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64)
164화 아지지야의 야경
베로니카한테 강제 치료 당하고, 베로니카한테 설교까지 들은 리하르트는 나름대로 납득했다.
“기사의 덕성 중, 겉모습에 연연할 일은 없긴 하지요.”
에드워드는 리하르트가 ‘여자 후리기를 깜빡했다’고 말하려다 베로니카한테 목덜미를 꼬집혔다. 그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레이디들은 얼굴도 중요하지만, 용맹을 보는 법이라.”
“어디 용맹요? 아래쪽? 기사님이라면 그런 의미로 말했을 것 같은데.”
리안나는 시큰둥하게 말을 꺼냈다가 응징당했다. 교수대에 거꾸로 매달린 리안나는 꽥꽥 소리를 질렀다. 에드워드는 그녀를 무시하고 다시 리하르트에게 말했다.
“찰리가 들고 온 검은 사제가 감정했는데, 별다른 저주나 마법이 없는 평범한 검이었습니다. 저는 어차피 다른 무기를 쥐지 못하는 데다, 복수자는 리하르트 경이시니, 당신이 가지시는 게 온당할 겁니다.”
고기 경단에 칼질한 것도 복수라면 복수긴 했다. 분풀이에 더 가깝지만. 리하르트는 바로 고개를 숙였다.
“제 아버지를 살해하고, 제 명예를 모욕한 놈에게 복수하는 걸 도와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에드워드는 마주 고개를 숙였다. 스테판 사령관은 천천히 박수를 쳤다.
“기사단과 그 동료들 사이에서 이런 우애 어린 모습이 오가다니, 참으로 보기 좋소.”
“사령관 아저씨! 기사님 때문에 기사단원들도 괜히 세트렛 군대랑 싸운 것 아닌가요!”
리안나가 마지막 발악으로 외쳤다. 전투의 책임을 에드워드에게 묻자는 무시무시한 말이었지만, 스테판을 포함한 기사단원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빛의 군세이자 기사수도회로서, 이런 싸움은 올 때마다 환영이지!”
“오늘 싸우지 않았어도 내일 싸웠을 놈들과 붙은 데 어찌 손님의 책임을 묻는단 말인가?”
“한 새끼라도 더 쳐죽여야지요!”
리안나는 거꾸로 매달린 채 입을 딱 벌렸다.
“와, 전투광들!”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비바, 진영논리.”
그 마지막 수습은 베로니카가 했다. 그녀는 스테판 사령관에게 ‘보호’를 제공해 준 데 사제이자 레이디로서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그녀의 남은 주문은 물론, 이 사태를 수습하는 데 필요한 만큼의 주문을 추가로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스테판은 ‘이단심문관님의 여행에 쓰시라’고 정중히 거절하는 것으로 대화가 끝났다.
“자, 자! 갑시다! 그만 갑시다! 싸움이 끝났다면 여기 더 머물 이유가 없지!”
대상 대표는 갈 길을 재촉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약값은 뛰기 마련이라 해도, 굳이 가만있을 필요 역시 없었다. 매물을 창고에 처박아두고 시세를 살피는 게 더 좋은 법.
데스피나의 일행이 그 뒤에 따라붙었고, 제일 마지막은 에드워드 일행이었다. 카치운은 피곤에 절은 표정으로 말했다.
“좀 쉬면서 가면 좋겠군.”
“왜 그렇게 약한 소리를 하는 거요? 이놈의 전투 한나절 밖에 안 치렀구만!”
가르달이 씩씩하게 말했다. 카치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쯤은 쉬고 갈 줄 알았거든. 원래 기대가 좌절되면 더 피곤한 법이오.”
“싸운 건 우리지, 대상이 아니니까요.”
헬레나가 덧붙였다. 그녀는 씩씩하게 나갔다. 카치운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정령이 대신 싸워주면 덜 피곤하겠지.”
“들리거든요? 왜 당신까지 시비예요?”
“피곤한 직장인은 다 그래.”
아웅다웅하는 일행들의 가장 뒤에는 에드워드, 베로니카, 그리고 겨우 풀려난 리안나가 있었다. 베로니카는 데스피나의 뒤통수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에드?”
“왜?”
“너도 내면과 외면 모두 크게 변화한 적 있는 인간이야?”
“넌 뭐 태어날 때부터 그 모습, 그 목소리였냐?”
“듀라한 찰리에 비견될 만한 일이 있었냐고.”
에드워드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
베로니카는 바로 알아차렸다.
“뭔가 짚이는 게 있긴 있나 보네.”
“야, 이단심문관의 심문 스킬을 이런 거에 쓰지 좀 마라.”
“네가 거짓말을 너무 못하는 거야.
에드워드는 코웃음을 쳤다. 그는 베로니카보다 약간 앞서 나가면서 물었다.
“데스피나가 뭐래?”
“넌 모습과 영혼을 동시에 바꿔 가는 기사라더라. 근데 그게 ‘제대로 회개했다’는 말은 아닌 듯해.”
“마법사니까.”
에드워드는 베로니카한테 얼굴 표정을 안 보인 채 중얼거리듯 말했다.
“모습과 영혼만 바뀌었나. 모든 게 바뀌었지. 그런데도 모자라단 건가, 아니면 내가 오히려 그 때문에 변한 게 없다는 건가. 해 묵은 생각을 새삼 헤집게 하는군. 망할 년.”
환생이라는 대사건을 거치면서 ‘존재’와 ‘목적’과 ‘변화’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 문제는 답이 없었다. 환생하기 전의 삶도 그런 질문에 답을 주지 않았다.
“데스피나는 아지지야 도서관에 가보면 뭔가 더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더라.”
베로니카가 말했다. 에드워드는 코웃음을 쳤다.
“겨우 도서관 따위가?”
“겨우 도서관이 아니야. 아지지야 도서관은 미로야.”
“미로?”
“그 기원은 수천 년 전 한 왕국의 왕립 도서관에서 시작해. 처음엔 주변 국가들의 다른 도서관들이 그렇듯, 왕실 관료나 사제들만 출입할 수 있는 평범한 도서관이었지.”
“그런데?”
“아직 한 번도 안 부서졌어.”
“그거 놀랍군.”
에드워드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베로니카는 인상을 썼다.
“수천 년을 버틴 건축물 중 아직도 제 기능을 유지하는 것은 거의 없어. 그건 일종의 경이야.”
“문서고가 참 방대하겠군.”
“그게 문제야. 여러 왕조와 지배세력이 다양한 용도로 쓰면서, 아직도 소실되지 않은 도서관에는 수많은 문서고와 연구실이 증축을 거듭했지. ”
“뭐야, 도서관이 도시 크기라도 돼?”
“그랬으면 차라리 낫겠지.”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지지야 도서관 비공개 문서고는 정권이 숨기는 문서고란 뜻이 아니야. 아무도 모르는 문서고이자 미궁이란 뜻이지. 그곳은 지옥을 비롯한 수많은 곳과 연결되어 있어.”
“맙소사.”
“때때로 시오니아 왕국이나 총대주교좌가 폐쇄를 시도하기도 했지. 하지만 그들 세력은 아지지야까지 힘이 미치지 않아.”
“엄청나게 위험하단 뜻인가?’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들어가도 공개 문서고만 보고 나올 거야. 너도 비공개 문서고는 절대 들어가지 마. 데스피나가 무슨 바람을 불어넣든. 알았어?”
* * *
에드워드 일행은 별다른 사건 사고 없이 한두 마을을 더 거쳤다. 아지지야에 가까워질수록 다른 사람들도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상에 따라붙는 여행자 숫자도 늘었다.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아지지야를 향해 모이는 것이다.
두 번째 마을을 지나치고, 이틀을 더 지나 일행은 매우 넓은 농토를 낀 매우 큰 강에 이르렀다. 다행히 강 건너가 안 보일 정도로 큰 강은 아니었지만, 에드워드가 본 강 중에서는 손꼽히는 크기였다.
“겁나게 큰 강이군.”
“이 강 이름은 어원이 ‘큰 강’이라지.”
베로니카가 웃으며 말했다. 에드워드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나일강 같은 건가.”
“응?”
“아니, 혼잣말이야.”
“요즘 혼잣말이 늘어나는 것 같다, 너?”
“팔자가 팔자라서.”
에드워드는 건성으로 대답한 다음, 강 건너를 주시했다. 그곳에는 도시 아지지야가 있었다. 흰 성벽 위로 확연히 솟아 첨탑이 보였다.
“저 건물이 아지지야 도서관인가?”
에드워드의 물음에 한 대상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긴 아지지야 대성당입니다.”
에드워드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대상은 껄껄 웃었다.
“외국 기사님들은 다들 그 사실에 당황하시더군요. 원래는 이교도 사원 맞습니다. 고대 토착 종교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빛의 교리가 퍼진 지금은 토착교회 소유입니다. 이곳 교회도 만만찮은 역사를 자랑하지요.”
에드워드는 감을 잡지 못했다.
“그래서, 저 교회는 어디 소속인데?”
답변은 베로니카가 말해줬다.
“교황청도, 총대주교좌도 따르지 않는 독립 교회야. 빛은 교황청과 시오니아 총대주교좌 위에 비춰도 그 광명이 다른 곳에 안 닿는 게 아니니까.”
“다른 곳에서 발생한 빛의 교회다?”
“교류가 이어지면서 전례는 비슷해졌지만, 근본은 항카이부의 주술사들처럼 스스로 빛에 닿은 자들이지.”
에드워드는 말라가는 아랫입술을 핥았다.
“뭔가 복잡하군.”
“맞아. 이 지역 교회들은 복잡해. 고대에 연락이 끊겼다가 돌아온 잔존 교회를 기원으로 하는 곳도 있고, 이단으로 파문당하고, 쫓겨난 교파가 오랜 세월 만에 이단 교리를 포기하고 활동하던 교회를 기원으로 하는 곳도 있고, 아지지야처럼 별다른 교류 없이 자연 발생했다가 교류를 시작해서 모습이 비슷해진 곳을 기원으로 하는 곳도 있지. 교황수위권을 인정하는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고.”
에드워드는 길고 긴말 속에서 혹시나 하는 질문을 꺼냈다.
“이단도 있냐?”
“역사가 오래된 교회 형태로 있냐 하면, 아니. 그런 고대 이단들은 이미 다 절멸했어. 스스로 망했지.”
“그건 편리하구만.”
“말이 좀 이상하다?”
“고대 이단 종파 같은 게 아직도 빛의 교회 행세를 하고 다니면, 교회 입장이 이상할 거잖아.”
“그런 불가능한 경우까지 생각하지 마. 순 망상이잖아.”
빛과 어둠이 명확하게 나뉘면 그런 걸로 골 썩을 필요는 없는 게 장점은 장점이다.
“뭐, 가까이서 보면 더 장관이겠지. 강을 언제 건너려나?”
그때, 대상 우두머리 하나가 뭐라고 외쳤다. 이번엔 자기들 말이라 에드워드가 알아듣지 못했다.
“뭐래?”
“뱃사공이 영업 끝내서 오늘은 못 건너간대요.”
리안나가 말했다. 에드워드는 그 말에 바로 밴시의 덜미를 붙잡아, 카치운 뒷자리에 앉혔다.
“카치운, 달리쇼!”
카치운은 황급히 말을 몰았다. 대상 대표가 일부러 자기들 말을 한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카치운은 대상 구성원들보다는 한 박자 늦었지만, 데스피나 일행보다는 빠르게 인근 민가들을 향해 달려나갔다.
민간인들은 손님들을 반가워하며 집 앞으로 나와 양손을 들고 소리를 질렀다. 딱 그 문구만 익힌 듯한, 유창한 아퀴타나어도 들렸다.
“우리 집 크고 깨끗해요! 음식 맛있어요!”
숙소 확보 전쟁.
강을 건너려다 결국 밤을 지새게 된 사람들은 에드워드 일행, 데스피나 일행, 대상을 빼고도 많았다. 그들과 지지고 볶는 다툼 끝에 에드워드 일행은 적당한 숙소를 잡았다. 물론 이런 집들이 다 그렇듯, 바가지 요금이었다.
베로니카는 새로 나온 술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그래도 지클린네 여관이 그립진 않겠지?”
에드워드는 바로 질색했다.
“아, 그런 여관. 또 들어가고 싶지는 않지.”
“꼬마 에드워드로 변하는 게 진짜 변화일지도 모르지.”
“너 취했냐?”
에드워드는 베로니카의 잔을 뺏어 마셔보았다. 그러곤 얼굴을 찌푸렸다.
“달달한 주제에 꽤 독한데 이거. 뭘 섞은 거야?”
민박집 주인은 껄껄 웃었다.
“술의 이슬을 섞은 것이오. 아지지야에서 얼마 전 도입된 기술이지. 술이 더 독해지고, 더 오래 간다오.”
술에다 증류한 알코올을 넣어 더 빨리 취하게 만든 물건. 에드워드는 술병을 바라보았다.
“안 독한 술은 없나?”
“안 섞은 건, 방금 당신들이 마신 게 마지막이오.”
“이거 더 비싸지?”
“당연한 말씀을.”
그 말에 짐을 정리하던 리안나가 빈정거렸다.
“좀 더 취하면 더 싼 술을 내놓으려 할 걸요. 그런 술집, 앵글리아에서 본 기억 있어요.”
여관 주인은 웃기만 하면서 슬금슬금 주방으로 들어갔다. 에드워드도 코웃음을 쳤다. 그는 베로니카의 잔을 싹 비운 다음 말했다.
“만국 공통이지. 스텔라, 베로니카 데리고 올라가. 난 바람 좀 쐰다. 리안나는 일 끝나거든 음식 남겨놓은 거 먹으면 된다.”
“네!”
“아, 얼른 끝내고 싶다! 마법사 손 빌리고 싶다!”
스텔라는 혀를 메롱 내밀고는 도망쳤다. 리안나가 투덜거리는 사이, 에드워드는 민박집 밖으로 나갔다. 벌써 날은 어두워졌다. 그는 먼저 나와 있던 사람을 향해 말했다.
“뭐하쇼?”
카치운은 집 앞 평상에 앉아 평소의 파이프 대신 수연통을 꺼내 연초를 피우고 있었다. 그는 빨부리를 입에서 떼 내고는 저 멀리 빛나는 도시를 가리켰다.
“도시 구경 중.”
밤이어도 많은 도시는 어두컴컴하지만, 아지지야는 불야성이었다. 어둠 곳곳에 깔린 인공적인 불빛들. 소금산의 오로트가 생각나는 광량이었다. 어둠 속의 불빛들이라는 것 말고는 별 공통점은 없었지만.
가르달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그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고향 떠나온 지가 참 오래됐군. 이렇게 멀리 오긴 처음이오.”
에드워드는 우수에 빠진 드워프에게 물었다.
“그 전에는 가장 멀리 가본 데가 어디쇼? 생선 사러 가는 것 말고.”
“뾰족바위산 드워프들과 전쟁하러.”
“바로 근처구만.”
“그렇소. 생선 사러 가는 것 외에는 다른 데로 갈 일이 거의 없었지. 뭐, 에드워드 경 덕택에 세상 구경하는 셈이기도 하지만!”
민박집 안팎을 왕복하던 리안나가 투덜거렸다.
“밴시는 앵글리아 촌구석에 계속 처박혀 있어도 괜찮은데. 세상에는 끔찍한 것밖에 없어요. 금과 무기와 여자야 기사님이나 좋아하는 거고.”
에드워드는 바로 반박했다.
“고기 있잖아.”
“고기는 앵글리아에도 있잖아요.”
“앵글리아에서 누가 너한테 고기 줬냐? 안 쫓아내기나 하면 다행이지.”
“그건 그렇지만요.”
에드워드는 밴시의 투덜거림을 배경음악 삼아 반짝거리는 도시를 보았다. 저렇게 밤하늘을 배경으로 빛나는 야경을 보는 건 오랜만이다. 환생 전 광경이지, 환생 후에는 볼 일이 없는 광경이다.
저런 걸 연출할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는 뻔했다. 에드워드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도서관의 미궁이라. 기대를 돋우는 광경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