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88)
188화 폐건물은 항상 이야기의 원천 (1)
베로니카의 오빠라는 사람이 보낸 ‘심부름꾼’들은 전부 무장하고 말을 탄 사람들이었는데, 둘만 기사였다. 하나가 대장, 나머지 하나는 부장.
대장은 고동색 턱수염만 짧게 기른 중년 사내였고, 부장은 베로니카 또래 정도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었다. 머리 색깔이 같은 걸로 보아 부녀 정도의 관계로 보였는데, 여자 쪽은 성묘 수호 기사단 문장이 그려진 흰 서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입을 꽉 다물고 고집이 서린 눈매를 가진 게 특징이었다.
“호위에 적절한 인물들을 고르느라 고생했죠. 레이디를 모시려면 여전사도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게 오라버님의 생각이셨습니다만.”
남자가 친근한 척 베로니카한테 말을 걸었다. 그러나 그녀는 대꾸도 안 했다. 대신 에드워드가 답했다.
“여전사 없어도 베로니카는 잘만 돌아다녔는데. 헬레나가 합류한 건 앵글리아 본토를 떠난 이후였소.”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들었죠. 아주 잠깐이지만, 호위 병력은 물론이고 하인 하녀들도 남기지 못한 시간도 있으셨다고. 오라버님께서 대경실색하셨습니다.”
에드워드의 적응훈련 중에 도망치거나 일을 그만둔, 베로니카의 수하들 이야기다. 에드워드는 재빨리 나섰다.
“기사의 명예를 걸고 말하는데, 레이디의 순결에 누가 될 일은 없었소.”
“그야, 당연히 그렇겠지요. 호위 대상에 손을 대는 순간 임무 실패로 간주 되니까요. 손의 저주부터 푸셔야죠.”
남자는 태연하게 말했다. 네가 스스로 저주 풀 길을 막겠냐 정도의 의미였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빚어지는 것 자체가, 레이디들에게는 때때로 불미스럽죠. 오해는 적을수록 좋은 게 아니겠습니까.”
“네가 감히 내 정조를 걱정하느냐, ‘해결사’ 파브리스?”
베로니카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서늘하고 낮은 목소리였다. 파브리스는 급히 고개를 숙였다.
“가신이 가신의 도리를 다할 뿐입니다. 백작님이 얼마나 걱정하셨는지 아가씨도 아셔야 하는데.”
지체 높은 집안 이야기. 파브리스는 계속 말을 이었다.
“편지가 한 통 한 통 올 때마다 백작님께서는 심장을 무딘 나이프로 조금씩 도려내는 듯했죠. 뱀파이어 소동 때는 이런 위험한 일을 왜 하느냐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셨고, 표류 소식을 들으셨을 땐 거의 기절하다시피 하셨습니다.”
에드워드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시스콘이여?”
베로니카나 파브리스는 둘 다 그 중얼거림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베로니카는 여전히 날 선 목소리로 물었다.
“뱀파이어 소동은 나한테 닥친 일이지, 내가 찾아간 일이 아니야.”
“별 차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거, 내가 편지에 안 썼는데? 오라버니가 어떻게 그걸 알고 있지?”
“교황청과 대학 사람들을 닥달하셨다지요.”
“돈 많이 깨졌겠네. 그냥은 정보를 안 토할 사람들인데.”
“그러니 걱정을 끼치지 말란 겁니다. 교황청 사람들만 웃는다고요. 오죽하면 백작님께서 절 보내셨겠습니까?”
“내 위치는 어떻게 알고 찾아왔어?”
“예나 지금이나 성격은 여전하시더군요. 따돌리고 싶은 사람이 생겼을 때 최단 거리로 길 잡으시는 거요. 경로가 뻔히 보이더군요.”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이곤 베로니카를 돌아봤다.
“사람 따돌리는 데는 재주가 없구만?”
“이단심문관이 뭐하러 사람을 따돌리겠어. 추격하고 다니지.”
베로니카는 무심코 에드워드에게 대답했다. 그녀는 아차 했지만, 에드워드는 계속 대화를 이었다.
“진지하게, 추격을 따돌릴 생각이었으면, 옷부터 갈아입고 변장해야 했어.”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만난다고 큰일나는 것도 아니고.”
에드워드는 파브리스를 돌아봤다.
“큰일 날 예정이오, 페브X즈 경?”
“파브리스요.”
“페X리즈.”
“파브리스.”
“페브리X.”
일부러 틀리는 에드워드와 알면서도 계속 정정해주는 파브리스의 신경전 속에서, 여기사 올리비아가 입을 열었다.
“백작께서는 에드워드 경이 순례 중 명성을 쌓는 것을 노려 일부러 위험한 길만 골라 다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하시더군요.”
“아, 그건 좀 억울한데.”
에드워드는 미녀에게 매도 당하자 상처 받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올리비아는 여행 초기 베로니카와 흡사한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이런 남자까지 신경 써줘야 하느냐는 뜻의 한숨.
“물론 당신이 그 정도로 분별 없는 인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사건이 쫓아다니는 분과 같이 있는 건 베로니카 아가씨의 안전에 좋을 게 없지요.”
“무슨 뜻이지?”
“아, 올리비아. 그건 좀 더 있다가…….”
파브리스가 손을 내저었지만 올리비아는 직설적으로 바로 말했다.
“여기서 그만 헤어져 달라는 이야기입니다. 시오니아가 머지 않았으니 호위 임무는 이미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에드워드 경은 저희한테 베로니카 아가씨를 인계하시고, 성지로 가서 순례를 마치시면 됩니다.”
에드워드 일행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돌아봤다.
“그래도 되는 건가?”
베로니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올리비아를 향해 말했다.
“난 성지의 시오니아 총대주교좌 성당까지 갈 예정인데.”
“백작령에 들렀다 가셔도 되지요. 그때는 더 많은 호위병을 부르실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 오라는 시간제한이 걸린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건 그런데.”
“에드워드 경이 받을 보상에 관해서는, 편지 하나 써주면 되겠지요. 어차피 저주를 푸는 방법을 찾을 동안, 에드워드 경은 시오니아를 벗어나지 않을 테고.”
올리비아는 마치 노래하듯 낭랑한 목소리로 에드워드의 향후 계획까지 짜주었다.
“성산에 오르거나 성묘를 참배하는 것으로 저주가 풀린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시오니아 곳곳의 명승지와 성당들을 돌아다니시겠지요. 수준에 맞는 여인, 작위, 자산을 받으신 뒤에 그런 곳에서 사건사고들을 해결하신다면 입신양명의 시작으로는 나쁘지 않은 이야기일 겁니다.”
“아니, 잠깐. 뭘 멋대로 혼자 이야기를 진행시켜? 그러다 아가씨마저 골라주겠네.”
“경의 사랑을 받을 여자야 널렸으니 걱정할 게 있는지요?”
‘베로니카 아가씨는 빼고요’라는 말이 들린 기분이었다. 에드워드는 헛웃음을 흘렸다.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여행을 끝내라는 소릴 들으니 좀 혼란스럽긴 하네.”
“귀하의 속죄와 베로니카 아가씨의 여행은 사실 별개의 문제니까요. 방향이 같았을 뿐이죠. 이제 방향이 달라지면, 굳이 같이 갈 필요가 없지요. 여행이란 본디 그런 것 아닐까요?”
베로니카는 묵묵히 그 말을 듣다, 다들 들리게끔 중얼거렸다.
“틀린 말은 아니지.”
그날 저녁, 일행은 파브리스 일행과 떨어져 모였다. 먼저 가르달이 분노의 목소리로 파브리스와 올리비아를 규탄했다.
“비적 같은 놈들의 가증스러운 분열책동과 이간질에 넘어가서는 아니 되오!”
“와! 가르달 아저씨! 노동자로서 단합에 눈을 뜨신 건가요!”
“노동자? 난 자본가거든?”
“악! 담합이다!”
그리고 가르달은 냉전시대 반공열사처럼 가열찬 연설을 이어갔다. 카치운은 파이프로 연초를 뻑뻑 피워대기 시작했다.
“당장 내 월급이 문제가 되려나. 무클이 결혼하는데.”
헬레나는 베로니카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았다.
“동지애를 발휘할 때가 된 것 같은데요.”
“어떤 동지애요? 전에 말한 거?”
“전에 말한 게 뭔데?”
에드워드가 묻자 베로니카는 짧게 대답했다.
“같은 개한테 물린 사람들끼리의 동지애.”
“비유가 참 묘하군.”
에드워드는 낄낄 웃은 다음, 다른 동료들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특히 가르달.
“쟤들은 어디 비적이 아니라 일단 베로니카네 집안 사람들이요. 무력 충돌은 피합시다. 저쪽도 그러고 싶은 눈치니.”
“만약 저쪽이 감수할 생각이면?”
드워프의 걱정에 에드워드는 주먹을 쥐어보였다.
“작살내 버리면 돼. 저쪽이 선택가능한 것 따위는 없소. 결투로 날 이길 순 없을걸. 저쪽도 대화를 원하는 이유가 그거고.”
전직 챔피언. 가르달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서기는 큰 부담이 되고도 남겠지요. 특히 지금까지 쌓아온 명성을 고려하자면.”
“만티코어에 시서펜트도 잡은 기사랑 일대일 하자는 정신나간 애가 있겠어요?”
스텔라도 배시시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카치운이 덧붙였다.
“시서펜트는 별로 돈이 안 됐어.”
“뭐, 그런 날도 있지. 그래도 다들 먹고 잘 돈과 월급 정도는 내가 최우선으로 확보할 거요.”
“당연히 그래야지. 다만, 안정적인 물주를 떼어낼 거냐 하면 난 말리고 싶군.”
카치운이 파이프를 입에서 뗀 다음, 부리로 베로니카를 가리켰다.
“베로니카 양께서는 어쩔 생각이시오?”
“묻는 방법이 조금 비겁하신 것 같은데요.”
베로니카가 웃으며 말하자 카치운은 어깨를 으쓱였다.
“아들 놈이 장가를 간다니 돈이라도 부쳐야지.”
“이해해요.”
베로니카는 에드워드를 흘겨봤다. 그리고는 동료들을 향해 말했다.
“저는 이 망나니가 순례를 제대로 하는지 지켜보고 앵글리아 국왕 폐하와 교황청에 보고해야 할 책임이 있죠. 단지 제가 편하게 여행하길 바랐다면, 이미 백작령으로 방향을 잡았을 거예요.”
좋은 시작이었다. 가르달이 성급하게 박수를 쳤다.
“바로 그거요!”
“그리고 백작령으로 간다면, 십중팔구는 근시일 내에 총대주교좌 성당으로 가지 못해요. 오라버니가 절 안전한 곳에 가두려고 할 테니까.”
“부당한 간섭이지!”
“하지만 백작령으로 가는 옵션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겠어요.”
“그야 당연히…… 어째서!”
가르달이 외치자 베로니카는 다시 에드워드를 흘겨봤다.
“현재 호위가 못 미덥다면 말이죠. 그냥 이 녀석도 ‘호위’ 대상으로 넣는 것도 한 방법일 테니까요.”
“젠장. 얼른 화해 안 하고 뭐하슈?”
가르달의 말에 에드워드는 재깍 반응했다.
“미안하다.”
“문제의 금화는?”
“전부 마차 안에 있는데.”
카치운은 이마를 짚었고, 베로니카는 에드워드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 * *
에드워드와 베로니카가 아옹다옹하는 동안, 니카노르 부대와 함께 베르세바에 도착한 일행은 파브리스와 올리비아 쪽 눈치를 슬금슬금 보았다.
“미치지 않고서야 에드워드 경한테 정면 승부를 걸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종자들도 아니죠.”
헬레나의 말이었다. 오랜만에 드워프는 엘프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조했다.
“백작이 보낼 정도면, 그래도 나름 실력이 있는 연놈들이겠지. 게다가 베로니카 양이 말하는 것 들었잖아. 별칭이 ‘해결사’라고.”
“기사보다는 현상금사냥꾼이 받을 만한 호칭 같긴 한데. 뭐, 기사도 쓰지 말란 법은 없겠지.”
카치운이 활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스텔라는 흥미진진해 하기만 했다.
“연애시 한 편 보는 것 같지 않아요?”
“어디가.”
가르달이 퉁명스레 쏘아 붙였다.
잠시 뒤, 에드워드와 베로니카가 베르세바의 군주를 알현하고 돌아왔다. 같이 갔지만 냉랭한 분위기는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베로니카는 말을 안 했고, 에드워드만 일행들을 향해 말했다.
“포상의 일부로, 비어 있던 엘프 교회 중 하나를 불하받았어.”
“비어 있던 교회요?”
스텔라가 묻자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막도시는 군데군데가 비었잖아.”
그 말대로였다. 규모에 비해 인구가 적은 도시. 이미 만들어졌고 철거나 변경은 힘든 도시.
“교회 하나를 비텔리아 교황청 시설로 써도 된다는 거지. 어떤 용도로 쓸지는 아직 결정된 게 없지만.”
“뭐야, 기사님 개인 재산이 아니고요?”
“일정 몫은 나눠 받을 거야. 내 첫 고정수입이지. 그래서, 본격적인 사업 전에 그 빈 교회를 조사해 보게 됐어.”
“기사님과 사제님의 첫 공동사업인 건가요?”
“그렇네. 기념비적인 일이긴 하지.”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돌아봤다. 그한테 눈길도 안 주고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도로 스텔라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뭐, 대단한 게 있겠냐마는.”
“축하드립니다. 속죄를 위한 업적도 착실히 쌓고 계시는군요.”
어느새 다가온 파브리스의 말이었다. 에드워드는 손사래를 쳤다.
“늘상 있는 일이오.”
“아까는 첫 공동사업에 기념비적인 일이라면서요.”
파브리스가 능글맞게 말을 붙이자 에드워드는 반박하지 않았다. 파브리스는 계속 말을 붙였다.
“기왕지사 일이 이렇게 된 것, 견학해도 되겠습니까?”
에드워드는 대놓고 얼굴을 찌푸리지는 못했다. 파브리스는 자신이 견학하고자 하는 이유를 주절주절 더 떠들었다. 평소에 무슨 일을 처리하는지 알고 싶어서, 어차피 베르세바에서는 서로 대립하고 싶어도 하기 힘들어서, 여기가 시오니아와 먼 곳은 아니지만 쉽게 올 곳도 아니라서 등등.
말은 많지만 가벼운 인간은 아니다. 에드워드가 하는 꼬라지가 마음에 안 든다면 당장 트집잡겠다는 의도가 엿보였다.
“뭐, 그러시던가.”
빈 교회 건물을 들여다보는 것뿐이다. 큰일이야 생기겠는가 하는 생각이 모두의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트집 잡힐 거야 없겠지?
트집 잡을 것이 없을까?
밴시 리안나는 두 무리의 신경전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또 분명히 뭔가 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