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73)
173화 강도가 대신 왔습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불타지 않고 존속된, 기적과도 같은 도서관을 통째로 날려버린다.
소금산 때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했다. 굳이 따지자면, 이쪽은 악명에 더 가깝다. 에드워드는 주먹 위에 턱을 괴고는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날려버리는 방법이 있긴 있는 모양인데?”
“오면서 봤겠지. 불길의 강을. 지옥의 가장자리를. 그곳의 불을 역류시키는 방법이 있다.”
“레피림도 아나?”
다쉬사베스는 즐거워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비장의 수거든.”
하지만 에드워드는 즐겁게 호응하지 않았다. 이게 드워프들과 벌이는 일이라면 동의했겠지만, 그를 한 번 이용했던 고대 악마랑 같이 하는 건 달갑지 않았다.
“일단 보류.”
“그런가?”
다쉬사베스는 놀라지 않았다. 그는 허리를 곧게 펴고는 웃었다.
“최전선에서 번성하는 도시를 날려버린다는 건 역시 껄끄러운가?”
“잘 아네.”
“자네는 빛의 진영 전체를 생각할 정도의 위인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람 잘못 봤네. 명색이 순례 중인데 설마 그러겠어?”
“자네가 저지른 짓인지, 누가 알겠나?”
“관두쇼. 아니면 내가 관둘 테니.”
다쉬사베스도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그는 분명 악마다. 그가 지옥 내부의 세력다툼에 온 신경을 쏟더라도, 에드워드가 방심해서는 안 된다.
보다 못한 니코스가 끼어들었다.
“이 도서관이 날아가면 곤란해지는 건 나 역시 마찬가질세. 규모를 줄이지. 레피림이 쓰는 영역만 날려버리는 걸로.”
듣던 중 반가운 소리. 에드워드는 바로 반응했다.
“그런 게 가능한가?”
“나야 웬만한 건 다 찾아서 자유자재로 열고, 닫지만, 레피림은 정해진 곳을 쓸 걸세. 인간이건 악마건, 자기가 아는 길만 쓰니까.”
“그거 막으면 걔 영영 도서관으로 못 나오는 거요?”
“돌아서 나와야 할 테니, 적어도 자네가 성지 도착할 때까지는 못 건드릴 거야. 운 없으면 누군가 레피림의 길에 다시 문을 내버릴 수도 있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겠지. 수단은 내가 생각할 테니, 자네는 자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돼.”
그 말만 기다렸다. 에드워드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자세한 계획은?”
“불길의 강을 조절하는 수문들이 있네. 그곳의 문지기를 처치하고 수문을 죄다 열어버리면 나머지는 내가 유도하지.”
“어디어디가 불타는 거요?”
“일단 레피림이 쓰는 것으로 의심되는 곳들하고…… 확실한 곳들을 처치해야겠지. 자네와 나와 레피림이 추격전을 벌였던 곳들 말이야. 가능하면 통로만 태우고 싶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공간 전체를 불로 내던져야 할 것 같네.”
에드워드는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아브멜렉의 신전은 예외. 거기선 레피림이 안 나타났으니까. 다쉬사베스와 지젤한테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포경선 선장실도 예외. 아마도 니코스가 만든 무기고부터.
“아, 그 무기고 좀 더 침착하게 봤으면 좋겠는데.”
“자네가 겨우 찾은 그 기록에나 신경 쓰게. 그거도 사실 오래 못 가거든.”
“뭐? 그런 거야? 젠장!”
에드워드는 서둘러 ‘기록으로서의 열쇠검’의 손잡이를 붙잡고 그 기록을 들여다보았다. 그러곤 다쉬사베스를 곁눈질했다.
“뭐 할 말 없소?”
다쉬사베스는 웃으면서 말했다.
“보나마나일세. 베서는 안 될 것을 벤 검은 다 똑같아. 주인의 회개를 원하지. 하지만 대부분은 회개 전에 비극적으로 죽어.”
“스포일러 하지 말고, 검 이야기를 하라고.”
다쉬사베스는 웃음을 멈췄다.
“레피림의 환각을 베겠다면, 실물 말고 기록을 쓰게. 그게 더 효과적일 거야. 혹여 잘못해서 진짜 사람을 벨 일도 없을 테고.”
실물 사람은 그냥 통과할 테니까.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짐작했소. 그리고?”
“거 요구하는 게 많구만.”
“시발 내가 이 검의 원래 주인 대신에 회개할 수도 없잖소?”
“왜 못하나?”
에드워드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이 기록의 여자를 벴소? 내가 저지르지도 않은 짓을 내가 회개하라고? 내가 호구야?”
“그러니 그 검이 풀려날 일이 없지.”
다쉬사베스는 연기로 된 손가락을 놀려 허공에 그림을 그렸다. 리안나의 비둘기 낙서처럼 개발새발 그린 그림이었다. 사람들,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 형태가 불분명한 형태의 무수한 사람들.
“회개는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증명하는 거라네. 어디에 설지 정하는 것이기도 하고. 잊지 말게나.”
“댁은 내가 회개하길 바라는 거요, 이대로길 바라는 거요?”
다쉬사베스는 손을 휘둘러 그림을 흐트러뜨렸다.
“성자 유스타스나 이 떠돌이 니코스는 회개 쪽에 판돈을 건 모양이지만, 선장과 나는 그 반대거든. 어느 쪽이든 레피림은 회칠 것을 기대하고 있지만.”
“성자 유스타스를 만났소?”
“난 그를 만날 일 없네. 니코스도 만날 일 없겠지.”
다쉬사베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성지 가거든 찾아보게나. 천국에서 자넬 만나러 내려올지도 모르잖아.”
그 순간 니코스가 바닥의 문을 열었다. 에드워드는 예고 없이 떨어지면서 투덜거렸다.
“슬슬 익숙해지는구만.”
* * *
“이야, 엘프 전사님들이 다 박살을 내버리는군요.”
한 탐사대원이 말했다. 거울 미로를 빠져나온 탐사대는 악마 떼가 도사린 계곡에 들어섰고, 거기서 몰려드는 악마들을 상대로 분투를 이어갔다. 그중에서 독보적인 전투력을 자랑하는 건 헬레나였다.
다수를 상대로 하는 난전은 아르데니아 충격보병의 특기였다.
후웅!
커다란 글레이브가 악마의 목을 날려버렸다. 눈밭 위를 얕은 발자국만 남기며 바로 위치를 바꾸는 엘프의 모습에 탐사대원들은 재차 감탄했다.
“우리도 무기 좀 쓴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엘프는 따라가기 어렵군요.”
“감탄할 시간이 있으면 문이나 찾지?”
데스피나가 힐난했다. 그러나 가장 늙은 탐사대원이 고개를 저었다.
“닦달한다고 더 빨라지는 일이 아니잖습니까, 이거.”
움직임이 멈추고, 싸움이 길어지자, 리안나는 열심히 자기가 숨을 굴을 팠다. 그녀는 장갑도 안 낀 손으로 눈을 헤쳤다.
“이 눈 안 차가운데요?!”
스텔라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꼬마 밴시를 돌아봤다.
“거기 숨어서 뭐하게?”
“어차피 탐사대원 아저씨들도 어차피 눈 헤치기는 마찬가지잖아요!”
“저 사람들은 문을 찾는 거고!”
꼬마 밴시의 몸부림을 본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헬레나 양이 잘 싸우는 것만으로는 지금 상황을 해결하기 어려운데. 그리고 충격 보병이 받는 정령의 가호는 줄창 이어지는 게 아니야. 이렇게 오래 싸우면 기사도 힘들어질걸.”
실제로 일행이 이 자리에 머무는 게 그 탓이었다. 싸우면서 움직이기는 힘들어지고, 점점 몰린 끝에 발이 멈춘 것이다. 헬레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역시 아까 거울 미로에서 길을 잘못 든 것 아니에요? 여기가 더 힘든 것 같은데!”
“에드워드 경도 어차피 이동해버렸잖아. 우리가 그 거울벽을 허물 방법이 있던 것도 아니고.”
데스피나가 유황 가루 반 줌을 장갑 낀 손으로 쥐며 말했다. 그녀는 적의 눈을 지글지글 끓게 만드는 마법으로 달려드는 악마들을 쓰러뜨렸다. 눈을 싸매고 눈밭 위를 구르는 악마들을 보며 데스피나가 투덜거렸다.
“이렇게 지옥과 가까운 구멍이 있을 줄은.”
“이 도서관을 폐쇄하는 것도 고려해야겠군요.”
베로니카의 말에 데스피나는 코웃음을 쳤다.
“위험을 감수하는 게 마법사라, 쉽지는 않을걸? 여긴 교황청 권역도 아니고.”
“죽을 위험에 닥치고도 ‘그럴걸 그랬나’ 정도의 생각은 안 드나요?”
“그럼 마법사 안 했…….”
데스피나는 말을 잊었다. 높은 봉우리에서 구름이 아래로 쏟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한 탐사대원이 비명을 질렀다.
“눈사태다!”
밴시는 더 깊이 굴을 파기 시작했다.
“전 안 죽으니까 이만 실례할게요! 밖으로 안 나올 거야!”
“야, 밴시! 혼자 비겁하게!”
“싫으면 불사신 하시던가!”
“눈 아래서 천년만년 썩으면 재밌을 것 같니?!”
“악마한테 끌려가는 것보단 낫죠!”
스텔라가 밴시의 뒷덜미를 붙잡고 씨름하는 사이, 베로니카는 눈을 가늘게 뜨며 눈사태를 지켜보았다.
“잠깐, 저거…… 눈사태랑 좀 다른데?”
잠시 뒤, 베로니카는 경악해서 외쳤다.
“모두! 악마들과 거리를 벌리고 충격에 대비해요!”
그녀가 소리친 지 몇 초 만에, 거대한 구름이 일행과 악마들을 휩쓸었다. 베로니카가 본대로, 그건 눈이 아니었다. 연기였다.
“우와! 대체 이게 무슨!”
스텔라는 감탄하기 무섭게 허공으로 날아갔다. 밴시는 그 모습을 손가락질했다.
“그러게 굴이나 팠어야지……!”
“우워어어어어!”
쿵! 밴시는 구르던 가르달에 채여 같이 날아갔다.
“내 팔자야!”
밴시가 한탄하든가, 말든가, 카치운은 연기 속에서 자세를 바로잡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바로 파악했다. 위아래를 파악할 필요도 없었다.
“확실히 이상한데. 아무리 이곳이 현실과 동떨어진 공간이라지만.”
“그야 눈이 아니니까.”
에드워드는 최대한 그럴듯하게 빚어본 소파 위에 앉아서 낄낄 웃었다. 카치운의 눈이 가늘어졌다.
“편해보이시는구만?”
“난 특급이고 댁들은 일반이라. 요금은 내게 내슈.”
밴시의 감상은 더 직접적이었다.
“우리 천국 왔어요? 근데 기사님도 천국 갈 수 있는 거예요?”
에드워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리안나를 거꾸로 들었다. 밴시는 거꾸로 뒤집히려는 치마를 간신히 간수하면서 소리쳤다.
“진짜 기사님이다! 우리 죽었나 봐요!”
“왜 내가 죽었다는 걸 전제로 말하냐?”
“구름 위에 있으면 다 죽은 거죠!”
무지막지한 기준이었다.
흩어졌던 탐사대는 곧 연기에 떠밀려 에드워드 앞으로 모여들었다. 다들 설명을 요구할 때쯤, 니코스가 에드워드의 뒤에서 나타나 발밑의 연기를 가리켰다.
“이건 고대 악마 다쉬사베스요. 내가 길을 열고 이 친구가 이동시켜주고 있지. 지금은 일이 바쁘니까 그거만 알아두시구려.”
“직접 보는 건 처음이네, 니코스.”
베로니카가 이를 가려 말했다. 니코스는 껄껄 웃어버렸다.
“난 이단심문관들을 많이 봤는데. 발작하며 날 죽이려는 자들부터, 몰래 소원을 의뢰하는 자들까지.”
“교리법무성의 이름으로……!”
베로니카가 철퇴를 휘두르려 하자 에드워드가 나서 말렸다.
“참지? 내 얼굴 봐서. 저 양반 아니었으면 나도 좀 위험…….”
그 순간 철퇴 대신 주먹이 에드워드의 턱을 스쳤다. 에드워드는 가까스로 피한 다음 소리쳤다.
“야! 주먹에 살의가 담겼어!”
“닥쳐! 이 정도는 피하잖아! 사람 걱정시키고, 공개적으로 희롱하고! 넌 죽어 마땅해!”
“죽으란 거야, 말란 거야? 폭력녀는 인기 없으니까 참아!”
아웅다웅하는 두 남녀를 보고 헬레나가 말했다.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된 거죠? 또 악마와 거래한 건가요?”
“또?!”
탐사대원들이 경악하는 그 순간, 일행은 불길의 강 위에 섰다. 연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주변은 아직 악마가 없이 조용했다. 에드워드는 열쇠검을 뽑으면서 말했다.
“뭐, 항상 하는 거랑 똑같아. 지옥에 문제가 생겼고, 우리가 그걸 해결하는 거지. 모두에게 최대한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데스피나 양, 그런 표정 좀 치우지? 다쉬사베스의 원래 계획은 도서관째로 날려버리는 거였다고. 내게 감사 인사는 못할망정. 뭐, 순례자가 왜 지옥 일까지 해결해야 하는지는 나도 좀 골치긴 한데.”
떠벌떠벌 이어지는 설명에 다들 혼란에 빠졌다. 헬레나가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
“다쉬사베스가 이곳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게 좋지 않아요?”
“적재적소가 좀 달라서 말이야. 다쉬사베스는 레피림을 상대로 시간을 끌어줄 거야. 니코스는 우리 탈출로를 확보해줄 거고. 그리고 우리는…….”
“웬 놈들이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붉은 피부를 가진 거인이 대장간용 한 손 망치를 들고 나타났다. 탐사대원들은 비명을 질렀다.
“악마다!”
최소한 하급은 아닌 악마. 설명보다는 보여주는 게 역시 확실한 법이었다. 에드워드는 대장장이 악마를 열쇠검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기사가 할 수 있는 가장 명확한 명령조로 말했다.
“문 열고 두 손 들고 무릎 꿇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