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61)
161화 질긴 낯짝 (3)
두 앵글리아 기사 사이에서 만담이 오간 결과 얻어낸 정보는 생각보다 쓸만했다. 처음엔 에드워드를 말려보려던 스테판 사령관은 졸린 눈을 비비며 말했다.
“격정에 휩싸여 싸우는 것보다 속을 떠보는 것이 더 합리적인 생각이긴 하지. 저놈이 경한테만 관심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중요한 단서고.”
에드워드가 ‘근사한 새 말을 얻은 것 축하한다. 대가리 없어도 잘 노는 것 같은데, 서로 갈 길 가면 어떻겠냐’는 요지의 친근감 어린 제안을 했을 때, 찰리는 분노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락하지도 않았다. 반대로 ‘그건 어렵다’는 식의 답변이 돌아왔다. 대답에서는 강한 의지가 느껴지지 않았다.
어렵다는 표현은 복수심에 불타는 자가 쓸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의지가 느껴졌다.
찰리를 일으켜 세운 악마의 의지.
에드워드는 재차 확인했고, 찰리는 선선히 악마의 이름을 대답해 주었다. 에드워드는 자기를 콕 찍어 따라오는 악마가 아직도 포기를 안 했다는 사실에 짜증을 냈다.
“레피림이랬나. 그러던데. 걔가 뭐 때문에 날 쫓아오는 거지?”
“짐작 가는 게 없소?”
“많아서 문제입니다.”
대낮의 찰리는 지치지도 않았다. 그는 계속 떠벌렸다.
“레피림이란 그 악마, 쌔끈하더라? 그런 악마들만 가득하면 지옥도 살기 나쁘지 않을 거야.”
“하다하다 이젠 악마를 레이디로 모시냐?”
“그럼 젖통 여섯 개 달고 소머리 단 말렉의 악마들과 놀겠냐?”
“너하고 잘 어울리겠네.”
“에이, 나보단 너와 더 어울리지. 우유 파는 알레사를 생각해 보면…….”
“너 그 이야기 한 번만 더 꺼내면 진짜 뒈진다?”
“이미 뒈졌는데. 야, 에디. 이것 봐라?”
찰리는 망토 안에서 자기 머리통을 꺼내 높이 들어 올렸다. 벌레의 독침과 독니로 여기저기가 부풀어 오르고 입술은 말라 갈라진 끔찍한 면상이었다. 팔뚝 길이의 지네가 왼쪽 귀에서 나와 정수리를 지나서는 오른쪽 귀로 들어갔다. 기사단원들과 병사들은 공포의 신음을 토했지만, 에드워드는 태연했다.
“언제 개통했냐? 그 정도로 상하진 않았는데?”
“땅에 묻히고 나서. 이놈이 제일 질기게 달라붙더라.”
“그 지네 이름이 뭐냐?”
“이름 안 붙였는데.”
“토마스로 하자.”
“토마스가 누구야?”
“있어. 밤에 보면 무서운 거. 소리도 내지. 칙칙폭폭.”
요새 사령관 스테판은 에드워드의 어깨를 짚었다.
“그만합시다. 언제까지 하려나 두고 봤더니 밤을 새는구먼.”
“이상한 거 안 느껴집니까?”
“응? 무슨 뜻이오?”
에드워드는 턱으로 찰리를 가리켰다.
“제가 나서서 대화하기 시작하니까 도발을 멈췄습니다. 처음엔 밤새도록 할 기세더니. 놈이 정말로 문을 여는 게 목적이라면, 말장난을 할 게 아니라 도발을 더 했겠죠.”
그 말에 사령관은 찰리를 돌아보았다. 듀라한은 이제 뿔 잘린 유니콘의 모가지를 자기 몸통에 붙인 다음 춤을 추고 있었다.
“야, 에디! 너 이거 기억나냐? 말 가면! 네가 엘리자베스를 이걸로 함락시켰잖아!”
푹 자고 나오자마자 기괴한 소릴 들은 스텔라가 제일 먼저 반응했다.
“저딴 것에 함락되는 여자도 있어요?”
“한때 말 가면에 넘어가서 유명화가인 남편을 배신하고 이혼해 파란을 몰고 온 여자도 있었지. 내 이야기는 아니지만.”
“엘리자베스는 또 누군데?”
베로니카의 말에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알레사가 내 뺨을 때리게 만든 원인.”
“무슨 짓을 했어?”
“걔네 집 닭들이 알을 잘 낳아서 계란 좀 얻어갔어.”
“그것뿐이야?”
“계란과 우유는 훌륭한 영양소 공급원이지.”
“정말 그것뿐이냐고.”
“난 보답을 했을 뿐…….”
사령관은 두 남녀의 신경전을 무시하고 계속 찰리를 살폈다.
“놈은 들어오는 게 목적이 아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저었다.
“들어오는 게 목적이긴 할 겁니다. 급하지 않다는 거겠죠.”
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보군. 하지만 여긴 요새요. 버티려면 몇 개월도 더 버틸 수 있는데…….”
“아, 잠깐! 우린 떠나야 되는데!”
데스피나가 다급히 덧붙였다. 그러나 대상 대표는 느긋했다.
“뭐, 장사하다 보면 이런 일도 있는 법이죠.”
“몇 개월씩이나 죽치게?!”
“그때는 시약값이 더 오를 텐데요 뭘.”
베니아에서 호박길을 따라 내려가던 상단대표보다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하루이틀 더 지켜보죠. 놈이 성벽을 못 넘는다면, 굳이 문을 열어줄 필요도 없어요. 방법을 찾을 시간이 많은 것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죠.”
사흘째였다. 이젠 찰리도 기행을 할 건수가 다 떨어졌는지 그냥 옆으로 누워 엉덩이를 긁어댔다. 머리는 계속 유니콘 대가리인 채였다. 완벽한 백수의 표본. 스테판 사령관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진짜 우리가 문 열 때까지 버틸 셈인가?”
리하르트가 바로 사령관에게 간언했다.
“사령관님, 그냥 열고 나가죠! 듀라한은 한 놈이고, 이 성의 기사들은 기사단원만 열다섯입니다! 병사는 더 많고요! 수적으로 유리한데, 목숨을 잃는 걸 두려워해서 안에 뭉쳐 있기만 하다니요!”
“듀라한을 상대로는 한 명만 죽는다는 보장이 없네. 그리고 난 아무리 예상되는 피해가 적다 해도, 적이 원하는 대로 해주기 싫네.”
사령관은 단호했다. 에드워드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범적인 지휘입니다.”
동조는 중요하다. 만약 기사들 중에 ‘그 한 명이 당신이 될까 무서운가’라고 묻는 얼간이가 있다면, 그 순간 내부 분위기는 또 개판이 나버리니까. 리하르트는 별수 없이 물러섰다.
그때 한 병사가 달려왔다.
“사령관님! 남쪽에서 먼지구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뭐?!”
사령관은 황급히 남쪽 성벽으로 달려갔다.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돌아봤다.
“남쪽에 뭐가 있다고 했었지?”
“아브멜렉 환생군단 일부.”
에드워드는 떫은 표정을 지었다. 요새를 향해 진격해오는 놈들이 사다리 하나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찰리 새끼, 저걸 기다렸나?”
헬레나나 카치운이 확인해줄 필요도 없었다. 기사단원들은 황급히 전투준비에 들어갔다. 모래 먼지의 규모를 살펴보던 스테판 사령관이 외쳤다.
“적 규모는 대략 3천! 전서구를 날리고, 봉화를 피워라! 총원, 각자 위치로!”
“겨우 3천 명이라고?”
한 기사단원이 패기 넘치는 소감을 뱉었다. 요새를 수호하는 기사와 병사들의 숫자는 3백 남짓. 적은 열 배가 넘고 요새는 평지성. 하지만 사막에 돌벽을 쌓아 만든 이 요새는 견고하고 복잡한 구조를 가졌다. 그리고 기사단원들은 이런 싸움에 도가 튼 인간들이다.
적어도 듀라한보다는 편한 상대다.
“이상한데.”
카치운이 말했다. 그는 성벽 위에서 세트렛 환생군단을 보며 말했다.
“작정하고 몰려오는 것 치고는 숫자가 너무 적어. 선발대 같지도 않아. 저게 전부야.”
“왜요?”
리안나가 물었다. 카치운은 친절히 설명해 줬다.
“오크 짐꾼들이 보이거든.”
“그거 중요한 문제예요?”
“소규모 선발대는 장애인 짐꾼을 써서 속도를 떨어뜨리지 않지. 저게 본대란 뜻이다.”
오크들은 쌈박질밖에 모르는 놈들. 짐꾼으로 일하는 오크는 어딘가 다치거나 모자란 놈들이다. 카치운은 계속 말했다.
“세트렛과 사막 오크 연합군이지만, 오크 전사의 비중은 그닥 높아 보이질 않고…… 게다가 짐꾼들 중에 사다리 든 놈들이 꽤 있군.”
“다른 공성 병기는 안 보이쇼? 조립식 공성 탑이라던가, 대형 투석기라던가. 오크들은 몰라도 세트렛 놈들은 그런 것 쓸 줄 알 텐데.”
에드워드가 묻자 카치운은 고개를 저었다.
“없소. 사다리뿐이오.”
“공성전에 최저한의 사다리만 준비했다? 그렇게 안일한 공략도 있나?”
“다른 요새들도 공략 중인가?”
“다수의 요새를 공략하기 위해 병력을 위험할 정도로 분산시킬 만큼 세트렛 지휘관들이 바보는 아닐 텐데.”
“딱 저만큼의 병력만 동원해도 무방하다는 건데.”
헬레나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끼어들었다.
“에드워드 경?”
“왜?”
“유니콘이 물 위를 걷던 것 기억나요?”
“그게 왜?”
“그 녀석, 악어들 위도 그냥 걸었거든요?”
“어…… 잠깐.”
사다리 하나 안 걸리는 공성전은 없다. 유니콘은 무슨 술법으로 물 위를 걸었는지는 몰라도, 그게 ‘물 위’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지금 그 유니콘이 찰리 경의 말이잖아요?”
* * *
“쏴라, 쏴라! 마구 쏴!”
화살과 돌이 양 진영을 날아다녔다. 요새를 방어하는 입장인 데다, 보다 제대로 된 투석기가 있는 방어측의 반격은 매서웠다. 그러나 공격측도 물러서진 않았다. 투석이건 화살이건 사다리의 접근 자체를 막는 건 쉽지 않았다.
“해자에 닿기 전에 해치워라!”
한 궁병이 외쳤다. 카치운은 활을 당기면서도 특유의 부정적인 투로 전망을 말했다.
“그게 쉬워야 말이지.”
그의 화살이 한 세트렛 병사의 방패에 박혔다. 화살은 큰 깃을 쓴 가장 강력한 놈이었고, 방패는 바로 관통당했다. 표적이 쓰러지면서 사다리는 비틀거렸지만 계속 해자에 처박혔다.
“시약 보충하자마자 써야 한다니 안 좋아! 데스피나 님이라도 불러줘요! 불꽃으로 사다리 태워버리면 되잖아!”
“화염 마법사 전용 시약이 모자라서 안 된대요!”
리안나는 오수를 가마솥에 끓이면서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화염 마법사의 시약 세트에는 꼭 유황 따위가 따라붙지만, 채집꾼들의 마을엔 화산이 없었다.
결정적으로, 데스피나는 도망칠 생각밖에 안 했다.
“내가 왜 인간들 소동에 엮여서 아까운 시약을 날려야 해? 내 것이 아니라 남의 돈으로 산 시약도 많거든? 나 파산하거든 댁들이 책임져 줄 거야?”
대상들도 반응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여차하면 샛문 열고 도망가게 해달라고 스테판 경에게 부탁해놨소.”
스테판이 허락한 이유야 단순했다. 시약을 가져갈 수 없다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베로니카는 투덜거리면서 다른 사제들과 함께 부상자들을 위한 병동을 꾸렸다.
“마법사와 상인은 믿을 족속이 못 돼.”
세탁 후의 헹굼 물은 물론 소변 따위까지 섞인 역겨운 액체는 잠시 뒤 펄펄 끓어올랐고, 병사들이 그걸 솥째로 집어다 아래로 쏟아부었다. 끔찍한 비명소리가 성벽 아래에서 울렸다.
세트렛 군대가 빈약한 세력으로 요새를 공격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은 듀라한이 딛을 사다리만 성벽에 걸면 되는 것이다.
헬레나는 흉곽 사이를 뛰어다니면서 사다리의 움직임을 체크했다. 잠시 뒤 한 흉곽 사이로 사다리가 닿으려 하자, 그녀는 바로 뛰어올라 그것을 걷어찼다.
콰득!
첫 공성용 사다리는 다행히 내구도가 충분하고 무게는 가벼운 타입이었다. 사다리는 왔던 궤도를 따라 다시 허공을 가르며 뒤로 쓰러졌다. 쿠웅!
“한두 번은, 이렇게 할 수 있겠지만!”
헬레나가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에드워드는 그다음 말을 이해했다. 그는 열쇠검을 뽑고, 리하르트와 함께 외성 내에서 대기했다. 에드워드는 리하르트를 향해 물었다.
“지금이라도 스테판 경한테 건의하는 건 어떻습니까? 비상상황이니 시약 다 몰수해버리고, 저 엘프 여 마법사도 강제로 동원하자고.”
“아지지야의 마법 학당이 인정해 줄 것 같지가 않군요. 그녀는 폰티아뿐만 아니라 아지지야 마법 학당까지 얽힌 관계자입니다. 그녀와 저 대상들이 챙긴 시약은 마법 학당 사람들이 쓸 것이고…….”
“젠장. 뺏기면 뭔 소용이래.”
“듀라한 하나가 난입한다고 성까지 함락된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반대로 말하면, 듀라한만 막으면 이 공세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세트렛 공세의 규모는 작았다. 이 상황을 조성한 레피림인지 뭔지 하는 악마는, 이곳 세트렛인들에게 그닥 먹히는 이름이 아닌 모양이었다. 얼마 전까지 빛의 세력과 치열하게 싸운 데다 겨울을 지내는 자들이, 전력을 다할 여력 따윈 없을 테니.
악마가 뭔가 준비해 뒀다니, 최소한의 공격으로 한번 찔러보는 체면치레용 공격.
에드워드는 저 멀리 떨어진 데스피나를 곁눈질했다. 그녀가 난입한다 해도, 그 상대는 세트렛 군대가 아니라 듀라한 찰리인 것이 합리적이긴 했다. 물론 그녀가 그마저도 쉽게 나설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게 원망스럽게 보지 마! 난 거대전갈 상대로 이미 시약 꽤 썼거든!”
샛문 앞에 낙타들과 함께 선 데스피나의 목소리가 에드워드의 귀로 파고들었다. 에드워드는 나지막하게 저주했다.
“낙타 침이나 확 옷 속에 들어가 버려라.”
그 순간 정말로 낙타가 데스피나의 뒤통수를 향해 침을 뱉어버렸다. 리하르트는 놀란 눈으로 에드워드를 돌아보았다.
“혹시 마법이나 주술 쓰십니까?”
“그랬으면 좋겠군. 주술 하나 더 걸어봅시다. 듀라한 찰리는 골병이 들어서 성안에 못 들어온다.”
그러나 그 순간, 에드워드의 기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함성이 성벽 위에서 터져 나왔다.
“듀라한이 달려온다!”
쿵!
사다리 하나가 기어이 성벽에 걸렸다. 헬레나가 그걸 걷어찼지만, 이번엔 꿈쩍도 안 했다. 헬레나가 소리 높여 외쳤다.
“숙여요!”
창백한 하얀색이 성벽 위를 쏜살처럼 날았다. 사다리를 평지처럼 달려 성내로 난입한 것은 역시 듀라한 찰리였다. 놈은 병사들도 화살도 무시하고, 성안에 착지했다.
콰직!
“으어어억?!”
멋진 등장이었지만 마무리는 좋지 않았다. 듀라한 찰리가 착지한 곳은 하필 리안나의 새 애완전갈 ‘띵똥’의 등딱지 위였다. 띵똥은 처절한 소리를 내며 으깨졌고, 찰리와 유니콘은 세트로 넘어져 버렸다. 우당탕!
“띵똥아아아아악!”
리안나의 절규가 성벽 위를 울렸다. 리하르트는 에드워드를 돌아보았다.
“주술사 맞으신가 본데요.”
에드워드는 떨떠름하게 말했다.
“내 탓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