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81)
181화 물귀신 소동(2)
켈피. 말머리 괴물. 자세한 기원이나 생태는 불명. 순하고 아름다운 말의 모습을 하고, 그 등에 사람을 태운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호수에 놀러 갔다가, 사람이 탈수록 말의 등이 늘어나는 것을 눈치채고 도망친 한 명만 빼고 모두 잡아먹힌 잔해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말대가리라니, 안 좋은 추억이 돋기 시작했다.”
“추억이라고 할 만큼 오래된 일도 아니지만.”
에드워드와 베로니카가 차례대로 말했다. 아름다운 말의 모습을 한다는 건 뜬소문인지, 아니면 지금은 위장의 필요가 없어서인지, 켈피는 파란색 피부에 긴 송곳니를 드러낸 모습으로 설치고 있었다.
베로니카가 중얼거렸다.
“악랄한 것으로 유명하긴 한데, 여기까지 흘러올 괴물은 아닌데…….”
“그럼 저것도 밴시처럼 가짜야?”
“아니, 진짜 같아.”
“별일이 다 있군.”
“그러니 엘프들도 고전하는 거겠지.”
사막 엘프들은 낯선 괴물을 상대로 상당히 고전했다. 등허리가 무지막지하게 늘어나는 괴물에, 사막 오크 주술사에, 소부대까지.
“거대한 뱀 괴물을 상대하는 기분인데…….”
니카노르가 말했다. 분명, 지금 켈피의 모습은 거대한 뱀 괴물과 비슷했다. 그러나 뚜렷한 파훼법이 보이질 않았다. 등허리가 마구 늘어나는 뱀은 없었으니까.
“뱀 괴물은 보통 머리통을 공격하는 게 정석이지. 으깨거나, 베거나, 어디 못 박아버리거나.”
베로니카가 말했다. 에드워드는 감탄하듯 말했다.
“잘 아네. 교회에서 뱀 잡는 법 가르쳐 주냐?”
“악마가 뱀 모양으로 나타난다는 이야기가 흔하잖니.”
베로니카가 대답하는 순간, 가르달이 구불텅구불텅 움직이는 켈피 옆구리에 도끼날을 박아 넣었다.
쿠웅!
그리고 당연히 도끼를 붙잡은 채 끌려갔다.
“으어어어어어!”
“시서펜트 때 당해봤으면 그 짓은 또 하지 않아야죠!”
헬레나가 면박을 주면서 도끼자루를 걷어찼다. 도끼날이 뽑히면서 가르달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는 바로 벌떡 일어서 항변했다.
“저건 시서펜트보다 훨씬 작잖아!”
“드워프는 더 작아요!”
“네 신장도 줄여주랴?!”
투닥거리는 엘프와 드워프를 보던 에드워드는 카치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켈피가 분홍색이면 딱 긴 소시지 꼴인데.”
카치운과 그 주변의 사막 엘프들은 기침하기 시작했다. 니카노르도 어이없다는 듯 웃어버렸다.
“이상한 방향으로 대범하시군.”
베로니카는 이마를 짚었다.
“좀 진지해지자, 응?”
카치운은 어렵게 말했다.
“썩은 소시지로 보이기 시작하긴 했소.”
사실, 가르달만 겪는 낭패는 아니었다. 자꾸 길어지는 옆구리는 무방비했다. 미끈하고 탱탱했다. 때로는 약점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 곳부터 찔러보는 습관을 가진 전사들은 그곳에 화살을 꽂고 칼질을 해댔다. 그러나 분명 피가 흐르긴 했지만, 효과는 적었다.
에드워드는 빈정거렸다.
“법률과 소시지는 만들어지는 과정을 안 보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했지.”
“그거 명언이네. 지금 꺼낼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서, 소시지 제조 공정상 네가 추천하는 방법은?”
“진짜 약점이면 저렇게 무방비하게 노출시키질 않겠지. 아마 별 의미 없는 공간이지 않을까.”
“의미 없는 공간이라. 하긴 괴물이니.”
에드워드는 조물주가 켈피 만들 때 깜빡 졸아 허리에 살 대신 물을 채운 거 아니냐는 식의 농담까지 꺼내려다 말았다. 사제 앞에서 꺼낼 농담은 아니니까.
켈피는 사막 엘프들의 진형을 헤집어놓고 자신의 등허리를 그 한복판에 내던져놓았다. 어지러워진 진형을 향해 오크들이 공세를 벌이자 사막 엘프들은 점차 밀려나기 시작했다. 아직은 사격전이 이어지고 있지만, 곧 틈이 만들어지고 오크들이 돌격해올 장면이 눈에 훤했다.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 네가 나서야겠네.”
“내 전문분야는 괴물 잡기가 아니라니까, 꼭 이런 일만 맡겨.”
에드워드가 투덜거렸다. 가르달의 덜미를 붙잡고 대열로 복귀한 헬레나는 그 말에 반응했다.
“괴물 잡을 때마다 항상 그 소리시네요. 그럼 전문분야가 뭔데요?”
“말에 탄 사람 잡는 거.”
“잘됐네요. 괴물 때려잡고 나면 상대방은 다 그런 놈들뿐이니.”
사막 오크들 역시 유목 생활을 하는지라 경기병이 주력. 에드워드는 얼굴을 찌푸렸다.
“경기병은 항상 쉽게 달아나기 때문에 일찍 싸우면 안 돼. 쟤들이 지칠 때가 최적의 타이밍이지. 전에도 봤잖아. 대상 덮치던 놈들.”
“그래서, 계속 기다릴 거예요?”
“사실, 가능하면 놈들이 돌격할 때까지 기다리고 싶긴 한데.”
니카노르가 바로 끼어들었다.
“그때는 오히려 켈피를 해치우는 데 방해가 끼어들거나, 이겨도 오크들 한복판에 남을 가능성이 있소.”
“맞받아칠 자신 없소?”
도발적인 말이었다. 그러나 니카노르는 흥분하지 않았다. 그는 침착하게 말했다.
“중요한 건 괴물이지, 오크가 아니오. 그걸 명심해 줬으면 좋겠소. 이 싸움에 조건이 필요하다면, 말해보시오.”
“말들은 낙타를 무서워한다던데, 오크 기병을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는 없소?”
니카노르는 고개를 저었다.
“이곳 말들은 낙타에 웬만큼 익숙해서 안 될 거요. 당신네 짐마차 뒤에 따라붙은 낙타들도 별일 없잖소.”
낙타기병은 기병 상대로 강하더라는 전설이 있긴 하지만, 실제론 그리 편리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할 수 없군. 다른 건 필요 없으니, 나중에 우리 애나 풀어주쇼. 그리고, 헬레나.”
“네?”
“결정타는 네 몫으로. 대가리를 노려.”
“당신은요?”
“열쇠검으로 저 자식 아가리를 어떻게든 막아봐야지. 가르달.”
“명령만 하쇼.”
“저 상한 소시지, 뱀보다 더 유연하고 앞뒤도 없이 막 움직이지? 정면에서 막아도 분명 몸체로 날 후려칠 거요. 그거 막으쇼. 도끼 말고 방패로.”
“쳐내면 되나?”
“땅에 뒤꿈치 박는 거 잊지 말고.”
“좋소!”
“카치운?”
“뭐요?”
“오크 주술사 새끼들 감시하쇼. 혹시 외부에서 끼어드려는 미친 오크놈이 있으면 바로 저격해 버리고.”
“그건 사막 엘프들도 할 텐데.”
“걔들은 눈이 너무 여기저기로 돌아. 댁보다 믿을 놈은 없어.”
카치운은 웃어버렸다.
“하긴. 전담해서 보호해드리지.”
에드워드는 스텔라를 돌아보았다.
“넌 처음에 한 발 쏘고 빠져.”
“어, 왜요?”
“물귀신들과 싸울 때 벼락 쓰면 나까지 감전되는 것 말고 방법이 있겠냐?”
“아, 그렇겠네요.”
“척척석사면 좀 알아들어라.”
“기사님, 밉다!”
“대신 제일 센 거 써.”
“괜찮겠어요? 시약값이 있는데.”
에드워드는 씹어뱉듯 말했다.
“얕잡아 보이는 것보다는 낫지.”
누구한테 얕잡아 보이는 걸 걱정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사막 엘프인지, 사막 오크인지. 그러나 다들 들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시작해요?”
스텔라의 물음에 에드워드는 바로 켈피를 향해 시선을 못 박았다. 놈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에드워드는 검을 뽑았다.
“지금!”
* * *
베로니카는 후방지원으로 카치운 근처에 남았다. 니카노르는 그녀의 곁에 붙으며 말했다.
“조금 더 물러서시죠. 위험하니까.”
“사제의 축복은 때가 중요해서요.”
사막 엘프들은 마법사와 사제를 준비했고, 오크들은 주술사를 준비했다. 엘프 중에 주술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 순찰대 무리엔 없다. 사제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도가 높아졌다.
“지금 오크 주술사들은 켈피를 조종하느라 정신없는 모양이지만, 싸움이 끝난 다음에는 또 다른 수작을 부리겠죠. 켈피를 불러올 정도면 그다음엔 뭐가 나오더라도 이상할 게 없…….”
“에드워드 경이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시는군요.”
니카노르의 말에 베로니카는 그를 흘겨봤다.
“저 정도에 지거나 죽을 놈이면 진즉 끝났겠죠.”
“어떤 의미에서는, 높은 신뢰도군요. 싸움은 언제나 결과를 모르는 법이라고 하는데.”
싸움은 항상 도박. 잘 나가던 기사도 어린애가 던진 돌에 죽지 말란 법이 없다. 아무렇게 날아오던 바윗덩이에 곤죽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가능성은 낮은 일이다. 하지만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는 일이기도 하다.
베로니카는 에드워드가 그렇게 죽을 거라는 상상이 잘 안 갔다. 그녀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이걸 신뢰라고 해야 할지…….”
“신뢰죠.”
니카노르는 웃으면서 말했다.
“헬레나 양이 에드워드 경을 따라다니는 이유도 그걸까요? 승리를 약속하는 기사라는, 좀 고전적인 서사 말입니다.”
“신경 쓰이시나요? 전투 중에 그런 것까지 확인해보시게?”
“베르세바의 제안을 고려해 보겠다는, 의례적인 말조차 쉽게 장담하질 못하는 모습은 좀 충격적이었거든요.”
“전투에 집중하시죠.”
“어차피 교착상태라, 지금은 에드워드 경의 승부를 기다릴 뿐입니다.”
터어엉!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깃덩이가 쇠를 후려치는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가르달은 간신히 데굴데굴 구르지 않았다.
“막았다!”
“계속 그렇게 막아요! 한 번만 더 굴러버리면 술통으로 불러줄 테니까!”
“이 상하 불균형 엘프년이?!”
드워프가 악다구니를 쓰는 사이, 에드워드는 켈피의 입에 처박은 열쇠검을 뒤틀었다.
“아르데니아 때 나무들처럼 해버리자고! 확 뒤틀어버리게!”
“아르데니아 때가 뭔데요?! 전 모르거든요?!”
스텔라가 소리쳤다. 에드워드는 짜증을 담아 소리쳤다.
“비서 할 거면 고용주 업적은 좀 외워라! 만티코어 잡을 때 말이야!”
“만티코어라고 말씀하셔야죠!”
그러나 에드워드의 의도와 달리, 켈피의 면상은 질겼다. 뒤틀린 빨랫감 꼴이 되고도 죽질 않고 오히려 성내는 켈피의 모습에 에드워드는 다시 화를 냈다.
“이거 면상만 말 대가리네! 완전히 다른 생물이잖아!”
헬레나가 다시 끼어들었다.
“그대로 꼬아버리게요? 고정은 어떻게 시켜요?”
소란스러운 와중에, 켈피는 다시 몸부림을 쳤다. 놈의 몸이 더 늘어나는 것을 본 에드워드는 혀를 찼다.
“전진을 막아도 등허리를 더 길게 뽑아낼 수 있나 본데?”
“성가신 놈이군! 이러다 전장이 죄다 이놈의 몸통으로 꽉 차고 말겠소!”
가르달이 소리쳤다. 그건 과장이 아니었다. 기껏 흐트러진 엘프 진형에 오크들이 바로 돌격하지 못하는 이유는 켈피의 몸통이 장애물로도 작용하기 때문이었다. 한 번 뽑혀 나온 등허리는 움직이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려서, 끄트머리와는 상당한 시간차를 두고서야 움직였다.
에드워드는 놈의 몸통에 난 큰 상처들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공기나 물을 채워 넣는 것 같은데, 왜 새어 나오지도 않지?”
“나오긴 나와요. 약간의 피가 물과 공기와 함께 조금 나오다 멈추더군요.”
헬레나가 말했다. 하지만 별로 도움이 되는 정보는 아니었다. 가르달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갈수록 가벼워지긴 하는데, 그래도 여전히 묵직하오. 공기나 물만으로는 힘들 것 같은데.”
“잡으면 해부라도 해봐야 하나.”
그때 켈피가 다시 몸을 크게 움직였다. 베로니카는 아차 하며 외쳤다.
“조심해! 놈이 활발해진다!”
길게 뽑혀 나온 채 축 늘어져 있던 몸통이 갑자기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드워프 가르달은 끝내 데굴데굴 굴러버렸다. 다행히도 그에게만 닥친 재앙은 아니었다. 근처의 엘프와 오크들까지 죄다 얻어맞거나 깔리면서 비명을 질러댔으니까.
“멍청한 오크 주술사 놈들! 조종 실패잖아! 무작정 늘리기만 하더니!”
베로니카는 오크 주술사들을 규탄한 다음,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하는 켈피 몸통 무더기 속에서 간신히 에드워드를 찾았다. 에드워드는 여전히 놈의 아가리에 열쇠검을 때려 박은 상태였지만, 오른팔과 그 상반신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몸통에 파묻혀버렸다.
“에드, 헬레나 양은?! 방금 네 옆에 있었잖아!”
“어, 그게 말이야. 좀 민망한 상태가 되었는데.”
“뭐?”
에드워드는 차갑고 축축한 켈피 몸통 속에서, 말도 못 하게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각을 느꼈다.
몰캉.
문제는 그게 하필 그의 허벅지쯤이었다는 것이다. 뒤늦게 헬레나가 몸통 무더기 밖으로 고개를 내밀면서, 베로니카는 그녀의 위치를 확인했다. 카치운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서로 높이가 달라졌군. 그래도 질식은 간신히 피한 것 같은데. 다만, 저 자세면…….”
“말하지 마요. 민망하니까, 전투 중이라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베로니카는 이마를 짚었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허벅지에 가슴을 올리고, 명치쯤에 얼굴을 파묻은 헬레나를 밀쳐내지도 못한 채 중얼거렸다.
“불가항력이거든?”
“이해는, 하니까, 얼른 이 켈피 놈이나 끝장내요!”
헬레나가 날선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에드워드의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아니, 내가 어떻게든 묶어두는 사이에 네가 글레이브로 내리치기로 했잖아. 지금 이 상태에서 내가 대치 외에 뭘 할 수 있는데?”
“잡아 뜯어버리면 되잖아요! 왼손은 놀아요?!”
“아니, 잠깐! 야! 움직이면 이상한 데 닿는다?!”
니카노르는 베로니카를 돌아봤다.
“수난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 인간 기사이긴 한가 보군요.”
베로니카는 변명을 못 했다. 그녀는 간신히 도망친 스텔라를 돌아봤다.
“다 감전시켜버려도 좋으니까, 날려버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