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92)
192화 만남의 광장 (1)
가르달과 카치운은 낡은 수도관을 찾아 뜯어냈다. 그리고 그걸 비밀 문짝 사이에 끼워넣었다.
콰직!
수도관이 찌그러지다 못해 부서졌고, 문짝은 수도관 파편 크기만큼만 열린 채 다시 닫혔다. 가르달과 카치운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수도관이 너무 약하군.”
“아무리 무게추 방식이라지만, 잘못 작동하면 사람도 씹겠는데?”
“이럴 땐 튼튼한 꼬맹이가 그립군.”
“뭔 끔찍한 생각을 하는 거요? 드워프가 기사 양반을 닮아가나?”
“걔는 솔직히 동료보다 장비 카테고리가 더 어울리는 애잖소.”
“드워프 인성 실화냐.”
“기사양반 말투는 내가 아니라 댁이 배웠구만.”
둘이 만담을 주고 받는 사이에 백작네 기사들이 온갖 잡동사니를 끌고 왔다. 교회 안은 거의 텅텅 비었기 때문에, 그 밖에서 급하게 구해온 것들이었다. 그들은 그걸 앞서 희생된 수도관처럼 문짝에 끼워넣길 시작했다.
스텔라는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 때문에 먼지구름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소매로 입과 코를 가렸다.
“적당히 숨어서 잠이나 자려 했더니, 이게 뭔 고생이래?”
“손가락 하나 까딱 않으시면서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죠.”
헬레나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스텔라는 어깨를 으쓱했다.
“마법사가 할 일이 아니니까. 헬레나 양도 이건 전문 분야가 아니니 안 나서잖아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대기하는 거지. 대기도 일이랍니다?”
그 말을 들은 가르달이 허허허 웃어버렸다.
“저, 저, 게으른 고양이인지 인간인지 분간도 안 가는 계집애!”
말 끝은 분노가 약간 첨가되었다. 스텔라는 새침하게 말했다.
“사실이잖아요. 모래바위를 깎아 만든 지하 비밀 통로 탐색에 마법사가 할 일이 뭐 있어요?”
“너 요즘 아주 심하게 하는 일이 없다? 가짜 밴시 물귀신 소동 때도 주문 몇 발 날리고 뒤로 빠져 있더니?”
“그 주문 몇 발이 얼마나 큰지 모르시네. 게다가 헬레나 양한테 채여서 뒤로 나뒹굴던 아저씨 주워온 게 저잖아요! 그거 때문에 합류가 늦기도 했고!”
“덕택에 진창에 빠지는 건 피했잖아! 드워프한테 감사하지 못할까!”
“공은 이상한 것까지 지가 다 챙기면서 과는 남한테 다 떠넘기기예요? 그러니 꼰대 소리 듣지!”
“누가 들으면 내가 파렴치한 놈인 줄 알겠네! 난 드워프 상인의 기준으로 말한 거야!”
“드워프 상인의 기준이 뭔데요?”
“좋은 건 다 드워프 것!”
“종족 단위로 악랄하네, 아주!”
“종족 단위로 알뜰한 게지!”
둘의 신경전 속에서 백작네 기사들 신경 줄만 타들어 갔다. 파브리스는 간신히 평정을 유지하며 말했다.
“이보시오, 드워프 양반. 그 문짝을 열어둘 수 있기는 한 거요? 우리도 바로 뒤따라 내려가는 게 더 낫지 않겠소?”
“평생 이 아래에서 안 나오고 살림 차리게? 내가 종족이 종족인지라 땅굴 생활은 일가견이 있으니 좀 도와드릴까?”
순박한 드워프의 물음이냐, 상인 드워프의 독설이냐. 파브리스는 가늠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다만 정황상 후자로 해석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 함부로 들어갔다가 나올 방법을 따로 찾지 못한다면, 그런 바보짓이 또 없을 테니까.
“흥. 번개 주문의 마법사는 할 일이 없네요. 수상해 보이는 거 아무거나 막 건드려 봐야지.”
스텔라는 새침한 목소리로 성당 내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알뜰하게도 사암을 깎아 만든, 고정식 촛대들을 건드리는 그녀의 모습에 카치운이 우려를 표했다.
“저거 그냥 저렇게 냅둬도 되는 거요? 아무것도 없는 성당이면 모를까, 비밀 장치가 있는 성당이란 게 밝혀졌잖소?”
“냅두쇼. 기사 양반이 그 괴력으로 건드려야 열리던 게 이 비밀 통로였잖소. 저런 꼬치 구이집 꼬챙이 같은 계집애가 뭘 하겠어?”
드워프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러나 카치운의 우려는 곧 현실이 되었다. 스텔라가 비명을 지르더니 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우르르릉!
당황한 사람들은 모래 먼지가 자욱하게 솟아오르는 곳을 쳐다보았다.
“저 아무 짓도 안 했어요!”
스텔라가 설득력 없는 설득을 시도했다. 가르달은 카치운을 돌아봤다.
“이 일행은 어째 말하는 것마다 다 지랄이 나.”
“내 탓이오?”
“아니. 우리 이제 입조심 하자고.”
“댁이 말하니까 설득력이 심하게 떨어지는데.”
둘이 만담하는 와중에 사람 머리통의 그림자 같은 게 먼지구름 속에서 움직였다. 기사들이 반가워했다.
“아가씨가 올라오셨나?”
방금 지하로 내려간 사람들이 다시 올라왔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그리 불합리한 추측은 아니었다. 그러나 헬레나는 긴 귀를 까딱였다.
“뼈마디 부딪히는 소리?”
가르달은 냉철하게 판단했다.
“야, 게으른 고양이! 주문!”
“아저씨가 시약값 줄 거예요?”
“닥치고 주문 쓰라고!”
가르달이 윽박지르는 순간, 먼지구름을 헤치고 스켈레톤들이 나타났다. 기사들은 기겁하며 검을 뽑았다.
“언데드다!”
카치운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저거 분명히 기사양반 때문에 밀려서 도망쳐 나온 놈들일 거야.”
말은 긍정적이지만 행동은 빠르게. 그는 가장 큰 화살로 선두의 스켈레톤 미간을 명중시켰다. 퍼억! 두개골이 목뼈에서 떨어져 나가며 뒤에 있는 스켈레톤까지 쓰러뜨렸다. 카치운은 다음 화살을 꺼내며 소리쳤다.
“뭘 멀뚱히들 봐? 밟아!”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헬레나가 바닥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 * *
에드워드는 베로니카 앞에서 피식 웃어버렸다.
“빨리도 물어본다.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지하실 이야기만 이상한 건수가 아니었을 텐데.”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여럿 밟히긴 했지. 하지만 우리가 단둘이 그 문제를 이야기할 일은 별로 없으니까.”
“그랬나?”
“엘프와 드워프와 유목민 용병을 곁에 두고 비밀 이야기를 할 수는 없잖아? 다들 귀 밝은 자들이라고. 동료를 모아도 어쩌다 그런 인재들만 모았는지.”
베로니카는 천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게다가 오라버니가 보낸 추적자들까지 붙어버렸으니, 앞으로 이런 이야기를 할 기회는 좀처럼 없겠지.”
“지금이 적절한 때다 이건가?”
“공개적으로 말하고 싶으면 그래도 되고. 그렇게 해줘?”
에드워드는 머리를 굴렸다. 베로니카가 이제까지 한 말로 미루어보아, 그녀는 이걸 이단심문관의 재판정에 올리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단둘이 있을 때 에드워드를 자극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사히 지상에 돌아가는 순간, 체포하는 게 더 쉽고 합리적이다.
단 둘의 비밀 이야기.
에드워드는 허리띠를 풀었다.
“얘 듣고 있는데.”
베로니카는 허리띠 캐슬린을 에드워드의 손에서 뺏은 다음 돌돌 말았다. 그리고는 나지막하게 주문을 외웠다.
“뭐하냐?”
“봉인. 하루 정도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하려고.”
숨죽이고 있다 봉변 맞은 캐슬린은 당황해서 소리쳤다.
“이 망할 사제! 좋은 이야기는 자기만 들으려고……!”
“닥쳐, 망령.”
베로니카는 험악하게 말했다. 에드워드는 말릴까 말까 하다 소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야, 그러다 걔 필요해지면 어쩌게.”
“그땐 내가 풀면 돼. 이 문제가 더 중요해.”
“집요하구만.”
“네가 거절할 빌미를 안 주려는 거야.”
에드워드는 낄낄 웃다가 무너지는 해골벽 일부를 다시 때려부쉈다. 고개를 들이미는 언데드를 박살내 구멍을 메꾼 다음, 그는 손을 털었다.
“뭐, 어디서 온 누구든 무슨 상관이야. 내 농담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이야기지. 먼 곳에서 온 기사는 다 저런가, 앵글리아는 그런 곳인가, 저자는 별걸 다 아는구나, 말이 많구나 하고 잊어버릴 이야기들. 지나가는 기사란, 해결사든, 난봉꾼이든, 그런 존재니까.”
“보통은 그렇지.”
“헬레나도, 가르달도, 스텔라도, 카치운도, 그런 농담 따위는 신경 안 쓰지.”
“다들 관심사가 다르니까.”
에드워드는 쓰게 웃었다. 헬레나는 ‘자기 기준’만 충족하면 에드워드가 어떤 인간인지 신경 안 쓸 엘프 전사였다. 가르달이야 순전히 죽이 잘 맞는 기사를 따라다니는 것이니, 에드워드에게 의문을 가질 리가 없다. 스텔라는 그저 돈줄을 원하고. 카치운은 보은과 모험이 목적.
“내 영혼에 관심 갖는 건 결국 신 아니면 악마겠지.”
에드워드는 베로니카의 옆을 지나쳤다.
“가자. 여기 오래 있어서 좋을 게 없어.”
“긴 이야기야? 아니면 가면서 해도 되는 거야? 할 생각이 없는 거야?”
“뭐가 들을지 모르는 곳에선 이야기 안 해. 엘프와 드워프와 유목민 용병은 없지만, 여긴 어떤 놈들이 수작 부린 곳이고 엘프들의 도시 한 구석이야. 장소가 안 좋아.”
“회피하기는. 기껏 신경 써주는데.”
“뭐, 어차피 너한테도 난 ‘지나가는 기사’잖아. 네가 내 사정을 들어도 어쩌겠어. 시오니아에 도착했다. 둘이 헤어졌다. 별난 기사가 다 있었다. 이야기 끝.”
에드워드는 조심스럽게 횃불을 챙겨 들었다. 밴시가 들고 사라진 초롱이 차라리 더 나을 것이다. 그건 허리에 매달기라도 하면 되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너도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말아. 먼 곳에서 온 기사는 다 저런가, 앵글리아는 그런 곳인가, 저 자는 별 걸 다 아는구나, 말이 많구나.”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모르면 우리 여행에 지장이 있어?”
베로니카는 입을 다물었다. 에드워드의 말이 사실이었다. 여행 그 자체에는 지장이 없다. 에드워드가 어떤 인물인지, 저주를 푸는지도 결국 그의 문제다. 베로니카의 문제는 아니다.
그녀가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에드워드가 눈물로 참회하는 그림이 나온다면, 교회 입장에서는 좋아할 일이다. 하지만 그건 될지 안 될지도 불확실한, 추가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무엇보다도, 그건 교회의 이야기가 된다. 베로니카의 이야기가 아니라.
“듣고 싶으면 들어야 하는 이유부터 말해보던가. 마누라한테도 말할까 말까 한 사정을 지나가는 고객에게 할 이유가 어딨냐.”
에드워드는 어둠 속을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베로니카는 이를 갈았다. 뿌드득.
“너 그러다 사교도로 몰릴지도 모른다?”
“네가 증거도 없이 막 몰아붙이는 타입은 아니잖냐. 그건 교회법으로도 불법이고. 정 하고 싶으면 해보던가. 그때는 이 여행 파토나는 거지. 아니면 이건 어때?”
“뭔데?”
“네가 숨기고 있는 것 말해보기.”
베로니카는 잠시 침묵했다가, 에드워드의 모습이 안 보이기 전에 겨우 뒤따라 붙으며 물었다.
“뭘?”
“내가 아냐? 여하튼 너도 숨기고 있는 것 하나 말하면 나도 하나 말해주지. 그런 조건이면 나름 공평하지?”
“내가 숨기고 있는 게 뭐가 있다고 그런 데 응해야…….”
“있긴 있는 모양이네. 하긴 너도 묘한 구석이 있었지.”
“뭐가?!”
“이거저거? 시오니아 출신인데 비텔리아 교황청까지 가서 사제 서품을 받았고, 금혼서약은 안 했는데, 언젠가는 승진보다 육아퇴직을 해야겠다 그러는데…… 결혼은 당연히 옵션이 아니라는 듯 말하지. 나는 물론이고 네 오빠가 준비했다는 신랑감도. 집안에 뭔 복잡한 사정이라도 있냐?”
베로니카는 고개를 저었다.
“전자는 말하기 싫고, 후자는 여자 사제들의 당연한 고민이야. 수녀원에 들어가거나 금혼서약한 게 아니고서야 다들 마찬가지지.”
“그런가?”
“그런 곳으로만 머리가 돌아가는 것도 대단하고, 그걸 입 밖으로 꺼내는 뻔뻔함도 대단하네.”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거래할 재료는 없군.”
둘은 침묵 속에서 좁은 통로를 걷기 시작했다. 다시 입을 연 건 베로니카였다.
“마누라한테도 이야기하기 어렵다.”
“그래.”
“우린 결국 지나가는 인연이고.”
“왜? 내 마누라 입후보하게? 우리 서로 사정을 이해한 거 아니었나? 난 기사로서의 출세에, 넌 사제 쪽 일에…….”
“이해 못해.”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돌아봤다. 그녀는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린 서로를 알아갈 뿐이지, 이해하지는 못했어.”
에드워드는 도로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야 그렇지. 서로 탁 터놓은 것도 없는데, 이해는 개뿔. 그게 그리 쉽게 되나.”
다시 침묵. 베로니카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면 내가 널 이해할 수 있을까?”
에드워드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다시 농담을 꺼내봤다.
“진중한 연애놀음은 어때? 전에 제안했던 건데. 결혼만은 못해도 좀 더 진하게 해보면 서로 이해의 폭이 넓어지지 않겠냐?”
“넌 결국 그게 결론이니?”
에드워드는 푹 찔러보았다.
“다 글러 먹으면, 사제 아가씨랑 진지하게 결혼계획 잡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해볼까?”
“좀 진지하게 해!”
“진지하게 하는 소린데.”
에드워드는 말아쥔 주먹 끝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너한테는 언젠가 다 이야기할지도 모르거든.”
“뭣…….”
당황한 베로니카가 뭐라고 더 말하려는 순간, 약간 더 앞의 벽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그리고는 한 무리의 해골들과 엘프들이 통로로 쏟아져 들어왔다.
“조심성이 없구나, 군주의 첨병들! 목소리를 죽이지 않고 떠들어대다니!”
엘프의 외침에, 베로니카는 깊게 빡친 표정으로 허리춤의 재판용 나무망치를 내던졌다.
따악!
유쾌하다는 듯 입을 연 엘프는 순식간에 나자빠졌고 다른 엘프들은 경악했다. 베로니카는 철퇴를 꺼내 들고는 짜증을 가득 담아 외쳤다.
“좀 더 있다 와, 이 눈치 없는 것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