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71)
171화 농락당하는 자와 농락하는 자
밤하늘을 대리석 통로와 계단으로 수놓았던 미치광이 마법사는 거적만 걸친 해골의 꼴이었다. 니코스의 주문에 홀려, 별들을 끌고 레피림과 싸웠던 그는 신흥 대악마를 막아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이곳이 그의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먼지 나게 두들겨 맞은 것이다.
“아…… 배고프다…… 빵이 없어…… 고기는 있는데 빵이 없어…… 빵과 포도주…….”
미치광이 마법사는 복도 가운데 자리에 주저앉은 채 하염없이 중얼거렸다. 두들겨 맞는다고 제정신을 회복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악화될 뿐.
“사람과 악마의 살을 빵으로 만들어야지…… 두개골을 쪼개서 그릇으로 쓸 거야……히히히.”
마법사는 한참 동안 자신의 망상을 되뇌었다. 안식은 갑자기 찾아왔다. 커다란 글레이브가 그의 머리 위로 떨어진 것이다. 미친 마법사는 비명도 못 지르고 둘로 갈라져 죽어버렸다. 그는 마지막까지 빵 맛을 되뇌는 듯 혀를 굴렸다.
엘프 헬레나는 꿈틀거리는 시체를 한 번 더 내리쳐 짓이기며 말했다.
“굶주림에 시달려 구조를 요청하는 자인 줄 알고 도우려 했는데, 식인종이었네요.”
뒤이어 이공간에 들어온 일행은 식은땀을 흘렸다. 한 탐사대원이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말했다.
“소문으로 들은 적은 있습니다. 인간과 악마를 덮쳐 그 고기를 먹으며 지내는 미치광이 마법사가 있다고…… 설마 이 공간인 줄은 몰랐습니다만.”
헬레나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들도 여긴 처음인가요?”
“아까 그 구내식당부터 다 처음입니다. 정말 기사님은 이상한 곳을 다 들락거리시는군요. 방금 그 무기고도 굉장했어요.”
헬레나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못갈 곳이 있기는 한가 싶군요. 하긴 무모한 사람인 건 이미 알지만.”
자의가 아니라 니코스에게 끌려간 에드워드가 그 평가를 들으면, 필히 항의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자리에 없었고, 에드워드의 성정과 악명은 갈수록 부풀었다.
다행히 최후미에 따라붙은 데스피나가 약간의 해설을 했다.
“니코스야.”
“뭐?”
베로니카가 제일 먼저 반응했다.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
“떠돌이 주술사 니코스?”
“그래. 교황청 관계자는 역시 알고 있네.”
“아는 정도가 아니에요, 교리법무성의 최우선 경계 대상 중 하나죠.”
“그렇군. 그 천재 주술사는 비공개 문서고들을 제집처럼 돌아다니고 있지. 가끔 지옥도 갔다 온대. 유명한 부도어음이라서 다들 피해 다니긴 하지만.”
베로니카는 이마를 짚었다.
“아, 그래서 그 녀석이 동서남북에 신출귀몰할 수 있었…….”
“교리법무성의 높으신 분들도 잘 모르지. 그건.”
“왜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알아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어?”
베로니카는 납득해 버렸다. 그리고 데스피나는 피식 웃었다.
“묻지도 않았고.”
“인색하시군요.”
“진짜 중요한 자료는 원래 남한테 쉽게 안 말해두고 꿍쳐놓는 거야.”
데스피나의 수행원들은 무기고에서 꺼내온 검을 몇 자루씩 들고 있었다. 그걸 본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만 넉넉했다면, 사학자와 이야기꾼들한테는 참 좋은 기회였을 텐데요.”
“임시로 만들어진 공간에는 너무 오래 머무르면 안 돼. 이 맛에 비공개 문서고를 들락거리긴 하지.”
“임시? 누가 검에 대한 정보만 그렇게 모아놨다는 이야기인가요?”
“누구겠어?”
베로니카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보자마자 매달아 버리는 게 제 소원 중 하나인데 말이죠.”
“교리법무성의 소원이겠지. 네 소원은 따로 있을 테고.”
베로니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마법사의 시체를 뒤적거리던 카치운은 고개를 저었고, 탐사대원들도 별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헬레나는 시체를 복도 아래로 걷어찼다.
“시간이 없으니 바로 찾아보죠. 공격받고 쫓기는 흔적도 있더라면서요?”
한 탐사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선을 제압당했다는 느낌이었지요. 일방적인 흔적이 쭈욱 이어졌거든요.”
“에드워드 경에 주술사 니코스가 그렇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상대가 과연 있을까요?”
“저야 그 두 분을 모르니 모르죠. 다만 여긴 별별 놈들이 다 있으니 안심은 마십쇼.”
탐사대원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시체만 건져도 다행일 겁니다.”
* * *
허리띠의 망령 캐슬린은 사소한 진실에 감탄할 줄 알았다. 그녀는 생고생을 다 하는 주인의 허리춤에서, 가지각색의 악마들 사이에서 깨달음을 꺼냈다.
“와! 이렇게 지옥 들어오는 방법도 있구나! 알면 정문에서 안 쫓겨나는 건데!”
천국과 지옥 양쪽에서 거절당한 망령만이 할 수 있는 감상이었다. 지옥의 샛문, 지옥의 가장자리. 에드워드는 이를 갈았다.
“그래서? 여기 놔두고 가줄까?”
캐슬린은 잠깐 침묵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지옥도 읍성 안처럼 부르주아 구역이 있겠죠? 이런 변두리에서 지내느니…….”
솔직한 감상이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니코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에드워드를 보았다.
“세속의 욕망은 잠깐 좀 내려놓으시지?”
“내 문제요? 내 허리띠 문제지.”
“걔는 누구 보고 배웠겠소? 악마의 환각에 홀렸다는 것부터가 문제요!”
“니코스, 앞이나 보쇼!”
니코스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악마무리를 향해 소리쳤다.
“나랑 계약할 놈만 와봐!”
그 말과 함께 소매 안에서 단추들이 날아갔다. 악마들은 그 단추가 닿을 새라 펄쩍펄쩍 뛰며 도망쳤다. 한참 뒤 단추가 멈추자, 그제야 그 주변을 슬금슬금 피해 돌아왔다. 에드워드는 그 모양새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하는 행동들이 악마라기보다는 마물에 더 가까운데.”
“여긴 지옥의 가장자리니까. 인간 세상엔 고개도 못 내미는 별 잡스러운 악마들도 많다오.”
마을 사제가 달려와서 대가리를 깨줄 정도로 약한 것들이란 뜻이다. 하지만 그렇게 상대하기 편한 놈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에드워드는 나름 건장한 전사 같은 놈들과 공방을 교환하면서, 보다 유리한 장소를 찾아 발을 놀렸다. 혼자서 다수를 상대하면서도 퇴로를 찾는 것은, 마치 줄타기 곡예와 같았다. 에드워드는 계단 하나를 등지고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새끼들아, 와봐! 레피림의 부하들이라면, 내가 염소 대가리의 악마 새끼를 찢어버린 것도 알겠지!”
에드워드는 제일 앞의 악마 하나를 쓰러뜨려 불길의 강으로 걷어찼다. 발버둥 치다 떨어진 놈은 용암에 처박히자마자 움직임을 멈췄다. 즉사. 천천히 불타오르면서 가라앉는 희생자를 보고 에드워드는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자, 봐라! 오는 새끼는 뒈진다!”
그 순간 레피림이 찢어지는 울부짖음으로 뭔가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붉은 하늘에서 나풀거리는 천 같은 것들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에드워드는 안내자 니코스에게 바로 문의했다.
“저게 뭐요?”
“자네 허리띠랑 비슷한 친구들?”
“물건에 붙은 망령?”
“‘물건에 붙은’은 빼고.”
“그냥 망령이잖아. 짧고 쉽게 설명하면 안 되나?”
에드워드는 투덜거렸다. 그는 왼손에 쥔 ‘기록으로서의 열쇠검’을 망령들한테 휘둘렀다. 망령들은 바닷속 해파리처럼 움찔거리며 그 일격을 피했다가, 쏜살처럼 에드워드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에드워드는 성인이 저주를 건 손을 휘둘렀다.
퍼억!
선두의 망령은 에드워드의 손에 닿기 전에 ‘기록으로서의 열쇠검’에 부딪혀 사라졌다. 에드워드는 니코스를 향해 소리쳤다.
“이거 망령한테는 효과 있네!”
“아, 그런가? 그런 용도로는 안 써봤는데. 그래서, 다 막겠나?”
역시 망령들과 악마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없던 니코스가 묻자, 에드워드는 입을 삐죽였다.
“앙베르 백작령의 꼬마 악령보다는 훨씬 쉽지.”
에드워드의 등에 붙어 몸을 뺏으려 했던 악령. 니코스의 제자를 빨아먹고 더 강해졌던 그 악령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에드워드는 악마들과 망령들을 족치다, 등 뒤의 니코스를 향해 말했다.
“혹시 단번에 레피림과 간격을 줄이는 주술 같은 건 없소?”
“왜?”
“무기고에서와 달리, 조금 전부터 공격을 안 하더라고.”
“그 공격은 환각이니까.”
“음모를 꾸미고, 환각을 쓰고, 부하들을 부리기만 하는 악마라면, 근접전 능력은 뒤떨어지지 않을까?”
“에드워드 경은 도박 좋아하는군. 나라면 그 도박 안 하겠소.”
“저게 레피림이 아닐 가능성은? 경박한 여자 환상을 보여주는 악마가 보스의 위엄을 갖고 있다 보쇼?”
니코스는 쓰게 웃었다.
“나는 최고의 주술사요. 내가 잘못 봤을 리가. 그리고 위엄이라. 악마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7대 죄악에는 서열이 없소. 대악마도 미녀로 변신해 사람의 목덜미를 침대에서 물어뜯을 때가 있는데, 뭘.”
“뭐, 그렇긴 한데…….”
이 세계에서 가끔 의외의 소박함을 느낄 때가 있다면, 그게 이런 부분일 것이다. 에드워드는 질기게 공격하는 망령들을 베어내며 소리쳤다.
“다른 길을 당장 제공할 수 있는 게 아니면, 도박이나 해봅시다!”
에드워드는 니코스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그의 발걸음은 레피림과 거리를 줄이되 서로 직접 연결되지는 않는 바위로 향했다. 니코스는 투덜거리면서 주문을 외웠다. 일류 주술사답게, 그는 필요한 주문이 무엇인지 잘 알았다.
잠시 뒤, 두 바위 사이에 이리저리 늘어선 악마들의 형태가 마치 계단과 길처럼 열리자 에드워드는 그 위로 뛰어올랐다. 분노한 악마들이 머리 위를 향해 손과 무기를 휘둘렀지만, 보이지 않는 발판에 가로막혔다. 에드워드는 주술사가 제공한 발판을 딛고 레피림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그녀의 정수리를 향해 두 열쇠검을 동시에 내리찍었다.
펑!
작은 불꽃이 튀면서 에드워드는 도로 튕겨 나왔다. 니코스는 혀를 차고는 다른 주문으로 그를 보호했다. 허공을 하늘거리던 망령들이 다발로 묶여버리더니 에드워드를 떠받쳤다. 에드워드는 열쇠검에 스친 망령의 절단면과 티끌 하나 안 묻은 레피림의 면상을 번갈아 보고는 이를 갈았다.
“젠장. 역시 접근전 대비도 되어 있었나. 하긴, 뻔한 클리셰긴 했어.”
레피림은 명백한 비웃음으로 그 시도를 조롱했다.
“지옥에 온 영혼에게는 구원이 필요하지. 주술사가 아니라. 네 선택은 잘못됐다.”
망령 쿠션은 나는 양탄자처럼 에드워드를 니코스 곁으로 데려왔다. 주술사는 그 순간 문을 열었다.
“찾았다!”
니코스가 소리치면서 에드워드의 덜미를 붙잡았다. 그리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에드워드는 거울 미로 안에 섰다.
“젠장. 언제 이런 걸 열었소?”
“자네가 레피림에게 뛰어들 때. 멋진 시선 끌기였소. 두 가지 동시에 하느라 죽는 줄 알았지. 뛰게! 여긴 아직 지옥이야!”
에드워드는 수십, 수백 조각으로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거 보면 꼭 함정이 있는데.”
“에드워드? 너야?”
베로니카 목소리였다. 거울 벽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 에드워드는 질겁했다.
“악마년이 벌써 쫓아왔잖아!”
“누구더러 악마래!”
진짜 베로니카 목소리처럼 들렸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귀를 믿지 못해 니코스를 붙들었다.
“저거 레피림인가? 아니면 진짜요?”
“자네 귀로 판단해보게. 어느 쪽 같나?”
“수수께끼 할 시간 없어. 당장 말해!”
“니코스도 거기 같이 있어?”
베로니카의 목소리가 다시 거울 벽 너머를 울렸다. 에드워드는 답변을 못 하고 거울 벽만 노려보며 걸었다. 목소리는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기를 반복했는데, 간격은 불규칙적이었다. 잠시 뒤 헬레나, 리안나를 비롯한 다른 일행들의 목소리는 물론 생소한 사람들의 목소리들도 뒤섞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믿을 수 없다. 레피림의 환각은 기억을 이용한다.
“이거 바로 벽 너머요?”
“아직도 이 공간에서 물리적인 거리를 따지나? 목소리가 진짜여도 우린 그녀를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네.”
에드워드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직후 베로니카의 투덜거림이 이어졌다.
“넌 대체 뭘 봤기에 홀려서 이런 데까지 뛰어온 거야? 뭐가 그리 간절했어?”
에드워드는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온 단어들을, 바니걸 등을 한껏 정제한 다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짧게 말했다.
“네 모습이었어.”
침묵. 잠시 뒤 베로니카는 당황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며 버벅거리기 시작했다.
“너, 너! 이런 데서, 다른 사람들 다 듣는 데서 무슨!”
“와, 사제님 얼굴 빨개진 거 봐.”
“나쁘지 않은 답변이군요.”
스텔라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헬레나는 묘하게 만족과 심술 사이를 오가는 목소리였다. 그 소동을 엿듣던 에드워드는 니코스를 향해 말했다.
“진짜 같은데.”
니코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여자한테 죄 참 많이 짓고 사는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