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9)
19화 제국의 멸망
화르륵! 횃불에 불붙는 소리가 하수도 안을 울렸다. 사슬 갑옷으로 완전 무장한 에드워드, 미아, 리안나, 그리고 용병 몇 명으로 이루어진 탐사대는 모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수도 안의 물은 이전과 전혀 차이가 없었다.
“뭔가 잘못됐어.”
에드워드가 말했다. 그는 지도를 펼쳤다. 토벌하고 막아 버린 곳을 제외하고 남는 가장 큰길, 가장 큰 하수도. 에드워드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결국, 그 꼽등이 무리를 만날 수밖에 없겠군.”
“밴시의 약이 있으니 도망칠 기회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미아가 말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말이었다.
“그래, 이유만 확인하고 잽싸게 튀자고. 다들 조심해서 따라와.”
“저는 또 왜 데려가요?”
리안나가 투덜거렸다.
“약이 모자라면 더 만들어야 하잖아.”
에드워드가 대답했다. 그의 판단은 나름 합리적이었다. 마법약도 액체다. 들고 다니기에는 무겁고, 부피가 크다. 강물은 계속 흘러들어 오고 있으니, 가능한 한 많은 양의 약초를 챙겨 오면 즉석에서 마법약을 보충할 수 있다. 다만 이미 들고 온 마법약이 바닥났을 때의 이야기니까, 상정하는 상황 자체가 별로 좋은 건 아니다. 리안나는 그 점을 지적했다.
“느긋하게 만들 시간이 있기나 할지 모르겠어요. 강물이 한 번 쓸어 냈다지만, 여기 물은 그리 깨끗하지도 않고. 도랑물이면 좀 나으려나?”
에드워드가 뭐라고 더 말하기 전에 벌레 무리의 소리가 하수도를 울렸다. 꼽등이 요한이 뭐라고 중얼거렸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놈이 갇힌 새장을 든 미아는 나지막하게 협박의 말을 읊었다.
“헛소리하면 물에 던져 버릴 거야.”
꼽등이 요한은 입을 닫았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베로니카한테서 옮았구만.”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이 배웠죠.”
일행은 긴장한 채 검과 물병을 쥐었다. 미아는 리안나를 곁눈질했다.
“꼭 붙어서 따라와.”
곧 첫 파도가 밀어닥쳤다. 에드워드는 물병의 마개를 열었다. 옅은 장미향. 그는 그것을 검에 약간 흘렸다. 꼽등이 무리가 주춤했다. 그게 기회였다. 에드워드는 열쇠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앵글리아 왕세자의 챔피언이 나가신다!”
곧 꼽등이들과 용병들은 앵글리아 왕세자의 챔피언이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깨달았다. 기세가 꺾인 순간, 이미 놈들이 에드워드를 숫자와 무게로 덮치는 건 불가능했다. 오히려 무게로 덮치는 건 에드워드 쪽이었다. 챔피언은 토막 나고 으깨진 꼽등이들의 시체를 밟아 뭉치게 하더니 곧 그걸 굴리기 시작했다. 껍질이 돌이고 내장이 회반죽이었다. 그걸 본 꼽등이들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쇠똥구리야?”
한 용병이 허탈하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꼽등이 무리 하나를 족치자 제법 장애물로 쓸 만한 크기의 덩어리가 나왔다. 에드워드는 그걸 굴리면서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은근히 무겁네. 기껏 으깨 놓았더니 물먹었나 봐.”
그가 말하는 사이에 한 살아 있는 꼽등이가 시체 덩어리에 깔렸다. 으직! 놈은 완전히 죽지 못하고 꿈틀거렸지만, 에드워드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놈도 곧 한 덩어리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기사님 아니면 그거 굴릴 생각도 못 할 거예요.”
리안나가 대답했다. 용병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에드워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야, 이거 자꾸 무너진다. 누가 밧줄 좀 꺼내 봐. 좀 묶자. 오, 주여. 저희로 굴러가는 검불 같게 하시며 바람에 날리는 초개 같게 하소서.”
에드워드는 꼽등이들로 만든 공을 굴리며 낄낄거렸다. 요한 꼽등이는 그 무지막지한 광경을 보고 중얼거렸다.
“붉은 말에 탄 자가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내 백성이 경고와 조언을 무시하니 즐거움이 없구나.”
미아는 요한 꼽등이를 물속에 처박았다.
꼽등이 떼가 도망함이 산에 겨가 바람 앞에 흩어짐 같고 폭풍 앞에 떠도는 티끌 같았다. 일단 꼽등이 떼를 저지할 장애물이 만들어지자 그다음부터는 파죽지세였다. 용병들은 일방적인 싸움에 신이 났다.
“이 새끼들, 순전히 기세로 덮치는 게 전부였네요? 이대로 가다간 기사님이 다 때려잡고도 남겠는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하셨어요?”
“꼽등이 떼와 마주쳤다가 살아 돌아온 첫날부터? 뭔가 더 효과적인 방법이 없을까, 다음엔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까 몇 번이고 고민했지. 날 죽이지 못한 것은 날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니라.”
에드워드는 마지막에 연극을 하듯 말하며 낄낄거렸다. 용병은 맞장구를 쳐 줬다.
“역시, 강맹하고 현명하십니다. 수공 말고 처음부터 이럴 걸 그랬나 봅니다. 며칠씩 노가다 안 해도 됐잖아요.”
하지만, 에드워드는 생각이 좀 달랐다. 그는 웃음기를 지우진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냉정했다.
“그렇게 일이 간단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예?”
“지금까지 우리가, 내가 몇 마리나 죽였을 것 같냐?”
그 말에 용병들은 에드워드가 만든 공과 바닥에 깔린 잔해들을 바라보았다.
“어, 일단 몇백은 되겠는데요.”
“저 요한 꼽등이 말로는 십사만 사천이 있다고 했어. 그 숫자의 절반만 사실이어도, 다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야. 게다가 놈들이 싸우길 포기하고 흩어져 도망 다니기 시작하면 그땐 더 힘들지. 일일이 쫓아다닐 수가 없으니 말이야.”
용병들의 얼굴이 안 좋아졌다. 이미 그걸 짐작한 미아의 표정만이 변함없었다.
“베로니카가 괜히 수공을 선택한 게 아니야. 쫓아다니면서 물리적으로 때려죽이기엔 너무 많아. 그사이에 알 까고 번식하지 말란 법도 없고. 결국 가장 큰 둥지까지 쳐들어가는 수밖에.”
“그게 어딨을까요?”
“글쎄. 우리가 막지 못한 곳 어딘가에 있겠지. 일단 물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긴 한데.”
그 많은 물이 사라진 곳에 이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상은 곧 둥지의 규모를 나타낼지도 모른다. 에드워드는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 괜히 용병들이 겁먹고 도망치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대신 그는 묵묵히 물의 흐름을 쫓았다.
몇 번 막다른 길에 막혔다 돌아오길 반복한 끝에 일행은 폭포 소리를 찾았다. 별로 듣고 싶지는 않은 소리였다. 에드워드는 말없이 앞장섰고, 일행은 그 뒤를 따랐다. 길은 좁아지고 물은 갈라졌지만, 물 떨어지는 소리는 한 방향에서만 들렸다. 에드워드는 꼽등이 공을 버렸다. 그리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잠시 뒤 바람까지 느껴졌다. 에드워드는 지도를 펼쳤다.
“여기가 어디쯤이더라?”
“도시 서남부의 남쪽, 그러니까 구시가지쯤 될 겁니다.” 한 용병이 답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지.”
그의 말에 일행은 걸음을 멈추었다. 에드워드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찾았다.”
모두의 시선이 전방을 향했다. 길은 끊기고, 어둠뿐이었다. 바람은 아래에서 불어오고 있었다. 절벽. 물은 그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건너편이 어둠에 가려 안 보일 정도로 방대한 지하 공간이었다.
“이런 게 땅속에 있다는 이야긴 못 들었어요!”
미아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건 에드워드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그래. 지도와 달라. 이 망할 꼽등이 새끼들이 확장 공사를 한 거야.”
에드워드는 횃불을 바닥으로 던졌다. 그 순간 우글거리는 꼽등이 떼의 등딱지들이, 그리고 거대한 물웅덩이가 보였다. 꼽등이들이 서로 몸을 엮어 물 위에 떠다니는 것이었다.
“내 제국은 절반이 물에 잠겼으나, 나머지 절반은 온전하도다.”
음산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였다. 일행은 그 목소리의 정체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꼽등이들이 분주히 움직이더니 금속성 물체들을 있는 대로 다 꺼냈다. 반질반질하게 광을 낸 그것들은 얼마 안 되는 빛을 모아 반사하더니 한 점으로 모았다.
꼽등이 제국이 그 빛줄기에 걸쳐 모습을 드러냈다. 빛의 중심에는 다른 놈들보다 색깔이 좀 더 짙은 꼽등이 하나가 있었다. 놈은 어느 꼽등이보다도 높은 위치에, 어느 부잣집의 기물이었을 황금 요강 위에 올라서 일행을 노려보고 있었다. 놈은 어디서 구했는지 흰 천으로 배를 감은 채 엄숙히 선언했다.
“짐은 이곳에 천년 제국을 선포하며, 짐의 이름을 촌도리노 1세로 하노라. 너, 인간아. 그 옆의 선지자를 내놓으면 이 죗값을 덜게 해 주리라. 우리는 그녀한테 기름 부음을 받아 더 강맹해지리라.”
일행의 시선이 미아에게 못 박혔다. 그렇다는데? 미아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저 넘긴다고 저놈들이 얌전히 지하에서만 생활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하긴.”
에드워드가 동의했다. 그러나 상황이 나아지진 않았다. 당장 미아부터가 공황에 빠지기 직전이었다.
“이건 미쳤어. 못 이겨요, 이건.”
미아가 중얼거렸다. 용병들의 반응은 더 격렬했다.
“도망칩시다! 도시를 버려야 해요!”
“도망쳐 봤자 놈들이 연금술사를 포기하진 않을 거야. 그건 안 되지.”
에드워드는 잠시 턱을 쓰다듬더니 리안나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움찔거렸다.
“어, 왜요?”
“잠시만 기다려. 약병 단단히 붙잡고, 팔을 몸에 딱 붙여.”
리안나는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자 에드워드는 그녀의 몸을 밧줄로 묶었다.
“기사님? 무슨 생각이시죠?”
미아가 질문했다. 에드워드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리안나에게 말했다.
“신명 재판하는 방법 아니?”
“네?”
“물의 재판이라고 하는 게 있거든?”
“네?”
“죄인이 물에 뜨냐 아니냐 살펴보면 된다는 말이지.”
“네?”
에드워드는 약병의 뚜껑을 연 다음 밴시 리안나를 꼽등이 제국 앞에 세웠다.
“내가 끌어올려 줄 때까지 떠오르지 마.”
그때까지도 일행은 에드워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에드워드는 이해를 구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꼽등이들을 향해 선언했다.
“어이, 꼽등이 황제. 연금술사는 너 주기엔 너무 미녀라서 아깝더라. 대신 다른 걸 주지.”
그는 밴시 리안나의 등을 있는 힘껏 걷어찼다.
“이게! 바로! 앵글리아다!”
“기사니이이임?!”
꼽등이 제국 바로 옆으로 내던져진 리안나의 비명은 물웅덩이에 빠지는 소리로 끝났다. 풍덩! 일행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에드워드를 바라보았다.
“지,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미아가 말을 더듬었다. 에드워드는 짧게 대꾸했다.
“저걸 봐.”
그가 가리킨 곳은 밴시 리안나가 빠진 물웅덩이였다. 그곳에서 빛이 번쩍번쩍하더니 곧 장미향이 사방을 채웠다. 그러자 꼽등이들의 광란이 시작됐다. 미아는 입을 쩍 벌렸다.
“맙소사! 저 물이 전부 밴시의 마법약이 된 겁니까?”
“그런가 보네.”
“어떻게 그게 가능한 겁니까? 밴시의 약병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양의 물만 마법약이 되는데?”
에드워드는 물웅덩이를 가리켰다.
“그래서 이곳 물을 약병 안에 다 넣은 거야. 철철 넘치네.”
미아는 경악 속에서 꼽등이 제국을 내려다보았다. 꼽등이들은 마법약 속에서 미친 듯이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 많은 꼽등이가 서로의 연결을 끊고 더 약한 놈을 짓밟으며 도망치려 하다 결국 쓰러져 죽어 갔다. 마법약이 내뿜는 독기에 제국은 한 시간도 버티지 못했다. 꼽등이 요한이 중얼거렸다.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은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지 일과 여러 샘물에 떨어지니 이 별의 이름이 쓴 쑥이라.”
미아는 요한 꼽등이를 물에 처박지 않았다. 그럴 정신도 없었다. 꼽등이 제국이 몸부림치며 물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은 그저 장관이었다. 놈들이 지탱하던 금붙이, 쇠붙이들도 물속으로 가라앉으며 지하는 다시 어둠 속으로 돌아갔다. 이제 일행이 쥔 횃불만이 유일한 빛이었다.
“권세가 허망하기도 하여라.”
에드워드는 그렇게 중얼거리곤 밧줄을 잡아당겼다. 잠시 뒤 물에 푹 젖은 밴시 리안나가 질질 끌려 올라왔다. 하수를 잔뜩 뒤집어쓴 비참한 모양새였다. 심지어 치맛자락에는 작은 꼽등이 한 마리가 발톱을 걸어 대롱대롱 매달렸다. 미아는 더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기사님, 솔직히 좀 너무했어요.”
에드워드는 미아의 항의를 무시하고 엄숙히 선언했다.
“쟤들은 유죄, 넌 무죄.”
“기사님, 지옥 가세요. 중요하니까 두 번 말할게요! 꼭 지옥 가세요!”
밴시 리안나가 울먹이며 외쳤다. 에드워드는 말없이 밧줄을 잡은 손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