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66)
166화 인맥과 뇌물은 도시의 필수요소
에드워드는 열쇠검의 본모습 어쩌고 하는 이야기에 별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그럴 만했다. 그에게 열쇠검은 어디까지나 저주를 풀 때까지의 임시변통이다. 저주만 풀면 이런 어정쩡한 모습의 검을 들고 다닐 이유는 없다.
물론 본모습이 따로 있어, 무게 중심과 길이가 적당한 지점으로 회복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본모습이 회복된 검은 천하명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저주를 푸는 데 도움이 되는가? 오히려 방해가 되는 건 아닐까? 성지에 도착했더니, 성인이 빛과 함께 다시 나타나서는 ‘그냥 계속 그대로 싸워라’고 해버리는 건 아닐까? 스스로가 거기 만족하고 적응해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도 많다. 네 탐욕에 겨우 그런 걸로 그치겠니?”
도서관으로 앞장서 가던 베로니카가 핀잔을 줬다. 에드워드는 뚱한 표정으로 그녀를 향해 말했다.
“너는 왜 그리 내 검에 열정적이냐?”
“처음엔 가치도 모른 채 놓치는 일이 생길까 봐, 지금은 네가 더 강해져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미묘한 대답이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작별 선물 뭐 그런 거라면 좀 꺼려지는데. 저주 해제 축하 선물 같은 거라면 흥미 있다만.”
베로니카는 코웃음을 쳤다.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렸겠지, 그 문제는.”
에드워드도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아지지야 도서관은 큰 건물이었지만, 역시 만만찮게 큰 건물들로 포위된 형국이었다. 에드워드는 아지지야 대성당, 아지지야 순교자의 대성당, 아지지야 붉은 피 성당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대성당들은 도시 밖에서도 보이던 높디높은 첨탑들로 하늘을 찔렀고, 붉은 피 성당은 고대 사원을 개조한 듯 사각 반듯한 모습이 이질적으로 느껴져 흡사 요새 같기도 했다.
“대성당이 여럿인 도시야 종종 있지만, 배치가 기묘한데.”
“경배해야 할 대상, 아니면 경계해야 할 대상을 상대로 이런 배치를 하죠. 마법학당도 있네요. 신학대학도 있으려나?”
스텔라가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말했다.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투리치 때처럼 신학생들이랑 마찰 일으키면 안 된다?”
“어머나, 저는 마찰 안 일으켜요. 놈들이 먼저 일으키지.”
당연하지만 도서관은 회원제였고, 이 회원 자격은 도서관 운영진 스스로가 결정하는 게 아니었다. 도시의 지배자인 에미르와 교회의 이중감시체계 아래 정해졌다. 아지지야에는 잠시 들렀을 뿐인 베로니카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날 에미르의 행정관료한테 뇌물을 찔러 넣은 덕에, 베로니카는 최단시간 내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았다. 그 뒤 아지지야 대성당에 들렀다. 그쪽 사제들은 교황청 이단심문관을 신기한 눈으로 보았다.
“교황청요? 시오니아 총대주교좌가 아니라?”
“출신은 시오니아입니다만, 그렇습니다.”
에드워드가 슬쩍 끼어들었다.
“이 근방엔 교황청 이단심문관이 드뭅니까?”
“없지는 않지요. 주로 의용군을 따라 흘러오거든요. 다만 겨울이라서, 다들 지내기 편한 곳으로 돌아갔을 겁니다. 곧 봄이 오겠지만요.”
어둠에 맞서기 위해 성지로 달려오는 기사들, 그리고 그들을 따라온 이단심문관들. 땅은 그들의 관할이 아니지만, 사람은 그들의 관할이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현지 사제들이 서류를 준비하는 동안, 에드워드는 베로니카에게 속삭였다.
“일단 시오니아 근처까지만 가면, 네 오빠한테 붙잡힐 가능성은 조금 더 줄어들겠네.”
“왜? 이단심문관이 좀 더 흔해지니까?”
“그야 그렇지. 붉은 사제복은 관심을 좀 더 끈다고.”
기사의 서코트는 자기 어필을 위해 색이 화려한 게 많으며, 붉은색도 심심찮게 쓰였다. 하지만 사제복은 붉은색을 입는 경우가 딱 둘뿐이다. 고위 성직자거나, 이단심문관이거나. 베로니카는 짧게 말했다.
“크게 걱정할 일 아니야. 앞일에 집중해.”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잠시 뒤, 헬레나가 입을 열었다.
“서류가 좀 오래 걸리는군요.”
“그러게요.”
베로니카도 얼굴을 찌푸렸다. 에드워드가 그녀의 주머니를 슬쩍 내려다보았다.
“뇌물 적게 쓴 거 아냐?”
“헌금도 했거든?”
“헌금과 뇌물은 별개지.”
“그쪽도 넉넉히 끼워놨는데.”
그러나 날이 점점 기울어가자, 베로니카의 인내심도 바닥났다. 그녀는 결국 교회 쪽 아랫사람들을 닦달한 끝에 서류처리 과정의 문제를 알아차렸다.
“죄송합니다. 위원회의 검토 결과, 교황청 이단심문관께는 도서관 열람 허가를 드릴 수가 없다고 합니다.”
한 사제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돌아보았다.
“그렇다는데?”
베로니카는 당황해서 말했다.
“위원회요? 단순 서류 검토만 하는 것 아니었나요? 위원회라니, 무슨 위원회를 말하는 거죠?”
“도서관 출입관리 위원회죠. 열람 허가도 때때로 위원회 명령으로 제한될 수 있습니다.”
“누가 거부했죠?”
“그런 건 안 알려드리는데…….”
에드워드는 제일 큼직한 은화 하나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사제는 그걸 빠르게 낚아챈 다음, 답했다.
“데스피나 님이십니다.”
베로니카는 더 당황해버렸다.
“폰티아의 바다 엘프 마법사가 언제부터 아지지야 독립교회의 도서관 출입관리 위원회 소속이었죠?!”
“외부위원이십니다. 마법학당은 물론 저희 교회와도 연이 깊으셔서요.”
수백 년을 살아오면서 쌓아온 인맥. 에드워드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나한테만 수작 부리는 여자인 줄 알았는데.”
그때 스텔라가 나섰다.
“기사님, 기사님 이름으로 신청해 보세요.”
“뭐, 나?”
“네. 데스피나는 아마 사제님만 막았을지도 몰라요.”
“다 좋은데, 내가 이곳 도서관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을지는 장담을 못 하겠네.”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공개 문서고는 잘 관리되어 있을 테니까 괜찮아. 책 찾기도 쉽게 분류되어 있을 거고.”
“아, 그런가?”
“하지만 잘 관리된다는 것과 네가 제대로 찾아 읽는다는 건 다른 문제지.”
“그럼 내가 가봤자 헛수고일지도 모른다는 거네. 네가 뭘 찾아 읽으라고 추천해 주지 않는 한은.”
“내가 추천해 줄 수 있을 리가 없지. 난 찾으러 가는 거니까. 추천은 이 도서관을 이미 들어가 본 사람만 해줄 수 있는 거야.”
베로니카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데스피나 말이지.”
“흠. 어떡할래? 넘어가 줄까, 말까?”
에드워드의 말에 베로니카는 말없이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서명해. 그리고 어제도 말했지만, 비공개 문서고는 절대 들어가지 마.”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에드워드는 선선히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베로니카는 스텔라한테도 서류를 하나 내밀었다.
“당신도.”
“엑. 저도요?”
“에드워드 혼자 어떻게 보내요?”
“저도 막혔을지 모르는데.”
스텔라도 서류를 작성했다. 둘은 사제한테 서류를 넘겼지만, 그의 답변은 베로니카를 폭발시키기에 충분했다.
“오늘은 위원님들이 전부 퇴근하셨으니, 내일까지 기다리시죠.”
폭발해 버린 베로니카는 장황한 말투로 독립교회의 행정 체계를 규탄했다. 신학적인 구석까지 건드리기 전에 스텔라와 헬레나가 그녀를 진압했다.
“진정해요, 사제님! 여기 교황청 아니에요!”
“괜히 악감정만 쌓이면 일하기 더 곤란해져요.”
그 후 일행은 이왕 늦어버린 김에, 일행 전원의 이름으로 열람 신청했다. 그들 중 가장 도서관과 거리가 먼 생활을 했던 카치운과 리안나까지. 카치운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책이야 몇 권 읽고 공부하긴 했지만, 도서관은 난생 처음인데.”
“글 읽을 줄 알면 괜찮아요.”
베로니카는 아직도 씩씩거리면서 말했다. 가르달은 손을 꼽아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도서관이란 데를 언제 가봤더라…….”
헬레나는 덤덤했다.
“아르데니아에는 전사의 교양을 위한 도서관이 따로 있었죠. 오직 엘프 시민만 출입이 가능한.”
에드워드가 물었다.
“병영문고인가?”
“그렇게 부르진 않았지만, 무슨 뜻인지는 알 것 같네요.”
“대중에게 공개하는 도서관도 있긴 있군. 제한적이지만.”
“귀한 책을 아무나 만지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아무나라.”
에드워드는 성당 밖으로 나오자마자, 들어가지 않고 대기하던 리안나를 발견했다. 리안나는 바닥 위에 떠서 움직이는 빗자루에 매달려 있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밝게 빛나는 빛 뭉치들이 민들레 씨처럼 흩날렸다.
“기사님! 이거 봐요! 신기한 게 많아요! 마녀 놀이!”
어둠을 밝히는 불빛들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빗자루가 광장을 쓸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청소 노동자가 스스로를 실직자로 만들 문명의 이기 위에 올라타 러다이트 운동을…….”
“에이, 이런 도구들보다야 밴시가 더 낫죠!”
리안나는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에드워드는 헬레나를 돌아봤다.
“쟤는 그 ‘아무나’에 속하려나?”
“일단 베로니카 양이 주입한 언어능력 때문에 데려가긴 하셔야 할 거예요. 하지만 밴시가 책과 친할 거란 기대는 하지 마시죠.”
“넌 책과 친했어?”
헬레나는 에드워드를 외면했다. 엘프한테서 의외의 약점을 발견한 에드워드는 흥미를 보였다.
“뭐야, 안 읽었어?”
“전 지루한 것 못 참는 성미잖아요. 게다가 교양 시민을 위해 골라서 갖다 놓았다는 책들이란 게 엄청 따분한 주제에 무지막지한 두께니.”
에드워드는 도서관 신세를 지진 않았지만, 베레스포드 공작이 가진 책 중에서 곤충과 자연현상을 연구한 책들은 꽤 읽었다. 기사후보생이 이상한 걸 빌려 간다고 공작이 의아해하긴 했지만, 우수 그룹으로 선두를 차지하자 그걸 따지진 않았다.
“도감이나 여행기나 곤충 관찰기 같은 건 재밌는데.”
“재미있는 책만 골라 있을 수 있는 것도 나름 축복이죠.”
“완전히는 못 피했지. 수학이라던가. 측량 기사한테 안 속는 법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공작님이 어거지로 읽게 했어.”
“성과 있으셨어요?”
“난 아직 시험해 볼 기회가 없었지만, 고참 기사들 중에는 측량기사의 목을 날려버렸단 예가 있긴 있더라.”
대화를 듣던 리안나는 빗자루에서 뛰어내리곤 자기 목을 감싸 쥐었다.
“소름 돋네요. 기사랑 측량기사랑 사이가 나빠요?”
“아니. 하지만 뭔가를 잘못 재거나, 그 실수를 은폐하려다 영지 경영과 전투에 악영향을 주면 모가지 날아가지. 공성전 때 땅굴 파는데 계산 잘못했다고 귀 한쪽 베어버리는 거 봤어. 집중하라면서.”
“히익.”
리안나는 이번엔 양쪽 귀를 쥐었다. 베로니카는 서늘한 투로 말했다.
“데스피나가 너한테 접근해서 조언이랍시고 지껄이거든, 바로 그렇게 대처해 줘.”
자기는 못 들어가는 게 어지간히 억울한 모양이었다.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기사를 속이는 마법사는 칼 맞는 법이지.”
스텔라가 바로 몸을 움츠렸다.
다음날. 리안나는 기각당했다. 가르달도. 둘은 동시에 투덜거렸다.
“요정차별이다!”
“소금산의 명사를 거절하다니!”
책을 읽고 싶은 건 아니지만, 무시당했다는 건 기분 나쁜 일이었다.
헬레나도 기각당했다. 그녀는 코웃음을 쳤다.
“늙은이가 젊은이를 견제하는 꼴이란.”
“남녀 관계로 해석하는 게 편하긴 하겠지.”
카치운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열람이 허가됐다. 스텔라도.
“하필 잔소리꾼 아저씨랑 한 팀이야!”
“누가 잔소리꾼이야?!”
카치운이 발끈해서 말했다.
에드워드는 허가. 그는 리안나의 덜미를 붙잡아 들어 올렸다.
“하인은 데려가도 된단다. 번역기 추가. 이 수법으로 베로니카도 데려갈 수 있으면 재밌겠는데.”
“통하겠니? 그리고 누가 누구의 하녀가 된다고?”
“초짜 정보상 아가씨 노릇은 해줬으면서. 그때 그 입맞춤이 아직도 선한……”
짜악!
베로니카가 미묘한 데서 승리감을 느낀 밴시가 가르달을 향해 까불거렸다.
“헤헹! 드워프 아저씨는 짐 잘 지키세요!”
가르달은 콧김을 내뿜었다.
“비자유민으로 도서관에 들어가는 게 자유민으로 안 들어가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니, 넌 평생 노예 팔자로다.”
둘이서 티격태격하든 말든, 에드워드는 쑤시는 등짝을 손등으로 툭툭 치며 중얼거렸다.
“들어가기 참 번거로운 도서관이군. 별거 없기만 해봐라.”
“너무 대단한 걸 기대하지는 마. 곱게 들어가서 책 몇 권 고르기만 하면 되는 거야. 비공개 문서고에는 절대 들어가지 말고. 알았지?”
베로니카가 다시 당부했다.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알았어. 너무 당부하면 꼭 들어가게 되더라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