다.
“저주 해제의 가능성이 코앞에 보이는 건 이 여행에서 처음이군요.”
다음날, 찰리가 동행하겠다는 것을 에드워드는 필사적으로 말렸다. 요새 지휘관으로서의 책임을 상기시키며. 찰리는 굉장히 아쉬워했다.
“재밌을 것 같은데.”
“오자마자 또 나가면 지친 네 부하들의 불만이 적지 않을 거라서.”
“가는 길에 여자애라도 잡아 오면 되지.”
“엥? 여자애?”
“지하 감옥에도 몇 ‘마리’ 잡아놨어. 세트렛인도 있고, 근처 마을 처녀도 있고. 아, 이제 처녀는 아닌가.”
찰리는 낄낄 웃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저었다.
“이단심문관 끼고 그 짓 하면 목이 매달릴걸.”
“수틀리면 ‘또’ 도망쳐서 용병 짓 해야지. 내가 이래 뵈도 한때는 수백 명 끌고 다녔는데.”
“어쩌다 말아먹었냐?”
찰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도시 하나 깨 먹어 봤어. 용병단장의 등과 시장의 등을 세트로 구멍 뚫어줬지. 그 둘은 지옥에서 부부처럼 붙어 다닐걸. 남자끼리 부부가 될 수 있다면 말이지만.”
“미친놈. 쫓겨날 만하네.”
“생각 없이 저지른 것 아냐. 나 시민들에게 인기 좋았다? 게다가 단장이 먼저 시장을 쫓아내려 했고. 하지만 결국 먹는 데 실패했지.”
“대체 뭔 짓을 저지르고 다닌 거야?”
“뭐, 이 짓을 하다 보면 처절하게 깨지는 날도 오는 법이니까. 너도 알잖아.”
평균적인 기사보다 더 근시안적이고 난폭하고 탐욕스러운. 찰리 맨슨은 그런 기사였다. 에드워드도 그 영역에 한발쯤 걸치긴 했지만. 그는 이곳 영주의 등짝도 오래 못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 안 데려가야지.’
에드워드는 기병 둘과 병사 다섯만 빌리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기운을 차린 생존자들과 에드워드 일행에 합치면 적잖은 숫자가 된다. 그리고 그걸 위해 적잖은 비용을 지불했다. 에드워드는 다쉬사베스의 보석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금화와 은화로 지불했다. 괜히 찰리의 흥미를 끌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에드워드 일행 외 생존자들도 다쉬사베스의 보석은 언급하거나 꺼내 보이지 않았다. 외딴곳 기사와 병사들에게 금은보화를 잘못 보여주면, 바로 털린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물론 찰리는 보통보다 더 막 나가는 종자였다.
“야, 그냥 이단심문관 따위 죽으라고 내팽개치면 안 되냐? 너랑 나랑 다시 뭉치면 재밌을 것 같은데. 정 뭣하면 패트릭한테 가보자고. 그 자식은 우릴 보호해줄 거야. 옛날처럼 우리 셋이서 돌아다니면 정말 웃길걸.”
찰리에 비하면 패트릭은 기사의 탈을 쓴 수도사였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그사이에 끼어 다녔다. 나쁘지 않은 추억이지만, 지금 와서 다시 재결성하기엔 멀고 먼 멤버들이기도 했다. 에드워드는 애써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기엔 그녀와 내가 서로 빚진 게 많아서. 난 저주가 풀리든 안 풀리든, 시오니아의 수도로 간다. 너도 거기로 와. 그때 이야기해 보자고.”
찰리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길. 생각해 보면, 기사 서임식 끝나자마자 우리 셋이 함께 다녀야 했어.”
에드워드는 절대 그가 꺼내지 않을 것 같던 말로 대화를 끝냈다.
“인간과 상황은 변하는 법이지.”
“기사님이 [불량한 기사>라면 찰리라는 그 기사님은 [불쾌한 기사>라고 해야 할까요? 진짜 무서웠어요. 평범하고 유쾌한 척하는데, 말 하나하나에 광기가 엿보이더라니까?”
스텔라가 투덜거렸다. 찰리의 주절거림은 귀 밝은 헬레나가 다 챙겨 들었고, 때문에 일행은 찰리가 무슨 소릴 했는지 다 알아차렸다. 가르달은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을을 습격해 여자를 납치하는 기사라니, 그건 그냥 도적이잖소.”
“보호해야 할 마을을 오히려 덮치는 기사라. 보통은 악행이지.”
카치운이 덧붙였다. 에드워드는 한숨을 내쉬고는, 친구가 내어준 병사들을 보았다. 그중 한 명은 전서구가 분명한 비둘기들을 새장에 넣고 왔는데, 자기 말로는 긴급 연락용이라지만, 의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후보생 때는 그저 즐거운 삼인조였는데, 나와서 만나보니 새삼 감당이 안 되는군.”
자유로운 기사 중 악당이 되기로 작정한 자는, 자기 이익을 위해 갑자기 친구를 공격한대도 이상할 게 없다. 빌린 기병과 병사들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어떤 못된 버릇을 들였을지 모르니까.
“불쾌한 기사야.”
베로니카가 짧게 말했다.
에드워드 일행의 물주머니가 텅 비기 전에, 그들은 실개천을 발견했다. 그걸 거슬러 올라가자 거대한 댐이 나타났다. 병사들이 설명해주길, 고대인들이 건설한 댐이라고 했다.
반쯤 무너진 댐 아래로 흘러나오는 물의 양은 수문으로 조절하는데, 그것 역시 오래전에 망가지고 무너졌다. 그 위로는 긴 역사 내내 누군가 새로 뚫은 수문들이 몇 개 더 있었지만, 오늘날 제대로 작동하는 건 하나도 없었다. 적은 양의 물이 틈새로 새어 나올 뿐이었다. 고로 댐 너머 물의 수위는 조절이 불가능했다.
“상류에 비가 안 오면, 물길보다 수위가 낮아져서 물이 아예 멈춰버립니다. 안정적으로 쓸 수가 없죠.”
병사가 물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고대인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황무지에다 댐을 만든 걸까요?”
리안나의 감상이었다. 베로니카는 고개를 저었다.
“그 반대야. 댐을 만든 뒤에 여기가 황무지가 된 거지.”
“그것도 이상한데요. 댐이 만들어졌는데 왜 황무지가 되나요? 저렇게 모인 물로 농사지어야 하는 것 아니에요?”
“사람의 건축 기술로 어쩔 수 없는 변화가 온 거야.”
에드워드는 고대의 건축 기술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는 댐 위로 말을 몰아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곧 유니콘을 발견했다.
“야, 저렇게 찾기 쉬운 유니콘이 다 있네.”
에드워드가 한탄 비슷한 말을 했다. 뒤따라 온 일행들도 에드워드의 말을 이해했다. 호수 한복판에, 물 위에 유니콘이 떠 있었다.
놈은 물 위를 걷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