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83)
183화 밴시와 고블린 (1)
캠프는 정확히 이틀 만에 개판이 났다. 사막 엘프 정찰병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각지에서 온 유목민 전령들과 대표들이 니카노르 앞에 모여서 자신들이 본 것 또는 불만을 토로했다. 인간이건 엘프건 리자드맨이건 다 똑같았다.
“아무리 느린 소식이라도 사흘이면 웬만한 유목민 캠프마다 다 전파된다더니, 순찰대 캠프의 이동도 이미 사방에 다 알려졌군.”
에드워드가 중얼거렸다. 니카노르는 사람들 앞에서 쩔쩔매기도 했고, 심각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상황이 좋아보이진 않았다.
“대충 어느 동네가 더 급박하다, 뭐 그런 이야기요. 사막 오크들이 전술을 바꾼 건 확실하군.”
카치운의 말이었다. 말려서 길게 찢은 과일을 우물거리던 리안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떠난 줄 알았던 괴물들이 돌아왔다, 모이던 놈들이 흩어졌다, 어딘가에는 두셋이 함께 돌아다닌다. 대충 그런 이야기들이네요. 켈피가 죽으니까 흩어진 걸까요?”
에드워드는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면 니카노르가 ‘켈피는 시간끌기’라고 말하지 않았겠지. 분산이동일 가능성도 있다.”
“그게 뭔데요?”
“군대가 정해진 목적지까지 분산해서 이동하는 것. 처음부터 뭉쳐서 이동하면, 도로나 보급 등 여러 면에서 부담이 크거든.”
“어, 그러니까. 사막오크들은 켈피로 순찰대를 끌어낸 다음…….”
“적의 전력을 가늠하고 위치를 확인해 본 거겠지.”
“길의 너비는 그렇다 치고, 물귀신도 보급이 필요한가요?”
“물은 보급이 필요할지도. 뭐, 귀신이나 요정은 몰라도 오크놈들은…….”
리안나는 잠시 생각해 보다 말했다.
“물귀신들이 오크들한테 물 보급을 해주는 걸까요?”
“뭐?”
“물의 거인 같은 괴물도 있다면서요. 물귀신을 끼고 다니면 물 부족으로 고생할 일은 없지 않겠어요?”
뭔가 참신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에는 중대한 문제가 있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옆으로 크게 기울였다.
“넌 물귀신 마실 수 있냐?”
“어…….”
“난 죽기 직전이래도 못 마실 거 같은데. 물귀신 옷자락이라도 물고 다녀야 한다면 더 심할 거고.”
“그렇겠네요.”
둘의 대화를 듣던 가르달은 껄껄 웃어버렸다.
“오크 새끼들이라면 무슨 짓을 벌여도 이상할 게 없긴 한데, 그건 좀 상상이 안 가는 광경이긴 하군. 물귀신 옷자락을 물고 빨면서 행군하는 오크들이라니.”
에드워드도 낄낄 웃어버렸다.
“그렇게까지 물을 보급해야 할 필요가 있나?”
“있네, 시발.”
에드워드의 감상이었다. 가르달은 리안나에게 은화 하나를 건네줬다.
“내기는 네가 이겼다. 이 오크 같은 상상력을 가진 요정.”
“드워프 아저씨는 꼭 쓸모없는 말이 덧붙는 게 특징이래요!”
리안나는 기쁘게 은화를 받아 챙겼다. 에드워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으나 오래된 물음을 꺼냈다.
“고블린 새끼들은 대체 어떻게 늘어나는 거야?”
고블린들은 이미 ‘군대’를 이룬 상황이었다. 사막 오크들의 무리도 적지 않았지만, 고블린에 비하면 초라한 숫자였다. 그리고 놈들은 자기들 머리 위에서 민들레 꽃씨마냥 하늘하늘 흔들리는, 유령의 옷 쪼가리를 손으로 집어다 입에 넣고 우물거리고 있었다.
“그래, 고블린 새끼들은 입에 물이 들어오기만 한다면 그게 유령 옷자락이건 뭐건 상관 안 하겠지. 기발하네.”
베로니카도 헛웃음을 흘렸다. 에드워드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갑자기 원효대사 해골물 이야기 생각난다. 마음 쓰지 않으면 물은 물일뿐이라.”
아무에게도 안 들릴 소리는 아니었지만, 알아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헬레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지평선을 메울 기세인 고블린과 오크의 군대를 보고 말했다.
“고블린 따위, 아무리 많아도 고블린일 뿐이에요. 진짜 전력은 오크와 괴물들이겠죠.”
“보조전력도 숫자가 많아지면 무시는 못해. 이건 니카노르도 애 좀 먹겠군.”
베르세바의 사막 엘프 군대와 그에 맞서는 사막 오크들은 사막 여기저기에 흩어진 자기편 유목민들을 닥치는 대로 긁어모아 대치하는 구조였다. 그런데 한쪽만 보조 전력이 폭증해 버렸으니, 전력 균형이 무너진 셈이긴 했다.
“물의 거인은 너무 둔하고, 켈피는 오히려 군대에 방해가 되지. 놈들이 버릴 패를 적절하게 버렸군.”
카치운의 말이었다. 그는 적의 진형을 살펴보고는 덧붙였다.
“좌우로 둘러싸려는 포위하려는 형세군. 반대로 이쪽은 중앙돌파를 노리고 있고. 좌우에서 고블린들이 에워쌀 텐데, 뚫느냐 뚫리느냐 싸움이 되겠소.”
“놈들의 가운데 토막이 오크요?”
에드워드의 질문에 대답한 건 카치운이 아니었다. 사막 혹멧돼지 두 마리가 이끄는 전차가 정면 정중앙에 나타났다. 그걸 몰고 있는 건 성인 여성 모양의, 하얗고 반투명한 유령이었다. 그것이 끔찍한 울음소리를 통해내자 고블린들도 마주 소리를 질러댔다.
“밴시다!”
사막엘프 중 하나가 외쳤다. 리안나가 항의했다.
“저거 밴시 아니라니까요!”
그녀를 감시하던 사막 엘프 전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다르게 생겼군요.”
“그걸 꼭 봐야 아나요, 눈구멍을 단춧구멍으로 바꾼 사막 엘프!”
사막 엘프 전령은 에드워드한테로 고개를 돌렸다.
“들어도 됩니까?”
“해보슈.”
리안나는 사막 엘프의 손에 붙잡혀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렸다. 밴시 리안나는 떽떽거렸다.
“으아아아! 너무 높아요!”
낙타에 탄 엘프 기병 손에 거꾸로 들렸으니 평소보다 훨씬 높은 위치긴 했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며 손짓했고, 사막 엘프는 리안나를 도로 낙타 위에 올려놓았다. 밴시는 투덜거리면서 낙타 혹을 끌어안았다.
“우리는 병종별로 안 흩어져요?”
“왜?”
“흩어져야 기사님한테서 멀어질 것 같아서요.”
사제는 사제와 기사는 기사와 보병은 보병과 하녀와 잡부 같은 비전투원은 후미로. 보통은 그렇게 흩어져야 한다.
정석대로 해도 끼리끼리 모이기보다는 지휘관 옆에 달라붙기 마련인 마법사가 밴시의 등을 쿡 찔렀다.
“이젠 밴시가 전술도 논하니?”
“남들은 다 그렇게 하잖아요? 마법사는 뭐 전술 잘 알아요?”
“야, 밴시. 우리가 어디 있게?”
“그거야, 기병들 앞……?”
에드워드는 열쇠검을 뽑아 들었다.
“여왕 행세를 하는 새끼면 일기토도 받겠지.”
“여차하면 한꺼번에 덮쳐 족치고?”
카치운이 웃으면서 화살을 재었다. 가르달은 적의 전차에 흥미를 보였다.
“나도 저거 타면 돌격이 가능하지 않을까.”
리안나는 에드워드의 생각을 대충 읽었다.
“저 가짜 밴시만 족치게요?”
“고블린들의 통솔력을 단번에 상실시킬 수 있거든.”
“일기토에 응할까요? 하려면 진즉 했을 것 같은데.”
“아직 세상 사람들이 시도를 안 해본 게 있지.”
“뭔데요?”
“진짜 밴시.”
“네?”
에드워드는 가르달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가르달은 곧바로 전방을 향해 소리쳤다.
“거기 애쓰는 가짜 밴시! 앵글리아에서 온 진짜 밴시, 리안나가 결투를 청한다!”
가짜 밴시는 반응을 보였다.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전장을 울렸다. 베로니카도 그 모습에 흥미를 보였다.
“이거 아주 희귀한 예네. 진짜 전승과 가짜 전승의 대면과 대결이라니. 교리법무성에도 이런 자료는 거의 없을걸.”
리안나는 현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어, 기사님이 하는 거죠? 그렇죠? 그러니까, 기사님은 챔피언이잖아요? 대신 싸워주는 사람?”
에드워드는 리안나의 덜미를 붙잡아 카치운의 안장 앞에 태웠다. 우거지상이 된 밴시를 향해 허리띠 캐슬린이 속삭였다.
“떨어지지만 않으면 된대.”
“그게 뭐예요! 전 싸울 줄 몰라요! 최약체라고요! 고블린도 이길까 말까인데!”
“전에는 잘만 나대더니, 갑자기 용기가 수직 낙하했네?”
에드워드가 능글능글 웃으면서 말하자 리안나는 빽 소리를 질렀다.
“저쪽 기세가 너무 좋잖아요! 저런 걸 제가 어떻게 이겨요!”
“넌 가만히 있으면 돼.”
에드워드는 그렇게 말한 다음, 헬레나를 돌아봤다.
“일단 얘 앞세워서 달려간 다음에 말이야.”
“다음에, 뭘 할 건가요?”
“일단 내던져서 울음 대결을 시키면 뭔가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까? 거기부터 시작해 보자고.”
헬레나는 한숨을 내쉬었고 리안나는 비명을 질렀다.
“기사님, 꼭 지옥 가세요!”
“진짜 하네, 저걸.”
니카노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밴시 리안나는 카치운의 손에 의해 훌륭한 투척 무기가 되어 가짜 밴시의 혹멧돼지 전차에 작렬했다. 그녀의 울음소리는 유령에게 효과가 없었지만, 마부 고블린에게는 유효했다. 마부 고블린은 리안나와 마주한 공포로 기절해버렸고, 전차는 옆으로 쓰러져 나뒹굴었다. 가르달은 땅을 헛되이 박차는 혹멧돼지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우리 동네 산돼지 쓰면 더 재밌을 것 같은데.”
드워프다운 감상이었다.
베로니카는 에드워드를 흘겨봤다.
“흥미롭긴 한데 방법이 너무 조악하고 거칠단 생각 안 드니? 이걸 교리법무성에 어떻게 보고해? 리안나한테 미안하기만 하네”
“사실대로 보고해야지. 마부 고블린이 밴시의 돌대가리에 맞아 기절한 건지, 울음소리에 기절한 건지는 모른다고.”
“뭐니, 그게.”
헬레나도 한마디 얹었다.
“다음엔 베로니카 양과 먼저 상의해 보는 게 좋겠군요.”
“에이, 미리 말해주면 재미가 없잖아.”
짜악!
등짝 때리는 소리가 사막을 울렸다.
카치운은 나동그라진 리안나를 재빨리 회수했고, 가짜 밴시는 허공으로 날아올라 다시 울부짖었다. 이번엔 공격 명령이었고, 고블린들이 일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놈들은 조잡한 거치식 쇠뇌를 층층이 쌓은 기괴한 병기들을 들이밀어 연사해댔다.
투투투투퉁!
이에 질세라 베르세바 군대도 활의 시위를 당겼다. 니카노르는 힘껏 소리쳤다.
“숫자만 많을 뿐이다! 위력도, 속도도, 사거리도 우리가 전부 우위다! 쏴라!”
카치운과 리안나는 교차하는 화살 속을 뛰어 가까스로 진영으로 돌아왔다. 그 둘은 동시에 외쳤다.
“좀 더 빨리 쏴!”
“좀 더 빨리 쏴야죠! 화살 하나라도 더 줄이게!”
니카노르는 짧게 반박했다.
“화살받이로만 쓰여도 고블린 놈들은 할 일 다 하는 거요!”
그 말대로다. 화살은 무한정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고블린 무리는 방금 그 난리로 와해되지도 않았다.
“이번엔 내가 직접 조지지 뭐.”
에드워드의 말에 니카노르가 물었다.
“저 화살비를 뚫고?”
“화살은 무한정 안 나온다고 댁이 말했잖수. 총량을 생각해 보쇼. 누구 화살이 더 빨리 바닥이 날까.”
정답은 고블린쪽. 에드워드는 바로 투구를 눌러 쓰고는 헬레나를 향해 소리쳤다.
“달려가서 여왕만 조진다! 오크들은 맡길 테니까 알아서 해!”
“알았어요!”
고블린 무리의 조잡한 화살들이 첫 기세를 유지 못하고 힘을 잃자, 에드워드가 먼저 말을 달렸다. 니카노르는 헬레나를 향해 물었다.
“저런 막무가내 전사의 어디가 그리 마음에 드는 겁니까?”
헬레나는 글레이브를 고쳐 잡으며 대답했다.
“길들이는 재미.”
“누가 누굴?”
헬레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베로니카를 힐끗 보았다.
“여자들 이야기니 신경 끄시죠.”
헬레나는 바로 에드워드의 뒤를 따라 달렸다. 느림보 드워프 가르달은 니카노르 옆을 지나가며 말했다.
“사실 쟤 유부남 취향이오. 그러니 얼른 포기하쇼.”
헬레나는 재빨리 기수를 돌리더니 가르달을 걷어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