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54)
154화 전공 외의 길로 사는 법(2)
문제의 대형 괴수는 전갈. 불 속에서는 죽어도 다시 부활하며, 1년 동안 물 한 방울 안 마셔도 생존이 가능하고, 궁지에 몰리면 자기 스스로 독침을 놔서 죽기도 한다는 전설이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집단생활을 안 하고 개인플레이로 활동한다는 것. 그리고 대부분의 전설은 구라라는 것.
“곤충 관련 통설을 안 믿고 직접 관찰한 파브르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지 알게 되지.”
일행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탁자 앞에서 에드워드가 중얼거렸다. 리안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파브르가 누군데요?”
“그런 철학자 양반이 있어. 뭐, 본론으로 들어가서. 적어도 내가 본 전갈 중에 진짜로 부활하거나 자살하는 놈은 없었어.”
“어떻게 아세요?”
“제일 센 벌레가 뭔가 하고 온갖 잡다한 걸 싸움 붙여본 어린 시절을 통해서. 꼽등이 때 이야기 했잖냐.”
“으익. 그때 전갈도 다뤄보셨어요?”
“여기 있는 전갈과 같은 놈은 아니겠지만.”
나쁜 소식은, 그런 과장된 전설이 아니어도 전갈은 상당히 강한 벌레라는 것. 껍질은 단단하고, 집게와 독침이 있다.
더 나쁜 소식은, 이상하게 퍼진 에드워드의 소문.
“에드워드 경은 가는 곳마다 대형괴수를 때려잡았다지요? 괴수 해결사로 명성이 자자하시던데.”
바다 엘프의 여 마법사 ‘데스피나’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밝은 녹색으로, 스텔라의 분홍색 머리카락과 대비되었다. 에드워드는 다시 얼굴을 팍 찌푸렸다.
“베레스포드 공작께 그런 거 배운 적 없소. 내 전공은 어디까지나 대인 전투라고. 이제 보니 폰티아가 그 소문 퍼뜨렸구만?”
“배와 바람에 소문이 실려 오는 게 어찌 저희 잘못일까요? 게다가 본인 스스로도 내세우신 듯하던데. 우리 새내기 청년들이 기사단 요새섬에서 경을 보았다 하더군요. 아르데니아의 엘프 여자를 복속시켜 만티코어를 때려잡고 온 기사라나.”
에드워드는 데스피나의 눈치를 살폈다. 스텔라를 포함한 여자 마법사는 초면에 다 이러나 싶은, 마법사 아닌 자를 내리깔아보는 묘한 분위기. 스텔라는 곧 본색을 드러냈지만, 종족까지 다른 이 엘프 여마법사의 본모습은 어떤지 짐작도 안 갔다.
겉모습은 특정 부위나 머리카락 색깔을 빼면 헬레나와 비슷한 게 과연 엘프 소리 나오는 미녀였다. 다만 헬레나는 그녀에게 극도의 경계감을 드러냈다. 에드워드의 허벅지를 아플 만큼 꼬집어댈 정도로.
“눈빛 고치세요.”
“아프다야.”
“나이 차이도 잊고 자꾸 눈빛이 게슴츠레해지니까 하는 말이에요.”
“나이 차이? 인간과 엘프 사이에 뭘 새삼스레.”
“당신이 보는 것 이상의 문제에요.”
헬레나가 슬쩍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자 데스피나는 소매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후후후, 인간은 엘프의 얼굴을 보는 재주가 없으니. 게다가 인간은 아이만 낳을 수 있으면 다 젊은 것으로 보는, 색욕의 종족이거든.”
엘프들이 인간을 ‘빛의 오크’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맥락의 말이었다. 데스피나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다리를 꼬았다. 묘하게 색기가 흐르는 모습이지만 주변의 엘프들은 ‘노친네가 주책맞다’는 표정이었다. 에드워드는 슬쩍 찔러보았다.
“숙녀분께 꺼내기는 매우 어려운 질문입니다만, 혹시 연세가?”
데스피나는 그 질문에 익숙한 듯했다. 그녀는 헬레나를 가리켰다.
“쟤 할아버지가 저랑 동갑일걸요? 전 아르데니아 엘프들과 직접 전투를 치른 세대니까.”
아르데니아가 설립된 계기가 된, 엘프들끼리의 전쟁. 인간에게는 까마득한 일이지만 엘프들 사이에서는 아직 삼대도 안 지나간 일이다. 에드워드의 표정이 바뀌었다.
“어…… 그러니까…….”
“자세한 나이는 비밀. 당신도 말했지만, 숙녀가 밝힐 건 아니니까.”
“잡담은 그쯤 하시고 그만 본론으로 넘어가지요.”
헬레나가 날이 선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에드워드는 요 며칠 부드러웠던 헬레나가 도로 경직된 걸 보고 입맛을 다셨다. 적대적인 도시의, 참전용사. 별로 달가운 상대는 아니긴 했다.
“뭐, 두 엘프 도시 사이에 뭔 일이 있었는지는 내 알 바 아니지. 그래서, 엘프 여 마법사와 리자드맨 주술사와 현지 채집꾼들과 여관 주인이 모여서 뭘 하려는 건데?”
“당신의 전속 마법사도 맞닥뜨린 문제죠. 특정 시약 부족.”
“그건 아는데.”
“유포르비아 멜란체의 씨앗은 그리 널리 쓰이는 시약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 특성상, 유통량이 제한되고 상등품을 얻기 힘들죠. 그런데 마침 이 근처 자생지에, 전갈들이 나타나 버렸네요. 이런 상품은 조금만 공급이 부족해도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버리는 특성이 있죠.”
“그런데?”
“지금 ‘해충구제’를 시작하면, 가격이 폭등할 때쯤엔 씨앗을 시중에 풀 수 있겠죠. 그게 이곳 사람들의 생각이에요.”
“가격이 오른다고?”
데스피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 때문에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이래 봬도 예산이 꽤 쪼들려서 말이죠. 오르기 전에 싸게 구할 수 있다면야. 호호.”
“흠. 그래서, 다들 힘을 합쳐서 전갈이라도 잡자 이거요?”
“그랬으면 정말 이상적이겠죠. 과연 정의를 위해 옛 친구도 처단한 기사답군요.”
에드워드는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소문이 자꾸 묘하게 퍼진다.
“어머나, 미안해요. 껄끄러운 이야기죠? 가십거리로 즐긴 게 아니라 세평을 솔직히 말씀드린 거니 용서해 주시죠.”
알면서 꺼낸 것 같다. 어투도 그다지 진지하진 않고. 에드워드는 크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옛 친분이 안타까워한 표정은 아뇨. 다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이미 아시겠지만, 이곳에는 다양한 사정을 가진 다양한 종족이 모이죠. 그리고 이곳 주인은 이들을 규합하거나 통제할 생각이 없어요.”
“그렇더군.”
“이런 상황에 ‘모두의 이익을 위해’ 전갈들을 잡자고 할 수는 없어요. 그렇다고 씨앗 가격이 폭등해서 사람들이 ‘스스로’ 전갈을 사냥하고 씨앗을 채집해 올 때쯤이면, 이미 싸게 사자는 우리 목적은 물 건너가는 거죠.”
“전갈이 꼬이는 원인을 찾아서 제거하면 되나?”
“해결사다운 관점이지만, 찾을 수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는 것을 위해 계획을 세우고 싶진 않아요. 그건 ‘가능하면 하는’ 옵션으로 두죠. 요는, 채집꾼들을 보호하기 위한 무력 제공이에요.”
에드워드는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은신처에 도사린 전갈을 잡고, 근처 씨앗을 채집하고, 철수한다.”
“네, 그렇죠.”
“그럼 개별적으로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단체작전까지 필요한가?”
“그게 쉬웠으면 벌써 채집은 시작됐겠죠? 이 전갈들은 자기들끼리 싸울 정도는 아니지만, 충분히 굶주렸어요. 각자 알아서 들어갔다간 여기에도 전갈, 저기에도 전갈…… 앞뒤로 포위당할지도 모른답니다?”
에드워드는 데스피나의 말을 이해했다.
“제대로 된 진형을 짤 수는 없어도, 최소한 전갈들을 분산시켜야 한다?”
“그렇죠.”
에드워드는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곤 다시 입을 열었다.
“전갈은 가격을 매길 수 있나?”
“위험에 비하면 푼돈이지만요. 먹을 수는 있을걸요? 이곳은 식량도 꽤 비싼 편이니.”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괴수는 내 전공이 아니긴 하다만, 잡을 수 있다면 잡아야겠지. 그래서, 결행 일시는?”
* * *
대상이 오기 전에 가능한 한 빠르게 많이 해치운다. 에드워드 일행은 수많은 바위가 비석처럼 늘어선 땅에 도착했다. 모래보다는 돌이 더 많은 평원. 큰 바위산이 깨지고 깎여서 만들어진 자갈과 모래가 널려 있었다.
“저기 전갈 있네. 바위 그늘마다 한 마리씩 있소. 왜 씨앗을 못 캐는지 알겠네. 유포르비아 근처에 전갈 은신처가 꼭 있소.”
가르달이 말했다. 유포르비아 멜란체는 손바닥처럼 갈라진 식물로 선인장 비슷하게 생겼다. 꽃은 진즉에 피었다 졌고, 터진 씨방은 본체에 끄트머리만 매달려 바람에 흔들렸다. 스텔라는 흥분했다.
“식물 아래 흩어진 보물들을 찾아 줍는 일이죠!”
“그런데 이렇게 일찍 올 필요가 있나요? 약속 시간보다 더 빠른데요?”
헬레나가 물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저었다.
“그 데스피나라는 엘프 여자의 제안은 근본적으로 ‘승자독식’이야. 전갈이 없거나 적어서 그나마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의 씨앗은 이미 며칠 전에 다 바닥이 났겠지. 그럼 남은 게 뭐지?”
“지금 보고 있잖아요. 전갈이 지키는 것들 뿐.”
“그렇게 생각하기 쉽겠지만, 그건 주변부만 보고 하는 생각이야. 높은 데서 봐야 돼.”
“네?”
“여긴 넓어. 전갈이 그 유포 어쩌고 하는 식물에 애착이 있는 게 아니라면, 전갈이 안 붙은 식물들도 널려 있겠지. 그러니까 개수가 아니라 지역 단위로 싸워야 돼.”
헬레나는 에드워드의 말을 이해했다.
“최소 전투로 최대 수확을 거두는 자가 이기는 거군요.”
“그래. 행동이 빠를수록 얻을 건 늘어나고, 행동이 느릴수록 전갈만 죽어라 잡게 되는 거야. 이건 전갈 사냥 대회가 아니라 땅따먹기라고.”
에드워드는 고지대로 말을 몰았다.
“요점은, 얼마나 많은 전갈을 잡느냐는 게 아니야. 요충지를 얼마나 빠르게 해치우고 최대한 많은 씨앗을 확보하느냐 하는 거지. 데스피나라는 여자는 이 제안을 하기도 전에 이미 지형을 파악했겠지. 우리는 일찍 온 게 아니야. 이것도 늦은 거야.”
“약아빠진 바다 엘프답군요.”
헬레나가 동족을 비꼬자 신난 건 가르달이었다. 그는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드워프는 언제 어디서 만나도 서로 친구지! 엘프들은 피곤하겠군!”
헬레나는 그를 흘겨보았다.
“소금산은 트레베리아쪽 뾰족바위산 드워프들과 사이가 안 좋은 거 다 알아요.”
“원래 [이웃사촌이 진짜 개새끼>고 옆 동네랑은 사이가 안 좋은 게 당연한 법이야! 너네는 북쪽 바다와 남쪽 바다로 갈려 사는 주제에 사이가 나쁜 거잖아!”
“우리도 삼대 전에는 바다 엘프와 ‘이웃사촌’이었거든요?”
에드워드는 둘의 대화에 웃어버렸다.
“나도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말 따윈 안 믿긴 해.”
“도시 살아보셔서요?”
리안나가 묻자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층간소음 문제는 어쩔 수 없었지.”
환생 전이나 환생 후나. 물론 이곳 사람들은 보다 원시적인 건축 기술을 쓰는 만큼, 소음에 더 익숙하고 관대하지만.
“저기 오네. 헬레나 양의 옛 이웃사촌.”
카치운이 말했다. 에드워드네는 평원 남쪽. 데스피나는 평원 서쪽이었다. 에드워드는 입을 삐죽였다.
“흠. 저쪽으로 들어갈 셈인가. 이쪽도 나쁘지 않은데. 무슨 이유가 있나?”
“우리가 모르는 차이점이 있는 게 아니라면, 가까운 데서부터 시작할 셈인지도 모르지. 서쪽으로 들어가서 남쪽으로 나온다던가. 그럼 우리가 일찍 온 보람이 있는 거요.”
카치운이 말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다 칩시다. 우리가 모르는 게 있으면, 그때 대처해야지. 슬슬 시작해야겠군. 간악한 바다 엘프 여 마법사에 대항해 우리 편 마법사의 시약 주머니를 채우는 거지.”
* * *
“데스피나 님, 에드워드 경이 남쪽 고지대로 올라가 있습니다.”
한 바다 엘프가 말했다. 데스피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형파악부터 시작하는 게 기본이니까. 예상대로야.”
데스피나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며칠을 준비해 둔 마법이었다. 면밀한 조사와 깊은 통찰은, 마법사의 수준을 가르고 기적을 일으킨다. 잠시 뒤 땅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쿠우웅!
묵직한 폭발음. 폭발 마법이었다. 마치 굴이 무너지듯 구불구불한 형태로 땅이 무너졌다. 그 균열은 에드워드 일행이 있는 남쪽까지 달려나갔다.
불 속성의 마법사는 일부가 무너지기 시작한 평원을 보며 미소 지었다.
“미리 이야기해 주면 안 왔겠지. 자, 솜씨 좀 볼까? 인간 기사 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