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그림자는 생각을 밟는다
에드워드의 첫 영토이자 새 영토는 ‘공유지의 비극’을 그대로 실현했다. 채집꾼들은 유포르비아 멜란체의 씨앗을 찾기 위해 모래 먼지를 갈퀴로 긁어댔다. 전갈이 도사린 곳은 아예 전갈을 끌어내 죽이고 뒤졌다. 곧 씨앗은 거의 남지 않게 되었다.
“채집꾼들이 만년 뜨내기인 데는 이유가 있지. 에드워드 경의 새 영토가 이렇게 사라지는군.”
카치운이 말했다. 가르달도 고개를 끄덕였다.
“식물들이 멀쩡하면 다음에도 씨앗을 뿌릴 것 같긴 하지만…… 그때도 이런 사람들이 싹쓸이를 할 테고, 반복되면 결국 식물들이 다 사라질 거요. 채집꾼들은 새 군락지를 찾아 이동하겠지.”
“어떻게 보면 비극이군. 조금은 남겨둬야 하는 법인데. 사람의 눈에 안 띄게 숨은 씨앗이 있으면 좀 낫겠지만.”
“이래서 왕과 영주가 자원을 빡빡하게 관리하는 거요. 그리고 나와 황금 대구 상회 같은 독점 어용 상인이 필요한 거고.”
“뇌물 주고?”
“뇌물 주고.”
에드워드는 있다 없다 하는 데다, 사람의 거주도 불가능하고, 관리하기도 까다로운 황무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보다 급한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손에 걸린 저주에 대한 이야기들.
거대 전갈을 잡는 이야기는 사실 에드워드 입장에서 새로운 게 전혀 없었다. 사건 사고가 이어지는 난장판 속에서 수중에 있는 물건과 수단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이번엔 어떤 기발한 방법을 쓰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간의 행적에 비춰보면 굉장히 전형적인 싸움이었고, 승리였다. 덤으로 미녀가 붙고, 밴시가 구르고.
그 전형적인 승리를 본 엘프 마법사가 ‘소용없는 짓을 한다’고 지적했다.
에드워드는 베로니카한테 물었다.
“데스피나의 말대로라면, 괴물 잡기니 이단 토벌이니 배신자 때려잡기니, 할 필요가 없던 건가?”
“무슨 이야기를 들었나 했더니, 겨우 그런 이야기에 정신이 쏠렸던 거였어?”
에드워드는 입꼬리를 뒤틀었다.
“나한테는 중요한 이야기잖아.”
“네 내면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건 교회도, 나도 이미 신물나게 한 이야기야. 넌 회개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 그건 아는데…… 거대 괴물이나 이단자나 반역자들에 대한 응징으로 뭔가 가산점이나 증명이 안 되냐 하는 거잖아.”
“그걸로 그냥 싹 대신할 생각이었던 건 아니고?”
“윽.”
에드워드는 정곡을 찔린 표정을 지었다.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순례길에서 위험을 극복하는 것과 진지하게 네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을 병행하는 게 어디가 잘못된 이야기겠어? 데스피나가 지적하는 건 끽해야 ‘그냥 업적으로 싹 대신할’ 네 본심이었겠지.”
에드워드는 ‘그런가’ 하고 생각에 잠겼다. 베로니카는 검지로 에드워드의 가슴팍을 꾹꾹 눌렀다.
“그리고 사람이 천 명이 있으면 천 개의 이야기가, 만 명이 있으면 만 개의 이야기가 있는 법이야. 죄인이니까 어떤 전례를 따르는 게 좋겠다는 판단 정도야 할 수 있지만, 일이 그대로 풀리리란 보장은 없어. 네가 노력해야 하는 문제야.”
“노오오오력?
“삐딱하게 보지 마! 자기 수양과 덕성에 대한 문제는 어쩔 수가 없잖아!”
에드워드는 뒤통수를 긁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물론 저주받은 손으로 함부로 그럴 수는 없지만. 베로니카는 그의 움찔거리는 몸짓을 봤는지, 눈길이 그 손으로 향했다.
“게다가 네 손은 쓰기 까다로운 힘을 받은 사례야. 이건 안 쓰면 이야기가 안 된다고. 그 손으로 성공과 실패를 다 경험해봐야지.”
“뭘 더 겪어야 하는데? 창은 커녕 컵 잡는 것도 실패하고, 괴물 잡는 데 성공했으면 다 겪어본 것 같은데?”
“쉽게 알면 이야기가 풀리겠니? 생각과 전혀 다른 길이 있을 가능성도 없다고는 못하지만, 그걸 탐색하는 것도 과정이야.”
에드워드는 주먹으로 턱을 괴었다. 순례와 속죄의 여행. 그러나 뚜렷하게 잡히는 건 없다.
에드워드는 희미한 기억 속을 뒤져보았다. 이곳 순례기들은 저자가 뽕 맞고 쓴 거 아닌가 하는 느낌이 더 강하니 패스. 그의 기존 지식 중 이곳의 순례 여행과 가장 비슷한 건 서유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삼장을 위한다고 나름 노력하는데 오히려 벌을 받았다고 억울해하던 손오공이 이런 심정이었을까, 손오공은 결말이 어떻게 됐더라, 걔 깨달음 얻긴 했었나 등등의 생각만 머리를 맴돌았다. 사실 서유기는 그의 흥미 밖이었다. 원전은 제대로 읽은 것 같지도 않고, 창작물도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 밖에 모른다.
“이 망할 전갈!”
그때, 밴시 리안나가 에드워드의 뒤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에드워드는 그 혈투를 애써 무시하며 생각에 깊이를 더했다. 그러나 잠시 뒤 밴시는 다시 반대 방향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이 망할 전갈!”
에드워드는 다시 무시했다. 환생 전 사촌 누나는 미남들만 그득한 일본 서유기 만화책의 팬이었는데, 에드워드는 그걸 한 편도 본 적이 없었다.
“이 망할 전갈!”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으면 온갖 서유기 관련 창작물을 찾아서라도 봤을 것이다. 문득 날아라 슈퍼보드의 사오정이 토하는 건 독나비였나 독나방이었나 하는 궁금증이 그의 머릿속을 돌았다.
“이 망할 전갈!”
에드워드는 결국 참지 못하고 일어났다. 그는 새끼 전갈과 밴시를 떼어냈다. 그는 밴시와 새끼전갈을 차례대로 멀리 내던지며 외쳤다.
“정신 사납잖아! 생각이 꼬인다고! 저리 가서 놀아!”
베로니카는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보나 마나 자기 같은 생각이나 반복했을 거면서.”
밴시 리안나는 마침내 승리했다. 새끼전갈은 패배를 인정한 뒤 바위 구석으로 숨었다.
“힘들었어요!”
리안나는 전갈 고기와 비스킷을 넣어 끓인 죽을 폭식하면서 외쳤다. 헬레나는 리안나의 먼지투성이 머리카락을 빗어주면서 그녀를 격려했다.
“잘 놀더라.”
“논 거 아니에요! 처절한 혈투였죠!”
“언제 길들일 수 있을 것 같아?”
“안 길들여요!”
그러나 잠시 뒤, 새끼 전갈은 더 딱딱한 검은 등껍질을 탑재하고 돌아왔다. 허물을 벗고 성장한 것이었다. 놈은 밴시 리안나 앞에서 집게발을 크게 벌리고 몸을 일으켰다.
“업그레이드라니, 비겁하다!”
리안나가 소리쳤다. 에드워드는 심드렁하게 격려했다.
“넌 고기 죽 먹어서 스태미나 채웠으니까 조건은 비슷하다고 생각해. 이제 여섯 번만 더 이겨봐. 일곱 번 잡아서 일곱 번 풀어주면 테이밍 성공이랜다.”
“누가 그래요?!”
“동남풍의 요정.”
밴시 리안나는 다시 혈투를 시작했다. 에드워드는 그 모습을 무시하고 죽그릇을 비웠다. 환생 전 그의 책장에는 60권짜리 만화 삼국지가 중고로 있긴 했다. 의미도 인물도 잘 모르면서 그저 반복해서 읽었던. 서유기보다는 그게 더 취향이었다.
그는 대충 짐을 정리하는 스텔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짐 다 쌌냐?”
“기사님이 잡일의 요정을 전갈로부터 해방시켜 주신다면 더 빨라질 것 같은데요! 왜 마법사가 육체노동을 해야 하죠?!”
“마법사가 마법 안 쓰면 몸으로 때워야지.”
“그런 법칙은 대체 뇌의 어디에서 나오세요?”
“마음의 소리.”
“기사님한테 그런 게 들릴 리가 있나요! 아아, 정말. 말이라도 못하면 밉지나 않지! 내가 잡일의 요정한테 그리움을 느껴야 하다니!”
밴시 노동자가 일갈했다.
“내가 소중한 줄 이제야 알았나요, 인텔리겐치아! 부역자!”
“넌 빨리 그 전갈이나 잡아! 기사님, 그냥 기사님이 잡아버리시죠!”
에드워드는 아직 말지 않은 카펫 위에 누우며 짧게 말했다.
“돈 안 돼.”
“아아, 기사님은 정말 이야기 속 기사님이랑은 너무 다르시다! 게다가 요즘 말이 왜 자꾸 짧아지세요? 말하기도 귀찮아요?”
“응. 생각이 많아졌어.”
“여자 생각이시겠죠?”
“네 생각이면 어쩔래?”
스텔라는 얼굴을 붉혔다.
“엑. 기사님, 진짜요?”
“가슴이 평면만 아니었으면.”
풍만함이 미덕인 세상에서 가장 뼈아픈 지적을 받은 스텔라는 격노했다. 그녀는 에드워드한테 달려가 주먹으로 그의 어깨를 때리며 외쳤다.
“죽어! 죽어! 악덕 고용주! 죽어!”
“내가 그래서 죽겠냐. 더 세게 때려봐.”
“엑. 진짜요?”
“명상하는 중이거든.”
“사제님! 기사님이 상했어요!”
다행히 리안나의 속편은 짧았다. 좀 더 처절하긴 했지만. 리안나는 몸 곳곳에 독침 자국을 남겼지만 기어이 전갈을 제압했고, 전갈은 굴복했다.
업그레이드 새끼 전갈 위에 올라탄 채 빈 독주머니를 붙든 리안나는 울부짖었다. 장엄한 싸움에 일부 관객은 박수까지 쳤다. 에드워드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X밥 싸움이 진짜 재미라더니.”
베로니카는 말에 올라타며 말했다.
“잘 놀았니?”
“논 거 아니라니까요! 왜 다들 절 도와주지도 않고, 전갈과 노는 걸로 봐요?!”
“논 거 맞잖아. 이제 설거지하고 짐 싸. 시간 됐어.”
“아아, 정말! 사제님까지 너무 각박하시다! 띵똥아, 바구니 들고 따라와!”
리안나가 뛰어내려 달려가자 띵똥이라 불린 새끼전갈은 빠르게 그 뒤를 쫓아갔다. 끓인 물에 그릇들을 한번 담가 헹구고는 전갈이 든 바구니 위에 차곡차곡 쌓는 밴시를 보고 베로니카는 깔깔 웃어버렸다.
“논 거 맞다니까.”
그 모습을 본 스텔라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전 안 놀게요. 진심이에요. 그러니 제가 몬스터랑 투닥거리는 거 보면 논다고 생각 마시고 바로 좀 구해주세요.”
베로니카는 마법사의 탄원을 무시하고, 에드워드의 옆구리를 살짝 걷어찼다.
“너도 일어나서 짐 싸!”
“내 카펫은 마지막에…….”
“얼른!”
투닥거리기 시작하는 두 남녀를 보고 스텔라는 입을 뾰족하게 내밀었다.
“휴일날 부부 보는 것 같네.”
일행은 마을로 귀환했다. 시간은 약간 늦었지만, 채집꾼들이 돌아오길 기다린 대상들의 스케줄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상들은 낙타를 잔뜩 데리고 온 사람들이었는데, 여기저기서 채집된 다양한 종류의 시약들을 큼직한 자루에 가득 담았다. 에드워드 일행도 적잖은 돈을 챙길 수 있었다.
“와, 대상들이 싹쓸이하니까 시약 가격 도로 뛰는 거 봐. 빵과 물 가격도 요동치고.”
스텔라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에드워드를 향해 말했다.
“기사님, 영지 얻으려거든 꼭 시약 한둘 채집할 장소는 낀 영지 얻으세요.”
“거미줄과 마늘.”
“그건 어디에나 있거든요?!”
“귀찮아.”
“아직도 회복이 안 되셨어요?!”
“응.”
에드워드는 머릿속이 터져나갈 지경인지라 스텔라의 투덜거림에도 응해줄 생각이 들지 않았다. 대상들의 반응에도 마찬가지였다.
대상들은 에드워드를 보고 눈이 튀어나올 만큼 놀랐다. 거대 전갈을 데리고 온 리안나에게는 더 놀랐다. 그게 새끼라는 데는 더 놀랐다.
“당신이 그 소문의 기사군. 근데 저거 데리고 갈 거요?”
“몰라. 귀찮아. 내 일 아니야. 속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무기력과 귀차니즘의 대답이었지만 선입견을 갖게 된 사람들에게는 대범함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데스피나는 에드워드를 향해 말을 몰아왔다.
“생각이 많아진 건 알겠는데, 그만 늘어지지? 혹시 머리 아파?”
“남이사. 묶어버린다.”
데스피나는 찔끔한 표정을 짓고는 헬레나를 곁눈질했다.
“아르데니아 젊은 년들은 대단하네. 그러고 놀다니.”
“저도 해본 적 없어요.”
“할 거잖아.”
헬레나는 차마 말은 못 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그 시선을 외면했다. 데스피나는 다시 에드워드한테 말했다.
“대상 대표가 그러는데, 낙타무리에 말이 껴있으면 물과 시간이 좀 더 드니 길 안내는 추가 비용을 받겠대. 다만, 에드워드 경 일행은 시가의 반으로 해준다는군. 부럽네.”
에드워드가 물었다.
“뭔 일로?”
“이 대상의 다음 목적지가 성묘 수호 기사단의 전방 요새인데, 거기 계신 리하르트 경께서 선친의 복수를 해준 에드워드 경께 감사를 표하고 싶다는군. 마법학당이 있는 아지지야까지, 여행 비용의 일부를 분담하시겠다나.”
“리하르트가 누군데? 선친은 또 누구고?”
“지파라 백작령의 정당한 후계자. 네가 지나오면서 반란 소동을 진압한 곳이지.”
에드워드는 이해하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찰리와 유니콘과 백작의 소동이 있었던 곳.
“거 고맙게 됐군.”
데스피나는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조언을 건넸다.
“사막에서 생각이 너무 많은 건 좋지 않아. 그림자는 생각의 뒤를 밟고 오는 법이니.”
에드워드는 겨우 허리를 펴곤 말했다.
“걱정 말고 가보쇼. 내 침대 들어올 것 아니면.”
“그러지.”
데스피나는 바로 자기 무리로 돌아갔다.
에드워드는 문득 우물 주인 노친네를 떠올렸다. 그도 에드워드를 보자마자 비슷한 경고를 했었다. 무슨 경고였는지는 벌써 잊어서 생각이 안 나지만. 에드워드는 우물 쪽을 돌아보았다. 노인은 안 보이고 그 친족들이 물값을 받고 있었다.
갑자기 에드워드는 등골이 서늘한 느낌에 등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에드워드는 자신이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과민해진 것 아닌가 의심했다.
“이게 그림자가 생각을 따라온다는 건가.”
에드워드는 잡념을 뿌리친 뒤, 일행을 향해 돌아섰다.
“대상에 바로 따라붙어서 이동한다.”
에드워드 일행은 곧 낙타무리에 섞였다. 잠시 뒤, 그들이 떠난 자리에서 모래가 바람을 타고 뱀처럼 꿈틀거리다 잦아들었다.
그림자가 따라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