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49)
149화 옛 친구는 꼭 의심해야 한다 (1)
자기 부대를 이끌고 댐에 도착한 찰리는 헛웃음을 지었다.
“눈치 빠른 새끼. 하긴, 그래야 내 친구지.”
병사들은 죄다 그늘 아래에 묶여 있었다. 하지만 햇빛만 피했을 뿐, 다들 탈수 증세를 보였다.
동료 병사들이 그들을 풀어주고 물주머니를 건네주자, 그들은 에드워드 일행이 어떻게 됐는지 아침녘 산새들처럼 조잘거렸다.
문제의 유니콘은 귀족 여사제는 물론 엘프 여자까지 거부하는 까다로운 취향이었고, 이에 분노한 기사가 3일 밤낮을 싸운 끝에 결국 승리했다. 자기들이 그걸 보고 전서구를 보냈더니, 엘프 여전사가 달려와 다짜고짜 때려눕히더라.
“남은 전서구를 비롯해 유용한 건 다 뺏고, 전서구 관리병을 데려갔습니다.”
“길잡이로 쓰려는 거야. 젠장, 똑똑한 놈.”
비둘기는 훈련이 중요하다. 전서구 관리병은 비둘기를 갖고 다니며 훈련시키는 역할도 하므로, 지리에 밝은 게 보통이다.
찰리는 전서구 관리병이 약아빠지게 행동해서 에드워드 일행을 속여 넘기는 걸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 짓을 하면, 놈은 제일 먼저 살해당할 것이다. 매수도 가능하다. 지금은 누구보다도 에드워드 편일 것이라고 간주해야 한다.
찰리는 병사들 옆에 꽁꽁 묶인 유니콘도 보았다. 화살을 맞았지만 적당히 치료가 된 상태였다. 뿔은 부러져서 밑동만 겨우 남았다. 에드워드는 편지 한 장 안 남겼지만, 그 의미는 명백했다.
먹고 떨어져라.
찰리는 종자에게 말했다.
“저 밑동 더 잘라내.”
“유니콘은 어떻게 할까요?”
뿔이 다시 자랄지도 모르지만, 유니콘은 관리하기가 까다로울 게 뻔하다. 그냥 말 키우듯 마구간에 넣는 게 가능했다면 유니콘은 진즉 가축이 됐을 테니. 보통은 다시 뿔이 자란 뒤를 기약하며 풀어주지만, 다시 잡히리란 보장은 없다.
찰리는 웃었다.
“고민할 여지를 줘서 우리 발목을 붙잡는군. 약았어.”
지치고, 다쳤지만 유니콘이다. 이 녀석을 끌고 가려면 적잖은 병력과 노력이 필요하다.
찰리는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는 검을 들어 유니콘의 목을 내리쳤다. 피가 사방으로 튀는 걸 본 종자는 바짝 긴장했다. 찰리는 씩 웃었다.
“하지만 유니콘 돌보기 같은 건 재미 없어. 모가지는 트로피로 만들고, 나머지는 처분해.”
“그냥 풀어줘도 될 텐데요. 괜히 죽였다고 악명만 높아지는 건 아닐지요?”
“에디는 그런 거 생각하면서 이놈을 힘으로 잡았을까?”
“그분이야 저주를 푸는 게 우선 사항이었으니…….”
“나도 마찬가지야. 재밌는 게 더 중요하지.”
찰리는 풀려난 병사들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걔 저주는 풀렸냐?”
* * *
밤샘의 당사자 에드워드와 그 고용인 스텔라는 대충 몸을 닦은 뒤, 짐마차에 길게 누워버렸다. 3일 밤낮을 설친 후유증이었다. 요새에 머무는 동안 대충 수리된 지붕은 햇빛을 막아줬지만, 덜컹거리는 짐마차 위에서의 휴식은 고달팠다.
“기사님, 괜찮아요? 약효 있어요?”
“몰라. 묻지 마.”
스텔라의 말에 에드워드가 퉁명스레 말했다. 그는 가루로 만든 유니콘 뿔을 원샷한 뒤 약효가 돌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두 손은 그의 특제 수면용 장갑에 갇힌 채.
“엘프님이 ‘몸에 생기가 돌아온다’가 필요하면 알려 달라던데 그게 무슨 뜻이에요?”
“내가 묻고 싶다. 저주 풀리면 안아달라는 뜻인지, 안 풀리면 위로해 주겠다는 뜻인지, 둘 다인지.”
“엑. 그거 성적인 의미였어요?”
“몰랐냐? 악령을 퇴치하고, 헬레나를 구했을 때 악령이 그런 소릴 했었지.”
“저야 전해들은 거니까 세부 사항은 잘 모르죠. 엘프님과 기사님이 악령과 싸울 때 신체 접촉하고 그 문제로 계약까지 했다는 건 알지만요. 악령이 그런 소릴 했었군요.”
“좋은 시작은 아니었지.”
“그래도 엘프님한테는 나쁜 기억이 아닌 것 같네요?”
“대외적으로는 나름 로맨스로 포장했거든.”
“특정 부위 언급은 빼고요?”
“빼고.”
스텔라는 납득했다.
“보면 눈치 깔 사람이야 있겠지만요. 하긴. 로맨스로 사악한 힘에 맞서는 건 오랜 클리셰죠.”
“로맨스였나.”
“로맨스로 포장했다면서요.”
스텔라는 슬쩍 에드워드의 장갑을 봤다.
“근데 안 풀리면 어쩔 거예요? 그 고생했는데 안 풀리면 화 좀 나시겠다.”
에드워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스텔라는 눈치를 보다 슬쩍 물어보았다.
“저주 풀면 제일 먼저 뭐 하고 싶어요?”
“그간 쭉 미뤄뒀던 것들.”
“사제님요? 엘프님요?”
“둘 다 할 거냐고 묻는 거냐, 순서를 묻는 거냐?”
“이미 대답 들은 것 같은 기분이네요. 근데 사제님은 안 될 걸요. 성지 도착 전에 건드리면 임무 실패로 간주 되잖아요.”
“도착한 다음에 하지 뭐.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나누는 정이라는 게 있잖아.”
“그 조건이면 사제님은 절대 안 할 걸요.”
“왜?”
“이제까지 다른 남자랑 안 붙은 이유랑 같겠죠.”
에드워드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붙으려거든 결혼을 각오하고 붙어라, 이건가.”
스텔라는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여사제와 결혼하는 경우, 대개는 남편도 교회의 업무를 돕는 삶을 살게 된다. 일반적인 사제는 거의 종신직이지만, 여사제는 ‘교회의 요구시 복귀 의무가 남은 기간 무제한 육아 휴직’의 탈을 쓴 육아 퇴직도 가능하다. 그 경우 여사제의 월급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게 규정되어 있으므로, 남자가 그만큼 더 벌어야 한다.
게다가 시오니아에서 따로 보상을 받거나 줄을 서게 된다면, 재산 많은 상속녀를 보상으로 받는다면 지금 누군가와 특히 여사제와 결혼한다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적어도 영지는 물 건너가는 셈이니까.
에드워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글쎄. 모범적인 출셋길만 계속 생각하고 있긴 했는데.”
“기사님이 그걸 원해서요? 아니면 그게 편해서요?”
에드워드는 스텔라를 꼬나보았다.
“그걸 너한테 왜 밝혀야 하냐? 언제부터 그런 데 관심 있었어?”
“에이, 저야 관심 없죠.”
“그런데 왜?”
“사제님한테 귀띔해 줘야죠.”
에드워드는 가죽 장갑을 벗어 스텔라의 얼굴에 내던졌다. 깔깔 웃어버리는 여 마법사를 향해 기사가 말했다.
“네 결혼이나 걱정해라.”
“기사님 결혼이 더 걱정인데요! 와, 우리 지금 독신 남녀끼리 할 수 있는 최대의 욕설을 하고 있네요!”
결혼 못 하면 불운한 사람 취급받는 시대니 그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에드워드는 투덜거리듯 말했다.
“네 신랑도 돈 많아야 하는 건 똑같잖아. 누가 너 감당하겠냐?”
“에이, 전 결혼 안 할 건데요. 해도 늦게 할 테고.”
“엥? 왜?”
“그야, 결혼하면 애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마법사 접어야 하니까?”
“흠. 학문의 길로 들어가 늙는 독신들이 간혹 있긴 하지.”
“그러니까 남편 말고 남자친구로! 돈 많은 남자친구! 돈도 안 주고 치근덕거리는 악덕 사장님 말고요, 저한테 다정하고 일방적으로 돈 퍼주는 사람!”
“불륜도 아니고 ‘정부’ 예약이냐? 그거 시선 별로 안 좋잖아. 지역에 따라서는 매춘부와 동급이라고. 네가 요하나처럼 불가피한 경우도 아닐 텐데.”
“후원자를 잃고 보니, 모든 학자와 예술가의 꿈이 특정 취향의 돈 많은 부자한테 전폭적으로 지원받는 것이란 사실을 새삼 깨달았죠. 게다가 마법사는 학위 따고 연구만 계속할 수 있으면, 세속의 평가 따위 신경 안 쓰는 직업이거든요!”
“나 돈 많이 벌면 나한테 입후보할 건가?”
에드워드가 묻자 스텔라의 표정이 묘해졌다.
“뭐, 돈만 제대로 주시면? 저 몇 번 구해주기도 하셨고. 쓸만한 보상도 몇몇 얻었고. 근데 기사님도 아직은 절 착취하려던 악덕 영주들이랑 차이가 크냐 하면…….”
“젊잖아. 먼저 안 건드리고.”
“네, 그게 큰 차이긴 하죠. 대신 고정수입원이 없지.”
“젠장, 아픈 데를 찌르다니.”
그때 베로니카가 마차 뒤의 천을 열고 뛰어들어왔다. 그녀는 스텔라를 흘겨보며 말했다.
“그래서 마법사가 교회한테서 한 소리 듣는 거예요. 치근덕거리는 귀족들이 늘어나는 이유고. 그렇게 편리한 남자친구는 쉽게 걸리겠어요? 허튼소리 그만하고 비켜봐요.”
“네? 왜요?”
베로니카는 대답 대신 쇳조각 하나를 에드워드에게 던져줬다.
“곧 마을이야. 카치운이 정찰 나갔어. 일단 옆으로 새서 대기할 거야. 저주 풀렸어?”
에드워드는 말없이 쇳조각을 집어 들었다.
* * *
요새의 기사는 외지인이지만, 영주는 토박이였다. 그는 전쟁 중도 아닌데 찰리한테서 전령이 아닌 전서구가 왔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렇게 전해진 첫 편지에 적힌 건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이단심문관, 기사, 요정, 엘프, 드워프, 유목민을 포함한 한 무리의 순례자가 아브멜렉 방향에서 왔다. 그들은 유니콘을 잡으러 갈 것이다.>며칠 뒤에 온 두 번째 편지는 더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앵글리아 출신의 기사가 유니콘을 3일 밤낮 싸워 잡았다. 뿔 자름. 그거 영주님 것 아님? 난 출병함. 중간에서 보자.>영주는 휘하 병사한테서 편지를 뺏들어 읽어보았다. 글자가 잘못 쓰여진 건 아니었다. 그는 곧바로 주변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 질문은 합당했다. 아직 유니콘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이 순례자들을 어떻게 맞을 것인지 결정된 건 하나도 없었다. 놀라운 소식이 연이어 왔기 때문에 아무도 제대로 대처를 못했다.
한 가신이 입을 열었다.
“일단 출병하지요! 찰리 경이 이미 출발한 이상, 그걸 말리든 동조하든 우리가 나가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말리려 해도 병사가 필요하고, 동조하려 해도 병사가 필요합니다!”
한 가신이 맞장구를 치자 영주는 다시 물었다.
“그래, 출병은 한다 치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지? 이 순례자들을 덮치자고?”
속이 뻔히 보이는 편지였다. 가신들은 다시 침묵했다. 그때 한 남자가 나섰다.
“여기보다 더 서쪽에 빛의 교리를 따르는 영주는 없습니다! 우리가 최전선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나는 건 둘뿐입니다! 빛의 것이 되거나, 어둠의 것이 되거나!”
“그래서?”
영주의 물음에 사내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영주의 영지와 그 사냥터는 신성한 권리! 그 누구도 침해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유니콘의 뿔은 영주님 것입니다!”
영주는 턱에 손을 대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좀 억지스러운 논리지만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여긴 최전선이고 그의 영지다. 버려진 땅과 댐 따위, 전부 자기 것이라고 우겨도 된다.
다른 가신도 끼어들었다.
“게다가 영주님이 한번 포획을 시도했던 놈입니다! 그 앵글리아 기사는 사냥감을 가로챈 셈이지요!”
한 사람이 입을 열고, 최고 결정권자가 거기에 혹하면 그다음부터는 너도나도 달려들어 이유를 보강해 준다. 다들 자기는 10년 전부터 그렇게 생각했다는 투로 앞다퉈 입을 열었다.
영주는 보다 현실적인 질문을 꺼냈다.
“그런데 세트렛 영역을 살아나오고, 유니콘과 싸워 이긴 기사를 어떻게 이겨? 게다가 엘프도 있다는데?”
다시 침묵. 여기저기서 눈알 굴리는 소리가 나왔다. 잠시 뒤 첫 번째로 입을 연 가신이 다시 나섰다.
“최대한 많은 병사를 끌고 나가 길을 막는 겁니다! 그다음 초대를 하죠! 초대에 응하면 그때 꾀를 써서 뺏으면 되고! 거부하면 내놓고 지나가라 하면 됩니다! 하다 하다 안 되면 그때 치죠!”
더 고민할 여지도 없었다. 출병도 시간이 걸린다. 영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계획은 그렇게 잡고! 나머지는 가면서 생각한다! 출병 준비!”
* * *
“제대로 안내했으니 살려만 주십쇼.”
전서구 관리병의 말이었다. 어느 소농촌의 작은 언덕 위에 무릎 꿇은 그는 육지에 끌어올려 졌다가 해수에 담가지길 반복한 해산물 몰골이었다. 이단심문관은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좀 더 두고 보고.”
잠시 뒤, 카치운이 말을 타고 달려왔다.
“안 되겠소! 영주네 성 쪽에서 출병한다고 이미 소문이 자자하던데?”
“빠르기도 해라. 전서구는 그게 장점이긴 하지.”
베로니카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자신의 호위기사, 에드워드를 돌아보았다.
“어쩔래?”
에드워드는 벌레 씹은 표정으로 쇳조각을 만지작거렸다. 쇠는 점토만큼 무력하게 마구잡이로 꺾이고 눌리며 존재감을 부정당했다.
스텔라는 그의 죽죽한 표정을 보고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고, 헬레나는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시각 가장 불행한 앵글리아 기사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개X발새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