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82)
182화 물귀신 소동 (3)
켈피를 상대하는 에드워드한테 다행인 점이 몇 있었는데, 그중 두 가지는 승부를 가를 결정적인 것이었다. 하나는 켈피 등허리에 깔리고 낀 게 에드워드와 헬레나뿐만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가 감전에서 회복이 빠르단 것이었다.
“어머나. 제일 약하게 쏘긴 했는데. 이것도 성인의 저주 덕분일까요?”
스텔라가 오늘 날씨 참 맑다는 투로 말했다. 에드워드는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손끝은 마비되지 않았고, 다른 신체 부위의 마비도 손목 아래부터 천천히 풀렸으니.
에드워드는 아직 굳어있던 켈피의 몸통을 열쇠검과 왼손으로 찢어발기며, 자신과 헬레나를 겨우 해방시켰다. 그는 비틀어놓은 걸레짝 같은 켈피를 보고 중얼거렸다.
“하, 이게 정답이었네. 고무마냥 질긴 놈이면, 굳혀서 찢어야 하는 거였어. 번개 직후에 칼로 찍어야 하는 거였네.”
“고무가 뭔데요?”
“그런 게 있어.”
켈피는 찢겨나간 상태에서도 앞발을 움직이고 이빨을 딱딱 부딪치는 등, 살아있는 것에 대한 증오를 불태우는 괴물이었다. 에드워드는 놈의 주둥이에 얽힌 열쇠검을 몇 번 더 들어 비틀어, 대가리를 떼어냈다. 절단면에서 미량의 붉은 피가 섞인, 젤리 같은 체액이 왈칵 쏟아져 나오자 에드워드는 얼굴을 찌푸렸다.
“진짜 겉모습만 말이네, 이거.”
에드워드는 아직 땅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헬레나의 상태를 곁눈질로 한번 봐준 다음, 사막 오크들로 시선을 돌렸다. 사방에 널린 켈피의 몸통 너머, 오크 주술사들이 보였다.
“기세를 살려 돌격할 수 있나?”
해답은 가르달이 찾았다. 그는 켈피 몸통을 도끼로 내리찍어 온전한 절단면을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혀를 차며 말했다.
“안 되겠군. 일정 길이마다 격벽이 있어서, 한 곳을 잘라봤자 내용물이 다 나오지도 않아. 이 이상한 체액이랑 공기 말이오.”
“단번에 다 치울 수 없단 말이지? 할 수 없군.”
이래서야 천연장애물과 마찬가지였다. 에드워드는 니카노르를 돌아봤다.
“환호 안 하쇼?”
“뭐?”
“괴물이 쓰러지면 환호를 해줘야, 저 새끼들도 ‘아, 우리가 좆됐구나’하고 물러설 거 아뇨?”
“아아.”
그제야 니카노르는 박수를 쳤다. 그의 부관들도 뒤늦게 분위기를 잡기 시작했다. 그들은 검을 들어 올리고 병사들 앞을 달리며 소리를 높였다. 카치운은 애꿎은 엘프 하나를 붙잡아 달려와서는, 에드워드를 자신들의 어깨 위로 올려 목말 태웠다.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공갈도 손발이 맞아야 친다니까.”
어쨌든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 켈피가 쓰러지는 걸 본 사막 오크들은 슬금슬금 물러서기 시작했다. 더 이상의 전투는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투는 빠르게 종결되었고, 오크들은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 * *
“저 따지고 보면 1등 공신 아니에요? 왜 제가 벌을 받아야 하는데요?!”
스텔라는 캠프 앞에서 무릎 꿇은 채 양손을 들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그녀 앞에 서서 말했다.
“네 고용주가 누구지?”
“기사님이죠!”
“일행의 유사시 전술적 판단의 권한을 갖고 있는 사람은?”
“기사님이죠!”
“네 마법의 표적을 지정할 권한을 갖고 그 시약값을 대주는 사람은?”
“어…… 기사님이죠?”
그제야 스텔라는 에드워드의 시선을 회피했다. 에드워드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나랑 헬레나한테 번개 왜 쐈냐?”
“에이, 켈피한테 쓴 거죠. 그리고 사제님 명령도 제가 무시할 게 못 되잖아요. 더군다나 두 분이 전투 불능인 상황에…….”
“진짜 전투 불능이면 내가 먼저 명령을 내렸지?”
“그야…… 그렇죠?”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 식사 나올 때까지 그러고 있어. 그리고 내일 아침에 물 네가 떠 와.”
“기사님 너무하신다! 더하기 빼기 해서 청산하시죠!”
“안 돼.”
스텔라를 징벌한 다음, 에드워드는 헬레나가 누운 천막으로 향했다. 그는 천막 입구에 앉은 가르달을 발견했다.
“뭐야, 엘프 병문안 오셨나?”
“사제 아가씨 부탁이오. 당분간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데.”
“베로니카? 걔가 여기 들어갔어?”
에드워드가 천막 안을 기웃거리는 순간, 가르달이 그를 막아섰다.
“여자의 부탁이니 이해합시다. 여자들끼리 할 이야기도 있겠지, 뭐.”
“흠.”
에드워드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가르달을 향해 말했다.
“내가 비켜달라면 어쩌겠소?”
가르달은 두말없이 비켰다. 그는 천막 안을 향해 소리쳤다.
“난 밥 먹으러 갈 거요!”
훌륭한 책임회피였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고는 뒤이어 말했다.
“들어가도 돼?”
“들어와.”
베로니카의 목소리였다. 다행히 화난 목소리는 아니었다. 에드워드는 바로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좁은 천막이라 침대 둘이면 꽉 찰 지경이었지만, 침대는 하나뿐이었고 높이는 그럭저럭 나왔다. 간이침대 위에는 헬레나가 누워 있었고, 그 옆에는 베로니카가 서 있었다.
“나 막을 생각이면 가르달에게 부탁하지는 마.”
“굳이 막을 생각도 없었어. 어차피 이야기는 대충 끝났고.”
“무슨 이야기? 스텔라의 번개?”
“그 이야기를 먼저 하긴 했지.”
헬레나도 입을 열었다.
“전투 중엔 있을 법한 일이고, 결과적으로 잘 됐으니 그 건은 더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어요.”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다행이네. 몸 상태는 좀 어때?”
“약간의 마비와 근경련 정도요. 엘프 기준으로 그리 긴 생애는 아니지만, 번개를 맞는 건 처음이네요.”
헬레나는 에드워드를 흘겨봤다.
“드문 경험이긴 해요.”
“내 탓 아니잖아?”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돌아봤다. 붉은 옷의 이단심문관은 시선을 회피했다.
“일단 나와 헬레나 양은 이야기 끝냈고…….”
“뭔 이야기?”
“……그런 게 있어!”
베로니카가 억지로 대화를 끊어버리자 헬레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드물고 강렬한 경험이긴 했지만, 다시 겪고 싶지는 않군요.”
“하긴. 나도 실수로 너 잡아버릴까 봐 등골이 좀 서늘했어.”
벼락 맞고 근경련이 오는 와중에, 에드워드가 실수로 헬레나의 신체 일부를 붙잡기라도 했다간, 그녀는 최소 중상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헬레나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바깥 상황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죠?”
“얘기 안 해줬나? 후속 지원부대를 기다리면서 오크 포로들을 심문하는 중이야.”
“포로요?”
“멍청하게 켈피 아래 깔려 있던 놈이 몇 있었거든. 뭐, 곱게 죽여주는 대가로 정보를 얻는다나.”
“쉽게 진술할지 의문이군요.”
오크들은 쉽게 포로로 잡히지도 않는다. 노예로 일하지도 않는다. 오크 포로를 노예로 써도 될 만큼, 죽음을 무릅쓴 반항마저 불가능한 노동 현장은 몇 안 되었다.
“사막 엘프들은 나름의 노하우가 있는 모양이지. 하긴, 인간들 사이에서도 오크의 눈을 뽑아버린 뒤에 노잡이로 쓴 수전노 선주들 이야기가 종종 돌지.”
베로니카의 말이었다. 에드워드는 흥미를 보였다.
“그럴싸한데?”
“제대로 성공했는지 어떤지, 후일담은 못 들었지만. 오크 노예 자체가 매물이 적잖아.”
“흠. 사막 엘프들은 어떨까.”
“그보다, 사막 엘프들은 이제 어떻게 하기로 했대요?”
헬레나가 에드워드의 생각을 끊었다. 에드워드는 뒤엉킨 생각을 짧게 정리하고는 바로 말했다.
“아직 결정된 게 없어. 정보를 취합 중이거든. 물의 거인과 켈피는 베르세바에서 가장 가깝고, 중대한 위협이라 최우선사항이었을 뿐이래.”
“고블린을 부린다는 가짜 밴시 쪽은 어때요?”
“고블린 부대 주제에 잡다한 도구들을 많이 쓴다나 보더군. 우선순위가 그쪽으로 결정 나면 좋긴 하겠어. 우리 밴시 좀 꺼내게.”
다음날 아침, 캠프에서 밴시 리안나의 목소리가 울렸다.
“드디어 게으름의 대가를 치르고 있나요, 잉크 먹은 날백수!”
“이 잿물 냄새나는 꼬맹이! 너 어떻게 감옥에서 나왔어?!”
“물항아리 그렇게 이면 목뼈에 골병들 거예요!”
“그럼 네가 들어!”
“싫어요!”
스텔라와 티격태격하는 밴시의 목소리에 에드워드는 인상을 쓰며 텐트 밖으로 나왔다. 낙타가 아니라 전령의 말에, 안장 뒤에 실려서 온 리안나는 에드워드를 보자마자 손을 흔들었다.
“기사님! 저 풀려났어요!”
사막 엘프 전령은 단호했다.
“풀려난 게 아니라, 이곳에 나타난 밴시와 비교해보라고 데려온 거요. 군주님께서는 물의 거인과 켈피가 처단당했다는 소식에 깊이 안도하시고 여유를 되찾으셨소.”
에드워드는 웃어버렸다. 리안나는 말에서 뛰어내렸다.
“어쨌든 풀려난 거죠!”
“좀 더 갇혀 있었어도 괜찮았을 텐데. 아니면 자력으로 쇼생크 탈출을 하던가.”
“쇼생크가 뭔데요?”
“그런 감옥이 있어.”
“탈옥으로 이름 높나 봐요?”
“탈옥은 탈옥인데, 백만장자가 되어서 탈옥했지.”
“와! 그런 감옥이면 저도 들어가 보고 싶은데요!”
“돈 쥐여 주고 내보내는 감옥이 아닌데. 그리고 그 주인공은 19년 동안 갇혀 있었어.”
“19년만 고생하면 되나요?”
에드워드는 순간 말을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밴시는 불로불사. 그는 설명을 수정했다.
“대신 간수부터 죄수까지 전부 악당들로 버글거릴 거야.”
“끔찍해요?”
“끔찍하지.”
“하나하나가 기사님이랑 같은 수준인가 봐요?”
밴시는 발목을 잡혀 거꾸로 들렸다. 꽥꽥 소리를 질러대던 밴시를 본 베로니카는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하녀가 돌아왔네.”
“사제님! 기사님 좀 말려주세요!”
잠깐의 소동 끝에, 밴시 앞에는 켈피 가죽이 놓였다. 쭈글쭈글한 뱀허물 같았다. 리안나는 일행을 돌아봤다.
“모양새는 전리품이 아니라 어딘가의 산업폐기물 같은데요.”
“그래도 방수는 되는 것 같더라. 쓸데없을까?”
“얇고, 질기고, 방수가 되는 건 분명 좋은 건데. 모양새가 영 아니네요. 그리고, 와, 냄새!”
리안나는 투덜거리면서 켈피 가죽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에드워드는 작게 중얼거렸다.
“쓰고 버린 콘돔 같군.”
“동물 창자로 만드는 거요?”
“비유를 해도 꼭 자기 수준에 맞는 비유를 하네.”
베로니카가 투덜거리듯 말했다. 헬레나는 아직 욱신거리는 몸 곳곳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어쨌든 다음 표적은 그 가짜 밴시가 되겠군요.”
“진짜 밴시 나가신다! 가짜의 가면을 벗겨줄 거예요! 근데 엘프 언니는 어째 요즘 싸울 때마다 환자가 되는 것 같네요? 거대 전갈 때도 그렇고.”
“누구 씨가 좀 격하게 싸우기 시작해서. 기사답다면 기사다운 거지만.”
헬레나는 에드워드를 흘겨보았다. 에드워드는 헛기침을 했다.
“뭐, 유령과 고블린 상대로 설마 고전까지야 하겠어? 켈피가 더 위험하지. 이미 고비는 넘겼다고 생각해.”
“과연 그럴까요?”
그때, 니카노르가 일행을 향해 걸어왔다.
“문제가 생겼소. 물귀신들이 한군데로 모이는 것 같다더군. 아무래도 통솔력을 가진 존재가 등장한 모양이오.”
“설마 그 가짜 밴시인가?”
“아니오. 고블린이나 끌고 다닐 정도의 통솔력으로는 무리지. 오크들을 심문한 결과, 놈들의 주술사들이 전술을 바꾼 것 같소.”
니카노르는 목소리를 낮췄다.
“어쩌면 물의 거인과 켈피는 시간 끌기에 불과했을지도 모르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