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01)
201화 우회
남아서 포로들을 감시하던 몇몇 짐꾼들과 밴시가 뒤이어 합류했다. 리안나는 올리비아의 갖은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았음을 자랑했다.
“자꾸 어르면 울어버린다고 했죠!”
밴시만이 가능한 협박이긴 했다. 그녀는 스텔라를 보자마자 태도를 바꿨다.
“빚쟁이 마법사를 구한다고 이 난리를 치다니.”
“야, 밴시! 죽다 살아난 사람 보자마자 할 소리냐, 그게!”
“마법사 언니 허리띠에 시약 찔러준 게 누군데 버럭해요? 고기 사줘요!”
“돈 없어!”
“거봐요! 쓸모없는 빚쟁이!”
“내가 왜 쓸모가 없어? 번개 마법 못 봤니?”
“지가 잡혀가서 지가 살려고 쓴 건데 그게 무슨 가치가 있나요! 제게는 고기 한 점 가치도 안 되는데!”
“와, 잿물 냄새나는 꼬맹이가 한 마디도 안 지네!”
둘의 투닥거림을 듣던 에드워드는 리안나의 정수리를 꽁 하고 쥐어박았다.
“쟤가 주문 써서 베로니카 구한 거다. 베로니카는 뭐다?”
“고깃값 주는 물주요!”
“그러니 그만 떽떽거려. 얘들 좀 다른 포로들이랑 엮고.”
에드워드는 파브리스 일당을 가리켰다. 제압당한 모양새는 가지각색이었다. 얌전히 항복한 놈, 글레이브 자루에 힘껏 얻어맞고 어깨뼈가 부러진 놈, 먼지투성이인 놈, 팔에 구멍난 놈, 번갯불에 바삭해진 놈.
겨우 정신을 차린 파브리스는 이를 갈았다.
“내가 어떤 마법을 쓰는 줄 모르면서, 단지 여마법사에게 시약을 전달한 것만으로 상황을 역전시키다니. 운이 참 좋은 양반이군.”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그러게. 댁이 스텔라의 입에 계속 재갈 물려두고 있었다면 이런 역전은 없었겠지. 하지만 인질을 굶기거나 말려죽일 수는 없을 테고, 언젠가는 댁이 걔 재갈을 풀어줬을 거야. 뭐, 아니면 내가 다른 방법으로 해결했겠지.”
파브리스는 부정하지 못했다. 게다가 ‘운도 실력’이라는 말이 종종 통하는 것에서 증명되듯이, 이미 이겨버린 자 상대로 ‘그 운만 아니면 네가 졌을 것이다’라는 말은 별로 소용이 없었다.
남은 건 패배자로서의 굴욕뿐.
올리비아는 번갯불에 바삭해진 자기 아버지를 보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 읍읍읍 읍읍읍읍. 리안나가 에드워드를 돌아봤다.
“풀어줘 볼까요?”
“그래라.”
리안나가 호기심에 재갈을 풀어주자마자, 그녀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자기 아버지를 향해서.
“이 망할 영감탱이! 아가씨를 폭행한 것도 모자라서 일까지 엎어버려?!”
“내가 폭행하고 싶어서 폭행했겠냐! 그건 사고였어! 그리고 너야말로 그 꼴이 뭐냐! 그러고도 사제요, 기사냐!”
에드워드는 귀를 틀어막고 싶은 표정을 지었다. 둘의 사이가 안 좋다는 게 공개적으로 증명된 현장.
“둘 다 하이브리드에, 둘 다 성격이 드세구만.”
가르달은 자기 도끼머리를 만지작거렸다.
“귀가 괴롭군. 효수하는 게 어떻소?”
“왜 하필 그거요?”
“세상의 많은 문제가 그걸로 해결되잖소. 저쪽 부녀관계까지 같이 해결해 주지, 뭐.”
에드워드는 베로니카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베로니카는 잠깐 고민하는 척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우리 집안의 오랜 가신이고, 오라버니의 명령을 수행하겠답시고, 그리고 날 위한답시고 한 짓이라…… 괘씸하긴 한데, 죽이고 싶지는 않아.”
“그럼 이대로 끌고 갈까?”
“아니, 소동의 책임은 져야지. 베르세바 군주에게 맡기자.”
“아, 그러고 보니 놓아준 놈들도 베르세바 쪽으로 가라고 했는데.”
“저런. 먼저 간 놈들이 변명을 길게 늘어놓았을지도 모르겠네. 옆으로 샜을 가능성도 있지만. 편지 한 통 쓰지. 집안일이니 잘 좀 무마해주되, 오래오래 묶어달라고.”
“우리가 그쪽 문제를 몇 개 해결해주긴 했는데, 편지 하나로 무마가 되려나. 아, 맞다. 놀 전사 하나 잡아놓은 거 있으니까 그거랑 세트로 보내야지.”
“하나밖에 못 잡았어?”
“하나 잡고 하나 죽이고 세 번째랑 싸우던 중에 일이 터졌거든. 나머지는 그냥 다 죽였지.”
에드워드와 베로니카가 두런두런 상황을 정리하는 사이, 잿물 냄새나는 밴시와 도끼 핥는 드워프랑 여전히 으르렁거리던 여마법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기사님! 아까 편지에 쓰신 거 무슨 의미예요?”
“무슨 편지?”
“파브리스에게 보낸 거요! 가르달 씨 손에 들려서 보낸 거!”
“가르달이 포로 교환 협상을 드워프 상인 방식으로 축약해 버릴까 봐 적어서 보낸 편지였어.”
“네! 그 편지요! 그런 용도였겠지요! 당연히요! 제가 말하는 건 그 편지에 적은 구절요!”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곁눈질했다.
“뭐?”
“모르는 척 하시다니, 악당!”
베로니카가 웃으면서 말했다.
“스텔라 양은 니 거니까 상처 없이 인도하라는 그 구절 같은데?”
“네, 그거요! 가르달 씨가 자꾸 그거 도박빚 이야기라고 놀리잖아요! 아니죠?”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그걸 포함해서 굉장히 복잡하고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긴 하지. 내가 육성 및 강화 중이라는 의미부터…….”
“로망 넘치는 답변 좀 주세요!”
“왜? 너 어차피 내 침대에 들어올 생각 없잖아?”
스텔라는 단호하게 말했다.
“여자의 자존심 문제에요!”
“자존심 문제냐.”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슬쩍 돌아봤다.
“넌 어때?”
“너한테 그만 빚지고 싶긴 하네. 네가 내 호위니까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긴 하지만서도. 뭐, 이번 일은 스텔라 양 구한 거라고 쳐.”
“그래도 되나?”
“난 최악의 경우라도 파브리스에게 죽을 일 없잖아. 그러니 이번엔 네가 스텔라 양을 구한 거지.”
“묘하게 여유로우시구만?”
“지금 스텔라 양의 모습을 보니, 이런 걸 안달 내는 쪽이 농락 당하는구나 싶어서.”
에드워드는 바로 눈치를 깠다.
“뭐야, 전에는 스텔라에게 농락당하기라도 했어?”
베로니카는 새침한 표정으로 그 질문을 흘렸다.
“상상에 맡길게.”
그러고는 총총걸음으로 팔에 구멍난 전사를 치료해주러 가버렸다. 에드워드는 주먹 끄트머리로 머리를 긁은 다음, 스텔라에게 말했다.
“뭐, 편한대로 생각하자고. 원하면 언제든지 먼저 말해.”
스텔라는 뾰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딸내미와 한참 싸우다가 겨우 그 모습을 본 파브리스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아가씨 같은 숙녀를 옆에 두고도 다른 여자들을 희롱하다니, 나중에 여자들한테 치여 살 팔자구만.”
에드워드는 리안나를 향해 짧게 명령했다.
“이 양반은 재갈 물리고 절대 풀지 마.”
* * *
마을로 돌아가는 길은 강행군을 하면 하루가 약간 안 되는 거리였지만, 천천히 돌아가면 이틀이 걸렸다. 먼저 마을에 와 있던 베르세바의 엘프 관리는, 파김치가 되어 끌려온 파브리스를 보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이틀 동안 물도 식사도 안 주고 데려온 거요?”
에드워드는 뭐 대단한 일이냐는 듯 평이하게 대답했다.
“물은 줬지. 재갈을 적셔서.”
“고문이구만.”
“기사면서 마법도 쓰더라고. 만에 하나라도 시약을 얻거나 훔칠까봐 그랬소.”
“아하. 그렇군.”
파브리스는 눈빛이나 웅얼거림으로도 항의할 생각을 못 하고 축 늘어졌다. 마을 촌장은 그를 마을 광장에 며칠 더 매달아 놓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에드워드와 베로니카가 ‘범죄자들을 베르세바로 압송한다’는 핑계로 적당히 말렸다.
“여하튼, 군주님의 위신을 존중하는 여러분의 배려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오.”
엘프 관리가 말했다. 베로니카는 그에게 편지 한 통을 내밀었다.
“복잡한 집안 사정 문제가 있어서요. 저 부녀는 험하게 다루지는 말아주시길 부탁드려요. 이 편지에 자세한 사정을 적어뒀으니, 군주님께 드리면 돼요.”
“그대로 하겠소.”
한편, 올리비아는 베로니카한테 거의 달라붙다시피 빌었다.
“아가씨,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저런 불량배 같은 기사와 같이 다니시다니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머저리 같은 아버지는 몰라도 저는 아가씨를 곁에서 모셔야……!”
가르달이 에드워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여자 포로에 관심 없으시오?”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쟤는 어째 좀.”
올리비아는 에드워드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베로니카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안 돼.”
단호한 거부에 올리비아는 좌절했다. 헬레나가 한마디 얹었다.
“엘프 여전사의 호위도 있는데 걱정이 많네요.”
“당신은 저 불량기사한테 신체 일부를 저당 잡힌…….”
쉬잉!
쇠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 헬레나는 올리비아의 입에 글레이브 날 끝을 넣어 막았다. 까딱 잘못하면 치아나 혀가 상할 움직임이었지만 신체의 일부마냥 숙련된 날 끝은 피를 보지 않았다. 대신 서늘한 목소리가 올리비아의 머리 위를 맴돌았다.
“그거 어디서 들었죠?”
리안나와 가르달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가르달은 자신의 이동식 대장간 지붕에 올라가 농성해서 에드워드의 중재가 나올 때까지 버티는 데 성공했지만, 리안나는 아니었다. 짐마차에 대롱대롱 매달린 리안나는 소박하게 항의했다.
“제가 틀린 말 했나요!”
헬레나는 발끈했다.
“어디 가서 함부로 떠들 이야기가 아니잖아! 내가 우리 일행 중에선 너한테 가장 잘 대해주는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후리니?!”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그리고 이야기는 가르달 씨가 먼저 꺼냈다고요!”
“네가 거기 왜 어울려!”
이상한 데서 매를 버는 밴시를 향해 에드워드가 낮은 소리로 조언했다.
“다음에는 심장을 맡겼다고 단어만 바꿔라. 그럼 좀 낫게 들리잖아.”
“엘프는 심장이 가슴이 아니라 젖가슴에 있나요?”
헬레나는 글레이브 자루를 휘둘러 리안나를 마구 뒤흔들었다. 밴시는 좌우로 흔들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요정은 거짓말 잘 못 한다 예요! 밴시 살려!”
스텔라는 그 모습을 보고 깔깔 웃었다.
“밴시 괴롭히는 방법 하나 더 개발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헬레나 양을 대화 주제로 삼으면…….”
“술값 갚아요.”
“넵, 닥칠게요.”
뒤이은 소란에 베로니카는 이마를 짚었다.
“내 집안 사정 때문에 벌어진 일에 다들 적극적으로 나서줘서 고맙고 미안하긴 한데……. 진지한 사람이 더 필요해. 그냥 올리비아 정도는 데려올 걸 그랬나…….”
“걔 있으면 더 환장하게 꼬였을 거라는 데 금화 건다.”
에드워드가 토를 달았다. 베로니카는 차마 부정하지 못했다. 사사건건 트집 잡고 철벽을 치면서 오히려 문제를 더 만들 상이긴 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어쩌겠니. 내가 택하고, 네가 택하고, 우리가 택한 거니. 이 일행 그대로 성지까지 가야지.”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그래서, 경로는 이대로 북향인가?”
베로니카는 고개를 저었다.
“조금 바꾸자. 파브리스가 과격하게 나오는 걸 보니 불안해지기 시작했어. 서쪽으로 약간 틀어서 돌아갈 거야.”
“여행이 길어지겠군.”
“그렇게 멀리는 안 돌아. 다티니아 공화국의 식민도시를 통해서 시오니아 서안 지대로 갈 거야.”
“이쪽 지리는 모르니까 좀 간결하게 해설해주면 좋겠는데.”
“바다 또 볼 거라고. 배는 안 타겠지만.”
바다를 왼쪽에 두고 북상.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배만 타지 말자.”
“너랑 이런 데서 공통점이 생길 줄은 몰랐는데. 여튼 그쪽으로 가면 다른 장점도 있지.”
“뭔데?”
“식민도시의 항구는 서방 군대의 집결소 중 하나거든. 군대가 거기 모여서 더 동쪽으로 가던가, 남쪽으로 내려와서 아지지야까지 내려가. 그러니 서쪽에서 군대를 따라온 이단심문관이나 고위사제가 넘쳐나지.”
에드워드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 말은?”
“붉은 옷의 여사제가 나 혼자만 있는 게 아니란 말이지. 오빠가 귀찮게 하는 걸 따돌리기엔 나쁘지 않을 거야.”
“호오.”
소문이 의외로 빠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느리다. 게다가 그 내용이 정확하냐고 묻는다면, 장담을 못 한다. 설레발과 오지랖이 더해지면 더욱.
서쪽에서 오는 순례자 무리에 섞이면 추적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
에드워드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기왕이면, 진짜 혼란스러울 만큼 너만 한 미녀들이 널렸으면 좋겠네.”
베로니카는 에드워드의 등짝을 가볍게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