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전공 외의 길로 사는 법(1)
에드워드는 언제 어디서 본 것이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 토막글을 머릿속에서 떠올렸다.
미국 서부 시대 골드러시에 관한 글이었다. 대부분의 탐광꾼은 거지가 됐지만 그래도 금을 캔 사람도 있기는 있던 시대.
하지만, 그나마도 물자가 부족한 개척촌의 특성상 사금 한 줌이 와인 한 병과 교환된다고 했었다.
며칠에 걸쳐 사막을 걸어가 시약 수집꾼들의 개척촌에 도착한 에드워드가 보는 광경은 그것과 비슷했다. 밭과 목초지는 별로 없고, 전방에서는 어느 마을이든 필수적으로 추가하는 울타리나 장애물도 없이, 사막에 집과 천막들만 덩그러니.
“당신이 그자군. 백작을 도와주고, 옛 친구를 잔인하게 죽였다는 기사.”
한 노인이 수연통을 뻐끔뻐끔 피워대며 말했다. 그는 개척촌의 유일한 우물 주인이었다. 담배를 피우는 데도 물을 쓸 만큼 그는 여유로웠다. 에드워드 일행도 그에게서 물을 샀는데, 아주 비싼 물값이었다.
“소문 무지 빠르네. 우리가 첫 손님인 줄 알았는데. 뭐, 정확히는 백작을 도운 게 아니라 백작 부인을 도왔지. 문제 있소?”
에드워드가 퉁명스레 말했다. 노인은 웃으면서 호스를 입에 넣었다 뺐다. 그의 입과 코에서 연기가 가득 피어올랐다.
“사막에서는 별별 일이 다 벌어지지. 그렇게 죽일 필요 있었냐는 질문이 자네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질 거야.”
“그런 일이 벌어지면, 내 탓이 아니라 댁 탓일 것 같군. 그 자식은 죽어도 싼 짓을 저질렀소. 옛 친구를 배신하고 자기 주인을 죽였으니까.”
“악령은 자기가 잘못한 줄 몰라. 그의 피를 흘리게 한 자도 마찬가지지만.”
노인은 허리를 폈다.
“잊지 말게. 사막에서는 별별 일이 다 벌어져. 그리고 그것은 속삭임과 그림자로 다가오지.”
에드워드는 대꾸하지 않고 우물 주인 앞을 떠났다. 베로니카가 중얼거렸다.
“저 작자도 보통 인간은 아닌데.”
“그러게. 왜 내 주변엔 저런 것들만 꼬이지? 내 앞에 앞날을 운운하며 꼬이는 예언자와 선지자와 은자들과 악령들을 모으면 한 개 연대가 나오지 않을까?”
“너무 잔인하게 죽이긴 했나 봐. 저런 경고가 나오는 거 보면.”
에드워드는 입을 삐죽였다.
“너도 안 말렸잖아.”
“영주를 죽인 데다 친구를 위험에 빠뜨리고, 보물을 뺏으려 한 죄라면, 크긴 하거든. 굳이 따지자면, 옛 친분이 있는데도 자비를 안 베푼 점이 마이너스?”
에드워드는 코웃음을 쳤다.
“옛 친구라서 더 용서를 못 하는 경우도 있지.”
베로니카는 노래하듯 읊었다.
“죽음은 피 흘린 유족이 받을 몫, 고통은 배신당한 친구가 받을 몫이라.”
“그렇게 붙여도 말이 되는군.”
물과 쉼터를 확보한 일행은 아직 오지 않은 대상을 기다려야 했다. 여관방은 큰 방에 카펫으로 남녀분리용 칸막이를 설치했을 뿐이지만 넓고 깨끗했다. 베로니카는 활기찬 개척촌을 돌아보며 말했다.
“뭐, 찰리가 영주 되었으면 여기부터 침공했을지도 모르지. 우리 일행도 죽거나 흩어졌을 거고.”
에드워드는 잠깐 고민해보았다.
“여길 공격한다?”
“왜 그것부터 생각하니?”
“기사의 본능? 뭐, 거리가 좀 있다는 게 문제네. 가장 가까운 다른 영주의 성보다 약간 더 멀다고 하니까.”
“위치도 상당히 궁벽해요. 평소엔 성에서 성으로 이동하는 게 차라리 더 편하겠어요.”
리안나가 말했다. 에드워드는 스텔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유니콘의 뿔 때문에 이 근방 영주들을 못 믿겠어. 결국 영주들한테 신세 지게 되더라도, 일단 마법사의 시약은 쟁여놓는 게 좋겠지.”
“탁월하신 선택!”
스텔라가 맞장구를 쳤다. 그녀의 눈은 하늘의 별빛을 다 긁어모아 넣었다 해도 믿을 만큼 초롱초롱했다.
“아까 그 욕심쟁이 영감님 뒤에 잔뜩 쌓인 시약들 보셨어요? 물값이라면서 시약들 갖고 오는 손님들도! 그 비싼 시약을 겨우 물 몇 모금에 한 주먹씩 내놓는 동네라니! 마법사들의 꿈 같은 곳이네요!”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여기서 물은 겨우 물 몇 모금이 아닌데.”
“어쨌든 물은 중요하죠!”
“결론이 이상해.”
“그렇네요. 그나저나 우리는 이 개척촌 사람들에게 뭘 팔아야 될까요?”
에드워드는 가르달을 돌아보았다. 드워프의 간이대장간. 스텔라는 드워프 앞에 무릎 꿇고 그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드워프 아저씨! 지금 이 순간은 아저씨가 백만장자예요!”
“내가 미쳤냐? 내 간이대장간을 팔게?”
“그럼 대장간 여시죠!”
“말 안 해도 열어.”
가르달은 투덜거리면서 에드워드를 돌아봤다.
“이럴 줄 알고 숯과 고철은 이것저것 좀 챙겨왔소. 무거웠지만 지고 온 보람은 있네. 그런데 일은 내가 하고 시약은 스텔라가 받는다니 뭔가 불공평하군. 쟤도 돈벌이 수단 있잖아.”
“읽고 쓰는 걸로 버는 건 여기 와도 푼돈인 듯한 게 문제요. 뭐, 스텔라한테 빚지게 하는 셈 칩시다.”
“빚?”
에드워드는 스텔라를 돌아보았다.
“너 지금 월급 받고 있지?”
“반토막인 데다 유니콘 때부터 겨우 받게 됐지만요. 기사님, 설마…….”
“시약값으로 징수한다.”
며칠 만에 다시 빚투성이 무급 노동자가 된 스텔라는 울상이 되었다.
“그런 게 어딨어요! 일행 전체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하세요!”
“네 실험용으로 다 날아가면 무슨 소용이냐?”
“전투는 단기 투자! 실험은 장기 투자! 분배를 적절히 하셔야죠!”
“말 잘했다. 그럼 지금 그 분배를 정해야겠군.”
에드워드와 스텔라의 피 말리는 협상이 시작되었다. 월급과 기본 지급 시약과 그 분배에 대해서. 스텔라는 시작부터 비명을 질렀다.
“짠돌이! 이거 제가 기사님 여자관계 두고 놀리는 것에 대한 복수죠? 그쵸?”
“잘 아네.”
“쪼잔해!”
헬레나는 베로니카를 돌아보았다.
“에드워드 경이 스텔라 양의 금전 문제는 정말 단단히 휘어잡는군요.”
“그러지 않으면 실험과 도박으로 다 날려버릴 테니까요. 도박은 저놈 때문에 맛 들인 거지만, 원래 마법사라는 족속들은…….”
베로니카는 덤덤히 말했다. 한참 뒤에야 스텔라는 겨우 만족할 만한 합의를 끌어냈다.
“가르달 아저씨! 당장 대장간 열어요!”
“좀 쉬고 열자!”
드워프가 버럭 하는 소릴 배경음악 삼아 풍경을 구경하던 카치운이 겨우 입을 열었다.
“특이한 개척촌이군. 종족이 전부 제각각이오.”
에드워드가 물었다.
“마법사 좀 보이나?”
“바다 엘프로 보이는 족속들이 한둘 지나가긴 하던데. 마법사 자체는 드문 것 같소.”
“이런 시약 수집소에 왜 마법사가 안 오지?”
대답은 스텔라가 했다.
“시약이 싸다는 것만으로는 마법사들이 안 모이죠! 게다가 여기 모이는 시약 종류들이, 마법사들한테 필요한 시약 전부일 리가 없잖아요.”
“아, 그렇군. 이곳에 모이는 것보다 더 다양한 종류가 필요하다 이건가.”
에드워드는 납득했다. 잠시 뒤, 가르달은 스텔라의 등쌀에 못 이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대장간 열어봅시다.”
해질 때쯤. 스텔라는 가르달이 드워프라는 것이 굉장히 아쉬운 결과를 얻었다. 물물교환의 끝은 그녀가 다 갖고 갈 수는 있을까 의심스러운 양의 시약들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드워프 아저씨가 인간이면 여기다 처박아두는 남자친구 3호로 삼는 건데.”
“3호? 1호와 2호도 있냐?”
“1호는 돈 많은 사람, 2호는 잘 생긴 사람? 출장 잦은 남자들은 현지처 여럿 만들잖아요. 여자는 못할 게 뭐람.”
“남자 욕심이 많군. 그런데 아직 처녀냐?”
“1호부터가 난관이잖아요!”
“1호는커녕 나무토막도 못 거두고 사타구니에 거미줄 치겠다.”
베로니카는 둘의 투닥거림을 무시하고 본론을 꺼냈다.
“오래 있기 좋은 곳은 아니야. 사제로서 보람을 느끼기엔 나쁘지 않지만.”
“그 정도야?”
에드워드의 질문에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 사제는 교회도 없더라. 감투 정신으로 여기까지 와서는, 작고 허름한 천막 안에서 생활하던데.”
“대단하네. 난 그렇겐 못 살겠다.”
“거칠고 힘든 삶이지. 이 개척촌 자체가 편한 곳이 아니니.”
물은 우물 하나뿐이라 비싸다.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끼리 싸움질이 잦다. 다들 거친 사람들이고 사냥꾼도 적지 않았다. 지도자라 할 사람은 우물 주인이 고작인데, 그와 그의 일족은 뜨내기들을 상대로 어떤 권력을 얻는 데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시약 채집꾼들은 뜨내기예요. 어떤 이유로 사냥터가 옮겨가거나, 집결지가 바뀌면 도로 흩어질 사람들이죠. 여긴 평범한 목초지나 사막으로 돌아갈 테고.”
스텔라의 설명이었다. 카치운은 얼굴을 찌푸렸다.
“사람 쓸 줄을 모르는군. 지도력만 있으면 군대로 바꿀 수도 있는데. 잠깐의 일확천금에만 관심이 있다니.”
“유목민족다운 발상이군.”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그는 문득 우물 주인 노친네를 떠올렸다. 불길한 소릴 읊으며 뭔가 있는 체하던 작자.
“뜨내기들을 모아 세력화 못 하는 데는 현실적인 이유가 몇 가지 더 있겠지. 그건 우리가 신경쓸 일 아니야.”
그때였다. 갑자기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에드워드가 바로 물었다.
“누구요?”
“여기 주인이요. 아까 마법사 아가씨가 요청한 시약 목록들 말인데…….”
손을 하나라도 더 늘리기 위해 위탁했던 일. 스텔라가 바로 문짝을 향해 소리쳤다.
“구했어요?”
“아뇨, 그게…… 갑자기 물량이 부족해져서, 구하기 힘들 것 같답니다. 계속 알아는 보고 있지만…….”
스텔라는 세상 잃은 표정을 지었다. 다만 마법을 모르는 에드워드는 그저 고개를 갸웃거릴 뿐.
“뭐, 종류가 이렇게 다양하면 한두 시약은 그럴 수도 있겠지.”
“중요한 시약들인데요!”
“어떻게 중요한데? 시약 소모량 감소? 횟수 증가? 피해 증가? 시전 시간 감소? 방해 저항 증가? 고정 피해? 체력 비례 피해? 지속 피해 효과 추가? 넉백 추가? 넉업 추가? 구체적으로 말해.”
스텔라는 입을 떡 벌렸고, 베로니카와 헬레나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가르달과 카치운은 그런가 보다 하는 표정. 스텔라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기사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중간쯤부터 못 알아듣겠어요. 기사님도 마법사셨어요?”
리안나는 기어이 한마디 얹었다.
“누구 괴롭힐 때는 마법사 되는 것 맞아요.”
에드워드는 리안나의 발목을 잡고 거꾸로 들었다.
* * *
문제의 시약은 유포르비아 멜란체라는 식물이었다. 에드워드는 물론 헬레나와 베로니카 역시 듣도 보도 못한 식물이었는데, 스텔라는 입에 거품을 물다시피 하면서 그 시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충 요약하면, 상급 주문에 그 씨앗이 쓰이는데, 씨앗이 질을 유지하는 수명이 짧아서 유통량 자체가 많지 않다.”
“네! 네!”
“그리고 그 상급 주문은 나 같은 무식한 기사놈이 바라는 휘황찬란한 마법에 쓰이진 않지만, 일부 마법사들의 몇몇 ‘실험’에는 굉장히 중요하다?”
“아이, 저 기사님을 그렇게까지 나쁘게 평가하진 않았는데요. 사감을 너무 넣으신다.”
그 말에 리안나가 다시 조잘거렸다.
“10분 전에 흥분해서 기사님더러 ‘사실 글 못 읽어도 상관없는 종마 계급한테는 실감 안 나는 문제겠지만’이랬어요. 자기가 말해놓고 깜빡해요?”
스텔라는 리안나에게 뛰어들어 그 볼살을 꼬집었다.
“넌 내가 그리 만만하니? 잿물 냄새나는 꼬맹이 주제에!”
“네!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선 제일 만만하잖아요! 앵글리아 깡촌도 제일 가난한 고용인은 노예랑 진배없더라요!”
“이 주둥이! 이 가증스러운 주둥이!”
“남 말하시네! 노동도 안 하는 인텔리겐치아! 울어버릴 거예요!”
“울어봐! 너 요즘 약해져서 이젠 나도 못 쓰러뜨릴걸!”
에드워드의 허리띠 캐슬린이 그 꼴을 보고 깔깔 웃으며 조그맣게 말했다.
“아무나 이겨라! 저는 승자의 편!”
계급내 갈등을 지켜보던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돌아봤다.
“어떻게 할까?”
“비싼 돈 내고 시중에 남은 시약이라도 긁어모으던가, 시약을 못 구했다는 이유를 찾아 해결해야겠지. 너라면 분명 후자를 택하겠지만.”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내가 만능해결사냐? 없는 식물이 땅에서 돋아나거나, 맺히지 않은 씨앗을 땅에 쏟아낼 수는 없잖아.”
“제가 알아볼게요!”
스텔라는 바로 방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그리고는 에드워드가 열을 세기도 전에 돌아와 문을 벌컥 열었다.
“기사님, 기뻐하세요!”
“왜? 헐벗은 미녀 군단이라도 나타났어?”
“기사님 전공 분야예요!”
“……진짜 나타났다고?”
“그게 아니라! 괴수퇴치예요!”
에드워드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