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74)
174화 환불 및 교환은 구매처에서
“다쉬사베스가 그러더라. 수문을 지키는 건 대장장이라고.”
에드워드가 짧은 설명을 해주는 사이, 탐사대와 일행은 바로 진형을 갖췄다. 데스피나의 수행원들은 무기를 검에서 활로 바꿔 들었다.
카치운은 그들보다 더 빨랐다.
피융!
화살이 날아가 대장장이의 이마 한가운데 적중했다. 깡! 금속이 금속을 때리는 소리. 카치운은 얼굴을 찡그렸다.
“피하지도 않는군.”
“방금 그것 덕에 저놈이 뭔지는 알겠네. 몸 곳곳이 금속이야.”
에드워드가 말했다. 대장장이 악마의 관절은 생살이지만 남은 부분들은 군데군데 금속판이 박혀 있었다. 그게 안쪽까지 전부 금속인지, 겉만 금속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가르달이 흥미를 보였다.
“묘하군. 꿰맨 흔적이 없소. 피부와 금속이 일체화된 것 같아. 악마 중에 이런 것도 있나?”
“너희는 너희 상상을 뛰어넘는 지옥을 직시하자마자 미칠 것이다!”
대장장이 악마는 망치를 허공에다 휘둘러대며 위협을 퍼부었다. 당장 달려들지를 않았다. 온갖 욕설과 저주를 뱉었고, 자기 뒤에 있는 지옥이 어떤 광경인지 묘사했다. 탐사대원들이 두려움에 떨 내용들이었지만, 에드워드는 심드렁했다.
“대충 [이벤트 호라이즌> 같은 동네인가. 근데 떠벌리는 데는 재주가 없나 보네. 오히려 격이 떨어지는 것 같지 않아?”
베로니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에드워드를 보았다.
“동의는 하는데, 넌 지옥이 안 무섭니?”
“내가 거기 떨어지기 전까지는 무서워할 필요가 있나? 1만 개의 바늘이 있어도 날 안 찌르면 미리 겁낼 필요 없지.”
“대범하네. 아니면 회개가 더 필요한 거야?”
에드워드는 투구를 살짝 들고 그 아래로 침을 뱉었다.
“내가 신앙이나 회개 같은 거 잘 모르긴 하는데, 회개가 지옥에 안 가려고 하는 게 아니란 건 알아.”
“전에 고급 희극이라도 봤나 보구나.”
지옥에 가지 않으려면 회개하라는 건 지구나 이곳에서나 매우 흔한 수준의 설교다. 그런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알려주는 설교는 좀 더 고급 대화에 속한다.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상향 평준화의 세상이란 게 있지. 여기나 거기나 실천이 어려워서 문제지만.”
“그래서, 이제 어쩔 거야?”
“저 대장장이 악마 새끼, 아직 안 움직이지?”
“그런데?”
에드워드는 그게 묘하게 느껴졌다.
“덤빌 거면 진즉 덤볐을 것 같지 않나?”
“기사들이 일기토 전에 자기소개하는 것과 비슷한 듯한데요?”
헬레나의 말에 에드워드는 얼굴을 찌푸렸다.
“움직이기 싫다는 티가 더 나는데.”
“실은 겁쟁이라던가? 하하하!”
가르달이 호탕하게 웃었다. 카치운이 농담을 얹었다.
“발에 무좀이 심할지도 모르지.”
“무좀은 습한 데 오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린 지금 발가락을 노릇노릇하게 구울 판인데?”
“악마라면 물 대신 불로 무좀이 걸려도 말이 안 되는 건 아니겠지. 불을 물처럼 쓰잖소.”
현재의 장소가 물 대신 불이 넘치는 강이긴 했다. 리안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악마는 물에 화상 입나요? 그런 악마 있으면 좋겠다. 그럼 내가 때려잡을 수 있을 텐데.”
그런 악마한테는, 빨래터의 집요정이 불지옥의 악마와 동급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에드워드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상성이란 게 중요하지. 저놈도 그것 때문에 안 움직이려는 거려나?”
“시험해 봅시다.”
카치운은 엘프 전사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바로 화살 세례가 악마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대장장이 악마는 더 소리를 높이다 입으로 날아든 화살 하나를 바로 씹어버렸지만, 화살대를 우물거릴 뿐 앞으로 전진하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바로 확신했다.
“새끼, 움직일 생각이 없네. 하지만 무능력자 겁쟁이로 보기엔 지금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좀 아닌 듯하고.”
“그럼 조건이 달린 거네. 저기서 싸우면 무적이라던가.”
베로니카가 말했다. 스텔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주술 중에 가끔 있죠. 땅에 발이 닿은 상태면 죽지를 않는다던가, 특정 장소에서는 날붙이에 다치지 않는다던가.”
에드워드는 놈의 위치를 다시 살펴보았다. 불길의 강 위에 놓인 작은 돌다리 위. 악마끼리라면 일대일을 강요할 좁은 장소였다. 하지만 대장장이 악마는 옆으로도 꽤 넓은 편이었고, 인간 두셋 정도는 그를 반 포위할 수 있었다.
“뭐하니. 나가봐.”
데스피나가 툭 내던지듯 말했다. 에드워드는 그녀를 돌아봤다.
“나?”
“너 말고 누가 적당하니? 불에 안 다치고, 악마나 악령한테 상성 좋은 손을 가졌으며, 악마도 기겁할 괴력까지 있는데.”
에드워드는 반박하지 못했다. 그는 작게 투덜거렸다.
“진짜 성자 양반은 날 부려먹으려고 이 저주 건 게 분명해. 상대방이 깔아놓은 판에 들어가는 건 안 좋은데.”
“하지만 서로 마주 보기만 해서는 끝이 안 나. 위험은 감수할 수밖에.”
베로니카가 덧붙였다. 그랬다. 시간제한이 걸린 건 에드워드 일행 쪽이었다. 에드워드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발을 내딛었다.
“단순히 다른 악마들이 오길 기다리는 겁쟁이일 수도 있지만…….”
악마는 에드워드가 공격 범위 안에 들어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한 손 망치를 휘둘렀다. 에드워드는 그걸 피한 다음 놈의 무릎 관절에 열쇠검을 휘둘렀다.
까앙!
놈이 다리를 움직이면서, 검은 무릎이 아니라 정강이에 맞고 튕겨 나왔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다시 검으로 몇 번 공격해, 놈을 몇 걸음 물러서게 만들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덩치가 크긴 한데, 싸움 실력은 그리 뭐 대단한 수준도 아니군.”
딱 덩치에 맞게 둔한 놈. 그게 에드워드의 감상이었다.
퍼억!
악마가 에드워드한테 관심을 돌린 사이, 큰 깃을 단 화살 하나가 날아가 놈의 겨드랑이 안쪽에 명중했다. 악마가 비명을 지르자 카치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몰매 패면 되겠네. 대장장이일 뿐, 싸움꾼은 아닌가 본데?”
“난 싸움꾼이기도 하지!”
가르달이 도끼를 들고 괴성을 지르며 달려갔다. 악마가 불을 뿜거나 독을 뿌리는 게 아니면, 드워프 전사가 물러설 이유가 없었다. 다만 걸음은 헬레나가 더 빨랐다. 그녀는 가르달을 제치고 달려가며 소리쳤다.
“몰아붙여요!”
악마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이 비겁한 놈들! 다수로 하나를 치다니!”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악마가 할 소리냐? 다쉬사베스도 그렇고, 요즘 악마들은 악마답지 않은 소릴 하는 게 문제인 모양이군.”
세 전사가 나서고 활잡이들이 저격에 나서자 악마는 바로 수세에 몰렸다. 그러나 다리 위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가르달의 도끼에 발가락을 찍히고, 에드워드의 열쇠검에 손가락이 뒤틀리고, 헬레나의 글레이브가 목젖을 찌르고 들어와도.
“적당히 하고 쓰러져!”
헬레나가 짜증을 내면서 놈의 팔꿈치에 글레이브를 내질렀다.
콰직!
이번 건 컸다. 뼈가 보일 정도로 피부가 파였다. 에드워드는 팔뚝의 금속판을 아예 통째로 찌그러뜨렸다.
따악!
“맞았다!”
리안나가 소리쳤다. 그녀가 악마의 머리에 내던진 돌조각은 별 영향을 못 줬지만, 세가 명확히 기운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스텔라는 번개 마법을 맘껏 날리며 소리쳤다.
“그걸로 되니? 이 정도는 되어야지!”
“와! 어른이 애 상대로 기만질 한다!”
“기만질이 뭐야? 누가 그런 단어 가르쳐 줬어?”
“누구겠어요?”
카치운은 시위를 당기다 말고 인상을 썼다.
“얘들이 있으면 진지해지질 않아.”
드디어 쓰러뜨리나 싶은 순간, 악마는 갑자기 다리 아래로 몸을 날렸다. 풍덩!
“어?!”
가르달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불길의 강 아래로 투신한 악마를 보고 혼란에 빠진 에드워드가 중얼거렸다.
“자살은 중죄라더니, 악마도 궁지에 몰리면 자살하나?”
데스피나는 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그는 에드워드 일행을 향해 소리쳤다.
“물러서!”
그 순간 불길의 강에서 무언가가 쏜살처럼 솟아올랐다. 그것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가, 다리 위로 내리꽂혔다. 콰앙! 불꽃을 사방에 흩날리며 등장한 그것은 조금 전의 그 악마였다. 그러나 조금 달라진 게 있었다.
모든 상처가 말끔하게 회복된 상태였다.
“아하. 그래서 이 자리를 안 떠난 거군.”
에드워드는 뒤늦게 놈의 능력을 깨닫고 혀를 찼다. 불길의 강에 뛰어들기 가장 적절한 장소긴 했다. 대장장이 악마는 씩 웃었다.
“다시 한번 도전해 보라, 인간! 나는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서리라!”
에드워드의 허리띠에 있던 망령이 중얼거렸다.
“아저씨, 그러다 후회한다?”
“응?”
악마는 기대와는 다른 소감에 당황했다. 멀리서 리안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불사면 뭐해?”
“응?”
베로니카는 이마를 짚었다.
“저런 게 나오면 인간의 가학심만 자극한단 말이지.”
“응?”
가르달은 기대감에 발을 동동 굴렸다.
“에드워드 경! 뭐할 거요? 뭐할 거요?”
“응?”
헬레나는 에드워드를 흘겨보았다.
“이거 그거죠? 깐따삐야인지 뭔지.”
“응?”
스텔라는 시약을 날렸다는 허망함보다 새로운 재료에 흥미를 보였다.
“제가 해봐도 돼요? 새로운 번개 주문을 개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응?”
악마는 주변의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에드워드는 열쇠검을 고쳐 잡으며 말했다.
“자, 상황 전제. 토끼가 한 마리 숨었어. 그리고 기사가 토끼를 찾기 시작했지. 토끼는 어딨을까?”
“대체 무슨 영문 모를 소리냐?!”
악마는 괴성을 지르며 망치를 다시 휘둘렀다.
에드워드는 질문했다.
“자, 내가 뭐라고 말해야 한다고 했지?”
“접니다! 제가 토끼입니다! 저는 토끼입니다! 제 부모님도 토끼입니다! 살려만 주십쇼!”
대장장이 악마는 열쇠검으로 다리 위에 못 박힌 채 꽈배기처럼 뒤틀려 있었다. 사람들은 놈을 에워싼 채 자기 방법대로 고통을 주었다. 베로니카는 그 광경에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거 너무 즐기지는 마.”
“너무만 아니면 된단 말이지.”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악마의 허리춤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내 들었다. 가르달은 악마의 몸을 손날로 가늠해 보며 말했다.
“인간 신장 줄이기 협회장 가르달의 이름을 걸고 말하는데, 자를 곳이 너무 많아.”
“뭘 줄여요?!”
악마가 비명을 질렀다. 데스피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너네 이러고 다녔니……?”
에드워드는 대장장이 악마한테 다음 용건을 물었다.
“시간이 없으니 바로 대답해라. 너도 대장장이니까 검은 좀 알지?”
“그렇습니다!”
에드워드는 ‘기록으로서의 열쇠검’을 꺼내 들었다. 안의 기억만이 아니라, 겉모습마저 많이 흐릿해진 상태였다.
“이게 뭔지 아냐?”
악마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건 모, 모릅니다!”
“왜 몰라, 이 새꺄!”
“제가 만든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압니까!”
“다쉬사베스가 대장장이라면 알고 있을 거라고 했단 말이다!”
“다쉬사베스가 누굽니까? 교환과 환불은 구매처에서 하셔야죠! 제가 만든 것도 아닌데 뭘 어떻게 해드립니까!”
카치운은 악마의 표정을 보고 말했다.
“거짓말이 아닌 것 같군.”
에드워드는 앓는 소리를 냈다.
“아, 다쉬사베스 새끼. 급할 때마다 구라질이네. 야, 그럼 이것만 말해. 이게 빛의 검이냐, 어둠의 검이냐?”
“빛의 검입니다! 악마의 손은 닿지 않았습니다!”
“좋아. 일단 그 정도로 만족하지.”
에드워드는 열쇠를 가르달에게 넘겼다. 가르달은 다리 너머 작은 섬에서, 비석처럼 생긴 것마다 있는 열쇠 구멍을 보았다.
“원리를 알면 더 재밌을 것 같은데 말이오.”
가르달은 고리에서 열쇠들을 하나씩 분리해, 구멍마다 꽂았다. 그리고는 오른쪽부터 차례대로 돌렸다. 열쇠를 하나씩 돌릴 때마다 불길의 강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우르릉 흔들렸다.
“좋아, 좋아. 그래도 뭔가 해결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군.”
에드워드는 나름 만족했다. 그때 저 멀리서 니코스가 날아왔다. 날아다니는 양탄자를 탄 채였다. 양탄자는 궁전에 깔아도 될 정도로 큼직했다.
“아, 다른 자료실 가서 이거 꺼내오느라 좀 늦었소. 여기 사람이 워낙 많으니 이런 거라도 써야지. 너무 오래 있지는 맙시다. 강이 넘치기 시작하면, 양탄자에 불이 붙어버릴 거요.”
사람들은 얼른 양탄자 위로 뛰어올랐다. 가장 먼저 올라탄 건 데스피나였다. 그녀는 니코스를 깔아보며 말했다.
“이 고명한 주술사는 처음 보는군. 재밌네. 에드워드 경을 도서관에 끌어들인 보람이 있어. 기대와는 좀 다른 광경이지만.”
에드워드는 코웃음을 쳤다.
“뭘 기대했는데?”
“기사가 일으키는 진짜 마법. 뭐, 이번엔 실패한 셈 치지.”
에드워드는 ‘기록으로서의 열쇠검’을 다시 꺼내 보았다. 주인이 회개해야 하는 빛의 검. 그걸 알아낸 것만 해도 수확은 있다. 이걸로 뭔가 해보겠다는 건 다음으로 미뤄야겠지만. 봉인이 깨지는 순간 약해져서 부서진다고 해도 문제니.
“와! 기사님! 저기 봐요! 악령이 바글바글!”
리안나가 소리쳤다. 에드워드는 다리 위에 널브러진 악마 주변으로, 사람 모양의 새까만 악령들이 몰려드는 걸 확인했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큰일 날 뻔했다. 악령들은 악마를 덮고 탑을 만들어 양탄자를 향해 손을 뻗기 시작했다. 에드워드는 그 악령들 가운데 드문드문 덜 탄 얼굴들을 보았다.
“얼굴들은 좀 덜 익었네?”
“화형 당한 이단자들이네. 화형은 장작 위에 세워서 태우니까.”
베로니카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산 사람이라는 게 그리 잘 타는 건 아니고 연료는 비싼지라, 재가 될 때까지 태우지 못하고 대충 질식시키는 화형도 흔했다.
에드워드는 그 선두에서 유독 새카맣게 탄 얼굴을 발견했다. 그건 불길 너머의 상이 일그러지듯, 멀쩡한 얼굴과 숯덩이 얼굴로 번갈아 바뀌었다.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엥겔.”
베니아 시의 이단 수괴. 에드워드는 혀를 찼다.
“이쪽을 알아본 것 같군.”
거대한 촉수처럼 일어선 악령더미를 벗어나, 양탄자는 지옥을 빠르게 벗어났다. 에드워드는 그 악령들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건 에드워드 일행이 멀어지자 제풀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베니아 시 인근의 이단자들인가?”
베로니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네.”
“저기에 그 사람들도 있었어?”
“그 사람들?”
“그 뭐냐, 자기가 끝까지 빛을 위해 죽는다고 여긴 사람들.”
“몰라. 난 못 봤어. 봤어도 너한테 말해주고 싶지는 않고.”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제 투명해져서 남은 게 없는 ‘기록으로서의 열쇠검’을 지옥 바닥에 내던졌다.
“역시 천국 가야겠어. 지옥은 서비스가 영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