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72)
172화 폭발 전문가를 찾습니다
베로니카를 놀리는 건 재밌는 일이지만, 그것 때문에 시간을 낭비할 수도 없다. 에드워드는 레피림에 대해, 그가 들여다본 검들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했다. 물론 그중의 제일 중요한 건, 자신이 쥔 ‘기록으로서의 열쇠검’이었다.
“열쇠검이 확실해? 겉모습이 다르다며?”
베로니카의 말에 에드워드는 바로 되물었다.
“본모습이 다를 거라고는 네가 이미 말했잖아?”
“그랬지. 하지만 어떻게 다를 거라고는 말 안 했어. 나도 모르니까. 손잡이를 잡아본 것만으로 그게 열쇠검이라고 확신해?”
“길이나 무게 중심은 다른데, 손잡이 감촉은 그대로더라.”
“알 듯 말 듯 한 감각이네. 증언으로 채택해도 되려나.”
에드워드는 ‘기록으로서의 열쇠검’을 돌아보았다. 지금 그가 쓰는 쇠몽둥이보다는 훨씬 검다운 검이었다. 적당한 길이에, 날카롭고, 얇다. 어정쩡한 길이에, 무디고, 두껍고, 무게 중심까지 이상한 쇠몽둥이보다는 훨씬 ‘싸움 도구’다운 놈이다.
“그런데 이놈의 기억은 좀 희미해.”
“응? 왜? 니코스한테는 물어봤어?”
“망령을 베어서 그런 것 아니냐는 이야기는 하던데, 사실 그 전부터 좀 흐릿했어. 처음 잡았을 때부터.”
“너무 오래된 건가?”
“그런지도 모르지.”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니코스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아니면 너무 많은 사람이 들여다봤는지도 모르지. 책도 닳는 것처럼 말이야.”
“닳아?”
“양피지로 만들고 금속을 덧댄 책은 천년을 가고, 돌에 새긴 것은 선사시대의 것도 남지만, 기억은 어제 꾼 꿈도 간직하지 못한다네.”
알 듯 말 듯 한 비유였다. 에드워드는 사본을 만드느라 원본이 닳더라는 이야기도 비슷할까 생각해 보았다. 이 세계에 목판이나 활자는 없지만, 찍어낸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게 없는 것도 아니다.
“도장이 닳은 것처럼, 너무 많이 찍어냈다던가?”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군. 하지만 들여다보든, 찍어냈든, 누군가는 열쇠검을 계속 찾는다는 뜻이 되는데. 그것도 어색하지 않나?”
에드워드는 미심쩍은 눈으로 ‘기록으로서의 열쇠검’을 들여다보았다. 베로니카가 거울 너머에서 물었다.
“그 흐릿한 것이라도 말해 봐. 뭘 본 거야?”
에드워드는 떫은 표정을 지었다.
“어떤 검들하고 비슷했어. 베면 안 되는 걸 베어버렸지. 엄청난 당혹감과 후회가 느껴지더라. 그런데 누굴 베었는지 자세한 건 모르겠어.”
베로니카는 잠시 침묵했다가 다시 말했다.
“그래, 그런 검들이 있지. 마지막엔 부모, 자식, 연인, 친구, 은인을 베어버린 것들. 비극의 검들이야. 그게 명검이든, 성검이든, 저주받은 것처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지.”
에드워드는 피식 웃어버렸다.
“저주라. 그건 나랑 같은 처지군.”
“진짜 저주받았다는 건 아니지만, 행적이 행적이니.”
“검은 그저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사와 사연이 붙으면, 꼭 그렇지도 않지. 중요한 교훈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라.”
“흠.”
신의 기적과 마법이 있는 세상에서는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에드워드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검을 들었다.
“베면 안 되는 것을 베어버린 검이라. 후보군이 좁혀지나?”
“그렇게 좁혀도 꽤 많아서, 몰라.”
“뭐야, 좀 유명한 검은 죄다 그런 결말을 맞기라도 했어?”
“빛과 어둠의 싸움은 길고, 각지에서 이어졌어. 양쪽은 정신없이 무기를 만들었지. 벽촌의 구석에도 하나쯤 있는 게 사연 있는 검이라고. 더 명확하게 보이는 기억 같은 거 없어?”
에드워드는 얼굴을 찌푸렸다.
“여자 얼굴 같기는 했는데.”
“……신뢰성이 팍 떨어지기 시작했어.”
“진지하게 하는 말이거든?”
에드워드가 투덜거리는 순간, 반대쪽에서 베로니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켜야 할 대상, 베지 말아야 할 대상이라면 여자가 제격이거든…….”
니코스는 거울 미로의 벽을 보며 중얼거렸다.
“레피림이군. 쫓아왔어.”
“뭐? 레피림? 어디? 어떻게 알았어?”
진짜 베로니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드워드는 그녀가 레피림의 목소리는 못 듣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랑 니코스 영감한테는 들리는데, 베로니카네한테는 전달이 안 된다. 기묘한 공간이긴 하군.”
“여긴 여전히 지옥이거든. 깔끔한 모습 때문에 아니라고 착각했어?”
그 순간 사제복을 입은 베로니카의 모습이 거울 위로 떠올랐다. 에드워드는 열쇠검 두 자루를 한꺼번에 휘둘렀다.
쾅!
그러나 거울은 흠집도 안 갔다. 거울이 쩌렁쩌렁 소리를 내며 울리는 사이에 상은 사라졌다.
“젠장. 거울이 너무 깔끔하고 반듯해서 무섭네.”
이 세계의 거울은 가능한 평평하게 만든 금속판을 반질반질하게 닦은 것에 불과했다. 물론 그것도 잘 관리하면 실사용에는 문제가 없지만, 눈앞에 있는 거울 벽은 21세기의 거울들이라 해도 믿을 만큼 매끄럽고 반듯한 상을 띄웠다.
“거울은 빛도 어둠도 단절시키지. 내게서 멀어지는 것은, 거울 안에서는 내게 더 가까워져. 내게서 가까워지는 것은 그 반대고. 재밌는 도구야.”
“처음 겪어보는 것처럼 말하시네? 악마 주제에?”
“언제더라? 비텔리아의 기술자들이 유리에 금속을 발라 거울을 만드는 법을 깨달았어. 덕택에 지옥도 최신식이 되었지.”
“관광 가이드 고마워.”
지옥도 업그레이드가 된다는 별로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에드워드는 니코스를 돌아보았다.
“아직 길을 못 찾겠소?”
“여기는 나도 좀 생소한 구역이라.”
“당신 집 같은 곳이라메?”
“신축한 곳까지 일일이 들어가 보랴?”
이번엔 스텔라의 웃음소리가 거울 너머로 들렸다.
“니코스, 당신은 정말 대단한 작자야. 수많은 악마를 골탕 먹인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놀랍지.”
니코스는 대꾸하지 않았다. 레피림은 계속 말했다.
“그런 인간이 선장님이랑 무슨 일을 꾸몄을까?”
에드워드의 표정이 묘해졌다.
“누구랑 뭘 꾸며?”
“당신과 니코스가 만난 건 내 계획이었어. 그를 포경선에서 떼어내야 했거든. 너희 둘은 내 계획에서 가장 방해되는 존재니까.”
니코스는 에드워드를 향해 눈짓했다.
“설마 레피림이 직접 달려들 줄은 몰랐지만. 최강의 주술사와 동급 취급받은 걸 축하하네.”
“기뻐해야 하나 이거.”
레피림은 계속 혼자서 떠들었다.
“악마들도 가만히 보면 머저리가 많아. 다 잡은 시오니아 국왕을 그냥 놓쳐버린 것도 모자라 오히려 대승리를 허락해 버렸을 때, 그때 깨달았지. 이 머저리들로는 안 돼.”
유명한 이야기다. 시오니아 국왕이 어둠의 군세에 포위당한 채 죽을 뻔했을 때, 그는 왕관을 하늘로 들어 올리며 외쳤다.
[제가 이 땅의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우리 가문의 왕좌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면, 이 자리에서 죽게 해주십시오! 그 반대라면, 제게 승리를 주십시오!>절박한 기도가 빛에 닿는 일이 벌어졌고, 천사가 강림해 버렸다. 느닷없는 기적에 오크들은 박살이 났고, 시오니아 국왕은 승리자로 개선했다.
기사도의 표본이자 로망 같은 이야기 중 하나.
“그딴 고전적인 광경에 압도당하고 패퇴한 놈들 따위, 필요 없어!”
레피림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에드워드는 웃어버렸다.
“그래서 네 취향의 군대를 만들고 있었군. 산속에 가라앉은 고대 종족에, 사교도에 오염된 도시에.”
“멍청한 이단들도 있었지. 쉬운 게 없다니까.”
이번엔 요하나 목소리였다. 하지만 아퀴타니아 남부를 말하는지, 베니아 시를 말하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둘 다일지도. 에드워드는 마른 침을 삼켰다.
“시오니아랑은 거리가 좀 먼 지역들이었는데.”
“한창 타오르는 불꽃에 다가가는 건 멍청한 짓이잖아. 한발 물러서야지.”
“장담하는데, 그 왕보다 더 심한 놈이 왕위를 이을 거다. 내 친구거든. 잘 알지.”
“왕위는 문제가 아니야. 사람이 문제지.”
“사람이 문제라니까. 네가 그놈을 몰라서 그래. 기사 말고 수도승 해야 하는 놈이라고.”
“지금의 국왕 다음에는 누가 왕위에 올라도 똑같아. 어둠의 군세가 다시 몰아닥칠 거다.”
에드워드는 시간을 끌 질문을 다시 던졌다.
“시오니아 국왕이 죽으려면 아직 한참 남았을 텐데.”
“준비할 시간은 충분하겠지. 너와 니코스를 죽일 시간도.”
에드워드는 입술이 마르는 걸 느꼈다. 대화를 보아, 그도 레피림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레피림의 시간이 먼저 충족된 듯했다.
“이보쇼, 니코스. 뭐 좋은 방법 없소?”
“어, 친구 하나 부를까 싶긴 한데.”
“누구? 포경선 선장?”
“여긴 배가 못 들어오니까 그 양반은 어렵고.”
니코스는 주머니를 털었다. 아까 그렇게 뿌리고도 남은 온갖 잡동사니들이 굴러 나왔다. 털과 뼈와 단추와 동전과 나무토막들.
“그 친구가 누군지는 몰라도 빨리 부르쇼.”
에드워드는 눈앞의 거울들이 녹기 시작하는 걸 보았다. 화끈한 열기가 얼굴을 때렸지만, 등짝은 서늘하기 그지없었다. 불로 만들어진 외눈박이 인간형 괴물들이 거울에 난 구멍에 달라붙어, 그 구멍을 더 넓혔다. 통로가 뚫리자, 검은 바니걸 스텔라가 또각또각 걸어 나왔다.
“이런 거 좋아하지?”
“같은 수법, 세 번 쓰면 세 번 다 넘어가 줄 것 같냐?”
“넌 그런 놈이잖아?”
근데 걘 가슴이 평면이라. 에드워드가 그렇게 말하려는 순간,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가 머리 위를 울렸다.
“충고하지, 젊은 악마. 상대를 우습게 보는 것도 적당히 하게나.”
그 순간 거울의 미로 위로 연기의 주먹이 작렬했다. 그 주먹은 거대해서 건물 크기에 맞먹었다. 레피림 뒤로 쏟아지던 악마들이 그 일격 한 방에 물벼락 맞은 개미들처럼 쓸려나갔다.
에드워드는 그 연기가 뭔지 곧 알아차렸다.
“다쉬사베스?”
에드워드는 니코스를 돌아보았다.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악마와 손잡는 건 처음이 아니지? 기왕이면 구면이 낫잖아.”
망령의 형태라지만 거대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고대 악마의 등장에 레피림은 웃어버렸다. 그녀는 연기를 피해 느긋하게 걸으며 말했다.
“이제야 배후를 좀 알겠네. 포경선 선장에, 떠돌이 니코스에, 사막에 유폐된 고대 악마라! 어울리지 않는 셋이 무슨 작당을 했을까?”
“널 막아야겠지!”
다쉬사베스는 노호성을 지르며 다시 주먹을 내다 꽂았다. 그 충격에 거울 미로 전체가 흔들렸다.
에드워드는 니코스를 돌아봤다.
“덩치가 있으니 예상은 했다만, 쟤 저렇게 강했어?!”
“여긴 지옥이니까. 하지만 육체 없이 온 거라, 레피림보다 약할 거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레피림은 본모습으로 돌아갔다. 금빛 고리가 그녀의 양손에서 뛰쳐나와 연기들을 흐트러뜨렸다. 다쉬사베스는 급히 물러서면서 에드워드와 니코스를 휩쓸었다. 에드워드는 떠내려가면서 소리쳤다.
“헤이, 택시! 기왕이면 베로니카 있는 데로 가는 게 어떻소? 따따블로 드릴게!”
* * *
이번 농담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또 생소한 공간에 내던져져, 인간 사이즈로 줄어든 연기 다쉬사베스와 주술사 니코스를 마주보았다. 이번엔 다쉬사베스의 피라미드와 비슷한 공간이었는데, 다행히 적대적이지는 않았다.
주변의 미라들이 딩가딩가 춤을 추고 있었다.
“지옥의 세력 균형 따위는 솔직히 관심 없는데. 뭣보다 댄서가 마음에 안 들어.”
에드워드는 좌식 술상 앞에 앉았고, 니코스와 다쉬사베스도 마찬가지였다. 니코스는 파이프에 채운 연초에 불을 붙이며 물었다.
“레피림이 골탕 먹는 건?”
“대환영이긴 해. 댁들 목적이 뭐든 간에.”
니코스는 껄껄 웃으면서 연기를 뿜었다. 연기는 다쉬사베스한테 빨려 들어갔다. 그의 형체가 좀 더 분명해졌다. 그는 약간 맥이 빠지는 말을 뱉었다.
“요즘 젊은 악마들은 말이야…… 남의 것을 제멋대로 퍼가서 쓴단 말이지. 아까 레피림이 끌고 온 악마들 봤나? 원래 걔 것도 아니었어. 녀석은 어딘가 자네를 닮았지. 욕심에 끝이 없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하지 말라는 건 꼭 한번 건드려보는.”
“악마나 인간이나 젊은 놈 탓하기는.”
에드워드는 그한테 골탕 먹은 경험도 있기 때문에,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펠리샤와 지젤 건은 재밌었어. 고대 악마는 정말 교활하네.”
연기의 입술이 조금 느리게 움직였다.
“지젤은 그다음이오.”
“뭐?”
“그대들이 변신옷을 갖고 있는 줄은 몰랐거든.”
베로니카도 봉인해뒀던 물건이다. 다쉬사베스한테 귀띔해 주는 것들이 못 봤다 해도 무리는 아니다.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댁의 계획이 뭔지는 몰라도 지젤은 무사할라나?”
다쉬사베스는 낮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당신이 아지지야로 돌아가면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 같군.”
에드워드는 술을 입에 한 모금도 안 댔다. 그리고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래, 그거야. 난 이 미로를 너무 오래 돌았소. 용건이나 말하쇼. 어떻게 하면 여길 탈출할 수 있는지도. 댁들도 내가 얼른 레피림을 엿 먹이고 여길 떠나길 바라겠지? 당장 다 말해. 덤으로 열쇠검에 대해 알려주면 더 좋고.”
다쉬사베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용건이야 이미 짐작했듯이 지옥의 문제지. 하지만 지금 자네들의 힘으로는 레피림을 못 이겨. 우리가 가세해도 힘들 거야. 설령 포경선 선장이 오더라도 말이지.”
“그럼 이대로 앉아서 죽으라고? 아니면 영원히 떠돌거나?”
“방법은 하나뿐이네.”
“뭔데?”
다쉬사베스는 천천히 말했다.
“지옥과 연결된 곳은 항상 문제를 일으키지. 이 빌어먹을 도서관은 날려 버려야 돼.”
악마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