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96)
196화 놀을 드리겠습니다
에드워드가 연 광기의 연회는 사흘을 이어졌고, 언제 떠날지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 그래서 리안나는 짐꾼들과 함께 매일 아침마다 짐을 꾸리고 대기하다, 다시 푸는 짓을 반복해야 했다. 리안나는 소리 높여 주인을 규탄했다.
“기사님은 심술쟁이!”
“짐꾼들은 불만 없는데 넌 왜 그러냐.”
“그 사람들은 돈 받고 하는 거고! 저는 무급노동이잖아요!”
뒤로 기울인 의자 위에 앉은 에드워드는 주먹 끝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술이 덜 깬 그는 리안나의 발악적 항의를 받아칠 정신이 없었다.
“내가 이 짓 두 번 하면 수명이 단축되겠어…….”
며칠을 잇고 흥청망청 마시는 큰 연회야 앵글리아 왕실에서 몇 번 겪긴 했지만, 이번 연회는 속도전이었다. 사흘 안에 탕진해야 했으니, 마시는 양과 속도도 폭발적일 수밖에 없었다.
에드워드는 ‘드물게 숙취에 시달리는 드워프’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베로니카는?”
“우리보다야 일찍 일어나서 여기저기 다니고 있지. 베르세바 안에서야 위험할 것 없고, 헬레나가 따라붙어 있으니 걱정은 맙시다.”
“걔들은 기력도 좋네.”
듣고 있던 카치운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녀들이 기력 좋은 게 아니라 기사 양반의 생활주기가 문제지. 그녀들이 방에 들어간 뒤에도 남아서 계속 드워프랑 같이 술 마시고, 거기다 매춘부들까지…….”
“내가 넣어 달랬나, 그거. 덕택에 남은 연회비를 다 쓰긴 했는데.”
에드워드가 투덜거렸다. 가르달은 탁자에 머리를 박은 채 음울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연회에 춤추고 노래하는 매춘부들이 빠질 수 있나. 이곳 명사들의 기준이 참 안 좋긴 했지만.”
“드워프 기준?”
“드워프 기준.”
에드워드는 태클 걸지 않고 그냥 일어났다. 쿵. 의자 다리가 바닥에 부딪히며 약간 묵직한 소리를 냈다.
“슬슬 출발하긴 해야겠지. 스텔라나 주워올게. 베로니카와 헬레나도 찾아놓으쇼.”
스텔라가 잃었는지 땄는지는 일행의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에드워드는 적당히 시간을 재본 다음 물어물어 도박장으로 갔다. 그리고 옷까지 다 잃을 위기에 처한 여마법사를 구조했다.
잠시 뒤, 숙소 앞에서 베로니카는 스텔라를 보자마자 한숨을 내쉬었다.
“목적은 이뤘네요.”
“그래서 이번엔 안 말리신 거예요?”
“신의 뜻대로.”
“간발의 차였어요!”
그새 출발 준비를 끝마친 채 해장술을 홀짝이던 가르달이 이죽거렸다.
“월급이 사라진 마법사라니, 다시 노예 신세구만.”
스텔라는 수중의 돈과 물건들을 날린 것도 모자라 빚까지 진 상태였고, 에드워드가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노예로 팔려나가는 것도 각오해야 할 판이었다. 기사 에드워드는 기꺼이 돈을 지불했다. 그는 여마법사의 소지품들까지 되찾은 다음, 그 액수만큼 여마법사의 월급을 깎았다.
“중간에 운의 흐름이 왔다니까요? 별들이 속삭임이 지척이었는데!”
“너 점성술사로 전직했냐?”
“마법사도 점성술 공부 안 한 건 아니거든요! 제가 뭘로 점치고 다니는지 아시잖아요?”
“네 혓바닥.”
드워프는 한 마디도 안 졌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고는 말에 올랐다. 순서는 길잡이부터. 에드워드는 스텔라를 지나쳐가며 말했다.
“설령 크게 따도, 도박장 애들이 널 그냥 풀어주겠냐? 별별 핑계로 떼어먹거나, 다시 도박판에 앉히겠지.”
“그 정도는 마법사의 기지로 돌파해야죠?”
“그러니 못 따지. 내게 고마워하기나 해라. 너 사창가 팔려갈 뻔했다. 내일 연회서 보면 걸작이었겠지.”
그 말을 듣던 짐마차 위 리안나가 설탕과자를 오독오독 씹다 말고 끼어들었다.
“거기 가도 잘 적응하실 것 같은데요, 뭘.”
가르달은 껄껄 웃었다.
“깡마른 여자는 인기 없어.”
스텔라는 그 둘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이번 놀 소동에서 설욕을 하고 말겠어요.”
“어떻게? 주문? 주문 못 쓰면 마법사가 마법사냐?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가르달이 계속 깐죽거리자 헬레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스텔라 양이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한 건, 변명의 여지가 없긴 하지요.”
“엘프님, 고운 말로 사람 패신다!”
“도박 중독자는 어떤 말로도 옹호가 안 돼요.”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옛날에 어느 희극을 봤지. 도박으로 홀딱 벗겨진 채 알몸으로 걷던 글쟁이를, 어느 기사가 주워다 비서관으로 쓰면서 시작하는 이야기였는데.”
카치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광인을 줍는 기사라니, 괴팍한 시작이군.”
“덕택에 싸게 부리더군.”
에드워드는 스텔라를 돌아봤다.
“잘 부탁한다?”
“기사님, 때로는 고맙고 때로는 미워 죽겠어. 아주.”
스텔라가 이를 갈았다.
무리를 이룬 일행은 베르세바를 떠나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베로니카 뒤에는 올리비아가 따라붙은 것이다. 일행은 아닌 그녀가 베로니카를 향해 꺼낸 분석은 상당한 저평가였다.
“먹고 마시는 데는 재주가 있지만, 빚과 조롱과 협박으로 굴러가는 일행이 좋은 건 아닌 듯합니다만.”
“우린 시작부터 하인들과 호위병들이 다 도망치고 밴시 때려잡는 걸로 시작해 여기까지 왔어. 뭘 기대해?”
베로니카의 말에 리안나는 자기 정수리를 만지작거렸다.
“그렇게 말하니까 제가 이 일행 최고참 같네요.”
가르달이 폭소했다.
“그래 봤자 나랑 며칠 차이냐? 게다가 노예가 어디서 자유민과 동급으로 비벼?”
“드워프 아저씨, 꼭 지옥 가세요!”
“농담 아냐. 자유로운 순서로 따져봐. 기사 양반과 사제 아가씨 뒤로는 내가 제일 위야. 월급도 안 받거든. 월급 받는 카치운이 그다음이고. 불행히도 엘프는 신체의 일부…….”
“그 뒤의 단어가 더 나오면 또 걷어찰 거예요.”
헬레나가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아옹다옹하는 일행들을 뒤로하고, 베로니카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멀리 전방을 주시하며 말했다.
“급한 일은 아니라지만, 놀들의 준동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기도 하니까 슬슬 긴장들 좀 해요.”
“놀이 뭔데요?”
촌구석 밴시의 질문이었다. 올리비아가 대신 대답했다.
“하이에나 머리를 한 이족보행 생물체. 사회적인 위치는 빛이나 어둠 사이의 놈들로,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는 떠돌이 중립 종족. 상황과 때에 따라서는 몬스터 취급.”
“사티로스 같은 건가요?”
“놈들에 비하면 사티로스가 차라리 귀엽지.”
“그래서 종족이에요, 몬스터예요?”
“학자에게 물어봐.”
올리비아의 말에 밴시는 입을 삐죽였다. 남은 설명은 베로니카가 했다.
“전염병으로 죽은 시체들을 집단으로 묻는 매장지 알지? 교회 묘지가 부족할 때 급조했다가 가끔 뭐가 잘못되어서 언데드들이 일어나기도 하는 곳.”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 만하네. 거길 파헤치고 있대?”
“응. 시체를 파먹는 거야. 일반 짐승은 냄새도 못 맡고 땅을 파지도 못하게끔 깊게 묻지만, 지능이 높고 도구를 쓰는 놈들은…….”
“웬만한 장애물이나 깊이로는 못 막는다 이거군.”
올리비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잘못하면, 겨우 진정된 전염병이 다시 돌게 되지요. 게다가 파먹힌 시체는 몰라도, 다른 시체가 그 구멍으로 기어 나올 수도.”
“그렇겠지.”
“그런 더럽고 위험한 곳에 아가씨를 모시고 가는 건 정말 피하고 싶습니다만…….”
올리비아가 에드워드를 흘겨보았다. 에드워드는 후미를 턱으로 가리켰다.
“싫으면 지금이라도 너네 일행에게 돌아가.”
파브리스 일행은 에드워드 일행보다 좀 더 뒤쪽에서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올리비아만 에드워드 일행에 겨우 섞여서 베로니카 뒤에 붙은 것이다. 그녀는 뭔가 못마땅한 듯 입을 열다가, 한 마디도 못 꺼내고 도로 눈을 돌렸다.
“관두죠. 먼저 일에 집중하시는 걸로. 아가씨의 안전은 제가 책임질 테니까요.”
* * *
문제의 마을은 진흙으로 벽돌을 빚어 낮은 담을 쌓은 곳이었다. 일부 담은 집과 일체화되어 있으며, 출입구는 한 곳뿐이었다. 큼직한 문을 통과하면서 에드워드가 중얼거렸다.
“도시는 아니지만 제법 큰 마을인데.”
“집단 매장지가 왜 있겠니. 사람 숫자가 꽤 된다는 이야기지.”
베로니카의 말이었다. 잠시 뒤 베로니카는 촌장을 포함한 유력자들을 만났다. 빵과 고기, 차와 요구르트가 나오는 기본적인 접대를 거친 뒤 나온 이야기는, 간단하지만 쉽지도 않았다.
무기와 갑옷을 제대로 갖춘 놀이 최소 열. 하나하나의 실력은 웬만한 인간 남자를 뛰어넘는다. 무기와 갑옷을 어디서 얻고, 훈련은 어디서 받았는지는 불명.
“무기와 갑옷은 거래나 도둑질로 구했다 쳐도, 훈련을 어디서 받았느냐 하는 건 확실히 문제인데.”
베로니카가 중얼거렸다.
반대로 에드워드는 그 부분을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물귀신 소동 때 모였다 흩어진 오크들이 한둘이었냐? 그 쓸모없다는 고블린들도 무작정 불리던 놈들이야. 놀 같은 애들도 모으려 했겠지.”
“정작 그때 놀은 안 보였어.”
“놀한테 탈영이 불가능한 선택지는 아니잖아?”
베로니카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모르겠네.”
“이 경우는 원인보다 증상이 문제지. 잘 싸우는 놀 열 마리를 어떻게 물리칠 것인가.”
촌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마을까지는 오지 않고, 설령 오더라도 담벼락과 사람들 머릿수로 막아낼 수 있기는 합니다만…….”
베로니카가 질문을 시작했다.
“베르세바의 군주는 왜 여길 안 도우시고?”
“물귀신 소동이 바로 얼마 전이었으니까요. 아직은 놀들이 마을을 직접 공격하는 것도 아니고.”
“대화는 시도해 봤나요?”
“집단 매장지를 파헤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만, 이상한 웃음소리만 흘리더니 오히려 도발하더군요.”
“뭐라고 하던가요?”
“그게, ‘나는 나보다 약한 녀석의 명령 따위는 듣지 않는다’라더군요.”
에드워드는 피식 웃어 버렸다.
“재밌는 새끼들이네. 그럼 강한 녀석의 명령은 듣겠지?”
에드워드는 파브리스 일행을 돌아봤다.
“여기 기사가 나까지 열하나는 되지? 엘프도 있고, 드워프도 있고, 유목전사도 있네.”
베로니카가 눈을 흘겼다.
“그래서, 결투라도 하게?”
에드워드는 짧게 박수를 쳤다.
“채택.”
“뭐?”
“어떤 놈이 더 센지 대결하는 게 제일 빠르고 좋지. 놀도 결투는 하겠지?”
올리비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놀은 정정당당함을 모르는 비열한 놈들입니다. 일대일 결투로 전부 쓰러뜨리더라도, 우리가 떠나면 다시 여길 기웃거릴 겁니다.”
“데려가면 돼.”
“수도 밀리온까지요? 놀들을 부하로 만드실 겁니까?”
“아니. 시르티카 백작령까지.”
“네?”
“백작한테 선물로 보낼게. 시오니아 수도보다는 백작령이 가깝잖아.”
올리비아는 잠시 얼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파브리스가 뒤늦게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에드워드 경. 그게 무슨 뜻입니까?”
“말했잖아. 놀을 죄다 쓰러뜨려서 백작한테 선물로 줄게. 그러니 데리고 돌아가.”
파브리스는 입을 먼저 벌린 다음에야 겨우 할 말을 찾았다.
“대단히 감사한 말씀입니다만, 저희 임무는 아가씨를 호위하여 백작령으로 가는 것입니다. 다른 임무에 인원을 할당할 여력은…….”
에드워드는 고개를 옆으로 크게 까딱였다.
“그래서, 이 내가, 소금산의 드워프가, 아르데니아의 벚나무 씨족이, 항카이부의 타이지의 손자가 주는 선물을 안 받을 거임?”
파브리스 일행 모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들의 머릿속으로 공통된 생각 하나가 지나갔다.
‘이 트롤 같은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