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75)
175화 가스 밸브를 확인합시다
불길의 강이 넘치면서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사실 지옥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라 종종 있는 일이지만, 이번엔 그 타이밍이 너무 빨랐다. 원인이 무엇인지는 보나마나였다.
“네가 여기 나타났을 때부터 알았다! 늙은것들끼리 모여서 작당하기는!”
레피림은 자욱한 연기를 헤쳐나가며 신경질을 부렸다. 다쉬사베스의 얼굴은 적절히 거리를 두면서 껄껄 웃었다.
“난 편승했을 뿐이야. 따지려면 니코스나 선장 양반한테 따져. 아, 은자 유스타스는 어떤가?”
“닥쳐!”
레피림의 손에서 노란 불꽃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다쉬사베스의 머리통은 연기로 만들어진 폭풍 속을 민들레씨처럼 날아다니며 그 불꽃을 전부 피했다. 그의 머리통 뒤로 손과 발만 나타나 까딱거렸다.
“무서워서 심장이 오그라지겠네!”
레피림은 이를 갈았다. 곧바로 연기 사이에서 번개가 울리기 시작했다. 연기는 번개 섞인 폭풍이 되어 레피림의 불꽃을 연달아 무너뜨렸다. 그러나 폭풍 속에서도 레피림은 건재했다. 수많은 번개가 그녀의 옷자락도 건드리지 못하고 사라졌다.
“빛에 빌붙은 고대 악마 따위!”
“빌붙다니, 누가 빌붙었다는 건가? 이 일로 어둠과 지옥이 패할 거라 생각하는가? 네 존재가 그 정도로 가치 있다고 믿느냐? 하하! 차라리 시오니아 국왕이 빛의 항구적 승리를 가져온다고 하는 게 더 믿을 만할걸!”
“그래서 내가 나선 것이다! 내가 균형추를 붙잡고 저울을 흔들 것이다!”
“혼자 멋대로 도전하는 건 안 말리겠네만.”
거대한 연기 발바닥이 불쑥 솟아 나왔다. 그건 레피림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쿠웅!
레피림이 발등을 뚫고 솟아오르는 순간, 그녀는 저 멀리 날아가는 양탄자를 보았다. 그 위에 있는 건 니코스와 인간기사, 그리고 그들의 일행이었다. 볼일을 끝낸 그들은 이미 작은 점처럼 보였다.
다쉬사베스는 다시 연기로 솟아올라 그녀의 시야를 차단했다.
“남의 것을 뺏어가 자산 삼는다면, 그 대가를 치러야지. 다 뺏어가니까 다른 악마들도 널 돕지 않고, 오히려 인간 기사를 응원하잖나.”
“하! 약한 것들 주제에!”
“그래. 약하니까, 가장 강한 악마가 나오면 다들 뭉치는 거야.”
다쉬사베스는 미소를 지었다.
“그게 첫 지옥을 만든 방법이었다. 골치 아프지? 인간 기사를 먼저 죽이자니 니코스를 네 영역으로 끌어낼 방법이 없고, 막상 끌어내 보니 니코스는 덤까지 데리고 요리조리 잘 도망쳤지. 그런데 이제는 고대 악마까지 나섰어! 포경선 선장까지 오면 어떨까?”
“너희 전부가 덤벼도 지옥에서는 날 이길 수 없다!”
“그래, 지옥에서는!”
“대체 뭘 꾸미고 있는 것이냐, 너희 구닥다리들은?”
다쉬사베스는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저 기사 양반과 다시 만나거든, 그때 물어봐라!”
니코스가 문을 열어주어 아지지야 도서관으로 돌아오자, 에드워드와 데스피나는 최초의 사건이 벌어졌던 건물을 싹 비웠다. 잠시 뒤, 그 건물은 치솟아 오르는 화염과 함께 불탔다. 수직으로 불타오르는 비정상적인 불기둥 주변에서, 마법사들과 행정직원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불이 다른 건물에 옮겨붙는 것만은 막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데스피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서고가 아니라 행정 건물이라 다행이야.”
“내가 각별히 신경 써서 악마들을 뜯어말린 결과요.”
에드워드가 잘난 척을 하며 끼어들었다. 데스피나는 그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지옥에 갔다 와도 안 고쳐지는 오만이네.”
“사실이라니까?”
베로니카는 에드워드를 흘겨보았다.
“지옥의 가장자리 정도로는 부족한 건지도 모르죠.”
“지옥에서 가장 두근거렸을 아가씨가 그런 소리 하면 쓰나.”
“무슨 의미야, 그거?!”
에드워드는 낄낄 웃고는 니코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덕택에 잘 빠져나왔군. 고맙수다.”
“앞으로가 문제일세. 레피림과 그 반대파는 점점 더 격하게 싸울 테니. 서둘러 진로를 시오니아로 잡길 권하네. 머뭇거리면 또 따라잡힐 거야. 그때는 자네 옛 친구도 다시 따라올걸.”
듀라한 찰리. 에드워드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거 아직 안 뒈졌나?”
“모르네. 레피림만이 알겠지. 영혼까지 알뜰하게 잘 쓸지도. 어쨌든 몸조심하게나, 에드워드 경.”
“이제야 내 이름을 겨우 제대로 부르는군.”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향해 도로 고개를 돌렸다.
“이번엔 저 영감님 그냥 보내주는 거다?”
베로니카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생각 같아선 대롱대롱 매달아 버리고 싶지만, 도와준 사람을 매달아 버렸다는 소리도 듣기 좋은 건 아니지.”
“그래, 세계 평화를 생각해야지.”
“뭔 헛소리야, 또.”
둘의 설전이 열릴 기미가 보이자 니코스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여하튼 좋은 여행 되게나. 난 그만 가보겠네.”
“니코스 씨? 기왕 도서관에 오신 것, 좀 더 있다 가지? 학문적 교류도 가능한데.”
데스피나가 황급히 그를 붙들었다. 그러나 니코스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엔 내 무기고에서 기록 가져간 걸로 만족하게나. 그거, 다섯 번 정도 읽으면 더는 못 쓸 테니까 명심하고.”
“뭐가 그리 급하지? 아지지야의 온갖 비공개 서고들을 들락거리던 당신의 지식은 세상에 큰 도움이 될 텐데.”
“교활한 엘프 마법사 양반, 내가 원하는 걸 잘 알고 있군. 하지만 사양하지. 내가 오늘치 건망증을 아직 다 안 앓았거든. 감이 안 좋아, 감이.”
니코스는 양탄자의 방향을 돌려 저 멀리 어딘가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데스피나는 그를 붙잡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저 망나니 기사로 안 되면, 니코스로 좀 더 이익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강제로 붙들 걸 그랬나 봅니다.”
한 수행원의 말에 데스피나는 고개를 저었다.
“최강의 주술사야. 무리는 하지 말자고. 이 도서관이 있는 한, 또 기회가 있겠지.”
그때 에드워드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방금 니코스 그 행동 좀 의심스러운데.”
“뭐?”
“문제가 터지기 전에 떠나겠다는 게 아니라, 드러나기 전에 떠나야겠다는 조급함이었어.”
“그걸 어떻게 알지?”
가스 밸브 열어두고 집을 나왔다는 식의, 익숙한 다급함이었으니까.
콰과과광!
에드워드가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심하던 중, 갑자기 아지지야 도서관 한구석이 붉게 빛났다. 그러더니 새로운 불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조금 전의 불길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었다. 불기둥은 수직으로 날아오르다 못해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 수행원이 비명을 질렀다.
“제3서고와 연구동이!”
가르달은 자기 수염을 붙들었다.
“내가 그쪽 원리는 잘 모르지만, 꼴을 보아하니, 니코스 녀석이 문 하나를 잘못 연 것 같소.”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는 데스피나를 본 에드워드는 다시 중얼거렸다.
“저기 중요한 거 있었나 보네. 당신 연구실? 그럴 줄 알았어.”
베로니카는 얼굴을 찡그렸다.
“이래서 그 미친 주술사 새끼랑 엮이면 안 된다니까. 내가 말했잖아.”
다행히 제3서고는 최저 수준의 장서량을 가진 곳이었고, 교수 연구실이 더 많았다. 서책의 영구소실 등 치명적인 피해는 거의 없었다. 물론 마법사들의 연구실에서 사라진 건 별개. 그중에서도 데스피나의 연구실은 유독 피해가 심했다.
“물론 폰티아에도 연구실이 하나 더 있긴 한데, 아지지야 연구실도 꽤 중요했다는군.”
“이곳은 특이한 도서관이니까.”
에드워드가 전해준 정보에 베로니카는 쓴웃음을 지었다.
“뭘 연구했는지는 몰라도, 안 됐네.”
“빛의 진영에 불이익이 되는 일일까?”
“몰라. 확언은 못 해. 마법사들은 빛이나 어둠을 위해 연구하는 게 아니라, 자기 흥미 본위로 연구하니까.”
“그렇군.”
“왜? 신경 쓰여?”
“악마와 지옥을 보고 왔더니.”
그리고 지옥에 떨어진 영혼들을 보고 왔더니. 에드워드는 그 말은 꺼내지 않았다. 베로니카는 웃어버렸다.
“희극이 때때로 지옥을 묘사하는 이유 중 하나가 너한테 닥친 것 같은데?”
지옥은 가지 말자는 메시지.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미녀 악마들만 버글거리면 또 모르겠다만.”
“듀라한 찰리 같은 소릴 하네.”
에드워드는 고개를 옆으로 크게 기울였다. 까딱.
“물론 거기 네 모습이 있으니까 달려간 거긴 한데.”
“그쯤 해라?”
슬슬 면역이 생긴 모양이었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일행이 머문 방을 나갔다.
그리고는 다음 약속 장소로 향했다. 옛 무기와 전승에 대해 잘 아는 마법사 중 하나. 투리치에서 오크에 대해 문의했던 마법사와 달리, 그는 좀 까칠한 편이었다. 지옥에 갔다 오면서 서고 하나를 불태운 사람을 곱게 보지는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먼저 온 손님인 스텔라는 꽤나 귀찮은 종자였다.
“너 여기서 뭐하냐?”
에드워드가 스텔라를 향해 묻자, 그녀는 어색하게 웃었다.
“데스피나 씨나 기사님이나 무슨 옛날 검들의 기록을 보고 왔다니까, 무슨 이야기가 배경에 있을지 궁금해서요.”
“그럼 나나 데스피나한테 직접 묻지, 여긴 왜 왔어?”
“댁과 같은 이유겠지. 남들에게 알리고 싶지는 않은 것.”
교수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곡을 찔린 스텔라는 딴청을 피웠다.
“정보는 앞서나갈수록 좋은 거라.”
양쪽 모두 기웃거릴 수 있지 않을까 했다는 이야기다. 에드워드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굳이 이야기가 듣고 싶다면, 침실에서 진하게 해보는 건 어때?”
“에이, 기사님 지갑 사정 뻔히 아는데.”
스텔라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탈출했다. 에드워드는 교수를 돌아봤다.
“이쪽 마법사들로서 저쪽 마법사들을 본 소감이 어떻습니까?”
“흥미롭긴 하군요. 이곳 학생들은 서로 칼부림 안 하느냐는 질문이 제일 인상적이었지요. 그곳 대학생들은 서로 칼부림하냐고 물으니까 대답을 못하던데.”
“여긴 안 합니까?”
“젊은 사람들 혈기가 넘치는 거야 만국 공통이겠지만, 서쪽 학풍은 좀 더 과격한 것 같군요. 하긴, 우리는 에미르의 후원과 명령이 절대적이니까.”
교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학풍의 마법사는 권력자에게도 나름 뻗대겠지요.”
“이쪽은 안 그렇습니까?”
“에미르한테 잘못 보이면 도서관 출입 금지라서요.”
도서관을 가진 권력자. 물론 도서관에 얽힌 게 에미르만은 아니지만, 그의 거부권은 가장 강력하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권력은 독점에서 나오는군.”
“그래서, 물어보실 거란 건?”
에드워드는 잠시 주변을 살피다, 열쇠검 손잡이를 잡으며 말했다.
“이 검의 진짜 모습이라는 걸 기록을 봤는데, 언어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모습도 희미했지만.”
“했지만?”
“문장 하나는 봤습니다. 얇고 날카로운 다섯 개의 꽃잎을 가진, 흰색 꽃이었는데.”
“역사 속 고대 왕국의 문장 중 하나같습니다만.”
“그 왕국에서 여자를 직접 베어 죽인 걸로 유명한 왕이 있습니까?”
“몇 명 있지요. 그리고 그 검들 대부분은 행방불명인데. 쥐고 계신 검이 그중 하나라는 겁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교수는 천천히 열쇠검을 살펴보더니 말했다.
“가장 의심이 가는 건…….”
* * *
에드워드는 헬레나를 끌고 와 도청하려던 스텔라를 진압했다. 스텔라는 커다란 물통을 머리에 이고 복도에 섰다.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거기 서 있어.”
“기사님! 너무해요!”
헬레나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스텔라를 보았다.
“엘프의 청력을 이용해 안 좋은 짓을 꾸미니, 벌 받는 거예요.”
“들었냐?”
“아뇨. 벽이 두꺼워서. 그리고 돌에 귀 대고 듣는 건 가르달 씨가 더 잘할걸요.”
“거짓말일지도 몰라요, 기사님! 확인해 봐요!”
스텔라가 물귀신 작전을 발동했지만, 에드워드는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뭐, 대단한 내용도 아니더라.”
“열쇠검의 정체를 알아내셨나요?”
“대충 후보 두셋 정도로 압축. 유력후보는 하나뿐이고. 거의 다 알아냈어. 다쉬사베스가 왜 날 도와주는지도 짐작이 가더라. 그런데 그래봤자 봉인을 푸는 법 따윈 몰라. 중요한 문제도 아니고. 사실, 지금 검의 봉인이 문제냐? 내 저주가 문제지.”
헬레나의 시선이 에드워드의 손을 향했다.
“그건 그렇죠.”
“뭐, 그래도 혹시 뭔가 있을까 해서 나 혼자 듣긴 했는데.”
“베로니카 양한테는 말씀 안 하시게요?”
“원래 진짜 재산목록은 아내한테도 숨기는 거야.”
에드워드는 열쇠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다음 행선지는 어디로 간대?”
“레피림 때문에 바로 여길 떠나 최단 거리로 시오니아를 향해 가야 할 필요가 있다더군요. 사막 엘프들의 영역을 가로지르자던데요?”
“또 사막이야? 겨우 문명으로 돌아온 줄 알았더니.”
에드워드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헬레나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수는 적고, 땅은 척박하고, 인간은 물론 사막 오크들과도 수시로 싸워야 하는 험한 동네라던데요. 가자마자 말썽이 터질 것 같은 예감이 들지 않나요?”
에드워드는 입을 삐죽였다.
“내 탓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