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91)
191화 여자의 감
올리비아는 팔뚝에서 그 길이 정도의 쇠꼬챙이를 꺼내더니, 자신의 갈색 머리카락을 휘리릭 감아 동그랗게 정돈했다. 에드워드는 그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야, 방금 그거 다시 보고 싶은데.”
“그럴 시간 있습니까?”
“있는 것 같은데. 다시 해봐.”
“앞이나 보십시오!”
에드워드는 올리비아와 농담따먹기 하는 걸 관두고 적들에 시선을 집중했다. 활 따위 원거리 병기를 든 스켈레톤들은 보이지 않았다. 무기도 없었다. 다 해진 얇은 천이 고작인 스켈레톤들이 대다수. 그는 피식 웃었다.
“사막은 물자가 없다더니, 부장품도 없군. 이건 쓰러뜨려봤자 적자네.”
베로니카가 눈을 흘겼다.
“이 상황에서도 돈 따지니?”
“하나 쓰러뜨릴 때마다 돈과 경험치가 떨어지는 세상이 얼마나 공평하고 좋은 건데.”
“또 의미 모를 소릴 하네.”
에드워드는 열쇠검을 뽑았다.
“사막은 건조하니, 부장품이 존재한다면 보관상태가 아주 환상적일 텐데 말이야.”
올리비아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은 기사입니까, 도굴꾼입니까?”
에드워드는 간결하게 자신을 표현했다.
“손해 보고 싶지는 않은 기사.”
열쇠검을 든 에드워드는 곧 스켈레톤들을 안식으로 되돌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잠들지 못하고 깨어난 언데드는 초짜 전사의 수련 상대로 쓰일 만큼 만만한 적이었다. 특히 살점이 다 떨어져 나간 스켈레톤은, 그것에 깃든 어둠이 강력하지 않다면, 공방에서 무게가 실리지 않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이놈들은 대개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기사 에드워드를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 와장창! 와르르! 에드워드가 체중으로 부딪히기만 해도 쓰러졌고, 한번 밟기만 해도 박살이 났다.
“역시 잘 말랐구만.”
에드워드는 발 보호구 아래 감각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문제는 그 숫자였다. 올리비아는 짧게 한탄했다.
“방패도 내려달라 할 걸 그랬습니다.”
콰직!
그러나 한탄을 하든, 어쨌든, 그녀의 실력도 진짜였다. 여자가 폼으로 성묘 수호 기사단의 문장이 들어간 서코트를 걸친 게 아니었다. 방패를 가져오진 않았지만, 에드워드와 비슷한 수준으로 중무장했으며 검술 실력도 나쁘지 않았다.
좁은 데서 검을 짧게 잡고 능숙히 싸우는 것은, 숙련된 자라는 증거.
“백작이 보낼 만하군.”
에드워드는 짧은 칭찬을 날렸다. 그러나 여유는 거기까지. 곧 스켈레톤의 숫자가 무지막지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젠장! 겨우 두셋으로 방어하기엔 여기도 넓어!”
에드워드가 중얼거렸다. 약골들이지만 포위당해서 좋을 게 없다. 올리비아는 해골들이 오지 않는 길들로 시선을 돌렸다.
“더 좁은 곳으로 후퇴하죠! 입구와는 거리를 너무 두지 말고!”
밴시 리안나는 방정맞게 뛰어다니다 외쳤다.
“기사님! 이 뼈들로 장애물 못 쌓아요?!”
“네가 쌓아 볼래?”
“제 머리 위의 이 해골부터 좀 떼어내 주세요! 이 녀석부터 쌓죠!”
에드워드는 짧은 노래로 답했다.
“자기의 일은 알아서 하자!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어린이!”
“기사님이 또 상했다!”
그 순간 밴시 머리 위의 해골은 뺨 꼬집기를 넘어 리안나의 목을 졸라대기 시작했다. 리안나는 더 당황해서 꽥꽥 소리치며 날뛰었고, 그만 뒤로 물러서던 올리비아와 부딪혀버렸다.
쿵!
“끼약!”
“아차!”
둘이 넘어지는 순간, 때마침 물밀듯이 몰려온 해골들이 그 틈으로 쇄도했다. 올리비아는 다급히 일어났지만, 방향까지 올바르게 잡는 데는 실패했다. 그녀는 서코트 옷자락을 잡는 해골들을 정신없이 때려잡으며 그나마 적이 없는 곳으로 물러섰다.
한참 뒤, 겨우 좁은 곳으로 도망쳐온 그녀는 여전히 자기 뒤에 있는 밴시한테 그만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거추장스럽게 하면 어떻게 해! 큰일 날 뻔했잖아!”
“죄송해요!”
어느새 해골이 떨어져 나간 밴시가 외쳤다.
계속 물러나던 올리비아는 낡은 토기가 벽에 바짝 붙어 쌓인 곳에 도착했다. 용도는 불명이었지만 어쨌든 뭔가 있다는 건 중요한 요소였다. 그녀는 차곡차곡 쌓인 토기들 틈에 검을 꽂은 다음 지렛대처럼 있는 힘껏 움직였다. 서로 맞물려 있던 토기들이 와르르 쏟아지면서 출입구를 웬만큼 막자, 그녀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에드워드 경, 아가씨는…….”
올리비아는 말하다 말고 숨을 삼켰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여기사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녀는 밴시에게 황급히 물었다.
“베로니카 아가씨는?!”
“사제님요? 아까 해골들이 몰려들 때 갈라져서 다른 길로 들어가셨는데요.”
올리비아는 양손으로 머리를 싸매고 주저앉았다.
“왜 이야기 안 했어!”
“아시는 줄 알았죠! 저는 제 머리 위의 해골 떼어내는 것도 벅찼는데요!”
밴시가 나름 항의했지만, 올리비아의 패닉을 줄이는 데는 별로 도움이 안 됐다. 그녀는 비명처럼 소리쳤다.
“에드워드 경은? 아가씨랑 같이 갔어?!”
“네!”
밴시의 대답은 명쾌했다. 올리비아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안심해야 할지, 에드워드와 베로니카를 단둘이 뒀다고 자책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아, 정말! 아버지가 그들끼리 두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리안나는 뚱한 표정으로 여기사를 보았다.
“왜요? 어두컴컴한 곳에서 단둘이 있으면 진도 세게 나갈까 봐요?”
경악한 올리비아는 기반이나마 남은 평정심을 날리고, 밴시의 뺨을 꼬집고 말았다.
“이 발랑 까진 꼬맹이 요정! 네 탓이잖아! 일부러 그랬지!”
“와! 누명 씌운다! 넘어진 건 죄송하긴 한데, 그건 너무하잖아요! 기득권의 헌병이 공작을 한다!”
“무슨 뜻이야, 그거!”
어둠 속에서 둘은 끝없이 티격태격했다.
* * *
한편, 에드워드는 용도 불명의 토기들이 나올 때까지 물러날 필요가 없었다. 그는 뼈들로 장애물을 쌓으며 중얼거렸다.
“꼽등이는 쉽게 뭉쳐지던데 이것들은 가루가 되어서 제대로 쌓기 힘드네. 이놈들은 쌓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적당한 때와 장소가 조건이 된단 말이지. 적과 아군과 운이 다 도와야 한다고 해야 하나.”
몰려드는 해골들로 대충 장애물을 만든 다음, 그래도 고개를 들이미는 놈들의 눈구멍은 손아귀로 박살을 내버렸다.
“어딜 들여다봐? 숙녀가 있는데.”
“고맙기도 해라.”
에드워드의 농에 베로니카가 빈정거리듯 말했다. 기사는 낄낄 웃어버렸다.
“일단 벽이라고 해도 해골 면상 보는 건 피곤하니까, 안면은 다 박살 냈어. 끝없이 싸우는 건 피했네. 생각보다 해골이 많은데, 무덤이 큰 건가?”
“크겠지. 위의 성당도 꽤 대형건물이니까. 여길 만들고 이용한 자들이 삽을 놓지 않고 다른 용도의 지하 공간들까지 흡수했다면, 상상을 초월하게 넓을 거야.”
“왜 인간은 지하공간을 가만 냅둘 생각을 못 하는 걸까? 주택난인가? 부동산이 폭등했나?”
“실제로 그 이유가 크지…… 곳곳이 텅텅 빈 이 도시도, 핵심인 도심 땅값은 미쳐 돌아갈걸.”
“군주랑 다시 협상해야겠어. 이 지하공간도 나 달라고.”
베로니카는 등 뒤의 어두컴컴한 공간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런 델 갖고 싶니?”
“사내놈들은 자기만의 지하실을 갖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지.”
“자기만의 지하실? 거기다 뭐 갖다 놓게?”
“이거저거?”
에드워드는 조금씩 무너지는 해골 벽에 돌조각과 뼛조각을 끼워 넣으며 대답했다. 환생 전이었다면 영사기와 오디오와 게임기와 당구대를 갖다 놓고 싶다 했을 것이다. 그때 개인 놀이용 지하실을 갖는 건 여러 가지 이유로 거의 꿈같은 이야기였다.
환생 후도 사실 ‘개인적 용도’의 지하실을 마련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도시의 지하실은 툭하면 옆집 오물이 새는 창고였고, 농가들이 갖춰놓는 토굴은 가족의 식품 저장고다. 끽해야 밀회 공간으로 쓰이고, 잘못하면 농작물의 가스로 질식하는 곳.
영주의 보물고 정도가 그나마 비슷한 위치를 가질 것이다. 에드워드는 언제 그걸 가질지 몰라도 가질 가능성 정도는 충분히 갖고 있다.
하지만 거기 갖다 놓고 싶은 건 다 사라졌다.
“뭘 갖다 놓을지는 생각을 못 해 봤네.”
“지하 창고라면 죄수와 술통 정도밖에 생각이 안 나긴 하지. 광대와 음유시인을 지하에 둘 수는 없잖아.”
연회장은 당연히 지상에 있고, 보물고도 영주 가족의 생활공간 너머에 두는 경우가 많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라면 지하에 둘 수도 있겠지만.”
“그거 감금이네. 보통은 악덕 영주의 짓인데.”
에드워드는 낄낄 웃어버렸다.
“그러게. 진짜 술통밖에 둘 게 없네. 이젠.”
베로니카는 잠시 말을 하지 않고 에드워드의 뒷모습을 노려봤다. 대충 시간 벌이는 되겠다 싶을 때쯤, 에드워드는 물러섰다.
“오래는 못 버티겠다. 입구에서 멀어지겠지만 어쩔 수 없지. 다른 출입구를 찾는 수밖에.”
에드워드가 예상한 다음 말은 ‘어떻게 출입구를 찾을 건데?’였다. 그러나 베로니카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가끔은, 네가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해.”
“뜬금없이 뭔 소리야?”
“개인적 용도의 지하실을 두는 영주는, 아까 말했듯 감옥이 놀이공간인 악덕 영주지. 아니면 비밀리에 뭔가 숭배하는 자…… 사교도거나.”
“으익.”
에드워드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내 성장 환경에 사교도가 있으면 베레스포드 공작님이 먼저 게거품을 물으셨겠지.”
“그래. 네가 말하는 ‘개인적 용도의 지하실’이 감옥, 고문실, 사교도 제단 같은 음험한 것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네. 난 그런 지하실이 어떤 모습인지 상상이 안 가. 넌 어디서 그런 지하실을 알게 됐을까? 이젠 술통밖에 둘 게 없다고? 언젠가는 다른 게 있었단 말처럼 들리는데?”
베로니카는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천천히 옆으로 기울였다.
“내가 시오니아 출신이고 앵글리아 사정에 그리 밝은 건 아니지만, 앵글리아 어딜 가도 ‘자기 지하실을 갖는 게 사내들의 꿈’이진 않아. 다들 여자 한둘쯤 감금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야.”
에드워드는 낄낄 웃어버렸다.
“질 나쁜 농담이 생각났어. ‘꿈에 지하실 문을 열었는데 아무도 없어서 놀라 깨었지. 곧장 지하실로 갔어. 다행히 거기 내 마누라 시체가 있었어. 휴, 깜짝 놀랐네’.”
장소는 적절한 농담이긴 했다. 하지만 베로니카는 거기 넘어가지 않았다.
“네 농담들은 그런 식이지. 지나가는 말처럼, 아무렇게나 막 던져. 누가 출처를 물으면 길 가다 들었다느니, 희극에서 봤다느니 하는 말로 대충 둘러대지.”
에드워드는 진절머리 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야, 농담 하나 하는데 명확하게 출처를 밝히기라도 해야 한단 거야? 이단심문관이 언제부터 그런 것까지 감시했어?”
“이단심문관으로서 하는 말이 아니야. 교리법무성 징계과의 그 누굴 데려다 놔도 다들 그런 데는 관심 없지. 일반인들은 더할 거야. 하지만 넌 명확히, 나와 다른 가치관과 경험을 갖고 있다는 게 그 농담들로 드러나.”
“기사와 사제가 같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닌가? 그 뭐냐, 얼마 전에 우리가 싸운 금화 건도 그랬잖아.”
예컨대 폭식은 기사한테는 미덕이나, 사제의 시선으로는 죄악. 악마 도안이 작게 그려진 금화를 두고 대립하는 것도 그 차이. 하지만 베로니카는 납득하지 못했다.
“기사와 사제 정도의 차이로는 설명이 안 돼. 금화 건마저도 마찬가지야. 다른 사람들은 그 문제에서 교회를 외면한 욕심쟁이 또는 현실적인 기사를 보겠지만, 내 눈에는 아예 다른 곳에서 온 인간이 보여. 이교도와 교회 사이보다도 먼 거리감이 너한테서 느껴진다고.”
에드워드는 침묵했다. 베로니카는 짧게 심호흡을 한 다음 말을 이었다.
“넌 누구고 어디서 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