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0)
20화 결산, 그리고 다시
도시는 비상 사태를 해제했다. 모두는 승리의 기쁨에 환호했다. 밴시 리안나만 빼고.
객관 1층은 축제의 장이 되었다. 술잔을 하나씩 낀 용병들은 순례자 에드워드의 기지와 용맹을 칭송했다. 에드워드는 환호하는 객관 안팎의 시민들과 용병들을 향해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야, 이 정도면 절도죄 정도는 벌써 씻은 거 아냐? 교회와 왕이 용서 안 해 줄까?”
베로니카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마. 왕실 보물이 그리 가벼운 물건이니? 게다가 꼽등이들은 숫자만 많았을 뿐이잖아.”
“젠장.”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에드워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말대로였다. 게다가 저주도 아직 안 풀렸으니 순례길은 계속 이어 가는 수밖에 없었다. 에드워드는 손잡이도 통 쇠로 만든 전용 술잔을 들고 탁자 위에 올라간 다음, 자신의 무용담을 마저 떠들기 시작했다.
리안나의 등짝을 걷어찬 부분에서 이단심문관 베로니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누가 너한테 그딴 식으로 신명 재판할 권리를 줬니, 이 망나니야?”
“그게 중요한 건가요…….”
밴시 리안나가 중얼거렸다. 에드워드는 곧바로 항변했다.
“그렇게 따지면 꼽등이나 밴시가 재판받을 권리는 어딨어?”
베로니카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결론은 빠르게 나왔다. 요정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그러네.”
“너무해!”
리안나가 비명처럼 외쳤다. 밴시와 꼽등이를 동급으로 취급한단 소리니까. 시민들과 용병들 사이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그때 몇몇 용병들이 큼직한 궤짝들을 들고 객관 안으로 들어왔다. 선두에는 젊은 시 공무원 하나가 서 있었다. 에드워드는 탁자 위에서 내려와 베로니카의 앞에 섰다. 공무원은 에드워드 일행을 향해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말했다.
“일행의 침실까지 꼽등이가 쳐들어온 것에 대한 배상, 그리고 도시에서 보내는 감사의 표시입니다.”
쿵! 용병들이 내려놓은 궤짝에서 묵직한 소리가 나왔다. 에드워드는 리안나에게 턱짓을 해 보였다. 리안나는 쪼르르 달려가 궤짝들을 열어 보았다. 번쩍거리는 은화들이 그 광채를 드러냈다. 사람들이 감탄하는 사이에 공무원이 설명했다.
“이 사태에 책임이 있는 자들의 재산을 몰수하였는데, 그 일부입니다.”
베로니카는 그 양을 슬쩍 보더니 말했다.
“내 몫은 절반만 남겨라. 나머지는 도시의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도시를 위한 몫은 이미 따로 떼어 두었습니다.”
뻔하지만, 체면상 벌어지는 밀고 당기기. 베로니카는 궤짝 하나를 교회에 헌금하고, 나머지를 전부 받는 것으로 타협했다. 그리고는 에드워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절반은 네 거야.”
체면 문제는 이미 베로니카가 해결했으니 온전히 즐기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에드워드는 궤짝 하나를 열고는 은화를 한 주먹 쥐더니, 용병들과 시민들을 향해 뿌렸다.
“지금부터는 내가 산다!”
환호가 더 커졌다. 용병들은 에드워드의 신발이라도 핥을 기세였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그들의 축하주를 받고는 자리에 앉았다. 리안나는 그 모습을 보고 뾰로통해졌다.
“여기서 제일 고생한 건 저 같은데요?”
“넌 무급 노예잖아.”
에드워드가 밴시의 항의를 원천 차단했다. 그러자 이때 한 용병이 끼어들었다.
“이 영웅적인 업적은 동상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에드워드는 흥미를 보였다.
“오, 동상. 좋지. 근데 어떤 형상으로?”
“그야 꼽등이들을 향해 밴시를 걷어차는 기사님이죠! 길이 남을 형상 아닙니까?”
“너무해!”
리안나가 다시 비명을 질렀다. 앵글리아에 대대로 남을 동상치고는 끔찍한 꼴이긴 했다. 시민들 사이에서 다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에드워드도 낄낄 웃으면서 리안나를 손가락질했다.
“진짜 동상 만들면 얘 표정은 내가 감수해야겠다.”
“지옥 가세요! 기사님 꼭 지옥 가세요!”
“애를 너무 놀리시는군요. 걔가 제일 고생했는데.”
연금술사 미아만이 밴시의 편이었다. 그녀는 리안나를 위한 선물도 준비해 왔다.
“여하튼, 연금술사의 솜씨를 제대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시의회의 얼음 창고에서 빼 온 얼음에 초석을 섞으면 그 온도가 낮아지면서…… 이렇게 언 과일을 으깨고 간 얼음을…… 짜잔.”
온갖 약품과 도구를 꺼내서 바쁘게 움직이던 그녀는 약간 붉은 빛이 도는 빙수 네 그릇을 내밀었다. 그중 하나는 특출나게 양이 많았다.
“딸기와 꿀을 섞은 셔벗입니다. 리안나 것은 특별히 두 배.”
“나는 좀 더 달게 해 줘.”
에드워드가 토를 달았다가 베로니카한테 등짝을 맞았다.
“적당히 해.”
둘이서 만담을 하거나 말거나, 리안나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눈앞의 셔벗을 바라보았다. 밴시 소녀의 눈에 먹고 싶다거나 갖고 싶다 같은 욕망은 없었다. 먹고 싶다는 욕망은 먹어 본 적이 있을 때나 성립하는 것이었다. 그건 ‘세상에 이런 물건도 있었던가’ 하는 경이의 눈빛이었다.
“왜 여름에 얼음이 있죠?”
대답은 에드워드가 해 줬다.
“호수의 얼음을 잔뜩 잘라다 지하 창고에 처박아 둔 거야. 그러면 여름에도 꺼내 먹을 만큼 얼음이 남지.”
“이번엔 연금술사의 특별한 기술도 더했습니다.”
미아가 덧붙였다. 에드워드는 더 설명하지 않고 자기 몫을 한 숟갈 입에 넣었다. 그걸 본 리안나는 그 행동을 따라 했다. 다만 더 조심스러웠다. 첫 숟갈을 입에 넣는 순간 그녀의 눈이 빛났다.
“차가워! 달아요!”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신났구만. 녹기 전에 다 먹어라.”
“이런 건 처음 먹어 봐요. 기사님은 그렇지 않아요?”
“난 전에 먹어 봤어. 그리고 진짜 사치는 겨울에 난롯불 빵빵하게 때고, 그 옆에서 설탕 넣은 얼음과자를 먹는 거지. 겨우 이 정도 갖고 뭘.”
“와, 기득권!”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냐? 데니스가 가르쳐 줬어?”
“베로니카님이 쓰던데요. 데니스는 누구예요?”
에드워드는 한 번 씩 웃은 다음 자신이 먹던 그릇을 밴시 리안나에게 넘겼다.
“기사님? 그릇에 얼음 남았는데요?”
“네가 다 먹어라.”
리안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에드워드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미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죽은 연금술사들도 어느 정도는 위안이 됐을 겁니다. 남은 죄는 신께서 가늠하고 벌하시겠죠.”
“넌 사례 더 필요 없냐?”
“이미 여러 가지를 챙겼으니 여비는 충분합니다.”
“연금술사 언니는 같이 성지로 안 가요?”
리안나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에드워드가 슬쩍 농을 걸었다.
“왜? 베로니카 밑에 있기 싫냐?”
리안나는 에드워드를 곁눈질하더니 작게 말했다.
“사제님보다 기사님이 더 문제인데요.”
미아는 싱긋 웃고는 베로니카에게 물었다.
“얘 파실 생각 없죠?”
“안 팔아. 이렇게 귀엽고 쓸모 있는 애 또 봤어?”
베로니카가 웃으면서 답했다. 에드워드는 생각이 달랐다.
“비싸게 주면 난 팔 용의가 있는데.”
베로니카가 그의 발등을 자근자근 밟는 사이 미아는 리안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연금술사들은 돈도 없고 할 일은 많아. 혹시 다음에 또 만나면 셔벗 또 만들어 줄게. 그때는 저 못된 기사님이 값 치르게 해야 한다?”
리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워드는 작게 투덜거렸다.
“갑자기 손해 본 느낌이 들었어. 난 미녀와 도시를 괴물한테서 구했다고.”
“방법이 문제에요. 방법이.”
미아가 말했다. 에드워드는 콧방귀를 뀌었다.
“방법이라. 뭐, 됐다. 성지까지는 참아야지.”
에드워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미아를 향해 말했다.
“연금술사, 무릎 꿇어.”
“네?”
“꿇으라고.”
“설마, 그 말 했다고 제 목을 치려는?”
“그럴 리가 있냐? 약속을 지키려는 것뿐이야.”
“약속?”
에드워드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한껏 무게 잡은 목소리로 말했다.
“꿇어라.”
술잔을 기울이며 떠들던 시민들이 조용해졌다. 미아는 머뭇거리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에드워드는 검 대신 손날을 그녀의 어깨에 얹었다.
“너는 세속의 처벌과 신앙의 약속을 두려워하라.
약자를 보호하고, 선을 행하라.
그리하여 우리가 언제 주님 앞에 서든,
명예는 너와 함께 하리라.
기사여, 일어나라.”
미아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에드워드는 손을 거두곤 어깨를 으쓱했다.
“때리는 건 생략. 내 손으로 치면 위험하니까. 뭐, 안 때려도 평생 잊지 못할 거고.”
“이거…… 기사 서임식 아니에요?”
“왜 아니겠어? 베레스포드 공작가 방식이지.”
“어째서 이런걸?”
“내가 말했지? 첫 지원자 중에 그럴 가치가 있는 놈은 기사로 임명하겠다고. 사내새끼들 다 내뺐는데, 끝까지 따라온 건 너뿐이었잖아.”
사실, 그 조건에도 안 따라온 놈들은 보고 후회하라는 의미도 강했다. 에드워드의 의도대로 탄식하는 놈들이 몇 있었다. 미아는 놀라서 입을 벌렸다.
“전 여자인데요?”
“상관없어. 용기와 가치를 입증했으면 대우를 받아야지.”
미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에드워드에게 바짝 붙었다. 그녀는 그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이 정도면 손해는 아닌지요?”
베로니카는 못 볼 걸 봤다는 표정을 지었다. 에드워드는 기어이 사족을 덧붙였다.
“오, 생각보다 좋군. 근데 기왕이면 입에서 입으로 좀…….”
“여기서 만민 노출 광란 쇼라도 할 거니?”
베로니카가 다시 그의 발등을 짓밟는 사이, 눈치 빠른 용병이 잽싸게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그의 박수는 곧 객관에 모인 시민 전체로 퍼졌다. 에드워드는 목이 쉬어라 소리치는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준 다음 자리에 도로 앉았다. 베로니카가 ‘그대는 양심과 능력과 용기를 증명했으니 성지의 교구로 한번 찾아오라’는 내용의 소개장까지 미아에게 증정하자 사람들의 박수는 더 커졌다.
곧 미아는 시민들한테서 축하주를 받느라 정신없이 바쁘게 되었다.
에드워드는 베로니카에로 시선을 돌렸다.
“언제 출발하냐?”
“이렇게 퍼마시게 되어서야, 내일 아침 아니면 정오 전에?”
“숙취가 없으면 아침, 있으면 정오쯤이란 말이군.”
에드워드는 자기 잔을 비웠다. 곧바로 술잔이 다시 찼다.
베로니카가 만취를 선언한 뒤 자기 방으로 가 버리고, 마지막 용병들이 바닥을 헤엄칠 때쯤에야 에드워드는 자기 방에 올라갔다. 연금술사 미아의 부축을 받아서.
“우와, 무거워. 기사 서임 받고 첫 업무가 술 취한 선배 부축하기라니.”
미아는 침대 위에 에드워드를 내동댕이쳤다. 에드워드는 혀 꼬인 소리로 물었다.
“넌 왜 안 취하냐? 그것도 연금술이야?”
“체질이에요.”
“아무튼, 나가. 나 지금 취해서 힘 조절 안 돼.”
“괜찮아요. 손 묶었으니까.”
그제야 에드워드는 자기 손을 보았다. 주먹을 쥔 채 천으로 칭칭 감긴 양손. 동그란 주먹을 본 그는 낄낄 웃어 버렸다.
“아니, 이런 거 해 봤자 내 힘이면…….”
하지만, 주먹은 펴지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미아는 미소를 지었다.
“무는 힘은 강하지만, 턱을 벌리는 힘은 대단치 않아서 천으로 묶기만 해도 입을 벌리지 못하는 동물들이 있다죠.”
“아, 씁. 이 생각을 못 했네.”
“물론, 그 상태로 뭔가를 집는다거나 만질 수는 없겠지만요. 그동안 잘 때는 어떻게 하셨어요?”
“가장 크고 뻣뻣한 가죽 벙어리장갑을 썼지. 실수로라도 거시기 긁을까 봐.”
에드워드는 자기 손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제대로 된 꼬락서니는 아니지. 불편해.”
“아쉬운 대로 하는 거죠.”
미아는 옷을 훌렁훌렁 벗기 시작했다. 에드워드가 뭐라고 더 말하기 전에 그녀는 침대 위에 올라왔다. 에드워드는 겨우 농담부터 꺼냈다.
“아니, 벌써 시험해 보게?”
“뺨으로는 부족하시다면서요?”
“그렇긴 한데, 너 언제 그럴 맘이 생긴 거냐?”
“얼마 안 됐어요. 서임받고?”
“의외로 방종하구만.”
“기사님 잘못이에요.”
미아는 에드워드와 입을 맞추고는 깊게 혀를 집어넣었다. 끈적한 침이 두 남녀 사이를 이었다. 미아는 에드워드를 도발했다.
“이제 와서 못 하시겠다는 건 아니죠?”
“그럴 리가.”
에드워드는 벌떡 일어나 미아를 옆으로 쓰러뜨렸다. 이제는 그가 미아 위에 있었다. 그녀가 침을 삼키고 입술을 핥는 순간, 에드워드는 온몸으로 그 나체를 덮었다. 미아는 그를 팔다리로 있는 힘껏 끌어안으며 환영했다.
다음날 정오쯤 객관의 하인이 깨우러 올 때까지 에드워드는 길게 뻗어 버렸다. 결국 그는 제때 못 일어났다.
에드워드는 천으로 칭칭 묶인 두 주먹을 바지에 넣는 방법으로 대충 붙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로비에는 숙취에 시달리는지 머리를 짚은 베로니카가 기다리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자신의 두 주먹을 내밀었다.
“이것 좀 풀어 줄래?”
“싫어.”
“박하기는.”
“그 여자랑 물고 빨았을 불결한 천을 다른 여자에게 풀어 달라고 하는 건 좀 무례하지 않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에드워드는 결국 자신의 주먹을 싸맨 천을 입으로 풀었다. 천 뭉치는 그가 한참 끙끙거린 끝에 천천히 풀려 나갔다. 베로니카는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나름 방법을 찾았네. 저주 해제할 필요 없는 거 아냐?”
“손에 습진 걸릴 판이긴 장갑이나 이거나 매한가지야. 게다가 역시 손으로 못 잡는 건 괴로워. 악령도 허깨비도 아니고, 감옥 나와서 처음 만져 보는 진짜 여자의 살갗이었는데.”
“다행이네.”
“남의 불행이 다행이라니.”
“네가 순례 그만두겠다고 하면 곤란하니까.”
베로니카는 쪽지 하나를 내밀었다.
“아침에 보니 네 머리맡에 있더라. 미안하지만 읽어 봤어.”
베로니카는 일찍 일어나서 에드워드를 몇 번씩 깨워 봤다는 소리였다. 에드워드는 머쓱해 하면서 그 쪽지를 받았다. 내용은 짧고 간결했다.
‘저주를 풀거든 더 세게 안아 줘요.’
에드워드는 피식 웃고는 베로니카를 향해 그 쪽지를 흔들었다.
“할 만하네, 성지 순례.”
“종마 같은 놈.”
“칭찬으로 들을게.”
에드워드는 천을 허리띠 대신 바지에 묶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 여기저기가 비명을 질렀지만, 결국 움직여야 했다. 할 일은 많았다. 산을 넘고 배를 타는 것은 물론, 미처 감정하지 못한 마법 반지와 변신 옷도 감정해야 한다.
에드워드는 정오쯤부터 객관 출입구서 출발 대기 상태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밴시 리안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옷가지 챙겨서 내려온다. 바로 출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