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85)
185화 돈은 항상 문제 (1)
전장은 넓고 고블린들의 숫자가 많았기 때문에, 많은 고블린이 진창에 빠지는 걸 피했다. 자칫 잘못하면 오크와 사막 엘프 양쪽 모두 고블린에게 맞아 죽고 끝날 판이었다.
그러나 고블린은 고블린이었다. 자기들 대장이 져버리자 이미 전의를 잃어버렸고, 진형 양측 날개에 남은 엘프 기병들이 호령과 함께 몰아붙이자 붕괴해 버렸다. 숫자는 오히려 독이 되어 자기들끼리 밟고 쓰러지는 건 물론, 남은 오크 진형까지 어지럽혔다.
오크들은 자기들 발밑과 그 옆으로 쏟아지듯 도망치는 고블린들 때문에 뭔가를 하기도 어려웠다.
전장 중앙에 남은 건 수렁에 빠진 채 천천히 움직이거나 멈춘 사람들. 거기서 제일 빠르게 움직이는 존재 중 하나는, 놀랍게도 드워프 가르달이었다. 짐승을 제외하면 전장에서 가장 무거운 존재여야 할 그는 자기 방패 위에 올라타 수렁 위를 미끄러졌다. 그는 누군가의 창으로 바닥을 헤집으며 방패를 전진시켰다.
“드워프 뱃사람이라! 이것도 나쁘진 않군!”
“뱃사람이라니, 겨우 방패 위에 올라 모래 위를 떠도는 것이?”
스텔라의 말이었다. 그녀 역시 누군가의 방패를 빌리긴 했지만, 체력의 문제로 가르달의 발목만 잡고 있었다. 가르달은 껄껄 웃으면서, 그녀의 방패와 자기 방패를 묶은 밧줄을 발뒤꿈치로 툭툭 쳤다.
“빠지는 것 위에 떠 있으면 그게 배지!”
“네, 네. 그렇다 치죠. 그나저나 어휴. 많기도 많네.”
아직 기력이 남은 몇몇 고블린들이 스텔라의 방패를 향해 천천히 발버둥을 쳤다. 여마법사는 지팡이를 휘둘러 놈들의 대가리를 깨놓았다. 빠악!
“왜 나한테는 자꾸 달려드는 건데?!”
“네 방패가 탐나나 보다.”
인간, 엘프, 오크한테는 가슴팍까지 들어가는 깊이. 그러나 고블린에게는 생사가 달린 높이였다. 작고 가벼운 종족이지만 수렁에 빠져드는 건 별 차이가 없었다.
“조르쥬 경한테 봉술 배운 거 잘 써봐라.”
“이미 쓰고 있어요! 에잇!”
“으랏차!”
가르달은 진로에 방해가 되는 고블린의 신장을 도끼로 줄여준 다음, 그 어깨 위로 방패를 몰았다. 그 둘은 한참 뒤 에드워드네 앞에 도착했다.
“여어, 상하 불균형 엘프! 꼴이 말이 아니구만! 발이 무겁지? 이 기회에 허리 아래 무게를 진흙으로 늘리면 균형이 맞지 않을까?”
“남이 못 움직일 때 꼭 비겁한 공격을 하는군요.”
속옷 차림으로 진흙이 잔뜩 묻은 헬레나가 날이 선 목소리로 말했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진흙이 피부에 좋다잖아. 보령 생각나네.”
“그게 어딘데요?”
“너도 나도 진흙 바르는 걸로 유명한 곳.”
“아아, 가끔 있지. 온천 근처 같은 데라던가.”
베로니카가 말을 얹었다. 가르달은 빈 방패나 나무판자 따윌 일행에게 던져주다, 하반신만 잠긴 남들과 달리 전신이 진흙덩어리 모양새인 밴시 리안나를 발견했다.
“네 꼴은 왜 그리 처참하냐?”
“알면서 묻지 말라요. 항상 그렇잖아요.”
밴시 리안나는 퉁명스레 답했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빈 방패 위에 올랐다. 그의 허리춤에서 풀려나온 허리띠 캐슬린이 그의 손목을 감고 끌어올렸기 때문에, 남의 도움은 필요 없었다.
“이제 남은 문제를 해결해야겠군.”
그는 옷자락을 잡아끌 듯이, 진흙 위를 손으로 훔쳤다. 그러자 얇은 진흙 이불 같은 게 끌려왔다. 반으로 잘린 물귀신이었다. 그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끄으으으! 겨우 엘프 따위에게!”
그 말에 헬레나는 인상을 쓰면서 글레이브를 한 번 더 휘둘렀다. 에드워드가 잡은 곳의 반대쪽 끝자락에 날이 명중하자 유령은 다시 비명을 질렀다.
“시끄러워.”
유령은 강력하고, 두려운 존재지만, 잡는 방법도 많다. 불, 소금, 성수, 정령 등. 유령만 잡는 데만 특화된 도구가 별로 강력한 마법 도구 취급받지를 못하는 이유는 거기 있다. 정령의 가호를 받는 아르데니아 전사는 나름대로 유령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자였다. 게다가 유령이 스스로 형태를 갖추기까지 했으니.
“앙베르 백작령의 그 꼬마 악령보다는 훨씬 쉽군요. 뭔가 설욕한 기분이네요.”
“걔는 솔직히 사연빨을 감안해도 좀 오버스펙이었어. 니코스 자식의 주문 때문에.”
에드워드는 성인의 저주를 받은 두 손으로 유령을 천 감듯 돌돌 말았다. 그의 손아귀에 말려들어간 유령은 비명을 질러댔다.
“아아악! 아악! 하지 마!”
“그거 이제 어떻게 처리할 셈이오?”
가르달이 물었다. 베로니카가 눈을 흘겼다.
“캐슬린처럼 처리하게?”
“이게 그럴 비주얼이 아니잖아?”
“이쁘기만 하면 했을 것 같다는 말처럼 들린다?”
“이쁜 게 전부는 아닌데. 그리고 캐슬린은 자업자득이고.”
“아이, 기사님도 참.”
허리띠 캐슬린이 몸을 배배 꼬자 헬레나가 중얼거렸다.
“망령 주제에 말이 많네.”
“흥! 엘프는 안 도와줄 거예요!”
“필요없어.”
에드워드는 으르렁거리는 둘을 무시하고 진흙덩어리에다 주먹을 갈겼다. 쾅!
“뭐, 어린 시절 진흙놀이로 돌아간 기분이나 좀 내봐야지.”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악령이래도 너한테 걸리면 불쌍해지더라.”
* * *
전장은 빠르게 수습되었다. 결과는 사막 엘프들의 신승. 남은 오크들은 혼란에 빠진 고블린들을 짓밟으며 맞돌격을 감행했고, 몇 번은 승기를 잡을 뻔했지만, 결국 전장을 장악하는 데 실패했다.
양익의 승패는 매우 중요한 요소였는데, 승자만이 전장 중앙에서 수렁에 빠진 양측 군대를 일방적으로 수습할 여건이 만들어지기 때문이었다.
“난 이제 퇴임하겠소!”
드워프 가르달이 외치자 깜짝 놀란 니카노르가 물었다.
“뭘?”
“신장 줄이기 협회장!”
“그건 또 뭡니까?”
수렁에 빠진 오크들 목을 치며 돌아다니던 가르달은 난생처음으로 그 작업에 진저리를 냈다. 그만큼 많은 숫자의 오크긴 했다.
진흙을 닦아내고, 겨우 몸을 가릴 천 조각을 얻은 헬레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추태를 가리는 데 도움을 받는군요. 감사드려요.”
“아니, 도움은 이쪽이 받았지요. 인상적인 활약이었습니다. 아, 옷 아래 이야기가 아니고…….”
“알아요.”
스텔라는 체력 고갈로 뻗어버렸다.
“갤리선 노잡이들이 존경스러워졌어요.”
“겨우 그거 움직이고 뻗기는. 나처럼 오크 백 마리의 목은 날리고 뻗어야지.”
가르달이 비아냥거리자 스텔라는 나름대로 항변했다.
“전 책상 앞 노동자잖아요! 왜 자꾸 육체노동을 시키는 건데!”
아직도 진흙을 닦으며 낑낑거리던 리안나는 그 말에 스텔라를 흘겨보았다.
“지 혼자 깔끔하게 놀려는 인텔리.”
“그 주둥이 계속 지하에 처박지 그랬니.”
“노동자의 목소리는 불길과 같이 치솟는 법!”
“너 그런 말 어디서 배웠어?”
베로니카는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다들 탈진과 탈수 증상을 보이긴 하지만, 사망자는 많지 않군요. 적어도 진흙에 빠져 죽은 건 없는 듯해요. 악령 놈이 피해자들을 다 빠져 죽게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 전에 에드워드와 헬레나가 이긴 것 같네요.”
니카노르는 주변을 둘러보다 말했다.
“카치운 경과 에드워드 경은?”
대답한 건 가르달이었다.
“카치운은 아직 오크들 목 따고 다니고 있소. 이번에는 별 활약을 못했으니 수급이라도 챙긴다나. 좀 보고 배워라, 마법사!”
“전 육체 노동자가 아니라니까요! 그리고 에드워드 경은 지금 진흙 잔해들 상대하시는 것 같던데.”
“이단심문관께서 정화하지 않으시고?”
베로니카가 한숨을 내쉬었다.
“영체와 괴물의 특성을 반반씩 가져간 녀석이에요. 원혼을 가진 채 죽은 게 너무 오래된 거죠. 제가 정화하는 것보다는 에드워드가 쥐어패는 게 더 빠를걸요.”
“그, 그렇긴 한데. 회개는?”
“회개는 저 말고 빛 앞에서 하는 거죠.”
“그래도 되는 거요?”
“빛과 어둠의 전쟁은 효율과 분업 안 따질 것 같나요?”
니카노르는 신학적으로 발렸다.
그때 에드워드가 진흙 한 점 안 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서코트에 습기마저 없었다. 그는 한 손에 깨끗한 물수건들을, 한 손에 진흙이 든 항아리를 들고 있었다. 그는 항아리 내용물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진흙 다 떼어내라고 하니까 되긴 되더라. 써볼 사람?”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드워드는 항아리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댄다.”
그리고 그는 땡볕 아래로 항아리를 투척했다. 미미한 비명을 지르며 날아간 항아리는 바위에 부딪혀 와장창 깨졌다. 쏟아진 진흙들은 잠시 꿈틀거리더니 잠잠해졌다.
에드워드는 깨끗한 물수건을 헬레나에게 먼저 내밀었다. 엘프 여전사는 그걸 힐끗 보았다.
“오늘은 공헌 순인가요?”
“네가 리안나 다음으로 진흙 범벅이긴 해.”
“전투보다는, 깊이 박힌 리안나를 꺼내는 과정이 지난했으니까요.”
“수습도 전투의 과정이지.”
헬레나는 더 말하지 않고 물수건을 받아들었다. 니카노르는 둘의 모습을 보고 어깨를 으쓱였다.
“이제 전리품이나 논의합시다.”
* * *
오크들의 무기는 대개 오크 사이즈에 맞추는 문제도 있고, 하나하나가 다 조잡해서 별 환영은 받지 않는다. 물론 만성 물자 부족인 사회에서 그것들이 쓸모가 없는 건 아니다. 사막 부족들은 더 했다.
온갖 무기, 식량, 가축, 물자가 신나게 분배되는 동안 베로니카는 주술사들의 부적을 살펴보았다. 카치운이 모아온 것이었다. 그는 귀걸이 자국이 많은 오크 귀를 줄에 꿰며 말했다.
“주술사 귀라고 좀 티가 나면 좋겠는데. 그래야 자랑하지.”
“이해해요. 하지만 쓸데없는 것을 남겨두지는 마요.”
베로니카는 긴 밧줄에 형형색색의 짧은 밧줄을 잔뜩 엮은 것을 들어올렸다. 에드워드가 바로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거 부적이야?”
“결승문자라는 거야. 오크들의 기록물 중 하나지.”
“뭐라고 써놓은 건데?”
“주술 주문이야.”
“좋은 건가?”
“인간이 쓰면 교리법무성이 쫓아와서 대가리를 깨놓을 거야. 태워.”
베로니카는 리안나에게 밧줄을 던져줬다. 리안나는 쪼르르 달려가 이미 많은 부적들이 타오르는 불구덩이에 그걸 던져넣었다.
“그래도 아깝네. 스텔라한테라도 주면 좋겠는데.”
“주술과 마법은 영역이 달라. 그리고 스텔라 양이 쓸까 봐 태우는 거야.”
“무슨 주문이었기에?”
“금전운 강화 기원.”
“아, 태우지 말지!”
“함부로 쓰면 안 된다니까!”
티격태격하던 둘 앞에, 한 사막엘프 전사가 다가와 주머니를 내려놓았다.
“오크들의 지휘부에서 찾은 은화와 금화입니다. 군자금인가 보더군요. 니카노르 님께서 여러분 몫으로 전달하라 하십니다.”
에드워드의 흥미는 빠르게 돌아갔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운보다는 현물. 엄지손톱 크기의
“니카노르 공이 사람 챙겨줄 줄은 아는군.”
“고블린들은 물론 적진 중앙까지 수렁에 처박은 건 여러분 공이니까요.”
사막 엘프는 덤덤하게 말했다. 에드워드는 금화 하나를 꺼내 접었다 펴보았다.
“순금이군. 좋네. 오크 새끼들, 어디서 뺏은 거…… 잠깐만. 이 금화 뭔가 이상한데.”
“네가 금화를 마다하다니, 웬일이니.”
“아니, 진짜 이상하다니까. 구석에 악마 도안 같은 게 보이는데.”
그 순간, 베로니카는 에드워드의 손에서 금화를 뺏었다. 에드워드는 기겁했다.
“야, 네 손가락 접어버릴 뻔했어! 무슨 짓이야?”
베로니카는 왼손을 내밀어 에드워드의 가슴팍을 밀친 다음, 오른손에 든 금화를 면밀히 살펴보았다. 곧 그녀는 다른 금화들도 쥐어다 살펴보더니, 가르달에게 내밀었다.
“이거 빛의 진영에서 주조된 게 아닌데?”
가르달도 그 금화를 받아 보았다. 그리고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이 금화? 쓰여진 건 경전 구절이고 도안도 빛의 상징인데, 구석에는 악마의 상징을 그려놨잖아?”
“덧붙이거나 새긴 건 아니죠?”
“전혀! 처음부터 이렇게 만든 거요. 기묘한 금화들도 다 있군.”
베로니카는 얼굴을 찌푸렸다.
“가짜 금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