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77)
177화 사막의 방식
사막 엘프들의 천막은 항카이부의 원형 천막과 달리, 높이가 낮은 사각형 모습이었다. 양탄자를 빼곡하게 걸어놓았는데 그 숫자는 카치운네 보다 많아서 방한에 각별히 신경을 쓴 모양새였다.
연회는 남녀 자리를 가르긴 했지만, 아예 식사를 따로 한다던가 얼굴도 안 보인다던가 하지는 않았다. 때문에 에드워드는 주인 다음으로 주역 자리에 앉아, 헬레나와 베로니카를 옆에 두었다. 그는 베로니카한테 슬쩍 물어보았다.
“눈 빼고 전부 가릴 정도로 꽁꽁 싸맨다던가, 남녀는 식사도 따로 한다던가 그런 풍습을 가진 지방도 있나?”
“그런 이야기는 어디서 듣니? 앵글리아 희극?”
“소문은 있잖아.”
“훨씬 더 멀리, 멀리 가면? 없는 건 아닌데, 그것도 다 돈이잖아. 쉽지 않지.”
간단한 진실이었다. 돈이 먼저다. 게다가 햇빛과 모래 먼지를 막는 수준에서 그쳐야 할 옷이 오히려 갑갑하고 더운 수준까지 되어도 문제다.
“이곳 교회는? 사제는 안 보이는데.”
에드워드 일행이 머문 캠프는 순혈 엘프 2대 두 가족에 혼혈 세 가족이 합쳐진 대가족 정도에 불과했다. 사제나 주술사를 포함하고 있을 캠프는 아니었다. 그 대답은 카치운이 해줬다.
“근처 정주민 마을로 가서 해결하거나, 순회 사제를 기다리거나, 찾아가거나.”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베로니카도 상석이군.”
실제로 환영 연회 중반 이후에 나온 이야기들 중, 캠프의 엘프들이 베로니카한테 부탁하고자 하는 것들이 있었다. 사제의 소속이 현회든, 교황청이든, 시오니아 총대주교좌든,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전에 어디서 만든 부적이 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누가 불면증을 앓고 있는데, 조카의 기침이 멈추지 않는데 등등.
에드워드는 입안의 고기 기름기를 씻어내기 위해 차를 홀짝거렸다. 그건 다른 풀이 아니라 진짜 차였다. 멀리 오긴 했다는 걸 실감하면서 그는 중얼거렸다.
“복잡하지 않아서 좋군.”
“복잡한데?”
베로니카가 힐난하듯 말했다. 그때, 천막 안팎을 들락거리던 리안나가 에드워드한테 말했다.
“봉화가 늘었고 줄줄이 이어지고 있어요.”
“흠. 도적 떼가 몰려올 징조려나.”
에드워드의 말에, 가주인 유리바테스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통행료를 받는 놈들도 있지요.”
그렇게 소박한 짓이었으면 차라리 걱정을 안 할 것이다. 에드워드는 적의 정보에 대해 물어봤다.
“사막 오크는 그 규모가 얼마나 되는 거요?”
“늘었다 줄었다 하지만, 전쟁이라도 하는 게 아니라면 통상 수십 명 정도가 공격을 해오지요.”
“흠.”
“그것보다 큰 무리가 만들어진다면, 이미 소문이 났을 거고.”
“그런 일이 벌어지면 이곳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 거요?”
“마찬가지로 세력을 모아서 막거나, 아니면 다른 데로 떠나버리거나. 만약 우물 싸움을 한다면, 이쪽으로 지원군을 불러야지요. 그쯤 되면 매우 큰 싸움입니다.”
대충 이쪽 사람들의 생존법이 보이는 이야기였다. 에드워드는 다시 물었다.
“지원군을 보내줄 세력이 있소?”
“친구들과 친척들에게 연락하거나, 베르세바의 영주께 지원을 요청하지요.”
사막도시 베르세바. 어떤 곳인지 이야기도 못 들어봤다. 하지만 그건 나중에 직접 봐도 된다. 에드워드는 오크들 쪽 정보에 집중했다.
“교역로를 보호해 주는 건 영주님이시고?”
“다양한 일을 하시죠.”
그야 당연한 말이었다. 영주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짧은 정보 교환 후, 에드워드는 자신이 보고 온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야 했다. 사막 엘프들의 관심은 유독 아르데니아에 집중되었다.
“데스피나 님은 유명한 분이죠. 폰티아 분들 이야기는 가끔 듣는답니다. 하지만 아르데니아 분을 뵙는 건 처음이군요.”
“아르데니아는 어떤 도시입니까?”
“아르데니아에는 어떤 부족들이 살고 있습니까?”
에드워드가 만티코어를 잡고, 아르데니아의 올리브 씨앗을 받은 일에는 짧은 관심과 호응만이 지나갔다. 에드워드는 아르데니아와 앵글리아의 관계를 대충 설명한 이후로는 더 할 말이 없어서, 실제 시민인 헬레나가 대화를 주로 이어가게 되었다.
베로니카가 적당한 핑계를 대고 일어서는 것으로, 인간과 드워프와 요정은 먼저 숙소로 갔다. 헬레나는 사막 엘프들 사이에 남았다.
“엘프들은 자기들만의 대화를 너무 자주 가져. 그것도 비밀 대화를 말이야. 우리가 자리를 떴으니 별별 소리 다 나올걸.”
드워프 가르달이 투덜거리듯 말했다.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자기들끼리만 공감하고 통하는 화제가 있다는 것 아니겠소? 엘프들 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는 인간이 뭐 말을 얹을 수가 있어야지.”
“너 평가하고 있을지도 몰라.”
베로니카가 웃으면서 말했다. 에드워드는 입을 삐죽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에 안 들기 시작했어.”
“어차피 여자들한테 매일 평가 받는 게 기사님들 아닌가요?”
스텔라의 말에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기사로서 숙녀에게 평가받는 거야 항상 있는 일이지. 그런데 엘프 남녀가 모여서…… 작당하는 건 그거랑 경우가 좀 다르지 않겠나.”
“그러고 보니, 헬레나는 데스피나와도 잠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았소.”
가르달이 말을 얹었다. 에드워드는 그를 돌아봤다.
“어떤 이야기?”
“그것까지는 내가 알 수 없소. 저 작은 집요정이랑 끼니 먹으러 가는 길이었고.”
“엘프 언니가 엘프 마법사랑 무슨 이야기를 하든, 고기가 더 중요하죠.”
리안나가 뼈에 붙은 고기를 뜯어 먹으면서 말했다. 집요정은 이와 턱이 얼얼할 때까지 질긴 고기를 뜯어댔다. 에드워드는 그 모습에 인상을 썼다.
“누가 집요정을 굶겼나 같은 주제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면 좋겠군.”
사막 엘프들은 요정 보는 눈이 있어서, 노예를 연회 자리에 앉히지는 않았다. 그래도 요정에게 원한을 살 필요는 없다고 봤는지 적당히 챙겨주긴 했다. 그런데 그 적당히 챙겨준 걸 탐욕스럽게 먹는 집요정의 모습은 오해를 부를 가능성이 없다고 못 했다.
“고기 달라고 할 때 안 주더라고는 할 거예요.”
“시도 때도 없이 고기 찾는데 그걸 내가 일일이 응해주랴?”
“기사님도 고기 자주 먹잖아요.”
“기사는 고기 먹는 게 미덕이야.”
“요정도 미덕이거든요?”
리안나가 한마디도 지지 않고 떽떽거리는 모습에 카치운이 중얼거렸다.
“슬슬 거꾸로 매달릴 때가 됐는데.”
리안나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가르달은 껄껄 웃었다.
“뭐, 험담이건 아니건 신경 쓰지 맙시다. 알아봤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어야지.”
손님맞이는 며칠을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바쁘게 떠날 길이라 에드워드 일행은 아침에 바로 출발 준비를 마쳤다. 사막 엘프들은 헬레나와 헤어지는 걸 유독 아쉬워했고, 그녀가 사양함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선물을 안겼다. 에드워드는 한 낙타 위에 잔뜩 얹힌 옷감과 잡동사니를 보고 웃어버렸다.
“누굴 제일 반가워하는지 너무 투명하게 보이네.”
“그만큼 엘프 보기가 힘들다는 거겠지. 동족을 반가워하는 것이야 비슷비슷하지 않겠어?”
베로니카가 말했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별로 밝지 않은 데다 당황한 기색까지 보이는 헬레나의 모습에 의문을 가졌다.
“그런 것 치고는 분위기가 좀 이상한데.”
잠시 뒤에야 인사를 마무리하고, 헬레나는 일행의 꽁무니에 따라붙었다. 에드워드는 슬쩍 속도를 줄여서, 그녀 옆으로 말을 몰았다.
“안 피곤하냐? 몇 시간 못 잔 것 같은데.”
“이 정도는 괜찮아요.”
헬레나는 일행들이 이미 다 잠든 때에야 겨우 여자 천막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러나 그만큼 피곤해 보이지는 않았다.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곤 질문을 꺼냈다.
“뭐 곤란한 부탁이라도 받았어?”
“주로 편지에 관한 이야기였죠.”
“편지? 아르데니아 엘프들과 사막 엘프들은 서로 편지도 주고받나?”
“아뇨. 3대가 지날 시간에 이 정도 거리면, 친척이라도 연락은 뜸해지죠. 사막 엘프들이 원하는 건 교류 재개더군요.”
“그래? 집요한 청혼자들이랬으니, 신랑감과 신붓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려나?”
“네.”
엘프가 부족하니까. 에드워드는 피식 웃어버렸다.
“너도 청혼 좀 받았나 보네?”
“아뇨. 저 부족은 신붓감이 아니라 신랑감이 부족하다네요. 가주의 적령기 아들들은 다들 폰티아 등 다른 엘프 도시에 용병으로 가서 신붓감을 찾아본다더군요.”
“아, 그럼 그거군. 다리 좀 놓아 달라.”
“네.”
“팔자에도 없던 중매쟁이 노릇이라.”
“혼혈은 캠프의 일원이지, 부족의 일원으로 인정이 안 되는 모양이더라고요. 족장은 순혈에서만 선출할 수 있다던가.”
아르데니아도 꽤 폐쇄적인 혈연관계를 구축하고, 각종 혜택으로 순혈 엘프 혈통을 유지하고 있긴 했다. 엘프들에게 그건 중요한 문제였다. 엘프가 심한 수명 차이를 극복하고 다른 종족과 섞이기란 쉽지 않았다.
“개나 고양이는 잡종이 더 튼튼하다고 하는데 말이야.”
“개는 개와 붙고, 고양이는 고양이와 붙죠. 인간과 엘프는 가까워 보여도 멀어요. 인간은 엘프를 곁에 뒀다고 생각하겠지만, 엘프한테는 다르게 느껴지죠.”
“내 이야기인가?”
“엘프를 시종으로 두고 싶어 하는 인간들 이야기예요.”
“흠. 난 어떤 것 같아?”
헬레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다시 말을 붙였다.
“어제 걔들이랑 내 이야기 안 했어?”
“약간요.”
헬레나는 거짓말을 안 한다. 하긴 했다는 뜻이다. 에드워드는 호기심이 들었다.
“주로 무슨 대화였어?”
“엘프와 같이 다니는 인간의 자격.”
에드워드와 헬레나는 서로의 가치를 증명하기로 했었다. 서로 대충 수습된 뒤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이야기였지만. 에드워드는 자신의 가슴팍을 가리켰다.
“내게 뭐가 부족한 것 같냐?”
“저주를 풀기 위한 모든 것?”
“흠. 네 생각이야?”
“그들도 일부 동의했어요.”
“사막 엘프들이 인간 감정의 전문가야?”
“어느 정도는요. 사막 엘프들이 데리고 다니는 혼혈들은, 대개 인간 부족과의 정략결혼을 나눈 결과더군요.”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에드워드는 헬레나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걔들이 난 뭐라고 평했어?”
헬레나는 에드워드를 흘겨보았다.
“밤을 보내도, 잘 싸우는 전사밖에 못 얻을 거라더군요.”
에드워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신랄한 평이군.”
둘의 대화는 거기서 끊겼다. 다만 에드워드는 도로 헬레나 곁을 떠나지는 않았다. 둘이 동시에 천천히 속도를 높여 대열 중간쯤까지 돌아왔을 뿐.
점심때쯤 선두보다 더 앞서 정찰을 나갔던 카치운이 달려왔다. 그는 에드워드 앞에서 말의 고삐를 잡아 방향을 돌리며 말했다.
“우리보다 앞서간 대상 무리를 발견했소.”
“전에 본 대상들이오?”
“아니, 다른 얼굴들이오. 그런데 사막 오크들과 싸우고 있더군. 어떻게 하시겠소? 그들끼리 싸우게 내버려 두고 우회할까?”
헬레나는 대답 대신 글레이브를 고쳐 쥐었다. 에드워드는 열쇠검을 뽑았다.
“다른 길도 마땅찮은데, 뭘. 전사답게 놀아드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