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00)
200화 인질극
밴시와 허리띠는 파브리스 일행에 몰래 접근했다가, 가르달의 등장까지 보고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서로가 보고 들은 것을 경쟁적으로 말했다. 제일 먼저 질투심을 드러낸 건 허리띠 캐슬린이었다.
“저 혼자 보고 와도 되는데! 기사님은 아직 저 못 믿으시나요!?”
“기사님이 원래 창녀는 쉽게 믿는 게 아니랬어요.”
“이 빌어먹을 노예 꼬맹이! 그러고 보니 너랑 요즘 안 싸웠구나!”
“머리카락 잡지 마요!”
카치운이 그 꼴을 보고 중얼거렸다.
“아랫것들이 노예와 매춘부와 먹물로 갈려 싸우고 있으니, 에드워드 경의 치세는 평탄하겠구만.”
에드워드는 그 농담에 응답하지 않았다. 대신 파브리스와 베로니카 사이의 분위기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것에 주목했다.
“최소 열 살에서 열한 살 때부터 모신 가신이라. 역시 죽이기는 좀 껄끄럽나?”
“그래봤자 폭력을 써서 납치한 자인데, 때려죽여도 무방하지 않소?”
“내 성깔이나 법으로야 그래도 되지만, 베로니카 기분이 문제라.”
“마누라 눈치를 보는 건 훌륭한 공처가 기질이지.”
“아니, 뭐, 마누라는 아니지만, 일단은…… 죽이지 말고 제압하는 걸 기본으로 갑시다. 어제 싸웠던 쫄따구들 취급할 때처럼.”
둘의 대화를 듣던 올리비아가 이를 갈았다.
“누가 누구 마누라라고? 불경한 놈들!”
“아이고, 올리비아 님. 살려준다는데 왜 도발해요?”
다른 포로가 태클을 걸었다. 카치운은 그를 손가락질했다.
“그런데 포로 교환을 할 거면 더 잡아 오는 게 낫지 않았소? 명예로운 항복이니, 뭐니, 하면서 풀어줄 게 아니라.”
“명예로운 항복은 핑계요. 궁지에 몰린 놈이 제안하는 명예로운 항복이 어딨어? 딱 셋 정도만 있으면 되니까 나머지 둘은 풀어준 거요. 숫자가 많아지면 끌고 오기만 힘들지.”
“왜 셋이오?”
“그래야 겉보기로는 숫자가 비슷해 보여도, 저쪽이 거부할 근거가 될 테니까. 이 포로 교환은 안 이뤄질 거요.”
“여기에 자기 혈육이 있는데?”
“혈육을 나하고 싸움 붙이는 시점에서, 이미 포기할 각오는 되었다고 보거든. 아니면 부녀 관계가 좀 복잡할지도. 여기사가 있는 집안은 쌈박질이 좀 잦거든.”
영주 부인이 부재중인 남편을 대신해 갑옷 입고 무기 쥐어 병사들을 지휘했다는 이야기야 적지 않지만, 귀족 여자가 정식으로 기사 훈련까지 받는 예는 흔한 게 아니다. 펜대 굴리고 책장 넘기는 훈련을 받는 것보다 더 드물다. 집안이 파란만장하게 굴러갔다 해도 이상할 건 없다.
올리비아는 바로 의문을 드러냈다.
“그럼 왜 우릴 포로 교환을 제안한 거냐?”
에드워드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시간 끌기. 자, 카치운. 슬슬 이동합시다. 포로들은 재갈 씌우고.”
“복잡하게 움직이는군. 그냥 덮쳐도 우리가 이길 텐데.”
카치운의 말에 에드워드는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간 스텔라가 인질로 잡힐 거요. 걔들이 스텔라도 데려간 이유 중 하나가 그거겠지. 베로니카를 인질로 쓸 수는 없으니까.”
“흠. 그랬다간 더 비참하게 죽여줄 자신이 있는데.”
“죽이지 말자니깐.”
헬레나는 포로들에게 재갈을 물리는 카치운을 곁눈질하다 말했다.
“그래도 스텔라 양을 버리진 않으시는군요.”
“내가 걔를 왜 버려?”
“생채기 정도는 나도 어쩔 수 없다거나, 그 전에 제압하겠다는 식으로 위험을 무릅쓰지 않으려나 했죠.”
“파브리스 새끼는 진심이야. 아니라면 이 난장판을 쳐놓을 생각을 안 했을 테니까. 생채기 정도가 아니라, 스텔라의 손끝이나 귀 끝이 조금씩 떨어져 나가도 이상할 게 없어. 조금씩 뜯으면 인질은 알뜰하게 쓸 수 있거든.”
비위가 상하는 이야기였다. 헬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의 위험도 감수할 수는 없다, 이거군요. 스텔라 양이 들으면 기뻐하겠네요.”
“그럼. 걔도 내 거잖아.”
헬레나의 눈빛이 묘해졌다.
“어떤 의미로요?”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걔한테서는 받을 것도 줄 것도 좀 많아서.”
“욕심이 많으시군요.”
“알면서 따라온 거잖아?”
올리비아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헬레나는 그녀를 향해 귀를 까딱였다가 말했다.
“대충 불결한 색욕죄악을 규탄하는 내용인 듯하네요.”
“저런. 너도 동의해?”
헬레나는 말에 올라타면서 말했다.
“당신 솜씨를 구경할 때는 동의하지 않아요.”
실패하지 말라는 압박.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뭐, 항상 그렇듯 좋은 결과를 내보자고.”
* * *
“엑, 기사님이 진짜 그렇게 적었어요?”
스텔라는 홍조를 띈 얼굴로 말했다. 가르달은 자기 손에 쥐어진 종이 쪼가리를 흔들었다.
“너 베르세바 나가기 전에 기사 양반한테 도박 빚 졌잖아. 그 이야기겠지.”
“여자의 로망에 재를 뿌리다니, 드워프 영감님은 악질 중의 악질!”
“누가 영감이야!”
파브리스는 당장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에드워드 경은 확실히 대단한 사람이군요. 세 번이나 놀랐습니다. 올리비아를 제압했다는 게 첫 번째, 나름 흔적을 지운다고 애쓴 우릴 쫓아온 게 두 번째, 그리고 이 제안이 세 번째.”
가르달은 콧김을 내뿜었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거든!”
“사실 제가 에드워드 경이라면, 이 제안은 안 했을 겁니다. 기습했겠죠.”
그때쯤, 경사로 아래로 굴러떨어졌던 파브리스의 부하가 간신히 기어 올라왔다. 그는 자길 걷어찬 드워프를 보고 이를 갈았다.
“대체 뭘 기다리는 겁니까, 대장? 싸우죠!”
“애석하게도 지금 우리 전력으로는 에드워드 일당을 못 이겨. 기습이 아니라 해도 말이지. 따라잡힌 시점에서 반은 진 거야. 추적술이 보통이 아니군.”
파브리스는 스텔라와 베로니카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우리한테 남은 선택지는 두 개지. 이 포로 교환에 응하거나, 아니면 마법사를 인질로 잡거나.”
스텔라가 뒷걸음질을 치려 했지만 바로 다른 부하가 달려가 그녀의 팔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파브리스는 웃으면서 말했다.
“얼른 묶어놔. 아, 재갈은 물리지 말고. 여마법사가 인질로의 가치가 없다고 말하면 어쩌나 고민 좀 했는데, 그런 걱정은 알아서 덜어주시는군.”
“파브리스, 죄악 그만 적립하고 회개하지? 에드워드가 너 가만 안 놔둘 거야.”
베로니카가 경고했다. 파브리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 양반이 역시 무력은 대단한 모양입니다만, 저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라서요. 인질이라는 카드가 남아있는 이상은…….”
“진지하게 너 걱정해서 하는 소리다?”
그때, 화살이 바람 가르는 소리가 울렸다. 피융! 퍽! 살 뚫리는 소리가 뒤를 잇더니, 스텔라를 묶던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내 팔!”
그게 신호였다. 모두가 검을 뽑았다. 파브리스는 곧바로 스텔라를 붙잡고 베로니카도 끌어당겼다.
“양팔의 꽃을 이런 식으로 이루는 건 생각 외였는데.”
“하, 너 혼자서 여자 둘을 다 데려가게?”
“아가씨, 이제 문손잡이는 스스로 여신다지요? 이번에도 스스로 좀 걸으셔야겠습니다. 이 마법사 아가씨 귓불이 떨어져 나가는 꼴 보기 싫으시면요.”
“너 지금 나 협박하니?”
“아가씨로 협박할 수는 없잖습니까. 아님 저 기사 양반 좀 진정시켜 주시던가요. 불쌍한 가신과 여마법사 좀 굽어살펴 주십쇼.”
어둠 속에서 뛰쳐나온 에드워드 쪽 전사들은 순식간에 파브리스네 전사들을 제압했다. 숫자도 이미 부족한데 기세마저 밀린 그들은 빠르게 쓰러졌다. 경사로를 올라왔던 사내는 가르달의 발길질에 도로 추락했다.
“디스 이즈 스파르타!”
“뭐라아아악!”
에드워드에게 물든 드워프는 데굴데굴 굴러가는 놈에게 눈길도 안 줬다.
헬레나는 글레이브 자루로 상대를 후려쳤고, 에드워드는 상대의 무기를 박살내 놓는 걸로 끝냈다. 카치운은 화살이 꽂히지 않은 다른 팔로 무기를 잡고 선 전사를 향해, 다시 활을 겨누었다.
“난 성격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거든? 전직이 현상금 사냥꾼이라.”
결국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는 판단에 사내는 검을 놓았다. 그걸로 끝. 에드워드는 부서진 검 파편 앞에 전사 하나를 무릎 꿇려놓고는 헬레나에게 말했다.
“얘들 좀 감시해.”
그리고는 파브리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혼자서 납치대상과 인질까지 간수하며 도망치기는 굉장히 힘들 것 같은데.”
“많이 해보신 듯합니다?”
“해본 건 아닌데, 사람 셋이서 말 하나에 타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거든.”
“두 말에 나눠 타는 방법도 있습니다. 아가씨도 이 마법사가 고문당하는 걸 보기 싫으면 협력하겠죠.”
에드워드는 머릿속으로 대충 그림을 그려보았다. 베로니카를 말에 태우고, 다른 말에 파브리스와 스텔라가 앉은. 그리고 파브리스는 쫓기면서 그걸 다 통제해야 한다.
“반쯤 곡예 같겠군. 자신 있나?”
“솔직히, 힘들겠지만, 시도해 봐야죠. 안 되면 걸어서라도 가던가.”
에드워드는 투구를 벗고는 땅에 내던졌다.
“허튼소리 말고, 곱게 항복해라. 나 많이 참았거든.”
침묵. 파브리스는 더 말하지 않았다. 잠시 대치하던 에드워드는 결국 짜증을 내며 한 걸음 성큼 내딛었다.
“여마법사 몸에 상처 하나 낼 때마다 네 몸엔 세 개씩 내주지.”
반응 없음. 에드워드는 베로니카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너네 가신인 건 알겠는데, 이 정도 짓거리까지 한 놈을 내가 살려줘야 할 필요 있나?”
베로니카도 침묵했다. 에드워드가 다시 말하려는 순간, 헬레나가 말했다.
“뭔가 이상한데요.”
“뭐가?”
“이거저거 있지만, 특히, 더는 아무도 말을 안 하는 게…….”
에드워드는 세 사람을 다시 살펴보았다. 그 순간, 그는 미세한 차이를 발견했다.
언젠가 그런 옛날 액션 영화가 있었다. 카메라로 인질을 감시하는 테러범을 속이기 위해, 경찰이 짧은 영상을 녹화해서 반복해 송출하던 장면. 경찰은 잠시 테러범을 속이고 인질들을 빼내지만, 위화감을 느낀 테러범이 영상을 계속 주시하다 끊기는 걸 보고 속임수를 알아챈다.
에드워드는 스텔라의 다리 위치가 갑자기 미묘하게 바뀌는 걸 보았다.
“아, 이런 젠장!”
에드워드는 성큼성큼 걸어가 파브리스의 머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후웅!
살이나 뼈 때리는 소리 없이, 세 사람의 모습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카치운은 놀라서 입을 벌렸다.
“마법?!”
“이 부녀는 쌍으로 하이브리드네! 환상이야! 중간에 바꿔쳤어!”
마법 아이템의 효과인지, 파브리스 본인의 능력인지는 모른다. 에드워드는 이를 갈며 근처의 가장 큰 바위 위로 올랐다.
“어쩐지 여유롭다 했더니 이런 능력을 숨기고 있었군!”
“어쩌게요? 계속 환상을 쓰면 잡기가 힘들 텐데.”
헬레나의 질문에 에드워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어둠 속을 향해 소리쳤다.
“스텔라, 지금!”
콰르르르르릉!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멀지 않은 곳에 벼락이 내리쳤다. 그걸 본 가르달은 입을 쩍 벌렸다.
“뭐야? 스텔라가 마법 쓸 수 있었소?”
에드워드는 바위 아래로 뛰어내리며 말했다.
“댁이 시선 끄는 동안 허리띠와 밴시가 엿듣기만 했을까?”
가르달은 자기 이마를 쳤다.
“아, 시약을 스텔라에게 미리 전달해 준 거군!”
가르달이 감탄하든 말든, 에드워드는 벼락이 떨어진 장소로 내달렸다.
잠시 뒤, 그는 입에 거품을 문 채 쓰러져 움찔거리는 파브리스를 보았다. 스텔라는 자길 묶은 밧줄을 에드워드한테 들어 보였다.
“기사님과 멀어지니, 명령 없이 쓸까 말까 정말 고민 많이 했어요. 왜 가만히 계셨어요?”
“이 자식이 환상을 써서 우리 시선을 뺏었어.”
에드워드는 파브리스의 등짝을 한 번 걷어찬 다음, 스텔라의 밧줄을 풀어줬다. 베로니카는 그다음. 에드워드는 베로니카에게 질문했다.
“쟤 마법 쓴다고 왜 안 가르쳐줬어?”
“나도 몰랐어. 쓰는 건 처음 봤거든.”
스텔라는 허리띠를 풀었다. 꼬깃꼬깃 접어놓은 종이포들이 허리띠 아래에서 쏟아졌다. 마법시약을 소량으로 포장한 것들이었다. 그녀는 그걸 주워 모으며 말했다.
“기사님, 머리 좋으시네. 그런데 시약을 왜 기사님이 갖고 계세요?”
“이런 일이 생길 것 같은 게 절반, 네 낭비벽 막으려는 게 절반. 도박 아니면 실험으로 날려 버리잖아.”
“너무하신다! 낭비벽이라니! 합당한 실험이죠!”
“덕택에 살았잖아.”
스텔라를 대충 달래고, 에드워드는 파브리스를 내려다보았다.
“꼼수도 내가 더 위인 듯하네, 해결사 양반.”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면서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일어났다.
“불행히도, 꼭 당해봐야 아는 사람들이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