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80)
180화 물귀신 소동 (1)
“밴시는 억울해요!”
리안나는 감옥 창살을 붙잡고 비명을 질렀다. 궁정을 이리저리 도망 다니며, 잡힐 것 같으면 울음으로 사람들을 기절시키던 그녀는 끝내 올가미에 사로잡혔다. 그녀를 막 지하감옥에 집어넣은 사막 엘프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웬만한 고양이나 원숭이만큼 잡기 힘든 꼬맹이군요.”
“근위병들이 어쩌다 고양이나 원숭이를 쫓아다니슈?”
에드워드의 질문에 근위병들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군주님의 애완동물이 탈출하면…….”
“아, 그렇겠군.”
에드워드는 낄낄 웃어버렸다. 리안나는 창살을 붙잡은 채 에드워드에게 항의했다.
“전 노예잖아요! 기사님 재산! 그런데 왜 기사님이 저 안 지켜줘요?! 왜 저 여기 갇히게 내버려 둬요? 기사님 손해잖아요!”
“여기 대빵은 군주와 그 아들이고, 내 권리가 아무리 정당해도 그들의 비상조치에 항의하긴 어려워. 뭐, 무혐의를 증명하면 풀어준다고 약속은 받았어.”
“검사가 유죄를 증명해야지, 피고가 무죄를 증명해야 하는 게 어느 동네 법인가요!”
“너 언제 그런 거 배웠냐?”
“이단심문관님도 법관이잖아요!”
에드워드는 고향 속담을 떠올렸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하지만 사막 엘프들은 좀 다르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쟤 요정 맞습니까? 요정치고는 좀 영악한데요.”
많이 닳았음. 에드워드는 대답 대신 웃어버렸다. 헬레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베르세바의 영향권 내 곳곳에서, 물귀신이나 그것과 비슷한 요정들이 출몰하고 있다더군요. 대개는 사람을 해치는 종류래요.”
“밴시는 사람을 안 해쳐요!”
“해치는 밴시가 나타났대.”
리안나는 창살을 붙잡은 채로 고개를 크게 기울였다. 눈을 몇 번 깜빡인 그녀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전 안 해쳤는데요?!”
“너 말고 또 있대.”
“밴시가 여기 또 있어요? 어느 동네의 미친 밴시야?!”
자기 존재를 깎아내리는 듯한 발언이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헬레나가 마저 설명했다.
“정확히는 밴시로 불리고 있는 정체불명의 괴물이야. 성인 여성의 모습인데, 소름 끼치게 울부짖으며, 사막혹멧돼지가 이끄는 전차를 타고, 고블린들을 부하로 부린다나 봐.”
“밴시 주제에 너무 세!”
“그리고 반투명한 몸체를 가진 유령 같은 모습이라고…….”
“밴시 아니네! 그게 어딜 봐서 밴시예요!”
리안나가 발광하기 시작했다. 베로니카는 그 모습을 안쓰럽게 보면서 말했다.
“듀라한 찰리 때 일 기억나? 전승에 대한 이야기 말이야.”
“그게 왜?”
에드워드가 묻자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흔히 알려진 듀라한은 진짜 듀라한의 모방품인 언데드라고 했잖아. 기억 좀 해라. 여하튼, 그 예와 비슷해. 전승은 차용되거나 왜곡되거나 변형되어 전파되기도 하거든. 그게 악마의 손이건, 인간의 손이건. 문제의 가짜 밴시도 아마 그런 부류일 거야.”
“흠. 문제 될 정도인가?”
“문제가 이미 되긴 했네. 우리 밴시까지 의심을 사버렸으니.”
리안나는 감옥 바닥에 누운 채 데굴데굴 굴렀다.
“억울해! 억울해! 그게 진짜 밴시여도 억울해요!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불합리해! 제가 엘프들은 다들 사고 치는 종족이라면서 묶어두면 그들도 억울해할 거잖아요! 종족 후려치기 당했어!”
헬레나는 끔찍한 심정으로 고개를 숙였고, 사막 엘프들은 별 대꾸 없이 슬금슬금 감옥을 나가버렸다. 에드워드는 데굴데굴 구르는 밴시를 보다 중얼거렸다.
“베로니카.”
“왜?”
“왕궁 감옥 밖에서 안의 죄수 보던 감각이 이거하고 비슷하냐?”
“……애 꺼내줄 생각이나 해.”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문제가 된 우물이 몇 개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둘은 아닐 거야. 그 영역을 전부 순회할 수는 없어. 시간을 너무 쓰게 되거든.”
“이게 레피림의 수작질일 가능성도 있을까요?”
헬레나가 묻자, 에드워드는 얼굴을 찌푸렸다.
“확신은 못 해. 사막 엘프들은 나한테 뒤집어씌워서 다 해결케 하고 싶은 모양이지만.”
“물귀신들이 한 군데 다 모여 준다면 좋겠군요.”
“우물 간 거리 때문에 그러지는 못하지. 게다가 한 군데 다 모여도 일망타진이 가능할 거란 근거는 없잖아.”
에드워드는 화염저항마법의 반지가 있는 가슴팍을 엄지로 가리켰다.
“지금 내 장비로는, 불이라면 어떻게든 대처가 되지만, 물은 막을 방법이 많지 않아.”
가르달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일단 가짜 밴시부터 잡아보는 게 어떻소? 일단 우리 밴시는 풀어줘야지.”
“우리 일만 해결하고 가겠다는 인상을 줘도 되려나?”
“물귀신들이 난리치는 게 우리 탓이라고 확정이 난 것도 아닌데, 뭘. 연회 때도 오히려 우리에게 사례를 하네 마네 그러지 않았소?”
“사례 받아놓고 하나만 처리하면 뒷말 나올 것 같지 않소?”
“정 걱정된다면, 가는 길에 몇 놈 더 때려잡아주면 되지.”
“가르달 아저씨, 다음에 빨래 공짜로 해드릴게요!”
리안나가 희망의 빛을 본 것처럼 소리쳤다. 에드워드는 짧은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게 합시다.”
* * *
결론부터 말하자면, 에드워드 일행은 그들만으로 출격하지 못했다. 사막 엘프들이 보기에, 이런 부류의 사건은 책임소재를 따져 그 원인을 해결사 삼는 것보다는,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해결하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니카노르는 3층 건물 높이의 ‘물의 거인’을 보고 말했다.
“인간 영웅은 저런 걸 상대하는 게 더 낫지 않겠소?”
에드워드는 한껏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어주었다. 투구 덕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표정을 짐작한 니카노르는 웃어버렸다.
“일단 첫 번째 문제는 내가 해결하겠소. 여기는 베르세바 코앞이니. 이놈 다음에 잡아야 할 것이 짐승형 괴수라는데, 그때 당신의 힘을 빌려야 할 것 같소. 만티코어도 잡은 에드워드 경이라면…….”
“그러시던가.”
바르세바 밖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물귀신’은, 사암의 도시에서 하루도 안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이미 수많은 사막 엘프가 놈을 포위한 채 자기들의 무기를 퍼붓고 있었다. 공격수단은 다양했는데, 마른 모래로 채운 주머니를 던지는 게 제일 흔했다.
거인의 몸속으로 던져진 모래주머니는 그 안의 소용돌이를 따라 떠다니다 곧 거인의 발 근처에 내던져졌다. 물을 가득 먹어서 엄청난 무게를 한 채. 어떤 것은 족쇄처럼 계속 거인의 발 안을 맴돌았다.
“소금을 쓰자는 사람도 있었는데, 소금물로 만들어봤자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았소.”
“소금? 누가 들으면 지렁이나 민달팽이라도 잡는 줄 알겠네.”
“어쨌든, 큰 수고를 들여야 겨우 하나 잡는 게 현실이오.”
물의 거인은 경기병들을 피해 달아나다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다. 에드워드는 주변을 둘러보다 말했다.
“여긴 우물이 안 보이는데, 쟤는 어디서 나온 거요?”
“여기와는 거리가 좀 있소.”
“거길 나와서 도시까지 접근한 거요?”
“그런 것 같소. 뭐, 지금은 다른 곳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다른 곳?”
에드워드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의 거인을 살펴보았다. 우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베르세바를 향하는 것도 아니다. 거인의 주변을 맴도는 경기병들에 의해 방향이 결정되지도 않았다.
“어쨌든 다행스러운 일이지.”
니카노르는 검을 뽑아 들었다. 희미한 파란빛이 검 끝에 맺혔다. 마법 무기였다. 그 순간, 물의 거인은 한쪽 다리가 무너지면서 균형을 잃고 모래 위로 쓰러졌다.
겨우 움직임을 막는 데 성공하자, 엘프 기병들은 굶주린 낙타를 놈에게 들이밀었다. 낙타들이 물을 한껏 들이마시기 시작하자 거인의 크기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에드워드는 낙타들이 물을 마시기 시작하면 한 번에 수십 리터씩 마신다는 사실을 새삼 눈으로 확인했다.
결정타는 니카노르의 몫이었다. 그는 크기가 대폭 줄어든 거인을 향해 달려갔다. 거인은 마지막 발악으로 주먹을 들어 내려쳤지만, 니카노르는 그걸 가볍게 피한 다음 놈의 가슴팍을 마법검으로 내리쳤다. 퍽! 칼로 물 베기를 하는 묘한 광경이었지만, 거인의 몸은 순순히 박살나 물벼락으로 떨어졌다. 베르세바 병사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간신히, 하나 처리했군.”
니카노르는 겸연쩍다는 듯이 말했다. 환성 속에서 한 사막 엘프 장교가 헬레나에게 말을 붙였다.
“니카노르님의 기지가 대단하지 않습니까? 굶주린 낙타도, 모래주머니도, 다 저분이 그 짧은 시간에 떠올린 구상이셨죠.”
헬레나는 논평하지 않고 침묵했다. 에드워드는 이죽거렸다.
“난 낙타 1기로 웬만한 적 부대는 죄다 전멸시키고 외계인까지 잡던 사람들 너무 많이 봐서 이 정도로는 놀라지도 않아.”
엘프 장교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낙타 1기요? 앵글리아의 기사들 이야기입니까?”
“자세히는 모르는데, 문구점 앞만 가면 모여 있었지.”
“문구점?”
혼란에 빠진 엘프를 냅두고 에드워드는 나머지 일행한테로 돌아갔다. 베로니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앵글리아에 낙타가 어딨어?”
“앵글리아 이야기는 아니었어.”
헬레나는 거인의 잔해를 아직도 들이마시는 낙타들을 보고 말했다.
“기상천외한 수법을 쓰는 사람이 에드워드 경 말고도 또 있군요.”
“저 수법 두 번은 못 쓸걸. 굶주리고 목마른 낙타가 매번 준비되어 있을 리가 없어. 당장 다음 전투부터가 이렇게 안 풀릴걸.”
“그렇겠군요.”
“근데 내가 기상천외했어?”
“그랬죠. 어떤 의미에서는 안심이네요. 그런 사람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란 게.”
“뭔 의미야?”
헬레나는 대답 없이 에드워드를 한번 훑어본 다음, 먼저 말을 몰아갔다. 에드워드는 뚱한 표정을 지었고, 가르달이 그 뒤로 따라 붙어 말했다.
“인간은 빠져야겠소. 내가 물어보지 뭐.”
“십중팔구는 또 드워프 종족에 대한 매도를 듣고 격침되실 것 같은데?”
“에이, 이젠 적응했소.”
드워프는 그 말만 남기고 엘프를 따라잡았다. 헬레나는 일부러 가르달에게 눈길도 안 주고 앞만 봤다. 그리고 드워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잘 생겼고, 명문가 엘프에, 군주 자리도 지키고 있고, 싸움도 머리 굴리는 것도 제법 하는 놈. 웬만한 엘프 여자라면 이미 넘어갔을 것 같은데.”
“드워프가 엘프들 기준도 아시나요?”
“뭐, 아르데니아는 몰라도 이 동네 엘프들은 알겠더라고. 그 인기 만발 엘프 왕자님이 너한테 관심을 주는 이유가 뭘까?”
“벚나무 씨족의 이름은 여기서도 유효하더군요. 3대 전 늙은이들은 아직 기억해요.”
“명문가끼리 혼사라도 맺어서 교류를 확대하면 어떻겠느냐, 뭐 그런 제안이라도 받았나?”
“서로 보자마자 결혼 이야기부터 꺼내나요? 백 년은 더 이른 이야기에요.”
“그럼 백 년 이른 시점에 적절한 이야기는 나왔어?”
헬레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르달은 껄껄 웃었다.
“나왔군. 거기에 대답을 안 했구만?”
“네. 에드워드 경과의 계약이 끝나면 도시에 와주지 않겠냐고 탐색을 걸었는데, 고려해보겠다는 답도 안 나오더군요.”
가르달은 약간 뒤쪽에서 따라오는 에드워드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
“에드워드 경이 들으면 기분 좋아 하겠구만.”
“그 꼴이 보기 싫어서 거리를 두는 거지만요.”
“왜? 얼마 전까지는 서로 신체 접촉도 허용하는 등 분위기 좋더만. 낯선 동족들 앞에서 인간에 허술한 모습을 보이긴 싫나?”
헬레나는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잊고 있었던 건데 말이죠. 서로의 가치를 증명하자는 이야기는 슬슬 몬스터 잡기 경쟁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유야무야된 듯한데, 서로 등을 맡길 전사로는 좋은 관계가 된 듯하지만, 가장 뜨거운 연심을 걸고 마음을 열기에는 뭔가 좀…….”
“까탈스럽구먼.”
“가장 최근엔, 베로니카 양 문제도 있고요.”
“뭐야. 여자들끼리의 눈치 싸움인가?”
“욕정이 아니라 진심을 보고 싶죠. 그게 베로니카 양을 향한 것이든, 저를 향한 것이든.”
“흠.”
“그게 없다면, 제가 엘프들끼리의 교류를 망설일 필요가 없죠.”
“중요한 문제인가?”
“인간을 따라가 본 엘프들은 다들 강렬한 경험을 원하기 마련이죠.”
처음에 ‘한낱 인간인 네가 날 안든, 말든,’이라던 태도에 비하면 방향이 바뀌긴 했다. 가르달은 껄껄 웃었다.
“엘프들은 묘한 데서 기벽이 있다던데, 넌 유부남 취향의 기벽인지도 모르겠다.”
“닥쳐요, 결혼과는 산맥의 높이와 해협의 깊이만큼 거리가 있는 드워프 주제에.”
“아, 난 사업이 바빠서 미룬 거야!”
“검은머리 흰머리 될 때까지 미루게요?”
“내 마누라가 될 드워프는 세상 제일 미녀일 거다!”
드워프와 엘프가 인간들에게도 들릴 만큼 목소리를 높여 투닥거리기 시작하자, 에드워드는 입을 삐죽였다.
“적응은 개뿔.”
엘프와 드워프의 막말 싸움은, 켈피를 불러낸 사막 오크 주술사들과 만날 때까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