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51)
151화 옛 친구는 꼭 의심해야 한다 (3)
가능하면 영주가 찰리 손에 죽고, 증인도 다수 남는 것이 에드워드한테 베스트. 하지만 찰리가 일방적으로 이겨버린 뒤는 안 된다. 다른 증인이 필요할 경우를 대비해서, 에드워드는 성하 마을 사제와 성내 근무자들의 가족들을 동반했다.
“엘프 씨는 살 좀 빼세요! 특히 가슴살! 남자 유혹하는 망령도 그런 사이즈의 가슴은 안 달고 다니는데!”
“……너, 태워버린다?”
헬레나는 허리띠 캐슬린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성벽을 올라갔다. 길도 아닌 산 속을 달리고 나무 위를 뛰어오른다는 엘프 전사라도, 발 딛을 곳도 싹 없앤 수직 성벽은 극복하기 마땅찮았기 때문이었다.
“경비병이 다 사라진 이때가 기회니까 서둘러요! 실패하면 기사님한테 저만 혼난다고요!”
“나도 알아!”
간신히 헬레나를 성벽 위에 올려다 놓고 돌아온 캐슬린에게 내려온 다음 명령은 더 가혹했다.
“가르달도 올려놔.”
“엘프 씨보다 드워프 씨가 더 무거운데요!”
가르달은 흉악한 공구들을 꺼냈고 캐슬린은 찍소리도 못했다. 잠시 뒤 가르달은 캐슬린에게 붙들린 채, 성벽 위를 갈고리로 찍으며 올랐다.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돌아보았다.
“경비병 없으니 편하네. 가능하면 안쪽에서 스스로 문을 열어주길 바랐는데.”
“스스로 문을 열다니?”
“찰리가 날뛰면 장난 아니거든. 영주 쪽 군대는 달아나거나 지원군을 요청하려고 문을 열 거라고 생각했어.”
“안 여는데?”
“그러게. 안 여네. 생각보다 내부가 팽팽한 것 같다. 아니면 그 생각도 못 떠올릴 정도로 머저리만 남았거나.”
“네 손에 걸리면 요새건 성이건 하루 만에 넘어가네. 이게 앵글리아식 전술이니?”
“에이, 저건 내 공이 아니지. 따지자면 찰리 공이려나. 진짜 내 공은 엥겔네 바위 성이었는데. 그건 두고두고 이야깃거리가 되고도 남지.”
“찰리 경도 웃기네. 타이밍만 잘 맞췄을 뿐인데 이렇게 농락당하다니.”
“내가 그 자식이랑 몇 년을 같이 굴렀는데, 이 정도는 알아야지.”
물론 실제로 쉬운 건 아니었다. 영주의 습격 타이밍에 맞춰 찰리가 성에 들어오게 한다는 건, 사람의 마음을 읽고 조종하는 마법처럼 들리기도 했다. 물론 실제로는 마법이 아니지만.
“여자 마음도 그만큼 좀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베로니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스텔라랑 하는 대화, 들었냐?”
“어쩌다 보니. 너도 내 편지 봤으니 피장파장이다?”
“흠, 뭐 그렇다 치지. 그건 이런 사담이 아니라 업무 쪽 편지들뿐이었지만.”
“어쨌건 숙녀의 편지야.”
“네, 네. 알아서 모십죠.”
에드워드는 성으로 시선을 돌렸다. 잠시 뒤, 성문 뒤에서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울렸다.
“좀 서둘러라, 엘프! 사람 족칠 때는 힘이 넘치는 주제에, 미는 건 드워프만 못해!”
“제가 쓰는 건 완력이 아니라 정령의 힘이거든요? 그리고 비교 대상이 드워프인 건 좀 불공평하지 않아요?”
빗장을 내동댕이치는 소리가 뒤를 이었다. 에드워드는 문이 열리길 기다리면서 말했다.
“성지 가면 뭐할 거냐?”
본래는 항상 에드워드한테 향하던 질문이었다. 베로니카는 짧게 대답했다.
“알아서 뭐하게?”
에드워드는 무시하고 질문을 더 꺼냈다.
“소속은 교황청이니까, 교황청 쪽으로 다시 방향을 잡나?”
“아니, 시오니아 총대주교좌 아래 남을 거야. 아마 몇 가지 직위를 겸직할 것 같아.”
“고위 성직자의 길을 가는 건가?”
“교황청의 평가가 높으면 시오니아 총대주교좌도 긍정적으로 봐줄 테니까.”
“흠. 죽음의 피라미드까지 따라와 준 성직자가 고위직 진출이라. 그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좋은 인맥이지.”
“복 받은 줄 알아라.”
“근데 성직자가 고위직까지 진출하려면 금혼서약하는 게 유리하지?”
“그런데?”
에드워드는 손가락 바깥쪽을 투구 안에 넣어 턱을 긁으며 말했다.
“애인 하나 안 필요하냐?”
베로니카의 표정이 굳었다. 각자 따로 결혼하거나 독신으로 지내면서 ‘육체적으로’ 즐거운 만남 갖기.
“……한다는 소리가 겨우 그런 계산이니?”
“네가 결혼 안 한다면 말이야.”
“할 거야.”
“하면 불리하다며.”
“하고도 성직에 남고 싶으니까 평점에 애쓰는 거지.”
베로니카는 에드워드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앞으로도 계속 성직자와 같이 일할 자신 있으면 말해. 그러면…….”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돌아보았다. 얼굴은 안 보여줬지만 귀는 빨개졌다.
뭔가 더 묻기 전에 성문이 열렸다. 에드워드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고위성직자에 도전하는 이단심문관의 남편이라. 가시밭길이겠구만.”
“네가 바랄 보상은 아니지?”
기사의 입신출세에 중요한 건, 돈 많고 땅 많고 작위도 있는 여자. 에드워드는 투구 아래에서 손을 꺼냈다. 그는 열쇠검을 고쳐 잡았다.
“언제까지 답변 주면 되냐?”
베로니카는 당황해서 손을 내저었다.
“야, 생각하지 마. 내가 잠깐 미쳤나 봐. 너도, 나도 골 아파져. 둘 다 잘 될 확률이 너무 낮아. 게다가 저주도 못 풀었잖아.”
“이해했다. 저주 풀고 나서 다시 이야기하자.”
“생각하지 말라니까?”
에드워드는 답변하지 않았다. 그는 열린 성문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 * *
찰리의 부하들은 영주의 부하보다 수가 적었다. 그러나 실력은 좀 더 위였고, 이미 객관 안으로 들어간 영주 세력의 뒤에 섰기 때문에 위치상 유리했다. 영주의 세력이 객관 안팎으로 분단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영주가 제일 먼저 살해당했단 것이었다. 찰리는 피칠갑을 한 채 영주의 목을 들고 외쳤다.
“이곳은 무엇보다도 큰 힘과 책임이 요구되는 땅! 나약하고 비겁하며, 휘하의 기사를 죽이려 한 자는 영주의 자격이 없다!”
“개소리 집어치워라, 배신자 새끼야!”
영주 측 기사의 고함이 뒤따랐다. 그는 찰리와 검을 부딪혔다.
“네놈을 누가 인정한다는 거냐!”
찰리는 씩 웃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찰리가 영주의 머리를 내던진 다음 몇 차례 공방이 오갔다. 그러나 최전선이라 해도 변경 시골 기사의 실력은 앵글리아에서 온 기사만 못했다. 찰리의 검이 그 기사의 어깨로 떨어졌다. 갑옷의 사슬 고리들이 끊어지며 흩날렸다.
“끄악!”
그가 객관 안의 마지막 기사였다. 하지만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한 병사가 찰리에게 뛰어와 외쳤다.
“바깥쪽 교전이 불리합니다! 뚫리고 있습니다!”
“안쪽이 정리됐으니, 밀고 나간다!”
찰리는 남은 영주 측 병사들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지금 당장 내 아래에서 싸워라! 그러겠다 하는 놈들만 살려주겠다!”
기사가 없어진 병사들은 자기들끼리 눈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찰리를 향해 무릎 꿇었다.
“항복합니다! 찰리 경,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찰리는 투구를 벗고, 쓰러진 기사의 시체에 침을 뱉었다.
“이 새끼 시체에 침 뱉고 지나가라! 누구 보다 앞장서서 싸워라! 아니면 살려주지 못한다!”
병사들은 앞다퉈 찰리를 지나쳤다. 소식을 전한 부하가 그들의 뒷모습을 보고 말했다.
“놈들은 열성적이질 않을 겁니다. 앞으로 잘 나서지도 않을 거고. 뒤에서 찌르면 어쩝니까?”
“뒤에서 찌르는 게 걱정이면 더더욱 앞으로 내보내야지. 내가 걔들 뒤에 서 있기만 하면 돼. 제대로 못 하는 놈의 대가리를 내가 쪼개놓을 테니까.”
찰리는 영주의 머리를 집어 들고는, 바로 객관 입구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과연 병사들이 서로 뒤엉켜 난전을 벌이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장식용 석상 위에 올라서, 영주의 머리를 높이 들었다.
“영주는 죽었다! 지금부터는 내가 이곳의 영주다!”
늘어나기 시작한 적병, 찰리의 가세, 그리고 영주의 머리. 영주 쪽 군대는 단번에 뒤흔들렸다.
“성문을 열어라!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라도 불러들여! 그리고 도련님께 전령을!”
한 가신이 소리쳤다. 찰리는 그를 비웃었다. 그 결정은 한참 전에 해야 했다. 지금 와서 해봐야 늦었다. 머리가 돌아가는 전술가가 안 남았다는 반증이다.
찰리가 이겼다.
객관 앞 적들이 와해 되자, 찰리는 곧바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가신들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일부는 그 칼에 맞고, 일부는 도망쳤다.
“으아, 으아악!”
“살려줘!”
“항복! 항복하겠소!”
영주 측 군세는 그걸로 끝났다. 남은 가신들과 병사들이 뿔뿔이 흩어지자, 찰리는 소탕전에 나서지 않고 곧바로 영주관으로 방향을 바꿨다. 너무 많이 죽여도 나중에 문제가 된다. 그리고 그보다 급한 것들이 많다.
“영주관으로! 보물고와 규방을 장악한다! 부관, 영주 부인을 확보해라!”
찰리는 보물고로 뛰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계산이 바쁘게 돌아갔다.
영주 부인과 그 주변 시녀들은 정통 후계자를 상대하기 위한 인질로, 그 친정 가문과 흥정하는 데 쓸 수도 있다.
형식적인 결혼도 못 할 것 없다. 이런 변경의 상속법은 절대적이지 않다. 교회법과 세속법과 관습법으로 갈리고, 자유민과 예속민으로 갈리며, 혈연과 지지도로도 갈린다. 이중 무엇을 선택하는가는 정치 상황에 더 좌우된다. 문화나 필요에 따라서는 중혼도 노려볼 수 있다.
보물고는 유니콘의 뿔을 비롯한 각종 재화가 있다. 이 재화를 틀어쥐면 성밖에 남은 사람들을 휘어잡을 수 있다. 고용인은 항상 봉급 주는 자의 편이다. 남은 건 외교에 써도 되고, 군비 마련에 써도 된다.
에드워드가 가져갔다는 절반의 뿔은 손에 넣기 어려워졌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성적표다.
‘영주 후계자가 돌아오려면 시간이 걸려. 그 사이에 모든 걸 해치우고, 분쟁에 대비한다. 찬탈자를 반가워할 세력이 없으니까 좀 외로운 싸움이 될 거야. 하지만 각개격파한 후 기사단처럼 좀 더 큰 외부세력에 줄을 대면…….’
그의 길고 긴 계산표 중간에 한 병사의 외침이 끼어들었다.
“보물고 문을 열었습니다!”
부서진 자물쇠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잠시 뒤, 찰리 일행은 보물고 바닥에 널린 보석들을 보고 감탄했다.
크고 작은 보석들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찰리의 부하들은 전문 용병으로, 금화는커녕 은화도 실감 안 나는 농민병 따위가 아니었다. 그들은 보석에 눈이 바로 뒤집어졌다.
“내 거야! 내가 주웠어!”
“밟지 마, 멍청아! 보석이 상하잖아!”
“새꺄, 죽여버린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모습. 어찌 보면, 이 땅에 와서 간만에 맛보는 승리의 순간이다. 더 큰 전쟁과 ‘재미’를 제공할 발판이기도 했다.
그러나 찰리는 위화감을 느꼈다.
‘이 보물고가 원래 이랬나?’
보석은 언뜻 보기에도 상급품이었다. 영주의 보물고에 이런 상급품들이, 아무렇게나 바닥에 널려 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다. 여기는 변경이고 영주는 짠돌이다. 그가 기대한 건 금화와 은화로 적당히 채워 넣어진 궤짝들, 주변 세력들과 주고 받았던 선물들이 곱게 전시된 선반이었다.
보석이 없지야 않겠지만, 지금 이 수량은 어딘가 비현실적인 광경이다. 그는 문득 가장 큰 보물에 생각이 닿았다.
“유니콘의 뿔은? 방금 들어온 것이니 잘 보이는 데 있을 텐데…….”
그 순간, 찰리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퍼억!
“억?!”
찰리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묵직한 무언가가 그의 오른쪽 어깨를 내리친 것이었다. 끔찍한 고통이 그의 몸을 뒤흔들었다. 찰리는 황급히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는 자신을 공격한 자가 누군지 안 봐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기사가 비겁하게 뒤에서……!”
“국왕 폐하께서는 그거 신경 쓰지 말라더라.”
에드워드한테, 패널티를 안은 채 동격의 기사와 정면 대결할 생각은 없었다. 괴력의 손이 찰리의 왼쪽 어깨를 짚었다. 콰직! 그리고는 찰리의 등을 있는 힘껏 걷어찼다. 빠악! 찰리는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부딪혔다.
에드워드가 찰리를 뒤집어보니, 그는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설령 기절한 척이라 해도 양쪽 어깨가 작살난 이대로는 전투 불능. 에드워드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네놈이 할 말도 아니고.”
에드워드는 보물고 안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쉬사베스의 보석. 엘프도 드워프도 잠시 말을 잊게 만들었던 상등품 보석들. 그는 어둠 속에서 뛰쳐나왔다. 무기도 놓고 보석을 줍던 용병들은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싸움이 끝났다.
* * *
“아아, 정말 다행이지 뭡니까! 손님들께서 마침 성 밖에 계셨고, 바로 지원에 응해서 달려오시다니!”
한 가신이 영주 부인 뒤에서 열심히 떠들었다. 영주 부인은 중년의 여성으로, 시녀들의 부축을 받아 알현실까지 나왔다. 그녀는 아직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가신은 자신이 에드워드 앞에 무릎 꿇어 얼마나 감동적인 연설로 배신자를 규탄했는지 한참을 더 떠들었다. 에드워드는 그가 떠들게 내버려 두었다.
다른 일행들에게 난전을 맡기고, 혼자 찰리를 습격하러 간 에드워드는 보물고의 자물쇠를 괴력으로 비틀어 열었다. 그리고 그 바닥에 다쉬사베스의 보석을 뿌려두었다. 그다음, 다시 보물고 밖으로 나가 자물쇠를 원상 복구했다.
찰리와 그 부하들의 얼이 잠시라도 빠지면, 그걸로 충분하다.
“기사님, 이 보석은 흠집 났는데요.”
리안나가 한 루비를 집어 들며 말했다. 에드워드는 인상을 썼다.
“어쩔 수 없지. 이번엔 돈이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곱게 넣어놔.”
보물고에 들어간 찰리의 부하들은 대부분 항복도 못 하고 에드워드 하나한테 다 살해당했다. 규방으로 달려간 자들은 다른 일행한테 제압당했다.
“찰리 경은?”
베로니카가 묻자 에드워드는 짧게 답했다.
“감옥에.”
“바로 안 죽이고?”
“절차라는 게 있잖아.”
죄 자체도 중죄고, 살려두면 후환이 될 게 뻔하다. 영주의 가신은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굶주린 개들에게 던져줄까요? 생각 같아선 사자굴 같은 것이라도 마련하고 싶습니다만…….”
“처벌의 권한은 영주 부인께 있지?”
“그렇습니다만.”
에드워드는 영주 부인을 향해 말했다.
“그자의 처벌을 제게 맡겨주시겠습니까?”
부인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에드워드 경은 기발한 수와 담력을 가진 분이시니,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혹여 과거의 친분으로 그를 살려두고자 하는 건 아니신지?”
에드워드는 씩 웃었다.
“그럴 리가요. 실망 안 하시게 해드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