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68)
168화 도서관의 법칙
숯을 낙엽마냥 쓰고, 정체 모를 불빛들로 어둠을 내쫓으며, 온갖 마법 도구를 실생활에 꺼내 쓰는 등 별별 것이 널린 ‘마녀의 궁전’ 같은 도시라 해도 있어서는 안 될 게 있다. 그게 에드워드 눈에 보였다.
“그러니까 저게 왜 여기 있냐고!”
에드워드는 거의 절규하듯 소리를 내질렀다. 이 시대의 기술 수준으로는 불가능한 옷이 짧은 토끼 꼬리를 흔들며 달리는 모습에 그는 거의 이성을 잃었다. 환생 전 문물과 비슷한 것이라고는 소금에 절인 양배추가 고작이던 그에게, 바니걸은 엄청난 의문이자 자극이었다.
최소한 저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지는 들어야겠다. 에드워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거기 서라!”
에드워드는 흰색 바니걸을 쫓아 방을 몇 개 건너고 밧줄을 뛰어넘으며 모퉁이를 돌았다. 그리고 추락했다.
“으어어억?!”
발밑에 함정이 있다는 게 아니었다. 갑자기 달려나가던 방향 그대로 추락했다. 다행히 높이는 그리 높지 않았다.
쿵!
에드워드는 바닥에 엎어졌다. 그리고 일이 매우 귀찮아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하좌우 방향이 멋대로 바뀌는 공간으로 들어와 버린 것이다.
“이런, 젠장.”
에드워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일어난 곳은 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방이었는데, 바다 냄새가 풍겼다. 더러운 침대, 커다란 탁자, 지도와 해도…….
“자네가 여기 왜 왔나?”
늙은이의 목소리였다. 에드워드는 화들짝 놀라 목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았다. 허름한 옷차림의 수도사. 하지만 사실은 떠돌이 주술사.
“니코스?”
“여기서 자넬 만날 줄은 몰랐는데, 프로코프 경.”
“에드워드다! 이름도 까먹냐! 아르데니아 남쪽 마을의 거대토끼 소동은 기억하냐? 젠장! 그러고 보니 이번에도 토끼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이해해버렸어. 역시 토끼는 쫓아갈 수밖에 없잖아. 그러니까, 또 당신 짓이냐!”
“뭔지 모르겠지만, 아닌데. 내가 토끼만 다룰 리강 없지 않은가.”
당혹한 니코스를 무시하고, 에드워드는 방 밖으로 감각을 더 확장해 보았다. 시각은 문과 벽으로 차단되었지만, 후각과 청각은 그 밖을 살피는 데 좋은 도구였다. 잠시 뒤 그는 이곳이 배임을 알아차렸다.
“배? 배라고? 난 분명 사막의 도서관에 있었는데?”
“아, 아지지야에서 왔군. 그 도서관이라면 그럴 만하지. 나도 거기서 지옥의 도서관으로 가는 문을 열었는데.”
“젠장! 여긴 무슨 배지? 어느 바다요? 가장 가까운 항구는?”
“자네가 타면 안 되는 배.”
그 순간 에드워드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는 아지지야 강 건너편 민박집에서 받았던 술이 생각났다. 증류한 알코올을 섞어 도수를 더 높였던 그 술들.
그리고 에드워드한테 증류주를 맛보여준 선장의 얼굴을 떠올렸다.
“설마…….”
“그래, 외다리 포경선장의 배지. 다행히 그는 지금 바빠서 선장실에 돌아올 생각을 안 하고 있지만.”
“설마, 이게 그 작자의 술수요?”
니코스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아지지야 도서관은 악마들이 장난치는 곳으로도 유명하지만, 선장실에 초대하는 건 외다리 선장의 스타일이 아니야. 그는 ‘찾아가는 자’거든. 지금의 그에게 자네는 불청객일 뿐이니, 들키기 전에 그만 나가보는 게 좋겠네.”
“어떻게 나가지?”
“음. 들어왔던 방법으로는 힘들겠군. 내가 다른 방법을 써주지.”
니코스는 에드워드의 등을 붙잡고는, 탁자 위 해도를 향해 밀어 넣었다.
“으어어어어어어억!”
에드워드는 선장실로 추락하던 바로 그 기분을 다시 느꼈다. 이번엔 수직에서 다시 수평으로. 간신히 균형을 잡은 그는 속도를 늦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시 사막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주변은 허허벌판에, 시간대는 밤이었다.
“점심때였는데, 벌써 밤이라고?”
그것도 그믐밤이었다. 에드워드는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서로 대치하고 있는 양쪽의 불빛을 보았다. 둘 다 군대였다. 그런데 한쪽 군대는 커다란 기둥 같은 것 아래에 있었다. 에드워드는 밤하늘 별빛에만 의존해 그 기둥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어…… 다쉬사베스?”
에드워드가 허탈하게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그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니코스가 그의 등 뒤에서 껄껄 웃었다.
“걱정 말게. 과거의 환영일 뿐이야.”
“좋은 것 혼자 알지 말고, 어떻게 된 건지 설명 좀 해주쇼.”
“나도 정확히는 모르네. 처음엔 책이 있는 곳과 도서관이 연결되는 게 법칙인 줄 알았는데, 예외도 많더라고. 여는 방법도 천차만별이고. 자네는 대체 뭘 어쩌다 문을 열었나?”
‘이 세상에 있을 리가 없는 흰색 바니걸을 쫓다 금지구역인지도 모르는 곳을 돌격해 버렸습니다’라고 솔직하게 말하기는 좀 어려웠다. 니코스는 바니걸이 뭔지 그것부터 모를 테니까. 에드워드는 어렵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광택의 천으로 만든 옷인데, 토끼 귀 모양의 긴 귀와…….”
외양 묘사 뒤, 니코스는 바니걸의 미학을 이해하지 못했다.
“기괴한 토끼 수인이군. 사티레스 같은 건가?”
“젠장!”
에드워드가 땅을 치는 순간, 햇빛이 어둠을 가르고, 양 진영을 비추었다. 날이 밝자마자 양측 군대는 서로 격돌했다. 선두에 선 것은 소머리 악마 몰렉. 큼직한 양손도끼를 들고 누구보다 먼저 달려나갔지만, 잠시 뒤 상대방 진영에서 빛나는 검을 들고나온 한 고대 전사한테 몇 합 겨뤄보지도 못하고 도망쳤다.
“저런 새끼를 숭배하다니. 쟤네 사교도가 불쌍해지는군.”
에드워드가 중얼거렸다. 니코스는 웃으면서 말했다.
“상대가 성왕이면 그럴 만하지.”
“누구?”
“경전에 나오는 빛의 성군 27명 중의 하나라네.”
“난 못 외워.”
경전의 교훈과 가르침들이 생활 속까지 파고드는 세상이라지만, 쉽게 출판되거나 번역되지도 않는 게 책이다. 그 내용을 다 알기는 힘든 법이다. 일반인은 전례나 열심히 참석하고, 뜻도 모르는 기도문을 졸면서 듣다, 유명한 일화를 기반으로 한 설교나 겨우 챙기는 것이 보통. 그런 데 별 관심이 없는 에드워드는 신학적 소양이 모자라면 모자라지,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저 싸움이 그건가? 다쉬사베스가 크게 패했다는 전투.”
“그렇겠지.”
“저기 가서 물어볼 수 있나? 저 검 이름이 뭔지.”
“불가능해. 그냥 지나갈 뿐이야. 이건 기록이거든.”
“어디의 기록? 이단심문관도 이쪽 이야기는 모르던데.”
“얼마 전에 만들어진 기록이군. 자네 덕에 말이야.”
“뭐?”
그 순간, 갑자기 에드워드의 숨이 막혔다. 그는 자신이 물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차!’
또 이동해 버렸다. 그것도 하필이면 물속. 에드워드는 오랜 가르침 중 하나를 떠올렸다. 갑자기 물속에 빠진 사람은 위아래를 구분하지 못해, 수면으로 나오지 못하고 익사한다고 했다. 지금 그가 그 상황이었다.
어디가 위인가?
“일어서게나.”
니코스가 에드워드의 덜미를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주술사는 에드워드가 휘젓는 팔을 피하며 말했다.
“가슴 높이 밖에 안 되는 곳일세. 침착하게.”
“망할, 여기는 또 어디야?”
에드워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크고 깔끔한 방이었는데, 마치 목욕탕 같았다. 하지만 목욕탕은 아니었다. 일반적인 목욕탕이 욕조 바닥에 은거울을 깔아놓지는 않을 테니까.
“어딘지 알 것 같군. 세트렛인들이 악마의 계시를 받거나 기록하는 곳이지.”
“뭐? 세트렛인?”
그제야 에드워드는 주변의 모습을 더 자세히 살폈다. 곧 구석의 소머리 악마상이 눈에 들어왔다. 곳곳이 소 모양의 장식물 천지였다.
“설마…….”
“기사님?!”
여자의 목소리였다. 익숙한 목소리였고, 낯선 어조였다. 에드워드는 물 밖에 선 세트렛 여자를 발견했다. 겉은 붉은 머리의 귀족전사지만 속은 아퀴타니아 출신의 노예. 에드워드는 겉모습부터 말했다.
“펠리샤?”
“맙소사, 어떻게 기사님이 여기 계세요? 저 수도사님은 누구시고?”
물에 푹 젖은 두 남자는 수조 밖으로 나왔다. 니코스는 옷의 물기를 짜내면서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안녕하시오, 겉모습과 영혼이 다른 아가씨. 난 떠돌이 주술사 니코스요. 어쩌다 보니, 기사 에드워드의 안내를 맡았지.”
지젤은 목소리를 확 낮췄다.
“펠리샤라고만 부르세요. 누가 들으면 큰일 나요!”
에드워드는 뒤늦게 말을 건넸다.
“아직 안 들켰군. 하지만 탈출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네, 그래요.”
지젤은 한쪽 창문의 커튼을 살짝 걷었다. 에드워드는 저 멀리에서 빛나는 등대를 보았다. 소머리 악마의 거신상 모양 등대. 몰렉을 숭상하는 세트렛 도시, 아브멜렉이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마침 잘 됐군. 피라미드 이후 꽤 찝찝하던 참이었어. 니코스, 당장 여기서 떠납시다. 지…… 펠리샤도 데리고.”
펠리샤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전 제가 하려는 일이 있어요. 기사님이나 얼른 탈출하세요.”
“뭐?”
“여긴 가문의 성소에요. 누군가 곧 올 텐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발소리가 들렸다. 펠리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기사님, 얼른요!”
에드워드는 니코스를 돌아보았다. 니코스는 수조를 가리켰다.
“저건 일방통행이네. 다시 못 들어가.”
“젠장! 그럼 이제 아브멜렉 한복판을 육탄돌격으로 돌파해야 하는 거요?”
“무슨 농담을. 사상 최강의 주술사가 여기 있네. 그런 짓을 할 필요는 없지.”
니코스는 웃으면서 동전처럼 납작하고 작은 양초를 꺼냈다. 주변의 등불에서 불을 빌려 그 심지에 불을 붙이자, 발소리는 거짓말처럼 멀어졌다.
“뭔 짓을 한 거요?”
“설명해 줘도 자네는 이해 못 할 거야. 자, 세트렛 아가씨. 혹시 책이 있는 곳 알고 있나?”
“네?”
“난 악마의 도서관을 출입할 수 있는 주술사야. 그리고 아지지야 도서관은 그런 곳들과 잘 연결되지.”
펠리샤는 잠시 생각해 보다가 말했다.
“제 침실에,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이…….”
“숙녀의 방에 잠시 들어가는 걸 허락해 주겠나?”
“하지만 거기까지 어떻게 가지요?”
“이 촛불이 켜져 있는 동안은 안심해도 되네. 아, 그래도 말은 하지 말게나.”
과연, 그 말대로였다. 에드워드, 펠리샤, 니코스는 그 누구도 마주치지 않고 펠리샤의 침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침실 문을 여는 순간 양초가 꺼져버렸고 다시 발소리가 사방에서 울렸지만, 펠리샤는 에드워드와 니코스의 등을 황급히 밀어버린 다음 문을 닫았다.
“조마조마했어요!”
“믿으라니까. 난 사상 최강의 주술사야.”
“사상 최악의 건망증 환자지.”
에드워드는 젖은 옷과 식은땀을 분간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잘못되면 세트렛 도시 한복판에서 죽을 판에, 건망증 주술사 하나만 믿는다는 건 도박 중 도박이었다.
다행히 여유를 좀 찾자, 에드워드는 세트렛 여자의 침실을 둘러볼 수 있었다. 큼직한 침대에, 향긋한 꽃잎들, 그리고 어지러이 널린 책과 두루마리들.
“펠리샤는 독서광이었나?”
“아뇨. 필요한 책만 읽었죠. 사실 지금도 그래요.”
뭔가 꾸미는 게 있다는 뜻이었다.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다쉬사베스의 기록도 만들었어?”
“네. 제게 이것저것 귀띔해주더군요.”
펠리샤는 다쉬사베스의 금화를 주머니에서 꺼내 에드워드에게 보여줬다. 다쉬사베스가 속삼임을 불어넣는 데 쓰던 물건. 그는 다시 기겁했다.
“언제 챙겼어?”
“그년이 죽기 직전에, 싸우다가 뺏었죠. 그년이 하나만 챙긴 게 아니었거든요.”
펠리샤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제 상처를 치료했을 때, 세트렛 도시에 남으라고 귀띔해준 게 그에요. 전 지금 그의 지령을 받아 움직이고 있어요.”
에드워드는 마른 침을 삼켰다. 니코스는 혀를 찼다.
“다쉬사베스가 몰렉의 도시에 뭔가 꾸미고 있군.”
“네. 뭔지는 말씀 못 드리지만요.”
“세트렛인들끼리 싸우게 하는 것이겠지. 아니면 몰렉 숭배에 금을 가게 한다던가.”
에드워드는 펠리샤에게 다시 제안했다.
“그 수작질이 뭔지 모르겠지만, 여기 있으면 이용당하다 죽을 거다. 저 건망증 주술사랑 같이 여길 나가는 게 어때?”
펠리샤는 고개를 저었다.
“죽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그만 가세요!”
펠리샤는 에드워드의 등을 떠밀었다. 니코스는 두루마리를 펼쳤다.
“갈 길이 멀다네, 기사 양반.”
이번엔 반대로, 두루마리를 에드워드의 머리에 뒤집어씌웠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에드워드는 경악해서 외쳤다. 텅 빈 도서관 구내식당에 선 것이다.
“아지지야? 바로 돌아왔잖아! 멀지도 않은데 무슨!”
“멀어. 여긴 지옥이 만든 꿈의 세계야. 현실로 돌아가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네.”
니코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여유가 좀 생긴 건 사실이지. 자, 기사 양반. 차분하게 이야기 좀 하지. 자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해.”
니코스는 의자 하나를 끌어다 거기 앉았다. 에드워드는 고까운 표정으로 니코스를 보았다.
“성탄절도 아닌데 스크루지 영감님 놀이를 하자고? 세트렛 미녀 대신에 늙은 수도사랑? 난 그런 취미 없는데.”
“스크루지 영감이 누군지는 모르겠네만, 그녀의 침실에 계속 남거나 다쉬사베스의 계획에 찬물을 뿌렸다간, 자네는 무사하지 못해. 그런 건 원치 않겠지?”
에드워드는 투덜거리면서 니코스의 맞은편에 앉았다. 니코스는 분필을 꺼내 탁자 위에 동그라미 여러 개를 그리기 시작했다.
“아지지야 도서관에는 왜 왔나?”
“열쇠검에 대한 기록을 찾으러.”
“자네의 뜻인가?”
“아니. 그렇진 않고.”
“그럼 어쩌다가 비공개 문서고를 건드렸지? 아, 이건 이미 말했군. 이상한 토끼 수인을 봤다고.”
“바니걸이야!”
“그래, 바니걸.”
니코스는 껄껄 웃으면서 지도를 그려나갔다. 원과 선분으로 만들어진 이상한 지도였다.
“지금까지 지나쳐온 곳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자네 삶에는 큰 의미가 없는 장면들이지. 원하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원하는 ‘것’부터 찾아야 돼. 그게 도서관의 법칙이야.”
니코스는 에드워드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자, 에드먼드 경. 자네가 원하는 건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