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7)
17화 하수도 탐험 (2)
꼽등이 떼와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는 데 성공하자, 일행은 하수도의 깊숙한 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곳은 하수가 흐르는 벽에서 좀 높은 데 마련된 은신처로, 사람의 머리보다 더 높은 정사각형 구멍이었다.
“왜 벽에 이런 구멍이 파여 있는 거죠?”
이번엔 리안나가 질문했다.
“몰라. 알 게 뭐야. 중요한 건 여기 숨는 게 가능하다는 거야.”
에드워드가 대답했다. 잠시 뒤 일행을 쫓아오던 요란한 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 주변은 아니었다. 어딘가에서 메아리쳤다. 리안나는 몸서리를 쳤다.
“끔찍하네요.”
“참아.”
에드워드는 짧은 명령 후에 지도를 펼쳤다. 횃불 아래 보인 그 지도에는 사각형 구멍이 그려져 있었고 용도도 적혀 있었다. 에드워드는 그 문구를 읽어 보았다.
“원래는 대형 건축물의 일부였는데, 안 쓰게 되면서 묻어 버렸다는군. 별 비밀은 없네.”
“여기 계속 숨어 있으면 될까요?”
“여기서 살 거냐?”
“그럼, 계속 가나요?”
에드워드는 슬쩍 포로를 바라보았다. 그는 죽은 것처럼 잠들어 있었다.
“그러지도 못하겠군.”
“어, 왜요?”
“포로가 피를 너무 흘렸어. 더 못 달려.”
“그럼, 그냥 풀어 주나요?”
“너 의외로 잔인하구나? 여기서 풀어 주면 죽어.”
“아.”
“어쨌든 증언해 줄 포로를 포기할 순 없지. 일단 지상으로 귀환한 다음 다시 하수도에 들어올 거다.”
“번거롭네요.”
“그러게. 사람이 하나만 더 있었어도 이럴 일은 없는데 말이지.”
에드워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명확한 증거를 쉽게 잡기를 기대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맨손으로 돌아가는 건 나쁜 일이었다. 최소한 둥지 위치라도 알아내야 했다. 어쩌면 길고 긴 탐색이 될지도 몰랐다.
‘귀환하면 영웅 행세를 하면서 지원자라도 모아 봐야겠군.’
에드워드는 그렇게 생각하며 벽에 기댔다. 그는 눈을 감았다. 쉴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쉬는 게 좋았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낯선 목소리였다. 에드워드는 눈을 떴다. 꿈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행 중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미아와 리안나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눈만 깜빡였다. 그는 귀를 기울였다. 정체불명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잘못 들은 게 아니다. 목소리다. 에드워드는 탈출구를 찾은 사람의 표정을 지었다. 거지든 도둑이든 알 바 아니다. 이놈을 부리면 한결 편해질 것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소리는 아래에서 들렸고, 바로 근처였다. 그는 열쇠검을 들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목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그는 뛰어내렸다.
“기사 등장! 거기 가던 놈은 잠깐 정지!”
리안나는 횃불을 입구 쪽으로 내밀었고, 곧 목소리의 정체가 드러났다.
꼽등이.
꼽등이와 에드워드는 잠시 굳어 버렸다. 그는 혼란에 빠졌다. 꼽등이가 말을 한다고? 그 순간 꼽등이가 마저 중얼거렸다.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꼽등이가 말을 했다. 에드워드는 허탈한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리안나는 비명을 질렀다.
“괴물이 말을 한다!”
“밴시가 그 말을 하니까 각별하게 들리네.”
에드워드가 빈정거렸다.
말하는 꼽등이는 후다닥 몸을 반대로 돌렸다. 에드워드는 놈의 노림수를 알아차렸다. 놈이 도약하기 전에 그는 그 다리 한 짝을 붙잡았다. 꼽등이는 그 상태에서 전력으로 도약했고, 그 대가는 참혹했다. 놈은 목표와 전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처박혀 버렸다. 에드워드가 붙잡은 다리 한 짝은 저주받은 손을 벗어나지 못한 채 꿈틀거렸다.
“어딜 도망가?”
에드워드는 재빨리 놈의 남은 뒷다리 하나를 붙잡았다. 이번엔 그놈이 어떻게 해 보기 전에 그가 손을 썼다. 빠각! 이제 꼽등이는 뒷다리 모두를 잃었다. 에드워드는 주인 잃은 뒷다리들을 하수도 오물 속에 내팽개쳤다.
“새장, 새장 던져!”
에드워드의 외침에 미아는 새장을 던졌다. 에드워드는 꼽등이의 몸통을 붙잡고는 소리쳤다.
“계속 버둥거렸다간 남은 다리도 다 떼어 내 버린다?”
꼽등이는 얌전해졌다. 에드워드는 놈을 새장에 머리부터 밀어 넣고 문을 잠갔다. 새장은 꼽등이의 몸에 딱 맞아서 움직일 여지도 없었다. 포획 완료. 에드워드는 의기양양해졌다.
“됐다. 일단 이놈을 증거로 삼아야겠고.”
“기사님, 괴물들이 와요!”
리안나가 소리쳤다. 에드워드는 얼굴을 찡그렸다. 너무 소란을 피운 것이 문제였다. 에드워드는 새장을 일행한테 던진 다음 소리쳤다.
“밧줄 내려!”
그가 밧줄을 타고 은신처에 도착하는 순간, 이미 주변은 꼽등이들이 가득했다. 놈들은 분노한 파도처럼 일행의 은신처를 향해 몰려들었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벽을 기어오르지는 못했지만, 숫자가 워낙 많다 보니 곧 자기들끼리 밟으면서 다가오기 시작했다.
“젠장! 일단 싸우고 본다! 무기 다 꺼내!”
열쇠검, 창, 횃불, 그리고 세탁용 마법약. 에드워드는 밴시 리안나의 손에 들린 분홍색 토기를 보고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뭐, 그래. 그거라도 휘둘러 보던가.”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에드워드는 괴력으로 열쇠검을 휘두르면서 꼽등이들을 쳐 죽였다. 그의 검이 좌우로 한 번씩 휘둘러질 때마다 꼽등이들은 토막 나거나 으깨지면서 나동그라졌다. 가끔 칼날의 궤적을 운 좋게 통과하는 놈들은 미아와 리안나가 처치했다. 다행히도 꼽등이는 일행의 최약자인 리안나가 휘두르는 횃불이나 약병에도 쉽게 격퇴되었다.
“저리 가! 저리 가!”
리안나는 약병으로 머리를 후려친 꼽등이를 힘껏 차 냈다. 그놈은 에드워드가 휘젓는 칼날과 다시 마주했고 이번엔 피하지 못했다. 으직! 허리 아래가 날아간 채 부들거리던 놈은 곧 아래로 추락했다. 그러나 잠시 뒤 더 많은 꼽등이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꼽등이 하나하나의 힘 따위는 별거 아니었다. 문제는 숫자였다. 시체로 발판이 만들어지자 대담한 꼽등이들은 곧바로 뛰어오르기도 했다. 에드워드는 지겹게 몰려오는 괴물들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끝이 없잖아! 모두 몇 마리나 되는 거야?”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말하는 꼽등이의 증언이었다. 에드워드는 결국 분노를 터뜨렸다.
“연금술사! 뭐 탁월한 약 없어? 연금술사면 약병이나 도구 같은 거 주렁주렁 달고 다녀야 하는 거 아냐?”
“편견이에요!”
미아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신의 잡낭을 열었다. 그러나 도움이 될 물건은 없었다.
“말린 약초, 황산, 유황, 석회…….”
“다 뿌려!”
“효과가 있을까요? 양도 적은데?”
“그럼, 애지중지 보관하다 죽을래?”
틀린 말은 아니었다.
“준비되면 말하고, 신호하면 내 왼쪽으로 던져! 지금!”
에드워드의 외침에 미아는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차례차례 내던졌다. 제일 효과가 좋은 건 석회 가루였다. 축축한 곳에서 기어 나온 꼽등이들은 고열에 지글지글 끓다 나가떨어졌다. 미아는 마지막엔 잡낭 자체를 던졌다. 그러나 꼽등이들의 파도는 멈추지 않았다. 미아는 더 내던질 걸 찾다가 밴시 리안나에게 시선이 멈췄다. 리안나는 비명을 질렀다.
“밴시의 울음은 꼽등이한테 효과 없다니까요!”
“너 지금 들고 있는 거 병이지?”
“그런데요?”
“안에 든 거 뭐야?”
“빨래용 마법약이요.”
“효능은?”
“악취 제거랑 진드기 퇴치죠.”
미아는 잽싸게 리안나의 약병을 뺏었다.
“숙여요!”
미아의 외침에 에드워드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곧 연분홍색 액체가 물안개처럼 허공을 갈랐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목덜미에 떨어지는 액체 몇 방울에 몸서리를 쳤다.
“이거 황산은 아니지?”
“그건 한참 전에 던졌고! 이건 밴시의 약이에요!”
“그럼 됐어! 다른 거 더 던져!”
“그게 마지막에요, 이제!”
미아가 비명을 지른 순간이었다. 갑자기 꼽등이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어, 뭐야?”
에드워드가 당황해서 말했다. 그 순간 새장 안 꼽등이가 중얼거렸다.
“오, 짐승의 머리는 그 입에서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왔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꼽등이 탑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놈들은 경련을 일으키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산 놈들은 부리나케 도망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꼽등이 떼는 사라졌다. 자기 무리의 시체와 에드워드 일행만 남기고.
에드워드는 괴물 무리의 뒤꽁무니를 보다가 결국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죽는 줄 알았네.”
* * *
밴시 리안나가 하수구 덮개를 정해진 규칙대로 두드리자, 밖의 용병들은 덮개를 열었다. 일행은 백 년 만에 햇빛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탈출은 리안나, 포로, 미아, 새장을 짊어진 에드워드 순이었다.
일행이 모두 빠져나와 널브러지자마자,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들은 에드워드가 등에 짊어진 새장에서 살아 있는 대형 꼽등이를 보고 놀라워했다.
베로니카는 한발 늦게 도착했다. 그녀가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나타나자 관중들은 기적을 만난 바닷물처럼 갈라졌다. 에드워드는 그녀를 향해 새장을 데굴데굴 굴렸다. 베로니카는 자신의 발치까지 굴러온 새장을 내려다보았다. 뒷다리를 잃은 꼽등이 하나가 틈새로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증거로 꼽등이 한 마리라도 생포해 오라고 했지만, 정말 한 마리만 잡아 왔네?”
베로니카가 빈정거렸지만, 에드워드는 웃으면서 일어났다.
“괜찮아. 그놈은 설명충이거든.”
“그게 무슨 뜻이야?”
대답은 꼽등이가 대신했다. 그놈은 베로니카를 향해 소리쳤다.
“세상에, 붉은 옷의 대탕녀다!”
관중은 폭소해 버렸고, 베로니카는 새장을 걷어차 버렸다. 꼽등이는 비명을 지르면서 새장째 데굴데굴 굴러갔다.
“이해했어. 설명하는 벌레라니, 굉장한 걸 잡아 왔네.”
베로니카의 시선은 포로에게도 박혔다.
“이놈은?”
“세탁소 도제. 우릴 매복해 죽이려다 역으로 당했지. 도망치다 괴물들에게 잡혀 죽을 처지였는데, 이 운 좋은 친구는 자비로운 기사인 내가 구해 줬다.”
리안나와 미아와 포로의 눈빛이 기묘해졌다. 자비로운. 개도 안 믿을 말이었다. 베로니카는 대충 그 내용을 짐작해 낼 수 있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녀는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두 놈에게서 이야기를 아주 많이 캐낼 수 있을 것 같네.”
그다음부터는 베로니카의 영역이었다. 일행은 시청 안에 들어갔고, 그곳엔 이미 심문실이 설치되어 있었다. 먼저 온 손님들도 있었다. 다섯 명의 중년 남자들.
“부당한 구속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겠소.”
그들 중 한 남자가 말했다. 다들 좋은 옷 입은 사람들이었다. 에드워드는 그들이 누군지 알아차렸다. 에드워드가 질문했다.
“시의회 사람들인가?”
“그렇소.”
남자가 긍정했다. 베로니카는 미아를 가리켰다.
“그럼, 얘가 누군지도 알겠네?”
“모르오.”
답변은 빨랐다. 미아는 모자를 벗어 내던지고는 소리쳤다.
“지들 욕심 때문에 연금술사들을 죽인 놈들이 뻔뻔하기 그지없구나!”
남자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베로니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연금술사들도 공범자다 이거겠지. 불법 실험을 한 증거는 잡아도, 연금술사들을 죽였다는 증거는 아직 없고.”
“우리가 불법 실험을 했다는 증거도 빈약하잖소.”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베로니카는 씩 웃었다.
“정말?”
“그렇소.”
베로니카는 남자의 얼굴에 새장 속 꼽등이를 들이밀었다.
“이게 뭐게?”
“그 괴물 좀 치워 주시오.”
“좋아.”
베로니카는 물통 위 갈고리에 새장을 매달았다.
“포로는 판자에 묶어서 바닥에 눕혀.”
병사들은 그녀의 지시에 따랐다. 에드워드가 질문했다.
“뭐 하려고?”
베로니카는 씩 웃더니 갈고리 반대편 쪽 줄을 풀었다. 첨벙! 새장이 물에 빠지면서 커다란 물보라가 일었다. 꼽등이가 몸부림을 치느라 물은 사방으로 튀었다. 잠시 뒤 베로니카는 줄을 잡아당겨 새장을 물통에서 꺼냈다.
“내 스승께서 하신 말씀이 있지. 물은 답을 알고 있다.”
물고문. 모두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베로니카는 밧줄을 흔들었다.
“자, 꼽등이 친구. 말해봐. 넌 누구지?”
“요한입니다.”
남자들의 얼굴이 한층 더 핼쑥해졌다. 베로니카는 심문을 이었다.
“이름 재밌네. 너는 어떻게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지?”
“선지자들이 신비한 기름을 우리 둥지 위에 부었습니다.”
“그게 어디지?”
“다섯 골짜기와 일곱 기둥 아래 있었습니다.”
베로니카는 밧줄을 다시 놓았다. 풍덩. 꼽등이의 몸부림을 감상하던 베로니카는 다시 놈을 끌어올렸다.
“지상으로 기어 나와 연금술사들을 쫓아다니던 놈들이 건물을 못 외울 것 같지는 않은데?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
“붉은 벽돌과 검은 기둥으로 만들고, 노란 기와를 얹은 건물이었습니다!”
꼽등이가 다급하게 말했다. 미아가 설명을 덧붙였다.
“실험실의 모습이 맞습니다.”
“좋아. 지금부터는 당신이 이 벌레를 심문해.”
베로니카는 밧줄을 미아에게 넘겼다. 미아는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 쥐었다. 베로니카는 포로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주둥이가 긴 사각 물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것의 마개는 촛불처럼 심지가 달린 뚜껑으로 막혀 있었다.
“난 피가 흐르는 고문은 별로거든. 하지만 차라리 피를 흘리게 해 달라고 애원하게 만들어 줄 자신은 있지.”
베로니카는 포로의 머리맡에 의자를 갖다 놓았다. 그리고 그 의자 위에 물병을 눕혀 놓았다. 잠시 뒤 심지에서 물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포로의 이마 위로. 포로의 식은땀과 물방울이 합쳐 아래로 흐르기 시작했다. 베로니카는 에드워드를 향해 말했다.
“이제부터 넌 볼 필요 없어. 애 데리고 나가.”
그녀가 주전자 하나를 집어 드는 순간 에드워드는 리안나를 데리고 나갔다. 잠시 뒤 남자들의 비명이 심문실 밖까지 울려 퍼졌다. 에드워드는 리안나에게 귀 막음용 천 쪼가리들을 준 다음, 그 소리를 감상했다.
“어차피 고문할 거면 증거 모아올 필요 없지 않나요?”
리안나가 귀마개를 잠깐 빼고는 질문했다.
“증거가 안 나오면 강행했겠지만, 후폭풍도 꽤 따라왔을 거야. 서류, 연금술사, 설명충이 모였으니 이제는 편하게 뭐든 할 수 있겠지.”
에드워드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좀 더 있으면 어머니 배 속에 있을 적에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자백할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