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70)
170화 지옥의 가장자리
에드워드의 전속 여 마법사 스텔라는 노예 집 요정 리안나랑 함께 간식거리를 사 먹으며 간만의 평화를 누리던 참이었다. 물론 계산은 따로. 여 마법사는 의외로 두둑한 집 요정의 돈주머니를 흘겨보았다.
“언제 그리 돈을 알뜰살뜰하게 모았니?”
“헌옷 대여랑 허드렛일이랑 용돈 모았어요. 글 읽고 쓰기도 가끔 해주고.”
“마지막은 내 영역이잖아! 영업 방해야!”
“마법사님만 그렇게 돈 벌라는 법이 있나요?”
“안 그래도 경쟁이 치열한 업종이야! 발 빼!”
“사제님이 기왕 열 개가 넘는 언어들을 입력해 줬는데 써먹어야죠.”
“나 참. 왜 그리 돈독이 올랐니?”
“돈으로라도 기사님한테 역전극을 이뤄야지요!”
“푼돈으로 가당찮은 꿈을 꾸네. 기사님이 작은 영지라도 하나 얻었다간 영영 못 따라잡을걸.”
“기사는 무기와 말 때문에 돈 많이 든대요. 게다가 기사님은 알뜰하게 모으는 타입도 아니니까, 언젠가는 따라잡을 거예요. 거대 전갈을 타고 다니는 꿈이 좌절됐으니 여 상인으로라도 대성해야지…….”
“어느 세월에? 인생은 한 방이야. 기사나, 마법사나, 기사는 좋은 여자와 영지를 물어야 하고, 마법사는 후원자와 권력자를 물어야 하지.”
“그렇게 일확천금이나 쫓으니까 빈털터리시죠.”
스텔라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처음 만날 때부터 떽떽거리더니 한 마디도 안 진다, 정말. 그러니 캐슬린과도 사이가 안 좋지?”
“그 허리띠 망령은 일도 안 하고 놀기만 하는 날백수잖아요. 나랑 같은 노예 주제에.”
“먹지도 않는 망령이니, 일할 필요도 없겠지. 근데 허리띠는 그렇다 치고, 난 노예가 아닌데 왜 싫어하니?”
“박사 안 되면 다 노예라던데요.”
스텔라는 결국 밴시 리안나의 뺨을 꼬집었다.
“이 주둥이! 이 가증스런 주둥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요! 아첨쟁이에 야바위꾼!”
“자기가 잃는 야바위꾼도 다 있니?”
“따지도 못하는 사람을 대접해 줄 필요는 더 없지요!”
서로 아웅다웅하며 자리로 돌아오던 그녀들은 곧 어느 소란에 맞닥뜨렸다. 데스피나가 심각한 표정으로 도서관 직속 탐사대를 들들 볶는 모습이었다. 느닷없이 호출된 그들은 한 건물을 두고 심각한 표정으로 이것저것 표시하고 있었다.
“뭔가 지나간 것 같기는 한데…….”
대낮인데도 불이 켜진 초롱을 허리에 차고, 커다란 수정 렌즈 돋보기를 머리띠에 낀 노인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그의 손에는 나침반 하나가 제멋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사람을 홀리는 것이 나타난 게 대체 몇 년 만이지?”
그 광경을 구경하던 한 대학생이 중얼거렸다. 데스피나는 침착한 태도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녀는 한탄처럼 말했다.
“어처구니없다니까! 기사 하나가 그딴 식으로 사라지다니! 그 성정이 경망스럽다는 것은 이미 파악했지만…….”
리안나는 스텔라를 올려다보았다.
“우리 기사님이겠죠?”
“아니면 누구겠니?”
“무슨 일일까요?”
“뭘 걱정해. 국왕의 투석기에 넣어 던져도 안 죽을 양반인데.”
“에이, 그건 죽는다. 저야 안 죽겠지만.”
“너 그러다 진짜 날아간다?”
다른 데서 연초를 피우던 카치운과 가르달도 그 소동에 놀라 달려왔다. 그들은 ‘에드워드가 갑자기 달려가 사라져 버렸다’는 이야기에 당황했다.
“그러니까, 비공개 문서고로 가버렸단 거요? 그럼 당장 쫓아가서 데리고 나오면 되는 것 아닌가?”
가르달의 질문에 데스피나는 고개를 저었다.
“비공개 문서고라는 건 특정 공간이 아니라, 이 도서관에 연결된 모든 미답지를 말하는 거야. 들어오는 방법과 나가는 방법이 서로 다른 공간 따위, 하늘의 별만큼 많아.”
“집 정리 좀 하고 살지 그러쇼?”
“여긴 내 집 아냐! 좀 진지하게 말해, 드워프!”
듣다 못한 카치운이 끼어들었다. 그는 담장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제 아가씨 부를까?”
“안 돼!”
데스피나가 단박에 말했다.
“사제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럼 누가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거요?”
데스피나는 눈으로 도서관 전속 탐사대를 가리켰다. 카치운은 리안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 당장 숙소로 뛰어가서, 내 예비 화살이랑 초롱 가져와. 나도 합류한다. 그리고 사제 아가씨랑 엘프 아가씨도 불러.”
“소용없다고 했잖…….”
데스피나가 말하는 순간, 카치운이 번개처럼 칼을 뽑았다. 곡도의 날이 데스피나의 목젖을 겨누었다.
“제아무리 현자라도 이 거리에서는 모가지를 간수하기 어렵지.”
데스피나는 입가를 씰룩였다. 카치운은 단호하게 말했다.
“소용없는지 아닌지는 현장에서 판단한다. 책상머리가 아니라. 출입 허가를 내.”
가르달도 뒤늦게 도끼를 들어 올렸다. 그는 데스피나 뒤에 선 학당과 폰티아의 관계자들을 향해 말했다.
“길잡이로 어떤 놈들이 제일 용한지 말해보슈. 드워프식으로 테스트해드리지.”
* * *
붉은 바니걸 차림의 베로니카는 얇은 트럼프 카드를 들고 있었다. 그녀는 그걸 에드워드한테 내던졌다. 기사는 반사적으로 피했고, 트럼프 카드들은 무기고 벽을 박살낼 기세로 내리쳤다.
콰광!
에드워드는 벽무더기 속에서 트럼프 카드가 얼마나 얇은지 알아봤다. 그는 언젠가 가르달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에이, 그런 건 드워프도 못 만들지.’
여기에 바니걸이 존재할 리도 없고, 베로니카가 존재할 리도 없고, 베로니카가 바니걸 복장을 입고 에드워드 앞에서 몸매를 뽐낼 리도 없으며, 얇디얇은 트럼프 카드가 존재할 리도 없다. 그리고 그 트럼프가 벽을 부술 리는 더더욱 없다.
고로, 저건 환상이다.
“카드 위력은 환상이 아닌 것 같은데?”
“환상에 속지 말되, 공격은 피하게!”
니코스가 앞장서 길을 잡으며 말했다. 에드워드는 그를 쫓으면서 거치대에서 몇 개 집어온 검들을 들어 보였다.
“이거 실제로 못 휘두르는 건가?”
“소용없어! 자네 손에 안 부서지잖아!”
“그러니 더 좋은 거 아닌가?”
“부서져야 할 것이 부서지지 않는단 것은, 쓸 수 없는 물건이란 뜻이네!”
에드워드는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제일 ‘기억’이 좋지 않았던 검 하나를 베로니카의 탈을 쓴 레피림에게 던져보았다.
카드는 검을 그냥 통과해 에드워드의 옆을 스쳤다.
“쓸모 있는 게 없어!”
“못 쓴다니까! 단순한 기록일 뿐이라고! 넌 노래를 쥐어 부러뜨릴 수 있냐! 없잖아!”
에드워드의 한탄에 니코스가 바로 소리쳤다. 그는 무기고의 문짝 중 하나를 열었다, 사방은 밤하늘이었고 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길이 위태롭게 이어져 있었다.
니코스와 에드워드는 아래를 향하지만 위로 가는 계단과 위를 향하지만 아래로 가는 계단을 연거푸 오르내렸다. 에드워드는 평형감각이 깨지는 기분을 맛보며 소리쳤다.
“원거리 무기를 상대로 경로가 뻔히 보이는 도주로는 좀 위험한 거 아뇨?”
“여긴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공간이 아니니 달리기나 해!”
“여기가 어딘데?”
“어느 미치광이 마법사가 건설한 공간이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늘에서 별빛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주술사 니코스는 바로 주문을 외웠다.
“외상 빚은 언제 받을까? 주술사가 잘 안다네! 잃어버린 물건이 어딨지? 주술사가 잘 안다네!”
긴장감이 생기기 어려운 주문에 에드워드는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 진짜 넘어지지는 않았다. 별빛들은 에드워드와 니코스의 머리 위를 지나가 레피림한테로 쏟아졌다.
콰과과광!
“캬아아아아아악!”
절대 베로니카가 내지르는 소리가 아니다. 에드워드는 악마의 외침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염소 대가리 악마 새끼를 상대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때, 어디선가 삐쩍 마른 마법사가 나타나 별빛들과 함께 레피림한테로 날아갔다.
“빵을 다오! 내게 빵을 다오! 오, 빵이여! 새하얀 밀가루로 만든 빵이여!”
에드워드는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한 그 마법사를 가리켰다.
“저거 당신 친구요?”
“지금은!”
“지금은?”
“내 주문의 효력이 끝나면, 그때는 그냥 미친 마법사야!”
친구가 되는 주문. 에드워드는 등 뒤를 돌아보았다. 과연, 미치광이 마법사와 레피림은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에드워드도 농담할 여유를 되찾았다.
“나도 주문 알고 있소. 빨간색을 좋아하는가? 당신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아는가? 모두에게 평등한가? 추운 곳에서 살고 있는가?”
“처음 듣는 주문이군. 대답이 뭐지?”
“강철의 남자 아니면 선물 주는 영감.”
“앵글리아 전승이면, 모르겠네.”
니코스는 겨우 웃으면서 궤짝 앞에 섰다. 사람이 셋은 들어가고도 남을 거대한 궤짝이었다. 그는 주먹으로 자물쇠를 크게 두드렸다.
“주술사가 왔단다, 주술사가 왔단다!”
그러나 궤짝이 열리는 것보다, 트럼프 카드들이 쏟아지는 게 더 빨랐다. 예상보다 빠른 추격에, 에드워드는 니코의 목을 팔로 끌어안고는 몸을 날렸다.
“피하쇼!”
콰과광!
트럼프 카드들은 궤짝을 부쉈고 그 순간 공간이 다시 바뀌었다. 에드워드는 화끈한 열기를 느꼈다. 밤하늘은 사라지고, 모든 것을 새빨갛게 태울 것 같은 열기가 공기를 데웠다. 주변엔 붉은 용암이 흘렀고, 검은 돌로 만들어진 발판들이 험한 길처럼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아케인 생츄어리 다음엔 바로 불길의 강이야? 카우 레벨 어디 갔어?”
에드워드가 투덜거리며 일어나는 순간, 악마들의 웃음소리가 사방을 흔들었다. 그는 주변을 가득 메우기 시작하는 크고 작은 악마들을 보고 인상을 썼다.
악마들의 가장 앞에는 커다란 글레이브를 든 엘프 헬레나가 있었다. 그녀는 목 뒤에 글레이브를 올린 채 나긋나긋하게 걸어왔다. 복장은 녹색 바니걸이었다. 또각또각. 에드워드는 옷이 감당하지 못하는 압도적인 흉부를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맙소사.”
“너무 깊이 보지 말게.”
니코스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는 몸을 겨우 일으키며 말했다.
“자네가 뭘 보는지는 몰라도, 레피림의 환상은 강력해. 역전의 용사라도 잠깐 현혹시키거나, 빈틈을 내거나, 제대로 대처도 못 한 채 도망 다니게 하기는 충분할 정도로. 당했군. 지옥으로 내몰렸어.”
“충분히 실감 중이요. 젠장. 레피림 양, 초면에 다짜고짜 눈요기 시켜주는 여자야 언제나 환영이고, 고맙긴 한데, 상황에 맞는 환각으로 좀 들고나오시지? 왜 그런 것만 들고 오는 거냐?”
“네가 뭘 보는지는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거든…….”
레피림이 헬레나의 목소리로 비웃었다. 그녀의 모습은 곧 에드워드가 아는 여성들의 모습으로 차례차례 일그러지듯 변신했다.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리안나 모습으로는 안 나타나는 게 그나마 다행이군. 나타나면 자살해야지.”
“환영이야. 자살은 지옥에 갈 중죄니까.”
레피림이 덤덤히 말했다. 하지만 끝내 리안나 모습은 나오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어깨에 짊어졌던, 무기고에서 꺼내 온 검들을 바닥에 내던지고는 그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열쇠검. 갖고 다니던 열쇠검을 오른손에, 무기고에서 꺼내 온 열쇠검의 본모습을 왼손에.
“쌍검술!”
자리를 털고 일어난 니코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뭔 소용이겠나.”
“쌍검 바바리안이란 게 있더라고.”
“그러니까, 그걸로는 악마를 못 벤다고.”
“책으로 사람 패지 말란 법은 있나? 노래로 사람 괴롭게 하지 말란 법은?”
둘의 만담을 듣던 레피림은 변신을 거듭한 끝에 자기 본모습으로 돌아왔다. 금빛 로브를 입은 검은 머리카락의 여자. 에드워드는 입을 삐죽였다.
“본모습에 바니걸 해도 괜찮았겠는데.”
“그놈의 바니걸, 바니걸, 바니걸…….”
니코스가 투덜거렸다. 레피림은 웃으면서 말했다.
“내게 감사해라, 인간. 네가 가질 수 없는 것들을 보여줬으니.”
“그런가? 그래서, 인사라도 해줘?”
레피림은 서늘하게 웃었다.
“네 목숨을 내놔라.”
에드워드는 이를 갈았다.
“관람비가 너무 비싼데, 악덕 사장님, 장사 그렇게 하면 공정 거래 위원회에 신고할 거야.”
레피림은 대답 대신 손가락질을 했다.
“죽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