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94)
194화 만남의 광장 (3)
후끈한 공기가 지하 공간을 데웠다. 다행히 사교도들의 주문은 다 같이 질식하거나 타죽을 정도의 열기를 부르는 건 아니었지만, 사우나를 연상케 할 정도는 되었다. 마법진 아래, 지하 공간의 바닥에 나타난 붉은 원은 본 적이 있는 색이었다.
지옥의 가장자리, 불길의 강.
크어어어억!
그곳으로 먼저 돌입한 것은 악령들이었다. 타다 만 시체들.
자신들이 원하는, 전형적인 불지옥의 입구를 열었다는 사실에, 사교도 엘프들은 희열까지 느꼈다. 완벽한 오프닝.
악령들은 스켈레톤들을 밀치면서 에드워드 일행을 향해 쏟아졌다.
“너는 빛의 권능과 그 강함을 인정하라!”
베로니카가 외치자 그녀의 철퇴 끝이 빛났다. 붉은빛과 하얀빛의 경계에서, 일행의 전사들은 악령들에 맞서 싸웠다. 에드워드는 놈들의 무리 중에서 엥겔의 얼굴을 발견했다. 아지지야를 통해서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흉측한 모습이었다. 시커먼 상체는 어깨 위만 남아서 둥둥 떠다니는 듯했고, 얼굴은 일렁이는 불꽃 속에서 생전의 모습과 숯덩이를 오가며 바뀌었다.
가르달도 놈의 얼굴을 알아봤다.
“불로 정화하면 안 돌아온다며! 베니아 놈들, 구석구석 잘 좀 태우지!”
“장작값 아끼려고 그랬을걸.”
에드워드가 대꾸하는 순간, 엥겔이 소리쳤다.
“내 돈 먹은 놈들!”
에드워드는 반쯤 타다 남은 엥겔의 머리를 향해 열쇠검을 내리찍었다. 그는 쓰게 웃었다.
“요하나가 보기 전에 족쳐야지.”
에드워드가 엥겔을 열쇠검과 왼손으로 아주 박살을 내는 동안, 다른 전사들과 기사들도 악령에 맞섰다. 한 기사는 악령의 타고 없는 빈 신체에 칼이 박히는, 묘한 감각에 몸서리를 쳤다.
“뭐 이런 것들이 다 있어?”
파브리스는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밀리지 마라! 검이 닿는 놈들은 모조리 쓰러뜨려!”
다행히 악령들은 스켈레톤들마냥 쏟아지지 않았다. 대충 스물다섯쯤 나오자 그다음부터는 더 나오는 악령이 없었다. 개미 떼보다 많던 악령들을 떠올린 베로니카는, 그 사실에 주목했다.
“숫자가 적어. 무리에서 떨어져나온 놈들인가 본데?”
“그럼 다행인데.”
에드워드는 재로 부서지는 엥겔의 대가리를 마저 밟아 뭉개면서 중얼거렸다. 그때, 묵직한 발소리가 지하 공간을 흔들었다. 쿵.
“오오, 대악마께서 나오신다!”
사교도들이 무릎을 꿇었다. 모두의 시선이 바닥의 원으로 향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쏘아 올려지듯 거대한 악마가 뛰쳐나왔다. 뿔이 달린 거한의 모습. 팔다리의 피부는 금속을 꿰어놓은 듯한…….
“……가끔 있지. 한껏 분위기 잡더니, 별것도 아닌 게 재등장하는 클리셰.”
에드워드가 말했다. 베로니카는 허탈하게 웃었다.
“쟤였어?”
대장장이 악마는 호기롭게 등장했으나 붉은 옷의 두 남녀를 보고 굳어버렸다. 가르달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쟤 어쩌다 또 나온 거요?”
헬레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가르달 씨, 그때 쟤 안 죽였어요?”
“왜 나한테 물어?”
“마지막에 모가지 떼는 건 항상 당신 몫이잖아요.”
“내가 사형집행인이여?”
대장장이 악마는 바로 뒤돌아서서 도망치려 했지만, 에드워드가 더 빨랐다. 에드워드는 놈의 허리띠를 붙잡았다.
“어딜 도망가? 야, 네가 대악마야? 대악마냐고?”
“으아아아아악!”
언어의 형태도 이루지 못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사교도들은 당황해서 그 모습을 보기만 했다. 에드워드는 성인의 저주를 받은 손으로 악마의 팔다리를 마구 비틀어댔다.
“너 왜 여기 있어?”
“그, 그게! 불길의 강이 마구 흘러나가면서! 저도 그만 흘러나와버렸지 뭡니까!
꾸엑!
그래서 얼떨결에 따라온 악령들이나 부리면서 지내고 있었습죠!
으아악!
저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 아직요!”
“아직?”
“아, 아니! 계획도 없습니다!”
“사교도랑 작당하는 거 보면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주7일 근무에서 탈출했을 뿐…….”
“주7일 무급 휴직으로 바꿔줄까 보다. 휩쓸려 나온 주제에 아지지야를 네가 태웠다고 구라까지 쳤어?”
둘의 대화를 듣던 베로니카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실 그 소동에서 지분이 제일 큰 건 주술사 니코스였지. 그다음이 아마 에드…….”
카치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지금 밴시가 있었다면, 에드워드 경이 곧 대악마라고 개그했을 거야.”
“리안나는 그렇게 말하겠네요. 잘 분석하시네.”
베로니카가 감평을 내놓았다. 그 사이에 에드워드는 응징을 더 이어나갔다.
“지금부터 틀릴 때마다 한 번씩 더 꼰다. 토끼는 어떻게 울지?”
“찍찍? 끄악! 조, 좀 더 명쾌한 문제를 좀!”
“오리는?”
“꽥꽥!”
“병아리?”
“삐약삐약!”
“여우는 어떻게 울지?”
“캥캥!”
“틀렸어.”
“예? 그럼 어떻게 웁니까?!”
“딩딩딩 딩그링그딩!”
“뭐야, 그게! 그렇게 우는 여우가 어딨…… 끄악!”
대장장이 악마는 눈물 콧물 흘리면서 빌기 시작했고, 에드워드는 악마의 입에서 뭔가 결정적인, ‘다시는 사람 앞에 나타나지 않겠다’는 식의 돌이킬 수 없는 맹세가 나올 때까지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기대를 건 대악마가 위엄이건 뭐건 다 사라진 모습으로 고문당하자, 사교도들의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었다. 그래서 허탈감과 당혹감 등 온갖 말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힌 사교도들은, 베로니카가 상대했다.
“악마한테 속은 사교도라. 뻔한 결말이긴 하지. 어떻게 속아서 어떤 끝을 보느냐 그게 다 다를 뿐.”
대답은 없었다. 마지막 악령을 쓰러뜨린 백작령 기사들이 베로니카 앞으로 나섰다.
“아가씨는 물러서시죠. 이놈들은 저희가 포박하겠습니다.”
파브리스의 말이었다. 베로니카는 그를 향해 눈을 흘겼다.
“상처 없이 잡아. 묻고 싶은 게 많거든.”
“심문하실 겁니까?”
“이놈들이 뭘 갖고 있는지, 얼마 전 물귀신 소동과 연관이 있는지, 있다면 겨우 저런 대장장이 악마가 아니라 배후가 더 있는지, 최종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등. 당장 생각나는 것만 꼽아도 이 정도네.”
파브리스는 고개를 끄덕이곤 사교도들을 돌아봤다.
“순순히 항복하면 재판정까지는 숨을 붙여주마!”
주문 쓸 생각을 하지 말란 이야기였다. 그러나 궁지에 몰린 놈은, 마지막 발악을 하는 놈은 항상 있기 마련이었다.
크아아악!
목구멍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사교도들 뒤에서 터져 나왔다. 모두가 움찔하는 사이, 놈들의 대장이 앞의 동료들을 던져내듯 밀치며 앞으로 뛰쳐나왔다. 온몸의 핏줄이 두드러지게 돋고 눈이 뒤집어진 모양새. 베로니카는 눈살을 찌푸렸다.
“광폭화? 자살했네. 멍청한 자식.”
대장 사교도는 주변의 동료들을 집어던지거나 짓밟으면서 앞으로 나섰다. 한 백작령 기사가 그를 향해 검을 휘둘렀지만, 그는 주먹으로 검날을 받아냈다. 카앙! 쇳소리와 함께 검이 튕겨 나오자 기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뭐야!”
에드워드도 대장장이 악마를 향해 같은 질문을 꺼냈다.
“저게 뭐냐?”
“레피림 님이 주신 겁니다! 사교도들에게 주라고…….”
“내역 말고, 성능.”
“마지막까지 싸우는 광전사로 만드는 약이 있습죠. 정신과 영혼을 불태우고 대신 힘을 주는 겁니다. 신체도 바꾸지요.”
“그럼 쟤는 이제 못 고쳐?”
“가만히 놔둬도 죽을 겁니다.”
“그럼 안 싸워도 되…… 는 건 아니군. 젠장.”
광폭화가 끝난 사교도 대장은 백작령 기사들을 몰아붙이고 뚫을 괴력이 있었다. 속도도 빨랐다. 악마가 준 약 탓인지, 놈의 최우선 목표는 빛의 사제인 베로니카였다. 당황한 파브리스가 기사들을 향해 외쳤다.
“막아라! 아가씨한테 접근시키면 안 된다!”
쿠우웅!
기사들의 방패벽이 공성추랑 부딪히는 듯한 소리를 냈다. 그들의 비명이 지하 공간을 울렸다.
“칼날이 안 들어갑니다!”
“그럼 붙잡아! 묶어! 때려!”
파브리스가 다급하게 외쳤다. 에드워드는 대장장이 악마를 돌아봤다.
“하. 네놈 입에서 맹세가 나올 때까지는 시간 벌어야 하는데.”
“풀어주시면 재깍 지옥으로 돌아가겠습니다요! 얼른 사제님부터 구하시죠!”
악마의 교활한 속삭임. 에드워드는 가르달을 돌아봤다.
“얘 어디 묶어놓을 곳 없소?”
“기둥? 근데 이놈 완력이면 어지간한 기둥으로는 안 될걸. 이 굴에 기둥이 흔한 것도 아니고.”
콰르르르릉!
번개 주문이 사람들 사이를 갈라 대장 사교도에게 명중했다. 샛노란 섬광 사이로 불꽃이 연달아 튀었지만, 사교도 대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스텔라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놈 생각보다 튼튼하니까 얼른 기사님이 붙으세요!”
“마법으로는 안 되냐?”
“잘못 썼다간 우리 다 죽는 것 정도면?”
“이런 쓸모없는 마법사.”
“폭언이다! 장소가 안 좋아서 그래요!”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한번 힐끗 본 다음, 악마를 내려다봤다. 반질반질한 사암 바닥은 열쇠검을 꽂아놓을 틈도 없었다.
“운이 좋은 줄 알아라, 피라미.”
에드워드가 놓아주는 순간, 악마는 배배 꼬인 팔다리로 모래 먼지 가득한 바닥을 기어 왔던 구멍으로 쏙 도망가버렸다. 구멍은 만들어질 때보다 더 빠르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속죄 순례 중인 기사,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지나쳐 파브리스의 어깨를 주먹으로 밀쳤다.
“비키쇼. 저건 내가 막아야지.”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힐끗 돌아봤다.
“최우선순위라.”
그 순간, 사교도가 에드워드의 앞으로 도약했다. 에드워드는 한껏 찌푸린 얼굴로 놈을 향해 열쇠검을 휘둘렀다.
까아앙!
그 어떤 기사들과의 충돌보다도 큰 소리가 났다. 열쇠검은 엘프의 입에 들어가 목젖까지 밀어붙인 상황이었다. 에드워드는 혈관이 잔뜩 돋고 눈이 복어마냥 튀어나오는 엘프의 얼굴을 보고 중얼거렸다.
“슈퍼 솔저 혈청 수준은 못 되는군.”
에드워드는 놈의 입에 들어간 열쇠검을 비틀었다. 그가 괴수 따위를 상대로 즐겨 쓰는 패턴이었다. 속까지 단단한지 시험해 보는.
“하긴, 진짜 슈퍼 솔저 혈청이어도 네놈은 좆됐겠다.”
영혼의 문제.
에드워드는 검을 비튼 채 크게 휘둘렀다. 놈의 볼살이 터져나가면서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너덜너덜한 상처에서 뽑혀 나온 열쇠검에는, 사람의 팔보다 긴 혀가 엉켜 끌려 나왔다. 역겨운 광경에 스텔라는 헛구역질을 했다.
“기사님 싸우는 건 봐도봐도 적응이 안 돼요!”
백작령 기사들도 아연실색해서 그 광경을 보았다. 다만 상처의 참혹함보다 사교도 엘프의 신체 변화에 더 주목했다. 이빨은 날카롭게 솟아나기 시작했고 상처마다 새싹 같은 촉수들이 돋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기사들을 향해 일갈했다.
“구경만 할 거요?”
“도와달라고?”
“아니, 남은 새끼들 도망 못 가게 잡으라고!”
“아차!”
기사들이 당황해서 사교도들에게 달려가는 사이, 에드워드는 놈의 혀를 더 길게 뽑았다. 혀는 곧 뿌리째 뽑혀 나왔다. 에드워드는 그걸 놈의 목에 칭칭 감았다.
그러나 광전사는 멈추지 않았다. 모가지가 뼈만 남을 정도로 가늘게 졸렸지만, 머리통이 덜렁거리면서도, 베로니카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베로니카는 얼굴을 찡그리며 한두 걸음 물러섰다.
“이게 어디다 손을 뻗어?”
에드워드가 짜증을 내며 놈의 목을 더 강하게 졸랐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신발이 질질 끌리는 순간, 이놈이 ‘갈수록 질기고 강해진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타입은 시간을 오래 끌어선 안 된다.
“이 새끼를 어떻게 멈춰야 할까…… 스텔라, 너도 남은 사교도들 제압하는 데 껴! 헬레나랑 가르달은 이쪽에 붙고! 카치운!”
“뭐요?”
“리안나 좀 찾아보쇼! 이 근처에 있을 거야!”
“걔 찾아서 어따 쓰게?”
“저 찾아서 어따 쓰게요?”
리안나의 말이었다. 갈래갈래 이어지는 통로 중 하나에서, 만신창이가 된 올리비아와 함께 등장한 리안나를 보자마자 에드워드는 짧게 말했다.
“어따 쓰겠냐?”
리안나는 뒤로 돌아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카치운은 잽싸게 뛰어가 그녀를 붙잡았다. 밴시는 발버둥 치면서 소리쳤다.
“이쪽으로 오지 말 걸 그랬어! 어째 소란스러운 게 기사님이 여기 있는 것 같다 싶더라니!”
“그것만으로 여기를 찾아온 거냐? 너도 참 대단한 요정이다.”
카치운이 혀를 차며 말했다. 리안나는 다시 비명을 질렀다.
“주종계약 주문 탓일 거예요! 아, 정말! 나 언제 풀려나는 거야! 맨날 저런 거나 상대하고!”
카치운은 리안나의 비명을 무시하고, 그녀를 번쩍 들어다 에드워드 앞에 대령했다.
“얘 어떻게 쓰게?”
에드워드는 대답 대신, 광전사를 옆으로 쓰러뜨렸다. 놈의 터진 볼살 사이로 리안나의 정수리가 직격했다. 밴시의 울음소리가 터지자 카치운과 광전사는 동시에 뻗어버렸다.
“제, 젠장! 너무 가깝잖아!”
카치운은 간신히 몸을 추스려 영향권을 벗어났다. 에드워드는 계속 비명을 질러대는 리안나를 향해 말했다.
“너 일찍 왔으면 악마 놈도 붙잡아놓았을 텐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요?! 일찍 안 와서 다행이네요! 꺼내주세요! 꺼내줘요!”
상처에서 돋아 자기 정수리쯤에서 오물거리는 촉수들에 리안나는 기겁해서 외쳤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그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는 소매를 걷어 올리면서 말했다.
“잠깐만 좀 붙들고 있어라?”
그는 가르달과 헬레나를 돌아보았다.
“이제 다져.”
“오오, 묶을 곳이 생겼어! 기사 양반은 천재요!”
“……리안나, 미안!”
밴시는 사교도 대장이 차근차근 박살날 때까지, 훌륭한 기둥 역할을 다했다. 파브리스는 그 광경을 보고 식은땀을 흘렸다. 그는 베로니카를 돌아보았다.
“매번 이런 식입니까?”
베로니카는 대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