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55)
155화 꼭 저질러봐야 아는 것
헬레나는 귀를 쫑긋거렸다.
“물러서라, 도망치라는데요?”
에드워드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들리나?”
“다른 소음도 없고 바람도 잔잔하니까요. 그나저나 물러서라는 게 무슨 뜻인지…….”
그때 스텔라의 안색이 변했다.
“데스피나가 마법을 썼는데요?”
“무슨 마법?”
“불 계열 마법 같긴 한데…….”
그 순간, 평원이 길게 찢어지는 걸 본 에드워드는 기겁했다. 그는 데스피나가 있는 쪽을 가리켰다.
“저거 실은 악마 아냐? 마법사가 저게 돼? 박사급도 저건 어려울 것 같은데? 우리 마법사보다 훨씬 더 세잖아?”
“미리 지질조사까지 했나 보네요! 기사님, 마지막 말은 상처받았어요! 수백 년 동안 마법만 수련하는 변태 엘프라도 오를 수 있는 경지는 어차피 수렴하게 되어 있……!”
“그래서 너 저거 할 수 있어, 없어?”
“못해요! 젠장, 못한다고요! 마법 수준은 그래도 지식과 노하우는 엘프가 압도적일 수밖에 없잖아요!”
카치운은 마른침을 삼켰다.
“여행길 동무 여러분, 경로를 저승길로 잡고 싶은 게 아니라면, 저 균열의 방향을 좀 유의해야 할 것 같소. 거기 고용주와 고용인은 그만 좀 투닥거리시고.”
에드워드 일행의 지하 전문가 가르달은 짧게 요약했다.
“이쪽이네.”
때때로 증명되는 사실이지만, 드워프의 말은 너무 담백해서 때로는 현실감각이 사라진다. 에드워드는 잠깐 경직되었다가 외쳤다.
“내려가! 내려가!”
일행은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땅이 뒤흔들리면서 사방팔방에서 전갈들이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작은 것도 큰 개 수준은 되는 것이었다. 리안나는 기겁했다.
“벌레 너무 많아요!”
“네 마법약으로 못 죽이냐?”
“전갈은 제 약으로 안 죽어요!”
“꼽등이는 잘만 죽이면서 전갈은 왜 안 되냐?”
“쟤들은 사람 집에 안 살잖아요!”
“왜 그렇게 조건이 많아! 불로불사 만능하인에 내 편이면 밸런스 붕괴 좀 일으켜도 돼! 내 편 아닐 때만 안 일으키면 된다고!”
“의미를 모르겠어요!”
베로니카는 짜증을 한껏 담아서 외쳤다.
“헛소리 그만하고 달려!”
다행히 땅의 균열은 일행을 끝까지 쫓아오지 않았다. 평원의 일부를 주저앉히고 고지대를 깎아낼 뿐. 가르달은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됐소! 그만 달려도 되겠군!”
그 말에 일행들 모두가 멈춰섰다. 가르달은 다시 농담을 꺼냈다.
“그 엘프 마법사년, 광산에 불러보고 싶군.”
“광산 붕괴 사고는 무서운 거 아뇨?”
“가끔은 필요하잖소. 크고 단단한 암반이 길을 막고 있다던가, 식인 물고기 대가리들이 땅굴을 파고 있다던가. 그때 참 화끈했는데.”
“저 망할 년을 잡으면 그렇게 해봅시다. 젠장.”
“그래도 도망치라고 경고는 해줬네. 우리까지 죽일 생각은 없나 보군.”
카치운이 말했지만 에드워드는 화가 풀리지 않았다. 보다 냉정하게 판단한 건 베로니카였다.
“문제는 데스피나가 왜 마법을 썼냐는 거야. 땅을 갈아엎어서 그녀가 얻는 게 뭐지?”
“글쎄, 숨어 있던 거대 전갈들 다 뛰쳐나오게 하기? 그런 거라면 나쁘지 않긴 하네.”
“대신 씨앗이 상하거나 찾기 힘들어질 판이잖아.”
“파괴된 건 극히 일부야. 뭐, 일일이 은신처 뒤져가며 전갈 잡는 것보다는 효율적이겠네. 은근히 내 스타일이군.”
“욕하고 싶은 거야, 칭찬하고 싶은 거야?”
“둘 다.”
그때였다. 갑자기 땅에서 거대한 모래더미가 치솟기 시작했다. 에드워드는 스텔라를 돌아봤다.
“엘프 마법사는 저런 마법도 부려? 너도 돼?”
어처구니없는 광경에 스텔라는 품위 없이 입을 떡 벌렸다.
“이 거리에서 저런 게 가능하면, 저 여자는 대악마와 싸워도 이길걸요? 그리고 저건 마법 아닌 것 같은데…….”
그 말대로였다. 모래언덕에서 빠른 속도로 모래와 자갈이 사라지고, 광택이 있는 검은색 껍질이 드러났다. 에드워드는 입을 떡 벌렸다.
“지금 여기 돌아다니는 건 ‘거대전갈’이 아니었군. 저게 ‘거대전갈’이네.”
밖을 돌아다니던 것들의 크기는 덜 큰 것들에 불과했다. 검은색의 거대전갈은 그 등딱지 위에 아직 껍질이 새하얀 새끼들을 잔뜩 얹어둔 모습이었다. 에드워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거대괴수는 내 전공 아니라고.”
헬레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간악한 바다 엘프들 같으니라고. 우리에게 떠넘겼네요.”
가르달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괴수 물리치고 영웅이나 성인이 되는 기사들 이야기가 간혹 있긴 하지. 이것도 에드워드 경의 팔자려나.”
“떠돌이 기사에게 딱 맞는 운명과 상대긴 하지요.”
베로니카도 한마디 얹었다. 에드워드는 다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아니, 난 돈 좀 나오는 땅에서 적당히 기사문화를 즐기며 내 취향의 미녀를 끌어안고 잠드는 게 인생 플랜이라니까. 저주 걸리고 나선 진짜 되는 일이 없어. 저건 뭐야? 다쉬사베스의 애완전갈쯤 되나?”
“농담이 아니라 정말 그런 고대 시절의 괴물이라고 해도 믿겠는데. 저런 게 어디 있다가 나온 거지?”
베로니카의 말에 리안나가 말했다.
“전갈에 관련된 전설들 있잖아요. 불구덩이에서도 죽지 않고, 불리하면 스스로 독침을 찔러 죽고, 다시 부활하는…….”
“그게 진짜 되는 거였어? 파브르가 울겠네. 젠장.”
“보통 전갈이 아니란 뜻이지. 파브르가 누군데? 아퀴타니아인이야?”
“매일 곤충만 찾아보던 철학자가 있었어.”
“이상한 사람이네.”
“이미 죽은 사람이지만. 이거 꼭 보여주고 싶네. 그 양반 곤충기 정말 좋아했는데.”
에드워드는 사람들이 이해 못 할 넋두리를 한 다음 스텔라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요?”
“저거 쓰러뜨려서라도 그놈의 씨앗을 얻어야 되겠냐? 그냥 가면 안 될까?”
스텔라는 잠시 고민해보다가 말했다.
“기사님?”
“왜?”
“제가 생각해봤는데요. 데스피나는 왜 거대전갈을 깨웠을까요? ”
“몰라. 근본적인 원인 제거? 우리 방해하고 자기들만 씨앗 독차지하기?”
“아까 나온 드워프 아저씨의 말을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헬레나 양도요.”
“뭐?”
“시련과 고난을 통과해 엘프 여자와 로맨스 찐하게 써 내려간 기사 나리들 서사시가 왜 생겼겠어요?”
“엘프들은 인간이 좀 흥미가 간다 싶으면 시험해 보는데, 뒈지거나 좆된 인간 기사들은 기록에 안 남고, 그 심술을 통과한 용자 새끼들만 로망으로 남았지.”
헬레나는 차마 부정하지 못했다.
“에드워드 경은 같은 말을 해도 참 천박하게 해석하는 재주가 있으시죠.”
스텔라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데스피나 방향을 가리켰다.
“저 여자, 기사님한테 흥미가 있는 것 같은데요?”
“확언은 없었는데.”
“그냥 갖고 노는 것일지도 모르죠. 그래도 한번 찔러볼 만하지 않으세요? 기사님, 배 타고 여기까지 오면서 요즘 여자 가뭄이셨다. 그쵸?”
헬레나는 얼굴이 굳었고,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 간악한 혓바닥은 이제 자기 몸이 아니라 남의 몸까지 저울에 올리는군요.”
“에이! 저는 그저 충실한 조언자로서 상황을 분석한 것뿐이에요!”
스텔라의 간악한 혓바닥이 변명을 늘어놓았다. 주변 잡음에 에드워드는 눈을 감았다.
“내가 참 죄 많은 인생을 살고 있군. 갑자기 회개하고 싶어졌다. 바다 건너와서 내 취급이 영 말이 아니야.”
“또 말만 그런다. 할 거면 바다 건너기 전에 회개했어야지.”
“사제는 늦든 빠르든 회개를 반겨야 할 입장 아니냐?”
“그래서, 지금 할래?”
에드워드는 열쇠검을 뽑았다.
“바다 엘프 속내는 한번 들여다보고 회개할게.”
“그럴 줄 알았다. 종마 자식. 너 저번에 나한테 뭐라 그랬는지 기억은 나니?”
“1번 번호표 줬는데 구기고 후순위로 돌아간 게 누군데. 물론 말씀만 해주시면 언제든지 다시 1번이십니다.”
“때때로 느끼는 건데, 너 정말 얄미워. 모르고 같이 다니는 것도 아니지만.”
헬레나도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늙다리가 남의 남자 옆구리를 찌르는 건 영 보기 싫군요.”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아쉬우면 빨리들 줄 서.”
베로니카와 헬레나는 에드워드를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봤다.
* * *
“그런데 왜 제가 저 거대 전갈을 상대해야 하나요?!”
리안나가 비명을 질렀다. 에드워드는 달과 별은 당연히 하늘에 있어야 한다는 투로 말했다.
“파브르가 그랬듯, 직접 관찰해보는 것이 과학적으로 올바른 접근법이기 때문이다.”
“과학이 뭔데요?! 요정과 친한 거예요?”
“아마 안 친할걸…….”
가설이 있다면 실험을 통해 그 가설을 입증해야 한다. 밴시의 빨래약이 기존 전갈에 안 통한다는 걸 알아도, 저 거대 전갈에도 안 통하는지는 실험을 해봐야 안다.
“저게 정말 일반전갈과 다르게, 죽었다가도 부활하는 거대전갈이라면, 밴시의 마법약에도 뭔가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무리! 무리! 절대 무리! 머리끝부터 꼬리 끝까지 흉악하기 그지없는 저 생물체에 어떻게 밴시가 접근하는데요! 요정 살려!”
“오, 틀린 말 아니네. 그거 아냐? 전갈의 집게발은 사실 발이 아니라 턱이래. 그러니 말 그대로 전갈은 머리끝부터 꼬리 끝까지 전부 무장한 셈이지.”
“그런 것 알고 싶지 않아요!”
“걱정 마. 택시 줄게.”
“택시는 또 뭔데요?!”
시간이 지난 탓에 다소 진정되었지만, 거대 전갈은 새끼들을 잔뜩 짊어진 상태였고 그 때문에 극도의 경계심을 가진 상태였다. 그래서 밴시 리안나는 캐슬린한테 매달린 채 몰래 하늘을 날아야 했다.
“소금산 때처럼 또 내던지는 건 아니죠?”
“기사님이 이번엔 그런 명령 안 내렸어. 뭐, 이번엔 안심해도 돼. 전갈이 설마 하늘을 공격하는 방법이 있겠어?”
“그건 그런데요…….”
밴시 리안나는 하늘에서 꼬물꼬물 움직이는 새끼 전갈들을 보았다. 몸은 하얀데 눈만 까만 것들. 그녀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전갈한테는 이 약이 소용없다니까…….”
“빨리 뿌리고 가자. 안 되면 기사님이 알아서 하겠지. 설마 우리보고 또 뭐 어떻게 하라 그러겠어?”
캐슬린의 말에 리안나는 결심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난 몰라요!”
밴시는 자신의 마법약병을 거꾸로 뒤집었다.
후두둑!
마법약과 함께 꽃대, 허브 줄기 따위가 전갈들 위로 쏟아졌다.
반응 없음. 캐슬린은 실망한 목소릴 냈다.
“뭐야. 심심한 결과네.”
“뭘 기대했어요? 전갈한테는 안 통한다니까.”
“전갈도 사람 집에 침입 안 하는 건 아니잖아. 신발에 종종 들어가던데.”
“그건 일부러 사람 찾아가는 벌레와 경우가 좀 다르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빨리 떠나요! 징그러워 죽겠……!”
그 순간, 전갈이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등 위의 새끼들이 떨어져 나갈 정도의 몸부림이었다. 밴시 리안나는 기겁했다.
“통했나?!”
“아냐, 저건 통한 게 아냐!”
캐슬린이 황급히 소리쳤다. 멀리서 상황을 살펴보던 에드워드 역시 상황을 올바르게 파악했다.
“어…… 화났네.”
뒤이은 데스피나의 비명소리를 헬레나가 전해주었다.
“대체 전갈한테 뭔 짓을 했냐는데요?”
에드워드는 잠시 고민한 뒤에 솔직하게 말했다.
“앵글리아 특산품을 선물했는데, 전갈이 마음에 안 든대.”
별로 도움 되는 답변은 아니었다. 거대전갈은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찢어 죽이거나 짓밟았다. 자기 새끼도, 지나가던 다른 전갈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르달은 훌륭하게 상황을 요약했다.
“다 죽일 기세로 날뛰는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