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문명의 기준은 우체국
강의 서쪽은 방어가 최우선이라, 도시는 요새화가 유리한 입지에 형성되는 성향이 더 강했다. 하지만 동쪽은 방비보다 다른 요소들을 좀 더 고려해 볼 여지가 있었다. 큰 강 자체가 장애물 역할을 웬만큼 해주기 때문이었다.
“강 하나 건너니까 분위기가 확 바뀌는군. 문명으로 돌아오긴 왔네.”
에드워드가 감탄조로 말했다. 문명의 번화한 거리. 사람들의 옷차림은 근사했고, 시장엔 처음 보는 물건들이 생필품부터 사치품까지 그득했다. 최전방에 있다고는 믿겨지지 않는 도시였다.
시장은 구역이 크게 둘로 나뉘었는데, 일반인들이 물건을 사고파는 구역과 ‘도서관 탐색대’가 준비물을 구입하는 구역이었다.
에드워드는 탐색대 구역을 기웃거리다 베로니카한테 귀를 붙잡혔다.
“넌 내가 말할 때 뭐 들었니? 관심 주지 말랬지?”
“아니, 우리 여행에 도움 되는 건 뭐 없나 그런 생각을 해봤어. 밧줄이라던가.”
“그런 건 경계를 안 넘어가도 다 살 수 있어.”
평범한 철물점이나 도구점은 그 경계에 늘어서 있으니, 베로니카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가르달이 항상 그렇듯 에드워드 편을 들었다.
“악마가 툭하면 훼방을 놓는 판국에 진기한 도구가 있으면 하나라도 더 챙겨야 하는 것 아뇨?”
“내 말이 그 말이야!”
에드워드가 바로 반응했다. 베로니카는 다시 인상을 썼다.
“수상한 부적들과 용도도 모르면서 파는 바보들이 우글거리는 곳인데요?”
“우리한테는 그런 거 감정하는 전문가가 있잖소! 그것도 둘이나!”
드워프 상인의 눈이 탐욕으로 번뜩였다. 베로니카와 스텔라의 표정이 동시에 썩었다.
“저주받았는지 살펴보는 게 고작인데요?”
“전 감정 분야 전공 안 했는데. 게다가 이런 데는 특화된 지역상인이 있기 마련이라고요. 제가 상대 못 해요.”
가르달은 실망했다.
“드워프는 실망했소.”
“그 말, 에드워드한테서 배웠죠?”
“이렇게 말하면 진심이 더 잘 전해질 거라던데.”
보다 못한 헬레나가 박수를 쳐서 일행의 시선을 모았다.
“그만들 하고, 도시에 오면 항상 하던 일부터 해야죠.”
“항상 하던 일?”
가르달이 묻자 그녀는 ‘벌써 잊었냐’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밀린 편지들 말이에요. 쇼핑은 그다음에! 전방이니 성묘 수호 기사단 지부가 있겠죠?”
있긴 있었다. 도시를 둘러싼 외벽에 붙어 그 일부를 이룬 요새. 그 앞에 도착한 에드워드는 의아함을 느꼈다.
“구조가 기묘한데. 요새가 도시 밖뿐만 아니라 도시 내부도 겨누고 있어.”
“다른 지역이 다 넘어가도 무사하기 위함일까요?”
“그 정도면 도시를 버리는 게 더 현명하지 않을까 한데.”
기사단 요새에 들어서자마자 직원 하나가 에드워드 일행을 알아보았다. 그는 시오니아 출신 이단심문관을 향해 말했다.
“서쪽 해안에 표류했다던 교황청 이단심문관 베로니카 드 캠벨 양 맞으십니까?”
“맞습니다만.”
몇 가지 신분증명 절차가 끝난 다음, 직원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직원은 어디론가 달려가더니, 잠시 뒤 자기 상반신 크기의 꾸러미를 들고 나타났다.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밀린 편지는 여기로 다 보내놓으라 했더니…….”
마지막으로 편지를 확인했던 건 방주 기사단 요새섬이었으니, 그간 밀린 편지들이 적지 않았다. 베로니카는 그 편지 무더기에서 한 편지를 꺼냈다. 에드워드는 겉에 쓰인 걸 얼핏 보았다.
“네 오빠네?”
“그래. 이게 가장 최신 편지네.”
“묵은 편지부터 안 보고?”
“최신 편지부터 봐야지. 좀 두렵긴 한데.”
베로니카는 에드워드를 흘겨보았다.
“베레스포드 공의 편지를 받은 네 심정을 조금 알 것 같다.”
에드워드는 구석으로 가서 벽에 이마를 부딪히기 시작했다.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쉰 다음 편지를 뜯어 읽어보았다. 가족간의 편지라 일행들은 곁눈질도 하지 않은 채 베로니카의 다음 말만 기다려 보았다.
“뭐, 당장 돌아오라 그럽디까?”
카치운이 묻자 베로니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가 부하들을 출동시키겠다네요. 저 잡으러요. 제발 위험한 짓 그만하고 돌아와서 결혼이나 하라는군요.”
“저런. 이제 시오니아도 가까운데. 그 부하들이랑 곧 만나는 거요?”
“오빠는 제 행선지를 모르니까, 실제로 만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하지만…….”
“응? 아니까 편지를 보낸 것 아니오?”
“오빠는 메디올리눔 대학으로만 편지를 보내요. 그러면 거기 있는 제 지인이 전달해 주죠.”
“뭐야, 그럼 당신 오빠는 실제로 당신이 어디 있는지는 모른단 거요?”
“제가 써준 게 아니면요.”
“야박하구만.”
베로니카는 다음 편지봉투를 들었다.
“메디올리눔 대학…… 불길한 느낌이 드는데.”
베로니카는 그 편지를 꺼내 읽은 다음,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리안나는 그녀의 눈치를 보다 물었다.
“누군데요? 뭐래요?”
“아까 말한 그 지인. 에드워드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시오니아에도 어느 정도 소식이 들어가 오빠가 내 경로를 눈치챈 것 같대. 더는 못 숨겨주니 알아서 하라네.”
“엑. 매정하다.”
“오빠가 압력을 세게 넣기도 한 모양이야. 내가 표류까지 해버렸으니 그쪽도 할 말이 없겠지.”
카치운이 입을 이죽였다.
“성지에 가까워지니 오히려 방해물이 늘어나는군. 어쩔 거요, 돈줄?”
“당신은 에드워드한테만 명령받는 것 아니었나요?”
“돈줄의 안위는 중요한 문제라. 그쪽 오빠네 부하들 만나면, 곱게 잡혀줄 거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그건 신경 끄시죠. 어차피 시오니아 국경만 도착하면, 그땐 추적자들이 뻘쭘한 표정으로 우리 꽁무니를 순순히 따라올 수밖에 없어요.”
“국경 도착 전이 문제잖소.”
“알아서 한다니까요.”
베로니카는 봉투에서 작은 반지 하나를 꺼냈다. 스텔라의 눈이 빛났다.
“앗! 마법 반지다! 메디올리눔 대학에서 보낸 거예요?”
“네.”
“능력은요?”
베로니카는 말할까 말까 하는 표정을 지었다. 가르달이 손을 내저었다.
“아는 사람이 없을수록 유리한 거라면 말하지 마쇼.”
베로니카는 고민 끝에 손가락에 반지를 꼈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요.”
스텔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감정이 전문분야가 아니긴 하지만, 제법 강한 반지로 보이는데요.”
“사과의 뜻으로 보낸 물건이네요. 능력은…… 주문의 위력 증폭.”
“마법사가 아니라 사제의 주문을요? 굉장히 귀한 물건이네요. 그런데 그걸 말하는 데 망설일 필요가 있나요?”
“눈치 빠른 마법사는 입을 좀 다무세요.”
베로니카는 새침하게 말한 다음, 다음 편지뭉치로 시선을 돌렸다. 베니아 시나 폴라 시에서 밀렸던 편지들만은 못하지만, 적지 않은 양이었다.
“아, 이걸 언제 다 읽지?”
그건 베로니카만의 걱정이 아니었다. 가르달과 헬레나 역시 만만찮은 편지가 밀려 있었다. 결국 일행은 적당한 숙소를 잡은 다음, 차근차근 편지를 읽기로 했다.
남자방에 모여 둘러앉은 사람들 중, 제일 먼저 폭발한 건 가르달이었다.
“아니, 이 망할 드워프 놈들이!”
드워프가 드워프를 욕하는 진기한 광경에 카치운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뭔 일이오?”
“소금산의 왕실이 독점계약권 가격을 10%나 인상하겠다는데, 상회의 쪼다들이 그걸 곧이곧대로 다 들어줬다지 뭐요!”
“저런.”
“내가 현장에 있었다면 한 푼도 안 올려줬어!”
“그럼 독점 계약권 날아가는 거 아뇨?”
“대신들에게 뇌물 뿌리고 다른 희생양을 찾게 하면 돼! 무리라면 5%라도 깎아야 할 것 아냐!”
헬레나는 그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드워프들이란.”
“돈은 중요한 문제요.”
카치운은 웃으면서 자기 편지를 깠다. 그리고 기함했다.
“아니, 나도 모르는 새!”
“댁은 또 왜?”
에드워드가 놀라 묻자 카치운은 펄펄 뛰었다.
“무클이 결혼했다지 뭐요! 아니, 이런 대사를 아버지도 없는 상황에 처리하나?!”
“무클? 댁 장남? 그 꼬맹이? 결혼? 누가 진행한 거요?”
“내가 실종됐다니까 버일러께서 바로 이야기를 진행했다지 뭐요! 대는 이어야 한다나, 뭐라나!”
“뭐, 버일러께서 적당한 배필을 찾아줬겠지. 신부가 누군지는 적혀 있소?”
“그렇소.”
“아는 사람이오? 배필로 적당한가?”
“적당하긴 적당한데…… 어떻게 이런 아가씨를 구했나 싶긴 한데…….”
“그럼 됐지, 뭐.”
카치운은 고개를 떨궜다.
“내년이나 내후년쯤, 내가 부족으로 돌아가거든 치를 줄 알았소. 직접 가지 못해도 편지로 상의를 해서 결정할 줄 알았는데.”
카치운이 궁시렁궁시렁거리는 동안, 헬레나는 자기 편지를 다 읽었다. 하지만 그녀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에드워드는 호기심에 물었다.
“넌 뭐 깜짝 소식 없냐?”
“저 둘보단 사소한 것들이군요. 다행스럽게도.”
“그러다 존재감 없단 소리 듣는다.”
“……근거가 뭐죠? 저도 고생하고 있는데?”
“개성이 중요한 거야.”
헬레나는 에드워드를 꼬나보더니 말했다.
“성지에 거의 도착한 것 같은데, 언제 돌아올 거냐네요. 그게 표류 전에 보낸 편지였고.”
“표류 후에 온 건?”
“배가 실종됐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혹시 무사해서 이 편지를 받는다면 바로 답장 달라네요. 시약 채집장 가기 전에, 다 살아 있다고 먼저 편지를 보내긴 했는데.”
“엇갈렸군.”
“그 이후 편지는 아직 안 왔네요.”
“답장 뭐라 할 건데?”
“비밀.”
헬레나는 편지를 곱게 접어 챙겼다. 베로니카는 에드워드를 향해 편지를 내밀었다.
“에드, 네 것.”
“……공작님?”
“공작님.”
에드워드는 벌레 씹은 표정으로 나섰다. 그리고 곧 좌절했다.
“로버트 폐하가 해협을 건너 아퀴타니아에 진입했대. 출발이 너무 빠른데.”
“벌써 출발했다고?”
“남부의 이단세력들에게 대처할 시간을 안 줄 생각이신가 봐. 앵글리아 역사상 최대의 투석기를 꺼내 왔다고 그러네.”
“뭘 들고 오는 거야, 대체?”
“그리고 베레스포드 공작님은 호위병 외 군대를 빼지는 않아서, 홀가분하게 먼저 출발. 비텔리아쪽 항구를 이용해서 국왕 폐하보다는 먼저 올 거란다. 사전 작업하신다고.”
“저런. 그 말인즉…….”
“공작님이 국왕 폐하보다 먼저 성지로 온대! 젠장, 어디로 가야 안 만나지?”
“포기하면 편해.”
베로니카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는 자기 편지들로 시선을 돌렸다. 열쇠검에 대해 조사를 의뢰했던 곳들이 답장을 보내기 시작했는데, 그게 적지 않은 양이었다. 장황하고 길게 쓰인 편지들 가운데 요점만 추려낸 베로니카는, 곧 한숨을 내쉬었다.
“기묘하네…….”
“응? 뭔데?”
“시오니아가 가까워지니, 슬슬 너한테 얘기해도 될 것 같네. 열쇠검 이야기야.”
“열쇠검이 왜?”
“열쇠검의 흔적을 추적해 봤어. 앵글리아 왕실은 그게 꺽다리왕 로버트의 도끼 ‘북방의 송곳니’처럼 섬 안을 돌던 고대 보물인 줄 알지만, 실제로는 대륙에서 건너온 거였지. 하지만 대륙에서는…… 도중에 추적이 안 돼.”
에드워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한 가지는 확실해. 그 열쇠검은 대륙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났다는 거야. 그리고 최초의 기록 이전에 유명한 검 몇 자루가 사라졌지.”
“그래서?”
“아마 열쇠검은 그 시기에 사라진 검들 중 하나가 모종의 이유로 모습을 바꿨다던가, 또는 사라진 검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어.”
“중요한 문제인가?”
“왕실에서는 너에게 준다고 했지만, 검의 내력이 밝혀지는 순간 체면 불고하고 갑자기 입장을 뒤집을 수도 있어. 꺽다리 로버트가 그렇게 쪼잔하게 굴리는 없다 쳐도, 다른 사람들이 노릴 수도 있고.”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성지 도착 못 했는데, 네가 무기 뺏기면 큰일이잖아.”
“그건 큰일 맞긴 하지.”
“저주가 안 풀리면 계속 들고 싸워야 할 테고.”
“야, 끔찍한 가정은 하지 마.”
에드워드는 넌더리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뭔가를 들거나 만질 일이 있으면 손가락을 꼿꼿하게 편 채로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취해야 하는, 손아귀 힘을 매 순간 의식하는 삶은 피곤하기 짝이 없다. 그는 열쇠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다쉬사베스가 열쇠검을 두고 한 말이 생각나네.”
“뭐?”
“응? 내가 얘기 안 했나?”
“안 했어! 그 악마 새끼가 열쇠검을 두고 뭐라 그랬어?”
에드워드는 베로니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손아귀의 힘도, 부러지지 않는 검도, 다 거짓말이래. 근데 난 그 거짓말 알아차리기 전에 죽을 테니까 별 상관없는 문제라던데. 이게 성검인지 마검인지, 무슨 능력을 가진 건지는 확답을 안 주더라.”
“다른 말은?”
“안 했어. 나도 안 물어봤고.”
베로니카는 이마를 짚었다.
“그 이야기 왜 안 했어?”
“중대한 문제야? 걔도 심드렁하던데.”
베로니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쉬사베스는 너한테 힌트를 준 거야. 악마가 말하는 ‘거짓말’이란, 대개 본모습과 그 회복의 방법이 따로 있다는 뜻이라고.”
리안나는 그 대화를 듣다 중얼거렸다.
“검의 본모습 이전에 주인의 제정신부터 찾아야 할 판인…….”
에드워드는 밴시를 창밖에 거꾸로 매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