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5)
15화 쿠데타는 무기를 쥔 자의 기본 소양
날이 밝을 때쯤 에드워드와 미아는 소름 끼치는 비밀 통로를 통해 다시 객관 밖으로 나가야 했다. 그 안에서 에드워드는 왜 꼽등이들이 객관까지 쳐들어올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알았다. 비밀 통로의 일부는 하수구와 공간을 공유한 것이었다. 비밀 통로는 객관 옆 창고로 이어져 있었다. 에드워드와 미아는 그 창고의 기둥 뒤로 빠져나온 다음 출입구를 닫았다.
“괴물에게 쫓기면서도 그 소굴이 있는 하수도 쪽 비밀 통로를 택하다니, 너도 꽤 강심장이군. 아니면 생각이 없는 건가?”
“잠깐이니까, 재주껏 피할 생각이었죠.”
“생각이 없는 것 맞네. 피할 거면 자물쇠를 산으로 녹일 생각 따윈 안 했어야지.”
실제로 새 자물쇠로 쓸 잡동사니들을 구하느라, 베로니카는 출발 직전까지 온갖 핑계를 만들며 객관의 고용인들을 괴롭혔다. 하지만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다른 방법을 찾는 사이에 죽었을 수도 있죠. 전 다급했어요. 언제까지 숨어다닐 수도 없고, 밤마다 꼽등이들이 쫓아오고. 도박할 만했죠.”
에드워드는 코웃음을 친 다음 햇빛 아래서 미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제일 싼 옷을 입히고 향로의 숯과 재로 분장을 했더니 그럭저럭 남자인 척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그렇게 보세요? 이상해요?”
“아니, 남장 여자는 드물잖아.”
성별과 반대로 옷을 입는 건 종교적 죄인지라 흔히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물론 예외는 항상 있었다. 목숨이나 순결이 걸리면 대개 무죄다. 그런 이유로 여전사나 여기사도 종종 남장을 한다. 특히 말을 타고 싸우는 경우는 바지 외엔 선택지가 없으니까.
그래도 이단심문관 일행에 남장한 여자가 있을 거라고 상상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니, 안전한 변장이긴 했다.
“무기는 쓸 줄 아는 것 있나?”
“몽둥이 정도?”
“횃불이나 들어야겠군. 부싯돌과 단검 하나 사라.”
미아는 허리춤에 찬 주머니를 풀었다. 그 안에 부싯돌과 손가락만 한 칼이 있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단검만 사라. 빵칼이나 팔뚝 정도의 길이. 그 정도는 허리에 차고 다녀야 고용된 사내놈이라고 하겠지.”
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베로니카의 계획을 다시 떠올렸다. 그녀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비상수단을 쓸 생각이었다. 미아는 머리를 식혔는지 좀 더 차분하고 딱딱해진 어조로 에드워드에게 질문했다.
“사람을 재깍재깍 죽이는 시의회 놈들과 협상이 가능합니까?”
“뭐, 모른 척하고 대충 시나리오 짜서 수습한 다음 여기를 떠나는 방법도 있어. 상황 보고 결정하면 되겠지.”
“그럼, 정의는 어쩝니까?”
“어젯밤에도 느낀 거지만, 아가씨가 속은 열혈이네. 그 꼴 보기 싫으면 당신이 증거 열심히 찾아봐. 생각나는 거 더 없어.”
“없습니다. 제가 아는 건 베로니카 씨에게 다 이야기했습니다.”
실험에 참여한 연금술사의 명단이 어떻고, 서류가 어떻고, 영수증이 어떻고 물자는 어디서 조달했고, 오·폐수를 버린 곳은 어디고 등등. 귀중한 증언들이긴 했다. 하지만 난관도 많았다.
“오·폐수 따위가 지금도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네. 남아 있어도 그게 거대 꼽등이와 어떤 상관이 있는지 증명할 수 있을까? 눈앞에서 작은 꼽등이에 부으면 큰 꼽등이가 되나?”
“저도 모릅니다.”
“어렵군. 차라리 처음부터 오·폐수를 정화하자고 설득했으면 이런 일 없었을 텐데.”
“여자 혼자 힘으로는 어려웠죠. 다른 연금술사들과 지역 유지들을 무시할 수도 없었고.”
“정의감에 불타는 성격으로도 그건 안 되던가?”
“정의감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죽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정의감이 좀 늦게 눈을 떴죠. 안일했습니다.”
“잘 아네. 다음엔 좀 제때 하자고.”
미아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힘 있는 자는 굽히지 않아도 되죠. 기사와 이단심문관은 힘이 있잖아요. 기회가 왔을 때야 겨우 희망을 거는 짓이 그렇게 비겁하거나 어리석은 건가요?”
“아니. 하지만 양심 고백과 내부 고발은 더 치밀할 필요가 있지.”
“노인처럼 말씀하시는군요.”
“그러게. 옮았나 봐.”
“어디의 누구한테서요?”
“왕궁 감옥 안에는 현자가 많지.”
미아는 입을 다물었다. 왕실 감옥에 들락거렸다는 건 정치범이거나 중범죄자란 소리였다.
“뭐, 그래도 아가씨는 현명한 쪽이야.”
“예?”
“자기 실수를 수습하려고 하잖아. 왕실 챔피언이라는 기회를 눈 뜨고 놓치지도 않았고. 나 어디에나 있는 흔한 놈 아니다?”
자기 자랑이 담긴 평이었다. 미아는 잠시 할 말을 잃고 헤매다 어렵게 답을 달았다.
“높게 평가해 주시니 고맙군요.”
“그럼, 끝나면 한 번 대 줘.”
“이야기가 왜 그쪽으로 가나요?!”
“나 어젯밤 상처받았단 말이야. 보수는 챙겨야지.”
둘은 아웅다웅하는 사이에 어느 술집 앞에 도착했다. 도시에서 제일 크고 붐비는 곳이었다. 그래 봤자 역병 때문에 손님의 숫자는 많이 줄었지만, 아침부터 술을 찾거나 숙취의 포로가 된 채 아직도 비틀거리는 놈들은 널렸다.
에드워드는 그 술집을 보고 말했다.
“까다롭기는. 어쨌든 여기서부터 시작하자고. 이제부터는 목소리 좀 굵게 내라. 여자란 게 들키지 않게. 그리고 너 당황하거나 급하면 말투가 짧아지고 편하게 변하는데, 알고 있어?”
“그게 왜요?”
“본심이 다 드러나. 안 들킬 자신 없으면 입 닫아.”
에드워드는 더 이상 미아를 달래거나 조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임무에 충실히 임했다. 그는 술집에서 일 없는 건달들을 열두 명 모았다. 모집 공고는 간단했다.
“주인, 여기 놈들에게 전부 맥주 한 잔씩 돌려. 교황 직할 특별 사법관 명령으로 병사를 모집한다. 단기 일자리, 일당 은화 두 개, 선착순 열두 명. 무장도 하나씩 지급하겠다.”
병력은 술이 나오기도 전에 다 모였다. 그렇게 모인 자들은 누가 봐도 잡졸이었다. 말라깽이, 주정뱅이, 노인.
에드워드는 그들에게 은화 한 개씩을 선불로 지급한 다음, 그들을 이끌고 대장간에 갔다.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던 대장간은 서둘러 불을 지펴야 했다.
“대걸레 손잡이에 대못을 박고, 창이라 우겨도 좋으니까 당장 창 내놔! 열세 자루!”
시골이 아닌 도시 대장간에는 재료와 재고가 있었다. 다행히 창 열세 자루는 금방 나왔다.
“불길한 숫자네요.” 미아가 말했다.
“그러게. 누가 은화 서른 닢에 구세주를 팔아 볼래?”
에드워드의 말에 건달들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나왔다. 에드워드는 같이 웃으면서 미아를 포함한 인간들의 손에 창을 하나씩 쥐어 줬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대장간의 쇠집게를 손에 들었다. 묵직하고 튼튼한 물건이었다. 그는 장병들 눈앞에서 그것을 손걸레 짜듯 비틀었다. 건달들의 웃음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에드워드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자리 이탈하는 새끼는 탈영병에 배신자다. 그놈은 서른 닢 받기 전에 병신을 만들어 주마.”
꽈배기처럼 뒤틀린 쇠집게가 땅에 떨어지면서 둔탁한 소리를 냈다. 쿵! 장병들은 잔뜩 긴장하여 침을 삼켰다. 에드워드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일은 힘들지 않다. 개폼 잡으면서 명령만 따른다. 용감한 놈들은 나와 함께 좀 험한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약속하는데, 그 용감한 놈들은 내가 직접 기사 서임을 해 주겠다.”
“그래도 되는 겁니까?”
그나마 덜 긴장한 미아가 질문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원래 기사는 기사가 인정하면 되는 거야. 이 썩은 도시는 새 기사들이 필요하지.”
에드워드는 허리춤에 찬 주머니를 다시 풀어 은화를 한 움큼 꺼냈다. 그는 장병들 못지않게 긴장한 대장장이에게 은화를 내밀었다.
“창 열세 자루, 그리고 쇠집게 값.”
대장장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 은화들을 받았다. 미아는 자신이 쓸 짧은 단검을 따로 하나 산 다음, 에드워드에게 질문했다.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교회로 간다. 거기서 베로니카와 만나기로 했다.”
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워드는 그녀를 살짝 흘겨보고는 말했다.
“따라와.”
기사 한 명, 남장 여자 한 명, 그리고 남자 열두 명은 줄줄이 이동했다. 에드워드는 일부러 사람들 보라는 듯 크게 돌아서 갔고, 곧 구경꾼들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호기심에 장병들 어깨는 점점 힘이 들어갔다. 에드워드는 크게 소리쳤다.
“특별 사법관의 공무를 수행하러 간다!”
계획은 단순했다.
첫째, 에드워드와 미아가 용병을 고용한다.
둘째, 베로니카가 으깨진 꼽등이를 갖고 시청에 가서 조사를 요구한다.
셋째, 용병 중 일부는 베로니카를 호위하고, 나머지는 조사단에 들어간다. 당연히 미아는 조사단에 들어간다.
넷째, 증거물을 잡아서 시의회와 관중들 앞에 내던진 다음 미아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오·폐수의 무단 방류를 고발한다.
다섯째, 베로니카가 그동안 찾은 서류상 증거와 함께 시의회를 심판한다.
만약 시의회를 심판할 정도로 충분한 증거를 모으지 못해도, 거대 꼽등이의 존재와 미아 루이스의 증언은 시의회를 압박할 카드로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는 시의회의 죄악을 공표하는 대신 시와 협상을 한다.
에드워드는 다른 준비물을 사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꼽등이를 포획할 새장, 밧줄, 횃불 자루 등등. 그것들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더 자극했다. 교회 앞에 이를 때쯤엔 이미 적잖은 구경꾼들이 모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베로니카와 리안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베로니카는 붉은 사제복을 입은 모습이었고, 밴시 리안나는 여전히 혼이 빠진 채 자루 하나를 들고 있었다.
“늦어.” 베로니카가 말했다.
“사람 모으고, 무장시키는 게 빨리 끝나는 일이 아니지.” 에드워드가 답했다.
베로니카는 코웃음을 치고는 장병들을 살펴보았다. 그녀는 맑지만, 무게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는 지금부터 교황청 교리법무성과 캠벨 가문과 성묘의 수호자를 대신해, 앵글리아 왕실의 챔피언과 함께 날 호위한다. 이것은 도시를 구원하고, 역병의 근원을 밝혀내기 위한 비상 조치이다.”
끌어 쓸 수 있는 모든 권위의 합. 적당한 명분까지 붙으니 건달들의 얼굴에 비장함이 서렸다.
교회 앞이 소란스러워지자 사제와 수도사들이 나오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베로니카를 바라보았다.
“이단심문관님,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늙은 사제가 나섰다. 베로니카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향후 전개를 직감한 에드워드는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미리 막았다. 이단심문관은 사제를 향해 소리를 높였다.
“역병을 퍼뜨리는 원인을 찾았습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베로니카는 리안나의 손에서 주머니를 뺏었다. 그리고 신경질적인 목소리와 함께 그것을 사제 앞에 내던졌다.
“이딴 게 내 침소까지 쳐들어왔단 말입니다!”
쩌렁쩌렁한 소리와 함께 으깨진 꼽등이가, 그리고 그 회색 내장이 세상의 빛을 보았다. 사람들의 비명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사제는 소리와 물건 모두에 놀라서 주저앉을 뻔했다. 하지만 베로니카는 숨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본디 지하의 습하고 어두운 곳에서 지저분한 것들을 먹고 살아야 할 것들이 사람의 고기를 찾아 기어 나왔습니다! 이게 역병의 원인이 아니면 무엇이 원인입니까!”
교회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베로니카는 재빨리 에드워드를 지명했다. 그는 귀에서 손을 떼고, 베로니카의 손가락 앞에 섰다.
“기사, 증언하라! 이 저주받은 벌레들은 어디서 나왔나?”
“시에서 제공한 객관이오.”
“어디로 나타났나?”
“시에서 만들어 놓은 게 분명한 지하 비밀 통로요.”
“그것은 어디와 이어져 있는가?”
“하수도요.”
“이것들은 모두 몇 마리나 있었나?”
“셀 수도 없소.”
“그대는 어쩌다 이것을 죽였나?”
“이놈이 먼저 덤볐고, 그 사이에 나머지는 도망쳤소.”
증언하는 와중에 에드워드는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갈색 상의에 시의 문장. 시청 공무원의 복장이었다. 그는 당황한 눈치였고, 재빨리 관중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도로 사제를 향해 눈을 돌렸다. 사제는 수도사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드워드는 선고하듯 말했다.
“이런 괴물이 나오는데도 사태를 방치한 것은 시의 잘못이오. 그들은 하수구 입구를 틀어막는 데 급급할 뿐이오. 이래선 해결이 아니 되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사제가 질문했다. 대답은 베로니카가 했다.
“지금부터 시청과 시의회는 모든 권한을 상실합니다! 교회는 특별 재판소를 열 것이며, 국왕의 행정관이 도착할 때까지 참사회가 시의 행정과 입법을 대신합니다! 클레어 가문의 기사 에드워드는 조사대를 꾸려 이 괴물들의 둥지를 찾아낼 것입니다!”
각오는 했지만, 참 듣기 어려운 말이었다. 에드워드는 웃음을 지었다. 병사 열세 명으로 시작해서 이제는 교회를 장악했고, 시 행정부도 정지시켰다. 일사천리였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다.
베로니카는 사제들을 대동하고 시청으로 쳐들어갔다. 그 뒤를 에드워드와 열세 병사가, 그리고 관중들이 뒤따랐다. 처음엔 어쩔 줄 모르고 따라가던 걸음들도 곧 공포, 분노, 광기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민중의 파도가 들이닥친 순간, 시청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다들 바쁜 와중에 밴시 리안나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꼽등이의 잔해를 챙겨 도로 자루에 넣었다. 그녀는 두꺼운 장갑에 묻은 회색 액체를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세상에 이것보다 나쁜 일은 없을 거야.”
리안나가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