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 물귀신 경고
사막의 바위산으로 접어들어 협곡을 통과해야 도달하는 사막 도시 베르세바. 사암 바위산을 깎아 만든, 모래색의 도시였다. 큰 건물은 10층 건물을 연상케 하는 무지막지한 높이를 자랑했다. 척 보기에도 시장과 병영과 교회를 제대로 갖춘 큰 도시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뜨내기가 좀 많은 것 같은데.”
에드워드의 감상이었다. 협곡의 길은 좁지만, 최전선에서 시오니아까지 최단 경로를 찾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통과해야 하는 초입 도시 중 하나.
“다들 물건 거래를 하러 온 건가 보군.”
엘프 도시라고 하지만, 엘프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도시의 몇몇 구역은 아예 그냥 텅 비었다. 일부는 경비병이 폐쇄했고, 일부는 여행자들이 아무 데나 들어가 숙식을 해결했다. 숙박비 조로 비싼 물가를 뒤집어쓰고.
“여기 물가 너무 비싼데요!”
리안나가 비명을 지르듯 말했다. 에드워드는 밴시가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가격목록을 듣고 중얼거렸다.
“중계 무역으로 먹고사는 곳 치고는 좀 그렇긴 하군.”
니카노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세바는 그 지리적 특성상 엘프족 내전의 영향을 적게 받았지만, 안 받은 건 아니었소. 빈자리 중 일부는 폐쇄했고, 일부는 방치되었지.”
“그래도 제자리는 지키셨군. 아르데니아는 아예 내전 때문에 도망친 엘프들이 만든 도시였는데.”
“도망친 게 아니라 작전상 후퇴였어요.”
헬레나가 태클을 걸었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혹시 ‘뒤로 돌아 돌격’이라는 말도 있는 건 아니겠지?”
“안 좋은 방법으로 비꼬는 데 재능을 드러내지는 마시죠.”
낄낄 웃던 에드워드는 문득 엘프들의 시선을 느꼈다. 주류인 갈색 피부의 사막 엘프들부터 드문드문 보이는 흰 피부의 엘프들까지. 처음엔 군주의 아들과 동행하니 쏟아지는 당연한 시선인가 했는데, 유독 헬레나한테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니카노르는 에드워드를 만나러 왔다는 듯 말했고, 실제로 니카노르의 옆에서 말을 모는 건 헬레나가 아니었다.
에드워드는 슬쩍 니카노르를 떠보았다.
“인기가 많으신 것 같은데? 아니면 후계자의 여자 엘프 손님이란 게 꽤 특별한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건가?”
니카노르는 피식 웃었다.
“떠들기 좋아하는 거야 사람들의 특성 아니겠소?”
남자와 여자가 같이 서 있는 것만으로, 그들을 소재 삼아 로맨스를 몇 편 만드는 사람들은 널렸다는 뜻이다. 에드워드는 입을 삐죽였다.
“내가 보기엔 두 가지요. 댁의 옆자리가 초유의 화젯거리거나, 먼 데서 온 엘프 여자 자체가 이곳 사람들에게 중요하거나.”
“앵글리아에서는 기사 양성 과정에서 점술도 가르치오?”
“베레스포드 공작님은 그런 거 기웃거리는 후보생한테 두 시간짜리 설교를 끼얹곤 하셨지. 대화를 핑계 삼아 적진을 살피는 기술은 가르치셨지만.”
“말에 뼈가 있군.”
니카노르는 헬레나를 돌아보았다.
“다들 생존이 절박한 상황이다 보니, 오래전에 교류가 끊긴 동족을 볼수록 더 큰 관심이 가지요. 불편하시다면 대신 사과드리겠소.”
“뭔지 알 것 같군요. 신경 쓰지 마시죠.”
헬레나가 대답했다. 그 말에 에드워드는 처음 만났던 사막 엘프 일가를 떠올렸다. 교류할 동족을 찾고 있으며, 딸들의 신랑감을 찾고 있다던 가족. 기억을 더듬어 간신히 그의 이름을 떠올렸다.
“유리바테스를 알고 있소?”
에드워드는 그 일가의 가장 이름을 꺼내 보았다. 니카노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아들들 중 하나가 내 아버지의 궁정에서 종사로 일하고 있소.”
대충 정보가 어디로 흘러갔는지 알 것 같은 답변이었다. 에드워드는 입을 삐죽였다.
“신나서 달려가 보고할 일이라. 인망이 있긴 있으시군.”
에드워드 일행이 안내된 곳은 궁정이었다. 마찬가지로 사암을 깎아 만든 건물인데, 단순히 군주의 거주지가 아니라 행정청으로써의 역할도 맡기 때문에 높이보다는 넓이에 더 중점을 둔 건축물이었다.
숙소는 궁정 외벽에 붙은 영빈관으로 니카노르의 처소와 가까운 쪽이었다. 어쨌든 에드워드 일행은 니카노르한테 ‘초대’받은 것이므로, 빈 건물에 들어가서 지낼 수는 없었다.
저녁에 이어진 환영 연회는 좀 더 노골적이었다. 군주가 직접 나오지는 않았고 주최자는 니카노르인 소규모 연회였지만, 사막 엘프들은 에드워드나 베로니카한테 관심이 적었다. 가식적이라고까지 느껴지는 의례적인 질문 몇 가지 뒤에는, 헬레나한테로 관심이 옮겨갔다.
엘프들만의 ‘비밀 대화’는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베로니카는 대충 감을 잡았다.
“널 헬레나의 길잡이 취급하고 있네. 엘프니까 가능한 시각인지도.”
“길잡이?”
“엘프의 긴 생애에 비하면, 넌 어차피 곧 죽거든. 그래서 엘프는 인간과의 사이에 뭔 일이 있었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가 원래 있긴 있는데, 여긴 좀 더…… 그런 게 있네.”
“그런 거?”
“너 따위는 안중에 없단 말이지. 넌 그냥 헬레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인간 하나. 네가 죽고 난 뒤에, 자유롭게 된 헬레나가 자기들 도시에 어떤 이익이 되어주지 않을까 거기에만 정신이 쏠려 있어.”
“웃기네. 내가 앵글리아나 아르데니아 쪽에 돌아가서 죽으면 어쩌려고?”
“거기까진 생각 안 하겠지. 아르데니아 쪽과 교류를 원한다면, 오히려 그걸 바랄지도 모르고.”
베로니카는 쓰게 웃었다.
“인간이건 엘프건, 빛이 들어오는 작은 구멍만 보고 사니까. 이들은 정치적 중심지와 영적 중심지를 실낱처럼 유지하고 있으니.”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물끄러미 봤다.
“엘프까지 싸잡아서 진리로 후려치는 이단심문관이라.”
“누굴 오만의 화신으로 만들고 있니?”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베로니카의 도끼날 시선을 회피했다. 그는 사막 엘프들에게 둘러싸인 헬레나로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헬레나의 행보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소동물조종에 돌피부와 지옥불발톱 주술의 오거라. 오거야 널렸지만, 그런 주술을 다 부리는 놈은 여기서도 보기 힘들지요.”
“아브멜렉 동쪽의 고대 피라미드라고요? 보통이 아닌 곳을 다녀오셨군요! 거기서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며 수백의 미라와 싸우시다니!”
“아지지야의 ‘빵을 찾는 미치광이’ 마법사? 그곳을 탐색하러 간 엘프들은 한 번씩 봤지요. 왜곡된 공간에서 별을 부리는 자라 하던데, 그자를 어떻게 죽인 겁니까?”
헬레나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그, 그냥 뒤로 살짝살짝 걸어가서 글레이브로 내리쳤는데요? 그게 그리 대단한 일인가요?”
“보통은 놈이 먼저 사람을 발견해서 달려오거든요.”
에드워드는 입을 살짝 벌렸다.
“아, 그 미치광이. 헬레나한테 죽었나?”
“응. 알아?”
베로니카가 묻자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볼일이 많아서 무시했지만.”
에드워드는 주술사 니코스가 착란 주술을 걸어 레피림과 서로 싸움 붙였다는 설명을 짧게 요약했다. 그 마법사는 니코스의 주술이나 레피림의 공격에 후유증을 앓던 중, 헬레나를 포함한 일행을 만난 모양이었다. 한 엘프는 조금 더 성급했다.
“그럼 기사와 전사로서 서로 증명은 끝난 것 아닌지요?”
헬레나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얼른 에드워드랑 밤 지내고 헤어지면 되지 않느냐는 이야기처럼 들릴 여지가 있는 말이었다. 에드워드한테도 그렇게 들렸으니까.
“그 문제는 제가 결정할 일 같군요.”
헬레나는 그 말만 했다. 베로니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엘프들이래봤자 시답잖은 이야기들만 오가겠네. 난 먼저 들어간다? 좀 쉬어야겠어.”
“나도 곧 들어가지.”
에드워드는 짧게 대답한 다음 술잔을 비웠다. 근래 듣거나 보는 ‘엘프들끼리 하는 대화’는 심통이 나는 이야기라, 자리를 곱게 떠나주고 싶지 않았다.
엘프들이 점점 타 종족에게 ‘눈치’를 줄 때쯤, 에드워드를 포함한 나머지 일행들이 그런 시선을 신경 쓰지 않거나 고의로 뭉갤 때쯤. 에드워드는 연회장 밖 복도가 부산해지는 걸 눈치챘다. 병사 한둘이 뛰어다니고, 그들의 소식이 관료들에게 전해지고, 불안감이 출렁거리는 느낌.
“왕궁은 다 똑같군.”
“그게 무슨 뜻이오?”
가르달이 묻자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연회 중에 안 좋은 소식이 오면, 연회장에는 그게 당장 안 들어오거든.”
그제야 가르달은 뭔가 눈치챈 듯 혀를 찼다. 헬레나의 일거수일투족에 정신이 팔려 있던 엘프들도 마찬가지였다. 한 관료가 니카노르에게 다가가 뭐라고 속삭이는 순간, 엘프들의 대화가 멈췄다.
니카노르는 에드워드한테 시선을 돌렸다.
“당신이 나서야 할 일이 닥친 것 같소.”
“벌인 놈이 해결하라, 같은 일이오?”
“아니, 당신에게 우리가 부탁할 일이오.”
에드워드는 앉은 채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뭐, 이야기나 들어봅시다.”
조건을 제시하란 뜻이었다. 니카노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면서 사막의 우물들을 봤을 거요. 깊은 건 300말레트가 넘지요.”
“말레트가 몇 피트인데?”
에드워드의 말에 구석에서 닭발을 뜯던 밴시 리안나가 대답했다.
“1피트랑 대충 비슷해요.”
300피트. 대충 90m. 에드워드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게 그리 깊은 거였나.”
“지하수를 퍼 올리는 거니까.”
니카노르가 대답했다. 그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다음 말했다.
“그런데 역사가 오래된 우물들은 꼭 안 좋은 전설이나 내력이 하나씩 있기 마련이지. 아무래도 이번엔 그게 말썽을 부린 것 같소.”
“지하수의 악마라도 나오나?”
“지하수는 맑은 것이라 악마 따위 볼 일 없소. 그 반대지. 더러운 게 우물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거요. 아니면 그 어둠에 뭔가가 깃들거나.”
에드워드는 바로 문제를 파악했다. 니카노르가 말하는 ‘더러운 것’이 우물에 개입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요?”
니카노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고나 사건으로 우물에 빠져 죽은 사람, 또는 누군가 수작을 부린 물을 마시고 죽은 사람의 원령 같은 부류를 아시오?”
실수로 빠지는 놈, 전투 중에 빠지는 놈, 도망친답시고 몸을 날린 게 하필 그곳인 놈, 그냥 자살하려고 뛰어드는 놈 등등. 자의가 아니라 타의라면, 죽여서 우물에 던지는 예도 있다. 우물 안이 아니라 그 주변에서도 가끔 죽음이 돌아다닌다. 누군가 독을 탄 물을 마시거나, 갈증에 시달리다 갑자기 많은 우물물을 마셔 죽은 사람들.
“짚이는 게 너무 많아서 말을 못 하겠는데.”
에드워드의 말에 니카노르는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설명을 추가하려는 순간, 아까 전의 관료가 다시 나타났다. 그는 사색이 된 표정으로 자신의 상관에게 달려가, 뭔가를 더 속삭였다. 니카노르의 얼굴도 안 좋아졌다.
에드워드는 헬레나를 돌아봤다.
“그러고 보니, 너도 첫 만남 때 우물에서 죽을 뻔했지?”
“앙베르 백작령의 지하 우물 말이군요. 익사할 상황은 아니었지만, 매우 차가운 물이었죠.”
니카노르는 둘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거에 끼어들지도 못할 만큼 생각에 빠졌다. 잠시 뒤, 그는 밴시 리안나를 보았다.
“밴시라는 것에 대해 많이 듣지는 못했소만, 그녀도 물가의 요정이지 않소?”
“집요정이기는 한데, 빨래 전문이니까.”
에드워드가 대답하자, 니카노르는 바로 결단을 내렸다.
“미안하지만, 잠시 당신 노예를 구속해야겠소.”
툭. 리안나는 먹던 닭발을 떨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