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87)
187화 추적자 추가
밴시 꼬마는 물론 훌륭한 노동자다. 그러나 훌륭한 노동자가 밀고자를 겸하지 말란 법은 없다. 에드워드의 실수는, 꼬맹이의 입이 생각보다 가볍다는 데 있었다. 문제의 꼬맹이는 여자들 시간에 여자들 천막에서, 베로니카에게 달려가 자기가 들은 걸 그대로 전달했다.
“기사가 아니면 남는 게 없다?”
“무슨 뜻일까요?”
베로니카가 따라 읊고, 헬레나가 물었다. 에드워드가 밴시 앞에서 자기 속내를 다 털어놓은 건 당연히 아니었기 때문에, 여자들은 추측만 할 수밖에 없었다. 베로니카는 코웃음을 쳤다.
“돈 없으면 기사 노릇 못한다. 즉, 결국 돈이 목적이란 거려나.”
“돈은 수단이라잖아요.”
“수단과 목적이 뒤바뀌는 거야 흔한 이야기죠.”
“설령 그렇다 해도 중요한 문제긴 해요.”
“필요한 만큼은 월급 주고 있어요. 그 녀석 개인적으로도 이미 모은 돈이 꽤 있고요. 얼마 전엔 피라미드에서 고대의 보석들도 집어왔잖아요. 지금 걔가 자금난일까요?”
“유니콘 때부터는 스텔라 양 월급도 주고 있잖아요.”
헬레나의 시선이, 흥미진진하게 둘의 대화를 보던 스텔라를 향했다.
“문명으로 돌아오자마자 카드판을 가서 그렇지.”
스텔라는 잽싸게 돌아누웠다. 다행히 베로니카는 세상을 외면하기 시작한 여마법사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헬레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많은 기사들이 출세는커녕 추락하는 경제 상황 속에서 살아간다. 한평생 용병으로 살다 빈털터리로 죽는 건 예사다. 베로니카는 한참 생각해보다 말했다.
“에드워드는, 가족한테 기댈 게 없긴 하겠죠.”
“그쪽 가정사도 아시나요?”
“앵글리아 국왕한테 들을 만큼 들었죠. 삼남이고, 기사 후보생으로 떠난 이후 귀가한 적이 없다고. 재산도 물려받을 게 없다죠. 흔한 이야기예요. 하지만 어딘가에 속한 기사가 되고 싶다면 돈 이야기를 굳이 꺼낼 건 없는데. 기사가 아니면 할 게 없다? 그것도 아닌 것 같네요. 수도회에 들어가는 방법도 있으니까.”
“에드워드 경이?”
“……예를 든다면, 말이에요.”
“소속감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네요. 편력 기사에게는 있을 법한 이야기잖아요?”
“글쎄요.”
기사가 싸우기를 그만둬도 할 일이 아예 없어지는 건 아니다. 지금도 많은 기사가, 불구의 몸을 이끌고 어딘가의 조언자로 자리 잡고 있다. 참모라던가, 검술 교관이라던가, 경비원이라던가.
“차라리 그게 ‘진정한 기사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에 닿는 거라면, 녀석이 갑자기 고상해진 것이겠지만요.”
“아닐까요?”
헬레나의 물음에 베로니카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의미는 아닌 것 같네요. 오히려…… 정말 아무 것도 안 남는 인간의 이야기 같군요.”
고자질쟁이 리안나는 포상으로 받은 육포를 우물거리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게 어딨어요? 기사님은 다 때려치우고 산적으로 전업해도 잘만 재미나게 살 것 같은데.”
“그리고 교수형 당하겠지.”
“음. 그럼 안전한 기득권으로 남고 싶다는 뜻일까요?”
베로니카의 미간이 좁아졌다.
“겉으로는 그렇게 들리지. 돈 문제가 엮인 거니까.”
“겉으로는?”
“겉으로는.”
여자 천막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깬 건 헬레나였다.
“일단은 적당히 화해하시죠. 탐색을 해도 그 다음에 해야 하지 않을까요?”
“녀석이 먼저 사과하기 전에는 안 해요. 걔는 제가 제 체면만 생각하는 줄 안다니까요? 교회의 위신까지 걸린 문제인데. 걔 순례에도 영향이 가는 이야기란 말이에요. 그걸 칼 자르듯 ‘내 일이지 네 일 아니다’라니.”
리안나는 다음 육포 조각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부부싸움은 다 그러더라고요.”
그리고 리안나는 베로니카 손에 거꾸로 매달렸다. 대롱대롱 매달려 흔들리는 밴시는 계속 조잘거렸다.
“와! 사제님! 신기록 갱신 중이세요!”
“너 지금 즐기고 있지?!”
“반반! 천막 안에서는 치마 뒤집어져도 걱정할 일이 없잖아요?”
“아.”
“사제님, 역시 기사님 닮아가는 듯…….”
베로니카는 리안나를 담요 위에 내려놓고는 징계과 이단심문관들에게 전해지는 무기를 꺼냈다. 부드러운 붓.
“요정도 간지럼은 못 버티지?”
“끼야아하하하하핫! 항복! 항복!”
리안나는 괴상한 웃음소리를 흘려대기 시작했다. 자는 척하던 스텔라는 벌떡 일어났다.
“사제님, 저도 좀 해볼게요!”
“망할 인텔리! 하필 지금 그 지적 호기심을 발휘하다니!”
밴시가 비명을 질렀다. 헬레나는 자기 귀를 막은 채, 아웅다웅하는 동료들을 보다 말했다.
“밴시의 웃음도 울음만큼 끔찍하군요.”
* * *
에드워드는 전생에서도 유부남은 아니었다. 반대로 카치운은 일행의 유일한 유부남이었다. 그리고 틈만 나면 여자들한테 눈길이 가던 에드워드와 달리, 카치운은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안 줬다. 그래서 에드워드를 상대로 ‘인생 선배격’ 잔소리를 할 수 있는 건 그의 전매특허였다.
드워프는 인간이 아니고 그쪽 여성 취향은 에드워드와 격차가 크므로, 가르달의 사정은 논외.
“에드워드 경이 새 미녀를 찾겠다면 소개해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가르달이 파이프를 문 채 말하자 에드워드는 낮게 중얼거리듯 물었다.
“드워프 기준?”
“그럼 다른 기준이 있소?”
“우리 이 대화 몇 번째요? 언제까지 해야 돼?”
“에드워드 경이 드워프 기준 미녀의 진미를 알아보는 그날까지?”
“에라이.”
에드워드가 탄식하고 가르달은 껄껄 웃어버렸다. 카치운은 한숨을 내쉬는 역이었다.
“경한테 베로니카 양은 어떤 존재요?”
우회가 없는 직설적인 물음이었다. 에드워드는 어렵게 대답했다.
“유사 마누라?”
“뭐야, 그게.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맞소? 그러니 네 일이니 내 일이니 했나 싶군.”
에드워드는 입을 삐죽였다.
“정 안 들었다면 거짓말이지. 미녀고, 같이 고생도 했고, 이 순례길의 결말도 같이 볼 테니.”
“그래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소?”
“걔와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무슨 의미요?”
“일단 걔가 ‘결혼’은 생각 안 하고 있지. 금혼서약을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결혼은 고려할 옵션이 아니다 그러고. 그래서 서로 속박하지는 않는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게 유일한 옵션이지. 걔는 그쪽도 생각을 안 한다는 게 문제야.”
카치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은 결혼에 대해 계획 있소?”
“결혼은 월급쟁이 사제보다 시오니아 국왕이 앵글리아 국왕 폐하의 편지를 받고 주선해주는 여자랑 해야지. 특히 돈 많고 땅 넓은 여자.”
“돈이 문제요?”
“그게 기사들의 정석적인 출세 루트라니까?”
“그거 꼭 해야 하는 거요?”
에드워드는 입을 다물었다. 카치운은 대답을 기다리며 커피를 홀짝거렸다. 하지만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카치운이 다시 입을 열었다.
“사람은 누구나 행동 원리가 있지. 내가 보기에, 당신은 ‘그렇게 해야 한다’라는 데 사로잡힌 것 같소만.”
“무슨 의미요?”
“절대 손해 봐서는 안 된다, 후회해서는 안 된다, 날 배신한 놈은 족쳐야 한다, 많이 먹고 마셔야 한다, 돈을 벌어야 한다, 말을 타야 한다, 여자를 범해야 한다…… 당신이 움직이는 행동 원리는 항상 ‘그래야 한다’요. 그게 평범한 욕심쟁이들과 당신이 다른 거지.”
“뭘 보고 그걸 아셨수?”
“평소 언행.”
카치운은 커피에 설탕을 한 스푼 더 넣었다.
“평범한 욕심쟁이들은 ‘하고 싶다’고 하지. 거기엔 이유가 없어. 그런데 ‘해야 한다’는 다르지. 이유가 있어. 만약 해야 하는데 이유가 없다면, 그건 ‘의무’야.”
“의무에 이유가 없다고?”
“법적인 의무 말고. 심리적인. 누군가 ‘그걸 왜 그렇게 했어요?’라고 물으면, ‘몰라, 시발. 너도 내 입장이면 알게 돼.’라고 대답하는 게 의무지.”
“파하하. 뭔지 알 것 같네.”
“그런데 당신은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있군.”
에드워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만티코어 때 헬레나한테도 했던 말이다.
각이 보이면 뛰어들어야 한다.
카치운은 숟가락으로 커피를 저으며 물었다.
“기사가 아니면 아무것도 안 남는다는 말도 그 위에 있는 것 같소만?”
에드워드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내가 기사의 전형을 고집하긴 했지.”
기사의 전형은 두 가지. 숭고하거나, 과시적이거나. 에드워드는 후자였다. 카치운은 숟가락을 슬쩍 핥아 설탕물을 훔쳤다.
“당신 정도의 실력이면 좀 더 자유롭게 살아도 되는데.”
가르달은 입을 벌렸다.
“에드워드 경의 평소 행태가 자유롭게 사는 게 아니었어? 드워프 뺨치는 양반인데?”
“짚이는 거 없소?”
“어…….”
카치운의 말에 가르달은 팔짱을 낀 채 끙끙 앓다가 중얼거렸다.
“없지는 않지. 없지는 않은데, 체면 지키려고 그러는 줄 알았지.”
“비슷하지. 체면을 지키려면 강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해야 하니까. 예컨대 여자가 침대에 몰래 들어와 인사불성이 된 기사를 희롱하고 나갔다 해도, 사내가 그걸 따질 순 없잖소. 오히려 즐거운 경험 했다고 허풍을 떨어야 하지.”
에드워드는 기겁했다. 그가 언젠가 경험해봤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소금산에서 가르달이 매춘부를 그의 침대에 집어넣었던 일.
“그거 댁 합류하기 전의 일인데? 누구한테 들었어?”
“밴시.”
“이 망할 떠버리 꼬맹이!”
에드워드는 이를 갈았다. 그러나 여자 천막으로 쳐들어가는 건 미련한 짓이다. 지금 시간이면 다들 자고 있을 테니까. 카치운은 커피를 다시 홀짝였다.
“여하튼, 댁이 그러니 약간의 이득 앞에서도 못 물러서는 거지. 이번엔 그게 베로니카 양과 정면충돌을 해버린 거고.”
에드워드는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칩시다.”
“경이 사제 아가씨랑 어떤 결말을 맞이하든 내 알 바 아니지만, 결혼은 당신 말대로 사제가 아니라 다른 귀족과 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제 아가씨를 대하는 방법을 바꾸는 건 진지하게 생각해보시오. 남은 여행 내내 물주와 고용주 둘이 쌈박질이나 하는 걸 원치는 않소. 시오니아가 코앞인데.”
카치운은 커피잔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얼른 눈 붙이쇼. 내 다음 불침번은 댁이오.”
* * *
다음날 시작부터 쌈박질을 하지는 않았지만, 서먹서먹하기는 했다. 그래서 에드워드는 애꿎은 밴시를 괴롭혔다.
밴시 리안나는 유혹에 시달렸다.
“사막 고블린은 더 약할 거라니까? 저거 봐라, 갈증에 지친 저 얼굴을.”
“안 속아요! 안 넘어가요! 안 해요! 이번엔 가르달 씨도 카치운 씨도 있잖아요! 도끼를 던지든가, 화살을 쏘든가!”
밴시 리안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손은 투석용 납탄을 넣은 주머니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문제의 고블린은 바위 뒤에서 일행을 훔쳐보고 있었다. 사막 혹멧돼지도 한 마리 있었다.
잠시 뒤, 에드워드의 설득에 넘어간 밴시 리안나는 앞으로 나선 다음 나름 근엄하게 외쳤다.
“그 멧돼지를 걸고 결투를 신청한다!”
에드워드와 사막 고블린과 사막 혹멧돼지가 동시에 낄낄낄 웃어버렸다. 인간과 고블린과 사막 혹멧돼지에게 비웃음당한 밴시는 분노했다.
“다 나쁜 놈들이야!”
“재밌게 노는구만.”
카치운의 감상평이었다. 스텔라는 아예 대폭소를 했다.
“기록! 기록으로 남길 거예요! 아, 정말! 시인이 필요해!”
스텔라의 숨넘어가는 웃음소리를 배경으로 에드워드는 슬쩍 베로니카를 돌아봤다. 반응 없음. 시선 안 마주침. 헬레나가 덤덤한 목소리로 그녀 대신 말할 뿐이었다.
“그만 길을 서두르죠. 저깟 고블린은 무시하고요. 군대 행렬에 감히 무슨 짓을 하겠어요?”
니카노르와 사막 엘프들의 베르세바 군대는 이제 뿔뿔이 흩어져서 귀환 중이었고, 에드워드는 그 행렬 선두에 섞여 있었다. 당연히, 해산했어도 그 규모는 적지 않았다. 화살도 아까운 패잔병 고블린 한 마리 정도는 아무도 신경 안 쓸 수밖에.
“뭐, 그 말이 맞긴 해.”
에드워드도 쓰게 웃으면서 말의 고삐를 쥐었다.
“전에 했던 개그는 안 통하는구만.”
예전에 에드워드 일행을 기웃거리던 고블린과 달리, 그 사막 고블린은 곧바로 사라졌다.
잠시 뒤, 에드워드 일행 앞에 새로운 사건이 나타났다. 저 멀리서 나타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대로 니카노르의 군대를 향해 달려오는 것이었다. 대충 열 명 남짓. 전부 인간들이었는데, 무장의 양식은 사막 엘프들이나 현지 부족민들과 전혀 달랐다. 오히려 에드워드 쪽과 비슷했다.
눈이 좋은 사막 엘프들이 그들의 인사보다 먼저 반응했다.
“시르티카 백작령의 사람들이군. 여기서 꽤 먼 곳인데.”
니카노르가 말했다. 에드워드가 물었다.
“시르티카가 어디요?”
“시오니아 왕국 남동부에 있소. 백작이 국왕의 봉신이지.”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서 니카노르 군대를 향해 똑바로 달려오는 사람들. 볼일이 있어 일부러 찾아왔다는 증거였다. 에드워드는 니카노르에게 농을 건넸다.
“또 베르세바 일이면 우린 그만 튀겠소.”
“저런. 낭패군.”
니카노르가 느긋하게 받아쳤다. 그러나 베로니카는 느긋하지 못했다.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고는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다.
“시르티카 백작이라고?”
“어, 왜? 빚졌어?”
이번 건 에드워드가 어렵게 쥐어짜 낸 농이었다. 하지만 베로니카는 웃지 않았다. 그녀가 말을 아끼는 사이, 시르티카 백작령 사람들 중 앞으로 달려와 마주 달려간 사막 엘프 부관에게 뭐라 말을 건넸다. 부관은 곧바로 돌아왔다.
“시르티카 백작령의 심부름꾼입니다. 베로니카 드 켐벨 양을 모시러 왔답니다.”
베로니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라버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