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90)
190화 해골과 함께 춤을
“으어어어어!”
심호흡을 해놔도 놀라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비밀 통로는 다쉬사베스의 피라미드 속 함정들이 떠오르는 미끄럼틀 구조였다. 에드워드는 어둠 속으로 떨어졌고 곧바로 베로니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유령인 줄 알았잖아! 이상한 소리 내면서 나타나지 마!”
에드워드는 고개를 들어보았다. 그러나 빛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공간이었다. 그는 어둠을 향해 말을 걸었다.
“어딨냐?”
“네가 미끄러져 온 곳에서 멀지는 않아.”
“나인 줄은 어떻게 알았어?”
“바닥 미끄러지는 소리. 유령이 낼 소리는 아니니까.”
에드워드는 피식 웃어버렸다. 베로니카가 계속 말했다.
“부싯돌이랑 부싯깃 가져왔어? 주문 써서 잠깐 밝혀줄 테니까 써.”
“내 손아귀 힘으로는 못 쓰지.”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너 혼자 내려온…….”
“끼야아아아악!”
밴시의 비명이 뒤를 이었다. 에드워드는 자기 등 뒤를 때리는 밴시의 질량을 느끼며 말했다.
“부싯돌 쓰는 방법이야 무궁무진하지.”
“리안나 시키려고?”
“그래도 되고.”
그 순간 허공에서 빛이 일어났다. 허리띠 캐슬린이었다. 허리띠 양쪽 끝에 부싯돌이 쥐어져 있었다. 틱틱틱.
“아, 그 허리띠.”
“가끔 존재를 잊곤 하지.”
“네가 그거 쓸 때는 침대 위가 더 많거든. 손 대신 쓰는 모습은 자주 안 보여주잖아.”
“얘는 능력을 숨기는 게 더 이득일 때가 있으니까. 그래도 아예 안 쓴 건 아닌데. 네가 괜히 그런 데만 이목이 가는 거 아냐?”
“죽인다?”
틱! 부싯깃에 불똥이 튀자 리안나는 황급히 그걸 주워 횃불에 붙였다.
화르륵!
“불 피웠다고 질식할 만큼 좁지는 않네.”
에드워드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건 불 붙이기 전에 확인해 봐야 하는 것 아냐?”
“무슨 수로?”
“바람이 흐르는가 정도는 확인해 봐야지.”
“흐르나?”
“흘러. 환풍구가 있나 봐.”
“아니면 출입구거나.”
둘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리안나는 횃불을 벽 틈에 박은 다음, 등에 맨 배낭에서 조립식 랜턴을 꺼냈다. 나무에 얇은 가죽을 써서 만들고 안에는 양초를 꽂는 것이었다. 이제 불빛은 둘. 에드워드는 자기가 들어온 미끄럼틀을 돌아보았다.
“여기 사람들은 걷는 게 귀찮은가 봐? 미끄럼틀 정말 좋아하네. 뭐, 나야 재밌긴 하지만.”
에드워드의 말에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뒤따라 들어와서 한다는 감상이 그거니?”
“좀 더 반가워해도 되는데.”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다행히 베로니카는 창날 위로 떨어지거나, 돌바닥 위에 머리부터 부딪히거나 하지는 않았다. 도착한 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얌전히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작정 따라온 건 아니라 다행이네. 그래도 좀 무모해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안 기뻐?”
직설적 질문에 베로니카는 에드워드를 외면했다.
“흥.”
“여기서는 솔직하게 기뻐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너야 안 따라올 리가 없잖…….”
“꺄아아아아아악!”
그 순간 낯선 비명소리가 머리 위를 울렸다. 에드워드와 베로니카는 둘 다 입을 다물었고, 잠시 뒤 사람이 모래먼지 위를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촤아악!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저 소리면 사람인 줄 알겠네.”
뒤따라 내려온 건 올리비아였다. 에드워드를 뒤따라 내려온 그녀는 잠시 어안이 벙벙한 채 희미한 불빛과 사암벽 사이로 시선을 헤맸다. 그녀는 베로니카를 발견하자마자 바로 달려가, 다친 곳이 없는 걸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 놀라셨습니까? 빛 한 줄기 없는 곳에 떨어지셨는데.”
“네가 뒤따라온 데는 좀 놀랐지. 밧줄이나 내려보내지 그랬어?”
“문이 빈틈 없이 닫히는 통에 밧줄을 넣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말대로였다. 올리비아는 허리춤에 남은 밧줄을 가리켰다.
“밧줄을 매달고 신자석에 앉아봤는데, 문이 닫히면서 밧줄이 끼는 바람에 중간에 멈춰버렸습니다. 단검으로 끊어야 했죠.”
밧줄없이 뛰어든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걸 해봐야 아나?”
올리비아는 에드워드를 노려봤다.
“같이 뛰어드는 건 잘하는 짓입니까?”
“안 뛰어들면 더 뭐라 할 거면서.”
“경과 아가씨를 단둘이 두는 것부터가 문제입니다만.”
“단 둘 아니잖아. 밴시 있잖아.”
“실례지만 경은 저런 하찮은 요정 따위 무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티격태격하는 인간들 사이에서 하찮은 요정 밴시가 한숨을 내쉬었다.
“왜 들어왔는지 생각하는 것보다, 여기서 나갈 방법부터 궁리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그러나 에드워드와 올리비아는 그 말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베로니카만이 겨우 응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 내가 여기 왜 가만히 있었겠니?”
“기사님 기다렸어요?”
“……여기가 문과 가장 가깝고, 여기로 구조가 올 테니까. 좀 있으면 가르달 씨나 파브리스가 문을 뜯어내기라도 할걸. 최소한, 쪽지나 물병 정도는 굴려보내겠지.”
리안나는 납득했다. 그 말대로, 가만히 있는 게 더 안전하다. 어느 정도 긴장이 풀리자 꼬마 밴시는 등불을 들고 주변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여긴 대체 뭐하는 곳일까요?”
“교회의 지하 비밀통로는 용도가 하나뿐이란 법이 없어. 경우에 따라서는 비밀금고나 술 저장고 노릇까지 하거든.”
“와! 돈과 술! 기사님이 제일 좋아할 것들이네요!”
“하지만 이렇게 비워진 교회에 남아 있지는 않겠지.”
“역시 그럴까요? 보물찾기 할 줄 알았는데.”
“보물이 진짜 있어도 ‘좋은 보물’만 있지는 않겠지.”
“좋은 보물요?”
“저주 안 걸리고, 함정 없고, 내력이 깨끗하고, 세금 안 떼이는 보물.”
“사제님, 기사님처럼 말씀하신다.”
“보물이 있어봤자 저주 걸렸거나, 함정이 있거나, 소유권 주장이 복잡하거나, 군주한테 뜯길 확률이 높단 뜻이야.”
베로니카는 겨우 웃으면서 말했다.
“과도한 기대를 갖지 말고 헛된 꿈을 꾸지 말라. 그리고 일해라.”
“전 일 너무 많이 하는데요!”
“그래, 그래.”
“물론 안 시켜도 일 하는 게 집요정이지만요. 아, 돈 벌고 싶다.”
“벌어서 뭐하게?”
“돈에 환장하는 기사님을 개처럼 부려보고 싶…….”
멀지 않은 어둠 속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던 리안나는 순간 말을 멈췄다.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사제님?”
“왜?”
“교회 지하 비밀 공간의 용도 중에…… 무덤도 있나요?”
“당연히 있지.”
달그락. 뼈마디 부딪히는 소리. 리안나는 떨리는 손으로 등불을 높이 들어보았다. 그 순간 사람의 갈비뼈가 밴시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밴시는 지하가 무너질 기세로 비명을 질렀다. 에드워드와 올리비아는 화들짝 놀라 밴시를 돌아보았다. 밴시는 해골 대가리가 달린 갈비뼈에 머리가 갇힌 채 팔짝팔짝 뛰어다녔다.
“기사님! 이것 좀 떼어내 주세요!”
밴시 머리 위의 해골 상반신은 마치 춤추듯 팔을 휘저었다. 턱뼈는 크게 웃기라도 하듯 덜걱거렸다.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돌아봤다.
“여기 무덤이었어?”
“그런가 보네.”
“사막 엘프들은 성묘할 때 출입구서 미끄럼틀로 슬라이딩해야 하는 예법이라도 있냐?”
“내가 아니?”
베로니카는 투덜거리면서 밴시를 향해 명령했다.
“그만 날뛰고 멈춰! 그래야 떼어주지!”
밴시는 거짓말처럼 딱 멈췄다. 그러나 달그락거리던 해골은 멈추지 않았다. 양팔을 활짝 펼친 채, 밴시의 머리 위에서 갈비뼈째로 빙글빙글 도는 해골 보고 에드워드는 낄낄 웃어버렸다.
“그나마 재미는 있네.”
“천벌 받을 소릴. 남의 유골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움직이면 때려잡을 몬스터.”
“여기가 교회 묘지라면, 웬만한 사건으로는 해골 따위가 일어날 리가 없잖아.”
“그렇긴 한데.”
에드워드가 말하는 순간, 해골은 팔을 아래로 내리더니 밴시의 뺨을 꼬집었다. 리안나는 다시 비명을 지르며 팔짝팔짝 뛰기 시작했고, 올리비아는 기겁해서 검을 뽑았다.
“움직입니다!”
“어?”
베로니카가 뒤통수 맞았다는 표정으로 작게 말했다. 에드워드도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일단 쟤는 나중에 구해줄까. 말이 씨가 된 벌로.”
달그락달그락. 우르르. 뼈마디 부딪히는 소리들이 어둠 속에서 불길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 *
지하 깊은 곳의 어느 방. 촛불로 은은히 밝혀놓은 방 안에서 검은 로브를 입은 사막 엘프 몇몇이 모여 지도를 펼친 채 끙끙거리고 있었다. 그 방은 수많은 지도 때문에 지도 제작자의 방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위치일 방 중앙에 있는 건 악마의 상징물들 또는 조각상이었다. 소머리 조각상부터 팔 대신 촉수가 달린 나체의 여악마상까지.
“멍청한 오크 놈들만 아니었어도 이 고생은 안 하는 건데.”
한 사막 엘프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다른 사막 엘프가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먹고 싸는 것밖에 모르는 야만 종족들에게 기대를 건 게 잘못이었어. 주술이나마 쓸 수 있는 게 놀라운 놈들이라니까.”
세 번째로 입을 연 엘프는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이 주문을 실패한 계획에 계속 써도 되겠습니까? 어둠의 군세가 도착하지 못한다면, 결국 일시적 소동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우리끼리만이라도 어떻게든 해야지. 여기서 멈출 수는 없잖아.”
첫 번째로 말했던 사막 엘프의 말이었다. 그의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다.
“무능한 군주가 너무 오래 권좌에 앉아 있었어. 어둠이 옳아. 세상은 한 번 뒤집어져야 돼.”
그 엘프는 돼지 피를 포도주와 재에 섞어 잉크를 만들며 계속 중얼거렸다.
“빛에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끔찍할 정도로 숨이 막힌 채 정체되어 있을 뿐이지. 빛이라고 하지만 이 지하와 다를 게 없어. 차라리 밤하늘이 더 상쾌하겠지. 별들의 신비가 우릴 이끌어줄 테고. 조금만 더 나아가면 돼.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면 되는 거야.”
그의 말이 길어질수록 다른 엘프들은 말이 없어졌다. 다들 각자의 작업에 더 집중했다.
그러나 남은 말소리도 작아질 때쯤, 소동이 일어났다. 벽 한구석에 밧줄로 묶인 냄비 뚜껑들과 다리뼈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딪히기 시작한 것이었다. 와장창, 땡그랑! 경보 마법의 일종이었다. 그것의 작동이 가진 의미는 단순했다.
“침입자다!”
“뭐? 설마 군주한테 들킨 건가? 너무 빨라!”
엘프 사교도들은 당황했다. 언젠가 올 거라곤 생각하지만, 그게 오늘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하는 게 모든 비상사태의 공통점이었다. 그들은 스켈레톤들과 마주한 에드워드네보다 더 당황했다. 태울까, 버릴까, 도망칠까? 갈팡질팡하던 사교도들 사이에서, 계속 중얼거리던 엘프가 나섰다.
“진정해라! 지금 울린 경보장치는 동쪽뿐이야! 사방의 방어 병력을 동쪽으로 돌린다! 크리처들도 내보내! 적의 숫자를 파악하면 바로 보고하도록! 규모를 파악하고 대처를 결정한다! 다른 출입구 쪽에도 최소한의 경계는 유지하도록!”
다른 엘프들은 곧바로 그렇게 행동했다. 주문을 쓰고, 해골을 일으키고, 악마의 개들을 풀어놓은 다음 그들은 새 정보를 향해 모든 감각을 곤두세웠다. 잠시 뒤, 그들에게 전해진 정보는 경악스럽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에드워드 경이다! 레피림 님이 경고한 그 괴물 학살자!”
“진짜 밴시도 있어!”
“아, 걘 무시해. 진짜는 별 볼 일 없어.”
리안나가 들으면 항의할 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