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62)
162화 피곤한 기사들
세트렛 전사들은 듀라한 찰리가 성 안으로 난입하는 데 성공하자, 사기가 급격하게 올랐다. 한겨울의 준비되지 않은 공성전도, 갑자기 의욕이 솟는 대작전으로 승격된 것이다. 물론 그들은 성 안 상황을 자세히 몰랐지만, 그렇기에 더 열성적으로 달려들었다.
퍼억!
화살 하나가 드워프 머리 위를 지나가 어딘가에 박히는 소리를 냈다. 가르달은 노호성을 질렀다. 그는 흉곽으로 머리를 들이민 세트렛 병사의 두개골에 도끼를 휘둘렀다. 콰직!
“빛을 보고 죽어라!”
헬레나는 몇 발 안 들고 다니던 다트가 백발백중이 되었다. 오크 연합군은 거의 없지만, 듀라한이 난입하는 순간 후속으로 이어지기에는 충분한 숫자의 세트렛군. 아무렇게나 던져도 누군가에겐 맞을 판이었다.
등 뒤의 듀라한한테건, 코 앞의 세트렛 군대한테건, 뚫리면 죽는다.
기사단이 무기고에서 꺼내온 다트까지 던져대던 그녀는 곧 마지막 다트를 던졌고, 글레이브를 고쳐 잡았다. 거의 모든 사다리가 성벽에 붙었고, 그것들은 사람의 체중으로 너무 무거워져서 밀치지도 못한다. 이젠 올라오는 놈들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
한 세트렛 전사가 흉곽 사이로 뛰어올랐다. 헬레나는 그의 방패를 향해 글레이브를 있는 힘껏 휘둘렀다. 쾅!
“으아아아악!”
방패를 글레이브로 막았던 세트렛 전사는 내성 안쪽으로 떨어지며 비명을 질렀다. 헬레나는 그 비명에 지지 않을 만큼 크게 소리를 질렀다.
“정령의 가호!”
밀을 수확하는 낫처럼 글레이브가 휘둘러졌다.
“듀라한은 내부 대기조에게 맡겨라!”
스테판이 소리쳤다. 그는 ‘난전 중 듀라한이 변덕을 부리거나 계략을 꾸며 사령관부터 노릴지도 모른다’는 참모들의 걱정 탓에 앞으로 나서질 못했다. 그러나 찰리가 난입한 뒤에는 오히려 안정적으로 성벽 위에서 지휘를 했다.
“놈들이 남서쪽 모서리를 집중 공략한다! 알레마니아대, 아퀴타니아대, 응전하라!”
병사들 사이를 맴돌던 호기롭던 독전구호들이 점점 거칠고 말 없는 숨소리로 바뀌어 갈 만큼 전투는 치열해졌다.
스테판은 한창 전투를 독려하고 지휘하던 중, 리안나를 보았다. 그녀는 울먹이면서도 성벽 위에 쏟아진 피와 오물을 치우고, 솥에 다음 오수를 채웠다. 스테판은 깊게 감명 받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에드워드 경이 데리고 다니는 요정은 보통이 아니로군!”
밴시 리안나는 걸쭉한 주걱을 들어올리며 분노의 외침을 내질렀다.
“띵똥의 복수를 하겠어요!”
카치운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별로 친하지도 않았잖아.”
“거대 전갈을 타고 다니는 밴시의 꿈이 좌절됐다고요!”
“그게 진심이었냐?”
“타고 다닐 수 있는 애완동물이 흔해요?”
“말을 타, 말을.”
카치운은 슬쩍 성 안의 유니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저건 관두고.”
* * *
듀라한 찰리의 대가리는 본체의 왼쪽 옆구리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물 위도 걷고 사다리도 평지처럼 달리는 유니콘이었지만, 전갈은 으깨져버렸다.
‘뭐가 문제였지?!’
사실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대응이 중요했다. 그가 일어나기 전에, 에드워드가 먼저 행동했다.
“토트넘 개새끼 슛!”
뻐엉!
듀라한의 머리가 날아가 버렸다. 머리통은 데스피나 앞으로 날아갔고, 그곳에서 잠시 소란이 일어났다. 그러나 몸통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들었다. 에드워드는 머리 없는 시체를 향해 말했다.
“내 토토의 원한이다.”
당연하지만 몸은 대답이 없었다. 대신 잘려 나간 목에서 시꺼먼 피거품을 뿜으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리하르트는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이놈은 아직 움직입니다!”
“보통 듀라한은 머리가 날아가면 몸이 당황하는 것 아니었나?”
“박식하시군요!”
“아니, 나도 직접 본 적은 없는데, 보통은 그런 개그를 하는 걸로 알아.”
머리 없는 몸통은 마치 앞이 훤히 보이는 것처럼 검을 휘둘러댔다. 에드워드는 놈의 검을 막으며 소리쳤다.
“이 자식은 그런 타입이 아니네! 듀얼코어냐!”
“말씀을 이해 못 하겠습니다!”
“일단 피거품은 피하쇼! 딱 봐도 독기네!”
에드워드는 유니콘의 뿔조각과 성인의 저주가 걸린 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독이 쉽게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리하르트는 놈의 독기를 마주하자마자, 눈과 코를 찌르는 그 악취와 자극에 시퍼렇게 질려 물러섰다.
“뭐, 이딴 시체가 다 있……!”
실력은 머리가 없어도 찰리 그대로였기 때문에, 리하르트는 상대가 안 됐다. 에드워드 역시 목 없는 찰리와 검을 맞대며 식은땀을 흘렸다. 검술이건 기마창술이건 실력은 그와 막상막하. 게다가 변수가 하나 더 있었다.
“이히히히힝!”
리하르트가 물러서자, 머리 없는 유니콘이 에드워드에게 달려들었다. 뿔도 이빨도 없기에, 놈은 앞발 뒷발로 에드워드를 공격했다. 에드워드는 찰리와 유니콘을 번갈아 상대하느라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기사답게 한 놈만 덤벼라! 리하르트 경, 유니콘 좀 맡으쇼!”
“아니, 듀라한을 제게 맡기시죠! 제 선친의 복수를 해야 합니다!”
“아, 댁은 독 때문에 닿지도 못하는데!”
“두 번째 복수마저 미룬다면 기사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저도 사내다움을 보여야 한단 말입니다! 이건 양보 못합니다! 듀라한부터 칩시다!”
“환장하겠네!”
두 기사는 티격태격 하면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찰리 머리는 발길에 걷어차였음에도 활기를 잃지 않았다. 그는 아수라장이 된 사람들과 낙타들 사이를 제멋대로 굴러다녔다. 대상들은 저주 받지 않기 위해 콩 튀듯 이리저리 튀어 다녔고, 찰리는 신이 났다.
다만, 에드워드가 신경 안 쓰이는 것 아니었다. 머리 없는 것들과 싸우는 에드워드가 ‘한 놈씩만 나서라’고 외치자, 찰리는 발작하듯 소리쳤다.
“지 편할 때만 기사도 찾는 놈!”
에드워드는 리하르트와 티격태격하느라 그 말을 못 들었다.
“네가 남 말할 처지니?”
데스피나는 사람들을 헤치고 나가 찰리의 대가리에 발을 얹었다. 멋대로 통통 튀던 대가리는 그제야 움직임을 멈췄다. 엘프 여 마법사는 듀라한을 향해 말했다.
“그만 놀아라. 낙타들이 놀란다.”
“하하! 그러기 싫은데. 가만있는 엘프. 뭐 하느라 여기서 숨을 죽인 채 눈치만 살피고 있지? 싸움터에서 눈을 돌리면, 싸움이 사라지나? 지금 여기, 죽음이 왔다!”
데스피나는 싸늘한 눈초리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너 그놈이지? 제나 공화국에서 통령과 용병대장의 등을 함께 꿰뚫었다는, 배신자 찰리 드 맨슨.”
“와, 나 유명한가?”
“폰티아의 돛은 넓지. 네 악행 따위로는 그 구석도 못 메울 정도로. 네 행적은 다 꿰어봤다. 민심잡기에 결국 실패하고, 파르미날 공국으로 도망쳤지. 거기서도 환영받지는 못했고.”
“아픈 기억을 후벼파시네. 내 팬이야?”
“그 악명 때문에 성지까지 왔을 텐데. 내면은 전혀 변하지 못했나 보네. 또 주인을 죽였다는 걸 보면, 악마한테 부려 먹히는 걸 보면.”
“뭐, 운이 조금 안 좋았어. 그래도 새 주인을 만났으니, 열심히 해야지.”
그 말에 데스피나는 찰리를 비웃었다.
“열심히? 네가 뭘 할 수 있지?”
“뭔 소리야? 난 듀라한이야. 피를 쏟아 죽음을 알리는…….”
“목 없는 기사.”
“그래, 그거라고.”
데스피나는 발을 옮겨 찰리의 콧날을 밟았다. 찰리는 휘파람을 불었다.
“이거 의외로 흥분되는데.”
“피를 쏟아봐라.”
“뭐?”
“나한테 피를 쏟아보라 했다.”
“어…….”
찰리는 에드워드 등과 싸우는 자신의 몸통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뭐 하고 있나, 몸통아!”
하지만 몸통은 반응하지 않았다. 찰리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지만 몸통 쪽이 좀 바빠 보이는데. 기다려 주면 밤까지 화끈하게 적셔드리지.”
데스피나는 찰리의 농담에 관심이 없었다.
“저건 이제 네 몸뚱아리가 아니야. 레피림의 것이지. 넌 네 몸을 악마에게 줘버렸다, 가짜 듀라한.”
“뭐?”
“네게 남은 건 그 머리통뿐이야. 레피림이 널 농락했다.”
“무슨 헛소리야? 지금 따로 할 일이 있어서 그렇지, 난 내 몸을 완벽히 부렸다고!”
“별로 좋은 머리는 아니구나. 하긴, 그러니 변화를 못 하지.”
찰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데스피나는 그의 코를 뭉개면서 말했다.
“변화는 가지각색이지. 때로는 내면이 그대로여도 외면이 다 변하면, 그것도 내면의 변화가 돼. 하지만 넌 아니야. 그 반대지. 외면을 전부 바꿔도 소용이 없어. 심지어 외면의 변화에 내면의 변화가 따라붙어도 원본과 별 차이가 없는 결과가 나와.”
데스피나는 나지막하게 선고했다.
“넌 지옥에 박제된 기사야.”
그 순간 찰리의 왼쪽 귀에서 굵직한 지네가 튀어나와 데스피나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데스피나는 그 지네를 바로 손으로 붙잡아버렸다. 독기가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왔지만, 현자 급 엘프 마법사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난 안 싸우는 것이지, 못 싸우는 게 아니거든?”
그녀의 손에서 불꽃이 튀자 지네는 잿가루가 되어 떨어졌다. 찰리는 그 잿가루를 얼굴에 맞으면서 이를 딱딱 부딪혔다. 그는 중얼거리듯 물었다.
“넌 뭘 원하는데? 내게 왜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데스피나는 씩 웃었다.
“네가 알아서 뭐하게?”
그 순간 찰리는 끔찍한 비명과 함께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크고 작은 벌레를 토해냈다. 마지막 발악이었다. 그러나 그 벌레들은 데스피나의 신발에 닿는 순간 불꽃으로 변해 다 사라졌다. 그 불꽃은 점점 아래로 내려가 찰리의 얼굴을 태우기 시작했다.
눈을 까뒤집고 비명을 지르는 낯짝을 향해 데스피나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람들은 ‘싸우는 마법사’에게 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 반대야. 기사는 ‘안 싸우는 마법사’에게 더 필요해. 특히 내면의 변화에 직면한 기사들이 필요하지.”
데스피나는 잿덩이가 된 찰리의 얼굴을 걷어찼다.
“그 기사들이 진짜 마법을 일으키거든.”
데스피나의 시선은 스텔라를 향했다. 전투를 빌미 삼아 시약 좀 뜯어보겠다고 대상한테 달려왔던 그녀는, 데스피나와 잿가루 찰리를 보고 딸꾹질을 시작했다. 엘프 여 마법사는 자신의 입술 위에 검지를 갖다 대었다.
“마법사는 근본적으로 조언하는 자. 에드워드 경한테는 말하지 않기. 알지?”
스텔라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베로니카는 물러서다 못해 부상자 병동 앞까지 밀려온 에드워드를 보자마자 역정부터 냈다.
“넌 생각이 있니, 없니? 병동으로 듀라한을 데려오면 어쩌잔 거야?”
“내가 여기 오고 싶어서 왔냐!”
에드워드는 마주 소리쳐준 다음, 다시 검을 휘둘렀다. 캉!
결국 베로니카는 피 묻은 손을 대충 씻고는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다. 손에는 철퇴를 들고, 입에서는 해독의 주문을 외우면서. 그녀는 에드워드에게 물었다.
“둘 중 누가 더 쉬워?”
“유니콘!”
“그럼 끼리끼리 놀아! 빨리 처리하고 나 도와줘!”
“야, 넌 찰리 앞에 서면 세 번 안에 죽어!”
“네가 두 번 안에 유니콘을 죽이면 되잖아!”
“말은 쉽다!”
베로니카는 더 말을 꺼내지 않고 철퇴를 휘둘러 찰리의 왼팔을 내리찍었다.
퍼억!
팔이 이상하게 꺾이는 순간, 목 없는 유니콘이 베로니카를 향해 주의를 돌렸다. 놈은 갑자기 에드워드한테서 멀어져 사람 머리보다 높이 뛰어오르더니 병동 입구에 착지했다.
“아차!”
베로니카가 황급히 방향을 바꾸자, 유니콘은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베로니카는 이를 갈았다. 그녀의 생각대로는 안 움직여주겠다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리하르트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거리를 둔 채 끈질기게 듀라한만 따라가던 리하르트는 그 모습에 얼굴을 붉혔다.
“기사가 여사제보다 못 나서야!”
그제야 명분이 생긴 리하르트는, 표적을 손도 못 대는 듀라한에서 죽은 유니콘으로 바뀌었다.
“선친의 복수는 다시 당신께 맡깁니다! 저는 사내답게 숙녀를 보호하지요!”
에드워드는 찰리의 피부 곳곳을 뚫고 나오는 독충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기사도라는 거 더럽게 피곤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