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질긴 낯짝 (2)
찰리를 쓸데없이 고통스럽게 죽였는가?
에드워드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꽤 길게 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놈이 뒤통수를 치려 한다는 데 대한 분노한 게 첫 번째 이유, 거기다 서로 뻔히 다 아는 진부한 패턴을 쓴다는 게 두 번째 이유.
[저 새끼가 먼저 ‘넌 내 옛 친구 아님’을 대놓고 선언했는데 그걸 그냥 곱게 넘어가?>사막 한복판에서, 앞뒤로 포위하고, 옆에는 기회만 오면 돌변할 병사들을 배치했다. 에드워드가 빠르게 판단했기 때문에 실제 공격으로 안 이어졌을 뿐. 찰리는 에드워드의 목숨을 손바닥 위에 올려놨다. 필요하면 죽였을 것이고.
게다가 이렇게 뒤통수를 치는 놈들이 역으로 궁지에 몰리거나, 죽기 직전일 때는 꼭 ‘옛정’을 꺼내기 마련이다. 이때 단호하게 행동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단호할 필요가 있는 데서 단호하게 행동했다고 생각하는데. 뒤탈 없게.”
“그런데 뒤탈 생겼네.”
성벽 위에 선 에드워드의 중얼거림에, 그 옆의 베로니카가 덧붙였다. 에드워드는 앓는 소리를 냈다.
“너도 별말 없었잖아.”
“응. 네 탓 아냐. 저놈 탓이지.”
요새의 성벽 아래에는 대가리가 없는 말을 탄 머리 없는 기사가 있었다. 기사단원 하나가 투덜거렸다.
“이놈의 동네는 겨울이어도 쉬는 법이 없어.”
아직 남쪽에서 철수 안 하고 있을 세트렛 환생군단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에드워드는 그 말을 목구멍에서 가까스로 멈췄다. 지금은 생면부지의 기사단원들 상대로 농담을 할 상황이 아니다.
구경 나온 데스피나가 대신 입을 열었다.
“인간 교회의 방식은 잘 모르지만…… 쉽게 일어설 정도의 조치를 해놓고 오지는 않으셨을 것 같은데?”
베로니카를 향한 질문이었다. 이단심문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범죄자용 의식을 따로 하고, 머리와 몸통을 따로 묻었죠. 아예 태워버릴 걸 그랬나.”
사형수의 시체는 약이나 부적의 재료를 찾는 사람들이 분해해서 가져가 버리고, 남는 것을 수습해 부랑자용 묘지 아니면 공동묘지 구석에 묻는다. 그 장소에서 사제가 비정기적으로 행하는 의식은 ‘장례’라기보다는 ‘종말이 오기 전에 회개나 해라, 죄인아’에 더 가깝지만, 수시로 반복되므로 일어날 확률이 극히 적어진다.
“채집꾼들이 참수형 당한 시체는 잘 안 건드린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그 탓인가?”
“상황 따라 시체 따라 지역 따라 다 다르지. 어쨌거나, 대체 무슨 능력으로 다시 일어선 걸까?”
“에드워드 경? 저 말, 유니콘 아니에요?”
헬레나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에드워드는 어둠 속을 움직이는 말의 형상을 보다 고개를 저었다.
“몰라. 색깔은 같은데.”
“유니콘 맞아요.”
“뿔 잘린 유니콘은 유니콘이 아니라 포니 새끼지. 게다가 저놈은 머리까지 잘렸네. 뿔 없는 유니콘을 걱정할 필요가 있나?”
“그야 그렇긴 한데…….”
“줄무늬 긋고 얼룩말이라고 주장하기 전까지는 별거 아니야. 신경 꺼.”
둘의 대화를 듣던 베로니카는 에드워드의 뒤통수를 손날로 가볍게 때렸다.
“유니콘까지 챙겨서 일으킬 정도로 강력한 흑막이 있을지도 몰라. 긴장해.”
“아, 그럴지도 모르겠군.”
그때 찰리의 목소리가 성벽까지 닿았다.
“야, 에디!”
얼굴은 없지만, 복장도 목소리도 찰리. 에드워드는 매우 떫은 것을 씹은 표정으로 맞받아 외쳤다.
“왜, 똥개!”
“리하르트는 만나봤냐?”
뜬금없는 질문. 모두의 시선이 리하르트를 향했다. 에드워드는 다시 찰리한테 외쳤다.
“그래, 만났지! 여기 있더라!”
찰리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밤하늘을 갈랐다.
“걔 엉덩이 까서 네 여자들 엉덩이 사이에 놓으면 분간이 안 가겠지?”
웃을 수 없는 농담이었다. 에드워드는 입을 콱 다물었다. 리하르트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이 도발에 응하지 않기는 어려웠다.
“내 아버지의 원수! 널 내 손으로 못 죽인 게 안타까웠는데, 두 번 죽으러 왔구나! 거기 기다려라! 지금 내려간다!”
“밤인데 왜 침대에 안 갔어, 자기? 남자가 성벽에 더 많아?”
찰리는 기죽지 않고 계속 도발을 했다. 에드워드는 바로 손을 내밀어 리하르트를 제지했다. 식탁에서의 공손한 투가 아니라 강한 어조로.
“당신 실력이 어느 정도든, 백작가 후계자가 가볍게 나서는 건 좋지 않으니 참으쇼.”
리하르트는 움찔했다. 그가 반박하기 전에, 그의 부관 하나가 나섰다.
“그렇습니다! 제가 먼저 나서겠습니다! 저놈에겐 여자 문제로 빚도 있으니까요!”
그 부관은 잽싸게 성벽 아래로 내려갔다. 에드워드는 그의 뒤통수를 향해 외쳤다.
“불리할 것 같으면 잽싸게 도망치쇼!”
“걱정 마십쇼!”
부관이 쾌활하게 외쳤다. 그는 하인이 꺼내온 무장을 차고 자기 말에 올랐다.
“문을 열어라!”
하지만 수문장은 문을 열지 않았다. 그는 두려움이 깃든 목소리로 말했다.
“저건 듀라한이오! 듀라한에게는 문을 열어주면 안 돼!”
“듀라한이 뭡니까?”
부관의 말에 수문장은 장황하게 대답했지만, 요약은 베로니카가 더 잘했다.
“머리 없는 기사. 보통은 여기서 만날 리가 없는 타입의 괴물이지.”
에드워드가 물었다.
“만날 리가 없다고?”
“원래는 요정이야. 밴시와 같은 계통이지.”
“난 언데드라고 들었는데.”
“그야, 진짜 듀라한은 안 보이게 된 지가 오래거든. 지금 돌아다니는 듀라한들은 악마들이 이미지를 차용해 만든 가짜에 언데드야.”
“그런데?”
“이미지를 차용하고 전승에서 힘을 훔치는 종류의 괴물은 해당 지역을 벗어나는 순간 단순한 언데드에 불과해. 여기서 활동할 리가 없어. 하지만 성묘 수호 기사단은 듀라한 전승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있는 게 당연한, 다국적 집단이지.”
긴 설명이지만 에드워드는 그제야 심각성을 깨달았다. 분노한 기사들과 전사들이 나가네 마네 서로 싸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깟 듀라한이 뭐라고! 여긴 기사단 요새요! 서품을 받은 사제도 많소!”
“듀라한을 이길 수 있는 기사는 없소! 문을 열면 그 순간 난입할 거야!”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뒤섞여 있으면 어떻게 되는데?”
“상황 따라 다르긴 한데, 희극의 법칙을 따르는 게 흔하지. 모르는 자가 먼저 죽어. 일단 듀라한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최소 한 명은 확실히 죽는다고 봐야 돼.”
베로니카는 에드워드를 흘겨보았다.
“그게 너일 가능성이 높지만, 다른 사람이 걸리지 말란 법도 없지.”
“골 아프군. 그다음엔?”
“몰라. 가지각색이야. 전승이 확장되거나, 전파되거나, 왜곡되거나…….”
에드워드는 잠시 생각해보다가 성벽 아래를 향해 소리쳤다.
“리안나, 올라와!”
리안나는 성벽 위로 쪼르르 달려왔다. 에드워드는 그녀를 흉곽 사이로 데려간 다음, 찰리를 가리켰다.
“저게 뭘로 보이냐?”
“나쁜 기사 찰리요.”
질문을 잘못했다. 에드워드는 다시 질문했다.
“저거 듀라한이야?”
“듀라한 아저씨들은 저렇게 안 생겼는데요.”
“어떻게 생겼는데?”
“여자 치마 속을 잘 훔쳐보게 생겼어요.”
에드워드는 그 말에 깊이 고뇌했다.
“찰리도 잘 훔쳐봤는데…….”
베로니카는 인상을 썼다.
“넌 친구 좀 가려 사겨.”
“기사후보생 동기라는 게 내 맘대로 결정되나? 그냥 모여 보니 동기지.”
“너도 훔쳐봤니?”
에드워드는 입을 삐죽였다.
“아니. 여자 속옷이래봤자 천뭉치잖아. 빅토리아 시크릿 급으로 이쁜 란제리여도 훔쳐보지는 않아. 스스로 벗어준다면 참 고맙지만.”
“빅토리아는 누군데?”
“여자 속옷을 남자 마음에 들게 정말 이쁘게 만들던 옷집이 있어.”
베로니카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랭주리를……?”
“지금은 없어.”
“그것참 아쉽…… 아니, 이건 중요한 게 아니지. 리안나는 왜 불렀어?”
“저게 언데드인지 듀라한인지 확인해 보려고. 뭐, 듀라한은 확실히 아니네.”
“그건 내가 봐도 알아.”
“너랑 밴시면 이곳 사람들 대충 설득이 가능하지 않을까? 저건 듀라한이 아니라고.”
“설득으로 해결될 문제일지…….”
그때 소란을 제압하고 나선 건 요새 사령관이었다. 성묘 수호 기사단으로서 완전무장을 하고 나온 늙은 기사는 위엄 서린 호통 한 방으로 혼란을 진정시켰다.
“문을 열지 마라! 한때의 격정으로 전투에 나서면 안 된다!”
에드워드는 그 광경을 본 직후, 베로니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저게 도발에 안 넘어가는 타입 중 하나지.”
“너와 찰리의 천적이란 뜻이구나.”
“그렇게 해석되나?”
자유로운 기사는 기사수도회의 규율에 복종할 의무가 없지만, 문을 열고, 닫는 건 엄연히 요새 사령관의 권리다. 열지 않으면 베어버린다고 경비병을 협박하거나, 자신의 권위를 내세워 강제로 여는 놈이 간혹 나올 수는 있지만, 요새 사령관은 그런 변수를 사전에 차단했다.
베로니카는 에드워드에게 전술을 문의했다.
“도발에 안 넘어가는 신중한 지휘관을 상대로는 뭘 해야 돼?”
“부하들 앞에서 권위를 깎아내리면, ‘우리 지휘관은 밸도 쓸개도 없나’라고 생각하는 얼간이가 나오기 마련이지.”
찰리는 에드워드의 생각대로 행동했다. 그는 요새 사령관을 도발했다.
“스테판 경! 리하르트의 엉덩이는 쫄깃합니까?”
성벽 위의 기사단원들과 병사들은 바로 찰리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요새 사령관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무시해라! 죽은 것과 말을 섞지 마라! 해가 뜨면 사라질 놈이다!”
찰리의 웃음소리가 성벽을 넘나들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저었다.
“우연히 일어난 게 아니라 배후가 있는 거라면, 해가 떠도 도망치진 않겠지.”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여긴 요새야. 하루이틀 정도는 느긋하게 관찰해도 돼. 저놈의 목적이 뭔지 그것부터 알아내야지.”
에드워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거야 나 죽이려고 온 거겠지?”
“장담해?”
“당연한 거 아냐?”
“저 새끼는 혼돈의 기사라며?”
에드워드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저 새끼가 혼돈의 기사 같은 놈이긴 한데, 벌레에게 물어 뜯기게 놔둔 날 용서할 정도로 자비롭게 변덕을 부릴 것 같지는 않아.”
대화를 듣던 데스피나가 끼어들었다.
“모르지. 그런 놈이면, 듀라한으로 갈아탄 것을 감사할지도.”
“변태요? 엘프는 오래 살면 변태가 되나?”
“밧줄에 흥분하는 너한테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아! 그리고 진지하게 좀 말해!”
“밧줄이 아니라 밧줄에 엮인 여체에 흥분하는 거야!”
“그게 그거지!”
데스피나는 역정을 내다 겨우 숨을 가다듬었다.
“인간 기사는 정말 얕고 얕은 존재라니까. 내면의 변화라는 건 정말 다양하다고. 너 빼고 다른 이들이 모두 변해도 변화며, 겉모습이 변해도 내면이 변하지 않으면 그것 역시 변화야. 저 듀라한은 어떤 경우일 것 같아?”
에드워드는 생각에 잠겼다. 데스피나가 덧붙였다.
“내면의 변화는 네 문제기도 하니까, 저 불행한 기사를 보고 잘 생각해봐.”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베로니카는 고개를 저었다.
“마법사들의 말장난이야. 신경 꺼. 진리는 불변하는 것이며, 내면의 변화는 곧 빛의 회복을 뜻해. 겉모습이 변해도 마음이 안 변하면 변화라니.”
에드워드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마법사는 관측하는 자고, 사제는 기도하는 자다. 같은 단어를 써도 다른 뜻으로 말하는 경우가 있고, 같은 현상을 두고도 다르게 말하는 경우가 있다.
“마법사랑 사제가 간혹 쌈박질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에드워드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환생한 사람이다. 겉모습은 바뀌었지만 내면은 그대로다. 성장기를 다시 거쳤지만, 길이 다르면 했던 실수를 줄일 여지가 크지 않았다. 적응은 꽤 잘했지만.
어찌 보면, 지금의 듀라한 찰리는 에드워드와 닮은꼴이다.
“흠. 뭐 대화는 천천히 해보지.”
“아까 사령관이 듀라한이랑 대화하지 말라 했는데?”
에드워드는 입을 삐죽였다.
“난 이곳 소속이 아니라 자유로운 기사라서 상관없어.”
다음날 아침까지, 요새의 사람들은 두 정신 나간 앵글리아 기사가 주고받는 만담 때문에 정신공격 피해를 호소했다.
잠을 설친 데스피나와 헬레나는 퀭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너 저런 남자랑 왜 다니니. 엘프 망신이다.”
“……생각보다, 괜찮은, 구석도, 있거든요?”
그렇게 만담으로 끝나면 좋았겠지만, 실질적인 피해도 곧 따라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