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69)
169화 지옥과 무기고와 바니걸
‘에드먼드가 아니라 에드워드다’라고 대답할 생각도 안 들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하지만 자신의 욕망을 우선시해서 말하지도 않았고, 베로니카가 당부한 ‘열쇠검’의 비밀에 대해서 묻지도 않았다.
그는 침묵했다.
니코스는 껄껄 웃었다.
“내키는 대로 말해도 되네. 사실, 전부 다 말해도 돼. 대출 권수에는 제한이 있지만, 영업시간 안에 다 읽을 수만 있다면 몇 권을 뽑아도 다를 게 없거든.”
“그렇게 일방적으로 편리했다면, 이미 난리가 나고도 남았겠지.”
“뭐, 부정은 안 하겠네. 미쳐버린 마법사, 주술사, 사제, 모험가들이 이공간을 떠도는 꼴을 한두 번 봐야 말이지.”
“맵핵이 필요해…….”
“그게 뭔가?”
“전체 지도 같은 것. 내 위치와 적의 위치도 다 드러내 주는 것.”
“그런 게 있으면 더 난리가 났지…….”
에드워드는 테이블 위의 지도를 보며 골머리를 앓았다. 시간제한이 있다고는 했는데 그게 구체적으로 얼마인지는, 에드워드가 감을 잡기 어려웠다. 이 건망증 주술사가 폐관 시간을 안 까먹길 빌 수밖에.
안전빵을 노린다면 용건만 빠르게 보고 나가는 게 정답.
“내 저주 해제하는 방법 같은 건 이 도서관에 없을까?”
“그게 도서관 털어서 나오는 거라면, 내가 진즉 풀어줬겠지. 난 이 도서관이 고향만큼이나 아늑하거든.”
“젠장.”
“딴 거 해, 딴 거. 되지도 않을 일에 용쓰기는.”
“주둥이 찢어버리고 싶어지는군.”
물론, 그랬다가 제일 곤란해지는 건 에드워드다. 그는 투덜거리면서 생각을 되짚어갔다.
“바니걸, 그거 악마냐?”
“그럴 가능성이 크지. 어딘가 연결된 통로로 사람을 유혹하는 악마와 요정 따위, 널렸다네. 어느 악마인지 따지는 것조차 시간 낭비일 정도로.”
“직접 본 적은 없는데, 인상착의는 아는 악마가 하나 있다.”
“그래? 누군데?”
“인간 여자 모습인데, 흑발에 금빛 로브를 입었다는군. 세트렛 해안가의 표류나, 듀라한 찰리 등 다른 사건의 단서로 추정하기로는, ‘레피림’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 같다. 아닐 수도 있고.”
“경이 보고 쫓아왔다는 여자는?”
“붉은색이 섞인 흑발. 동일 인물인지는 몰라.”
“고전적인 수법이군. 악마가 변신했다면.”
“그런데 악마는 바니걸을 알고 변신했을 것 같지는 않아.”
“그런가?”
“악마가 학을 떼는 당신도 모르잖아.”
지옥의 유명한 부도어음, 니코스는 껄껄 웃었다.
“그렇군. 제아무리 레피림이라 해도 그건 어려울지도. 그럼 자네의 기억을 이용한 환각일 가능성도 크군.”
“레피림이 누군지는 아나?”
“인간 세계에는 세트렛인들 외엔 기록이 거의 없을 걸세. 지옥에서 떠오르는 신성 악마거든.”
“하. 지옥도 세대교체가 있나?”
“죽거나 유폐되는 악마가 있으면 새로 탄생한 악마도 있지. 직위야 뭐 이어받겠지만.”
“지옥이 현실과 별로 다를 것이 없군.”
에드워드는 문득 생각이 어딘가에 닿았다.
“레피림은 강한가?”
“강함의 기준은 애매해서 답변하기 어렵군. 다만 음모를 꾸민다는 점에서는, 꽤 공을 들이는 편이라네. 범위도 넓고.”
“견제받고 있나?”
“다른 악마들한테? 자기들끼리도 싸우는 게 그쪽 일상이긴 하지. 다쉬사베스와 몰렉을 봤지 않나.”
“포경선의 외다리 선장이 그녀를 적대하나?”
“그건 내가 말하면 그 양반이 화낼걸.”
“맞나 본데.”
“지옥의 정세나 알력 같은 걸 함부로 말하고 다니면 안 좋네. 알 놈들이야 다 알지만.”
니코스는 웃으면서 탁자를 손끝으로 툭툭 쳤다.
“때로는 지옥과 천상 모두의 분노를 사거나, 그 정황 자체가 속임수의 포석일 가능성도 배제는 못 하거든.”
“소름 돋네.”
“세상일이 다 그렇지. 그래서, 어쩔 텐가? 레피림을 만나러 가볼 텐가?”
“내가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날 수 있나? 만난 다음엔 무슨 일이 벌어지지?”
니코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자네 하기 나름이지. 하지만 추천하고 싶진 않네. 그 손으로 레피림의 머리채를 잡기는커녕, 수많은 악마와 마주할 테니. 잘못하면 자네 친구 꼴 날걸.”
듀라한 찰리. 에드워드는 이를 갈았다.
“소금산 때부터 졸졸 따라오는 년이라. 감질나게 구는군.”
“아직 자네는 기사 한 명에 불과할 뿐이니까, 그만큼 총력을 기울이진 않지. 악마가 벌여놓는 음모와 계산은 때때로 방대하다네. 기사 한 명에 폭풍 하나, 듀라한 하나면 나름대로 안배를 한 거지.”
“젠장. 다음엔 뭘 보내려나…….”
“아직 오지도 않은 것을 걱정하지 말게나. 경솔하게 적 본진에 쳐들어가려고 하지도 말고.”
에드워드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젠장. 내 저주도, 날 괴롭히는 악마도, 바니걸도 다 제치고 시킨 거나 해야지. 열쇠검 정보 좀 찾읍시다.”
“진작 그럴 것이지. 자네, 도서관 가면 원래 빌리려던 책은 까맣게 잊고 엉뚱한 거나 찾는 타입이지?”
“냅두쇼.”
“그런 타입이 마법사도 아니면서 비공개 문서고에 잘못 들어오는 부류지.”
니코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양손으로 탁자를 강하게 눌렀다.
꾸욱.
그 순간, 땅바닥이 회전문처럼 움직여 위아래가 뒤집혔다. 에드워드는 무기고처럼 생긴 곳에 들어섰다. 그는 수많은 무기를 보고 입을 쩍 벌렸다.
“비밀 문?”
“현실의 아지지야 도서관에는 존재하지 않는 문이지.”
니코스는 한쪽에 즐비하게 늘어선 검들을 가리켰다.
“저 중의 하나가 열쇠검이라네.”
에드워드는 황급히 자신의 손으로 허리춤에 달린 열쇠검을 붙들었다. 다행히 손잡이는 그대로 존재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도 기록인가?”
“조금 다른 기록이지. 특정 시간대, 특정 장소의 무기고를 그대로 재현한 게 아니야. 말 그대로, 검에 대한 기록을 모을 수 있는 만큼 모아본 거지.”
“전부 다?”
“모을 수 있는 만큼 모아본 거라니까. 내 눈과 손이 닿는 것뿐일세.”
에드워드는 흥미에 찬 눈으로 고대의 검들을 하나하나 집어 보았다.
“게이트 오브 바빌론이라고 들어는 봤슈?”
“뭐야, 그게.”
“이것들 보니까 그 생각이 나네.”
에드워드가 검을 집자마자 파편화된 기억의 영상들이 스쳐 지나갔다. 수많은 모험담, 그리고 강대한 적들. 하지만 진상을 알아볼 만큼 충분하지는 않았다.
“이게 다 뭐지?”
“검의 기억이네. 주로 마지막에 벤 것이지.”
“검도 기억을 하나?”
“시체도 말을 하는데 뭘.”
“흠. 그건 그렇군.”
언데드의 증언은 베로니카를 포함한 이단심문관의 법정을 끔찍한 히스테리로 물들이는 요소다. 익숙한 비유에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전사를, 괴물을, 때로는 미녀나 아이 또는 사용자 스스로를 벤 검들의 기억에 고개를 저었다.
“뭐가 뭔지 원. 안 좋은 기억만 쌓일 것 같네.”
그는 고개를 들어 무기고를 보았다. 공간은 크고 복잡했으며, 검은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검이란 검은 다 끌어온 것 같네. 좀 미리미리 선별하면 안 되나? 그리고 명찰도 좀 붙여주고.”
“거 주문이 많네. 이게 괜히 비공개 문서고인 줄 아는가? 오랜 세월 사방팔방에 흩어진 자료가 개판인 게 당연하지. 이 정도라도 모은 게 다 천재 주술사 니코스 덕인 줄 알게나.”
에드워드는 코웃음을 치고는 도로 검들로 시선을 돌렸다. 한참을 주섬주섬 살펴보던 그가 니코스를 향해 물었다.
“왜 날 돕는 거냐?”
“왜냐니? 앙베르 백작령과 거대토끼 사건 때 신세를 갚는 거지.”
“그때는 이미 답례를 했잖아. 정력 강화 부적.”
“아, 그거. 잘 썼지? 덕택에 여자들 임신도 척척 잘 시키고 다니더만.”
니코스는 웃으면서 파이프를 꺼냈다.
“그래서 아브릴은 소원을 이뤘고, 율리아는 자네를 탐내는 실수를 저질렀고, 요하나는 목숨을 건졌지.”
“젠장. 내 뒤라도 밟았나?”
“어떻게 쓰는지는 궁금하잖나. 떠벌이 악마들을 통해 듣고 있었다네.”
니코스는 파이프에 연초를 채우기 시작했다. 카치운이나 가르달과는 다르게 매우 꼼꼼하고 느릿느릿한 모습이었다.
“나도 내 악명을 알아. 욕심부리는 자에게 오히려 재앙으로 작동하는 주술 도구들. 그게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긴 해. 하지만 아무리 자업자득이래도, 선의로 준 걸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비극을 초래하는 놈들을 보면, 가끔 화딱지가 나거든.”
“앙베르 백작령처럼?”
“그건 경우가 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그래. 그것도 내 비극이지.”
니코스는 쓸쓸한 투로 말하며 파이프에 손끝을 댔다. 저절로 불이 켜지더니, 곧 연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정력 강화 부적은 수많은 남정네와 여편네들이 원하는 거야. 때로는 교회조차도 긍정적이지. 그거 아나? 가임기 남녀가 임신을 시도해도 성공할 확률은 평균 3할 이하야. 할 일 없는 악마가 직접 조사한 거니 믿어도 돼.”
“그래서?”
“임신은 3할의 도박이지. 남녀가 가임기를 거듭할수록 언젠가는 그 3할이 적중하는 거야. 하지만 몇 번을 거듭해도 안 되는 사람들이 있지. 그게 난임이야.”
“모바일 가챠겜보다는 혜자스러운 확률인 게 종의 번식에 참 다행이지.”
“자네 말은 하나도 이해 못 하겠네만, 뭐 여하튼, 내 말은 그거야. 자네가 갖고 있는 도구는 누군가에게는 매우 절박한 물건일 수도 있어. 그만큼 강력한 도구란 말일세.”
“세상에 널린 게 다산과 정력 강화 기원의 부적 아뇨?”
“진짜는 드물지…… 강력한 건 더 드물고. 실제로, 만들기 꽤 어렵다네.”
니코스는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자네는 그 강력한 부적을 받아서 나름대로 잘 썼더군. 제작자로서는 꽤 만족스럽네. 특히 요하나 이야기는 재밌었어.”
“그래서, 뭘 원하쇼? 더 팍팍 임신시키고 다녀? 피임한다고 의미 없이 싸지른 게 더 많을 것 같은데.”
“미래를 어찌 알겠냐마는, 자네가 귀족으로서 다산 또한 미덕이자 책임인 자리에 오른다면, 그때도 도움이 될 것 같네. 그렇지 않다면, 불행한 누군가에게 양보하는 미덕도 생각해 볼 만하겠지.”
“그 모습을 보기 위해 날 돕는다?”
“그래. 설명이 길긴 했지만, 뭐 그렇네.”
흔들리는 음봉 속에서 개잡주만 물어서 망하다가 우량주 유망주 하나 물었다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에드워드는 코웃음을 쳤다.
“양보는 못 할 것 같은데. 그렇게 강력하고 좋은 주술 도구라면.”
그 순간 에드워드는 검 한 자루에 손끝이 스쳤다. 아주 익숙한 촉감이었다. 에드워드의 뇌리에 ‘정답’이라는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그가 기쁨에 차서 소리 지르려던 순간, 한 여자의 목소리가 무기고를 울렸다.
“그래, 그래야 탐욕스러운 기사답지.”
에드워드는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되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에드워드와 니코스는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돌아보았다.
무기고 한쪽 끝에 붉은 바니걸 복장의 베로니카가 서 있었다. 에드워드는 어이가 없어서 농담할 기분도 들지 않았다. 그 거짓 모습의 뒤에 선 것을 간파한 니코스가 경악해서 외쳤다.
“레피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