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59)
159화 질긴 낯짝 (1)
사막은 사람의 발길에 따라 모습을 바꿨다. 모래밭, 자갈밭, 목초지, 오아시스, 그리고 다시 모래밭. 자갈이 많은 곳은 지나가기가 어려워 대상이 피했기 때문에, 일행의 루트는 모래밭이나 목초지를 번갈아 가는 경우가 많았다.
“전갈 소굴처럼 자갈과 바위가 많은 곳을 길로 잡았다간 큰일 났겠구만.”
가르달이 천막 안에서 중얼거렸다. 천막 밖은 모래먼지 섞인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 대상과 사람들은 바위그늘 아래에 천막을 쳐서 모래바람을 피했다.
에드워드는 TV 다큐멘터리에서나 봤던 것들을 직접 경험하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전생에도 맘껏 못했던 해외여행을, 그것도 극한 체험으로 해보다니 기묘하다는 생각. 그리고 여행은 낭만뿐만 아니라 귀찮음도 적잖이 수반한다는 것.
에드워드는 이미 옷 속으로 들어간 모래알들을 느끼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모래 폭풍이라.”
“자갈밭이었다면 자갈 폭풍이 되었겠지. 사막은 정말 사람이 살기 가혹한 땅이오.”
가르달이 덧붙였다. 카치운은 털어도 털어도 모래 알갱이가 나오는 통에 대충 털기만 한 옷을 가리키며 말했다.
“찝찝하군. 만악의 근원을 달고 다니는 기분이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모래먼지는 안 괴롭히는 게 없었다. 한치 앞도 안 보이고, 피불를 때리고, 옷의 섬유 곳곳에 박히고, 심지어 정전기까지 일으켰다.
신난 건 리안나뿐이었다. 그녀의 외침은 여자 전용 텐트 밖까지 울렸다.
“요새 들어가면 빨랫감 많겠다!”
“그래, 일 많이 해라! 일 정말 많이 해라!”
“띵똥아, 물어!”
“꺄아악! 사제님!”
리안나와 투닥거리는 스텔라의 외침도 들려왔다.
에드워드는 카펫 위에 드러누운 채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모래알이 천막을 때리는 소리들. 다큐멘터리에서는 온통 모래만 있고 지형이 몰라보게 변하는 과정까지 보여줬지만, 이곳의 모래 폭풍은 한 치 앞을 보기 힘들다는 것만 같고, 그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 에드워드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귀를 파고든 이상한 음성 때문이었다.
“사람 목소리 같은 게 들렸는데?”
“리안나와 스텔라가 떠드는 소리겠지.”
카치운이 말했다. 드워프 가르달도 별말이 없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는 그들의 안색도 변했다. 정말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것, 그리고 에드워드가 자기들보다 그것을 먼저 알아차렸다는 사실에 그들은 경악했다.
“사람 목소리 같은 게…….”
“에드워드 경을 부르고 있소만?”
천막 안의 다른 상인들은 고개를 저었다.
“모래알들이 부딪히면서 소리를 내는 거요. 꿈과 불안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이 그걸 다른 이의 목소리로 착각하지. 그 소리에 홀려 밖으로 나갔다간, 길을 잃고 죽을 거요.”
“아니, 진짜 사람 목소리라니까? 드워프가 잘못 들을 리가 있나?”
가르달이 말했다. 카치운은 에드워드를 돌아보았다.
“출발지나 중간 기점에서 우릴 쫓아온 사람이 모래 폭풍 속을 헤매고 있다고 보기에는…….”
“너무 멀지.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야.”
에드워드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 천막 입구로 머리를 내밀었다. 다행히 폭풍은 정면이 아니라 측면을 때리고 있어서, 천막 안으로 모래 먼지가 쏟아지는 일은 피했다. 그는 흩날리는 황색 바람 너머를 한참 노려보더니 말했다.
“찰리 목소리인데.”
잠시 뒤, 폭풍이 멈췄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카치운과 가르달이 뒤이어 천막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여자쪽 텐트에서는 아무 말 없소? 엘프년이나, 사제 아가씨.”
가르달이 말하기가 무섭게, 헬레나가 옆의 여자 텐트 입구를 열고 나왔다. 그녀는 드워프를 한번 째려봐 주고는, 에드워드에게 말했다.
“길을 서두르죠. 수상한 게 쫓아오고 있네요.”
대상 일행은 발길을 재촉했고, 밤이 오기는 커녕 해가 아직 하늘에 떠 있을 때 성묘 수호 기사단 요새에 도착했다. 기사단 요새는 사막 한가운데 솟은 하얀색 돌벽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최전선의 요새인 탓인지 매우 컸다.
리안나는 항상 보았던 기사단 깃발이 상회를 연상케 하는 일반 건물이 아니라 요새에 걸린 걸 보고 충격받았다.
“진짜 기사단이네!”
주변의 일행들은 뿜어버렸다. 리안나가 항상 보았던 게 우편과 예금을 담당하는 지부였으니 당연한 인상이긴 했지만.
“야, 기사단원들이 째려볼라. 그렇게 너무 대놓고 말하지 마라.”
에드워드가 리안나의 뒤통수를 향해 말했다. 다행히 기사단원들은 타 지부들의 취급이 안 좋은 데 별 관심이 없었다.
베로니카가 그 사실을 간단히 지적했다.
“사실 이곳 사람들도 그들과 자신들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을걸.”
“어, 그런가?”
“역할이 다른 것뿐인데 말이지. 규모가 큰 수도 기사회일수록 풋내기나 우물 안 개구리들이 후방을 등한시하는 예가 있어. 거기서 오는 돈과 보급품으로 싸우면서 말이지. 뭐, 최전선에 선 것에 자부심을 갖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 말대로, 오히려 어린애 크기의 전갈을 끌고 온 리안나가 경계와 관심의 대상이었다. 리안나는 기사단원들과 티격태격한 끝에 띵똥을 요새 구석에 묶어놓는 데 동의했다.
베로니카는 바로 말에서 내렸다.
“난 이곳 책임자 좀 만나고 올게. 겨우 우편을 쓰게 됐으니, 전할 소식이 많네.”
“그러던가. 리안나는?”
“띵똥을 지켜야 해요!”
“그럼 거기 있어라.”
한 기사가 베로니카의 옆을 스쳐 지나와 에드워드를 향해 다가왔다. 그의 서코트는 기사수도회의 하얀색이 아니었다. 수도회 소속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요새를 방문한 기사라는 뜻이었다. 그가 에드워드에게 말을 건넸다.
“당신이 에드워드 경이십니까?”
에드워드는 그가 누구인지 짐작이 갔지만, 예의상 물어봤다.
“그렇습니다만.”
“지파라의 백작가 장남인 리하르트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에드워드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행의 편의를 봐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선친의 일은 유감입니다.”
리하르트는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체격은 보통 남성 수준이지만, 얼굴은 눈에 띄게 곱상한 미남이었다. 다만, 전방에 어울리는 인상은 아니었다. 건장함을 미덕으로 삼는 기사들 기준으로는 낙제였고.
짧게 말해서, 찰리가 백작가 후계자를 우습게 본 이유가 짐작이 가는 외양이었다.
“감사합니다. 저는 올여름 기사단 원정에 참여했고, 아직 더 경험을 쌓기 위해 종군 중이라 성을 비운 상태였죠. 그럴 때 반란이 일어나다니…….”
“부친상 정도면 바로 귀가하셔도 될 텐데?”
“아브멜렉의 환생군단이 여기 동남쪽에서 아직 활동 중입니다. 돌아가질 않고 근처의 동맹 오크 부락들에 주둔 중이죠.”
“환생군단이라.”
리하르트는 띵똥을 곁눈질한 다음 말했다.
“저건 편지로 들은 게 아닌데, 뭔가 일이 더 많으셨던 것 같군요.”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실은, 하나 더 생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리하르트 경도 거기에 휘말릴 것 같군요.”
“예?”
에드워드는 자신이 미친놈 취급받을 것을 경계하다 겨우 입을 열었다.
“죽은 찰리가 우릴 쫓아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행히 리하르트는 웃지 않았다. 오히려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는 악마를 섬기는 도시와 고대 악마의 피라미드도 있는 땅입니다.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봐야겠죠.”
“분명 목을 잘랐는데.”
“성직자가 정식으로 장례를 치러도, 영혼이 떠난 시체가 간혹 악마의 힘으로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지요. 범죄자의 시체라면 더 쉬울 테고. 지휘관께 보고 드려야겠군요.”
“베로니카…… 교황청의 이단심문관이 갔으니 그 이야기도 나올 겁니다.”
리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먼저 숙소로 안내해드려야겠군요. 따라오시죠. 기사단에 부탁해 제일 좋은 방을 준비해놨습니다.”
“침대다!”
잠꾸러기 여 마법사 스텔라는 침대 위로 깡충 뛰어올랐다. 그녀는 매트리스와 베개에 얼굴을 부비며 말했다.
“이게 얼마 만의 침대야!”
“최근엔 영주성이 마지막이었죠.”
헬레나의 말이었다. 채집꾼들의 마을에서는 침대 같은 사치품이 없었다. 여행길은 당연히 침대를 기대할 수 없었고, 어쩌다 만나는 쉼터나 민가에서도 대부분 바닥에 카페트와 요를 깔고 썼다. 그나마도 한 번에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없어 대부분은 그냥 천막 신세.
똑똑. 누군가 여자방의 문을 두드렸다. 헬레나가 바로 대답했다.
“들어오세요.”
에드워드였다. 그는 헬레나와 스텔라를 향해 말했다.
“곧 밤이 되니까 준비해. 찰리가 올지도 몰라.”
스텔라는 침대에 엎드려 누운 채 고개만 돌려 물었다.
“정말 찰리 경의 목소리를 들으신 거예요?”
“나도 그게 바람 소리였으면 정말 좋겠다. 그런데 엘프도, 드워프도, 카치운도 들었잖아.”
“저랑 베로니카님은 못 들었는데요. 잿물 냄새나는 촌구석 잡요정도.”
“다음엔 너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에드워드의 걱정과 달리, 첫날 저녁은 평온히 지나가는 듯했다. 늦게 일이 끝난 베로니카를 위해 에드워드 일행은 식사 시간을 약간 늦췄고, 그들만을 위해 준비된 식탁에서 리하르트와 그의 동료들, 부관들과 동석했다. 인종과 풍속은 다양했는데, 터번을 쓴 사람도 있었고, 얼굴이 검은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세트렛식 깃털 모자를 색만 바꿔 쓴 사람도 있었다.
“찰리, 그 망할 놈이 언젠가 사고 칠 줄 알았죠. 그래서 요새로 떨어뜨려 놓은 건데.”
터번 쓴 부관의 말이었다. 다른 부관이 낄낄 웃으며 말했다.
“자네가 그와 여자를 두고 다툰 게 문제였잖아.”
에드워드는 뿜어버렸다.
“놈한테 진짜 여자가 있었소?”
“예. 마님의 시녀고, 귀족은 아니지만 가신의 딸이었죠.”
“어찌 됐소?”
“이 친구는 보시다시피 도련님한테 딸려서 여기까지 왔고, 찰리는 요새로 쫓겨났죠.”
“저런, 두 남자 모두 쫓겨난 거군. 그럼 그 여성 분은 어찌 됐소?”
“영주님이 다른 지방으로 시집 보내신 걸로 압니다.”
“그 자식도 참 다사다난했군.”
처음 이야기를 꺼냈던 부관은 투덜거리듯 말했다.
“어찌 보면 제가 그 여자를 구한 건데 말이죠. 정작 여자는 다른 남자에게 가버렸네요.”
“세상일은 뜻대로 되는 게 아니긴 하지요. 더 좋은 인연이 올 거예요.”
베로니카가 담백한 위로를 전했다. 동료를 놀리던 부관은 베로니카에게 농을 건넸다.
“사제님은 인연이 이미 있으신 듯합니다만…….”
베로니카는 자기 옆자리에 앉은 에드워드를 흘겨보고는, 긍정도 부정도 못 하고 술잔을 들이켰다.
“……다른 분들은 인연 안 찾으십니까? 우리 도련님 같은 분도 있는데.”
스텔라가 베로니카 대신 반응했다.
“아직 독신이신가 보군요.”
“적당한 혼처를 찾고 있지요.”
“마무드, 손님께 실례야.”
리하르트가 부관을 제지했다. 헬레나는 그런 데 관심 없다는 듯 식사만 했고, 스텔라는 장난기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평민 마법사랑 결혼할 백작 자제분은 안 계실 것 같은데요?”
“최전선은 때때로 신분보다 실력이지요. 영주 부인 자리에 도전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에드워드는 말없이 품속에서 ‘주문 가격표’를 꺼내 사람들에게 건넸다. 다들 그걸 한 번씩 읽어본 다음, 공손히 에드워드에게 도로 돌려줬다.
“없던 이야기로 합시다. 도련님이 시약값 대다 우리 월급까지 깎겠네.”
“너무해!”
스텔라는 웃으면서 소리쳤다. 식탁 위에서는 웃음소리가 번졌다. 에드워드 역시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여 마법사가 영주 부인 자리를 차지하는 예가 없는 건 아니지만, 역시 양쪽 다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지. 마법사는 영지경영에 육아에 가사까지 처리하느라 마법을 연구할 새가 없고…….”
리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전방일수록 영주는 급박한 정세를 살피며 정략결혼을 해야 하는 경우도 흔하니까요.”
베로니카도 그제야 입을 열었다.
“신분은 때때로 족쇄죠.”
리하르트는 다시 한번,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 걸맞게 행동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는 영주 후계자로서 보다 사내다워질 필요가 있기에…….”
여장을 시켜도 어울릴 것 같은 곱상한 얼굴. 여자들에게는 인기 있을지도 모르지만, 남자들의 세계에서는 마이너스다. 얕보여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에드워드는 그에게 물었다.
“수염이라도 길러보시는 건?”
“이쪽 풍습은 수염을 권장하긴 하는데, 저는 그것도 듬성듬성 나서 오히려 보기가 안 좋아서요.”
면도냐, 수염이냐. 그건 지역과 시기를 따라 달라지는 문제였다. 앵글리아에서도 면도와 수염 기르기는 세대별로 번갈아 유행이 뒤집히곤 했다. 리하르트는 내심 자신의 겉모습에 불만이 많은 듯했다.
“사내다움이라. 어려운 문제지요.”
“에드워드 경도 때때로 그렇게 느끼십니까?”
에드워드는 자신의 전용 술잔을 비웠다.
“기사다움보다는 덜 어려운 것 같긴 합니다만, 누구나 한 번씩은 시험에 들지요. 나약한 생각이 들 때는 더욱.”
“과연 옳은 말씀입니다.”
“와, 기사님 괜히 폼 잡는다.”
스텔라가 쓸데없는 말을 얹자 에드워드는 카치운을 돌아봤다.
“한 대 때리쇼.”
“그러지.”
“와! 여자를 때리래! 기사다움 어디 갔어요?!”
“내가 직접 안 때리면 돼.”
다시 웃음소리가 식탁 위를 채웠다. 그러나 이번 웃음소리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갑자기 성벽 쪽이 소란스러워진 것이다. 병사들과 기사들의 고함소리가 이어졌다. 토착 언어와 아퀴타니아어가 마구 뒤섞여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그 일부가 식당까지 새어들어 왔다.
“밖이 시끄럽군. 뭐라는 거야? 드디어 찰리가 왔나?”
가르달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헬레나였다.
“머리 없는 기사가 나타났다는군요.”
에드워드와 리하르트는 동시에 얼굴을 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