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02)
202화 식민도시 케이파 (1)
에드워드 일행은 식민도시 케이파가 보이는 바위산 능선에 올랐다. 작은 도시는 반도 위에 세워져 있었고 개미 같은 인간들이 우글거렸으며, 성벽 밖으로도 가건물과 천막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바다에는 커다란 함선들이 떠다녔는데, 먼 거리에서도 다티니아 해양 공화국의 깃발뿐만이 아닌 다양한 깃발들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기사 에드워드는 잔뜩 골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우회한다며? 이게 조금이냐? 꺽다리왕 로버트네 우회기동 전술이 생각나는데?”
드워프 가르달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바위산을 달렸더니 고향 돌아온 기분이구만…….”
엘프 헬레나는 앞의 둘보다는 좀 더 침착한 모양새였다.
“케이파는 작은 반도군요. 무척 붐비는 도시로 보이는데요. 이렇게 급하게 오지만 않았으면 더 보기 좋은 풍경이었을 것 같군요.”
저체력 여마법사 스텔라는 죽어가는 소리를 냈다.
“이런 강행군을 시킬 거면 그냥 귀가해서 오빠분께 잘못했다고 비세요. 적극 추천드릴게요.”
카치운은 허리를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내가 이런 늙은이 같은 소릴 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더는 몸이 십대나 이십대 같지를 않아.”
리안나는 그냥 짐마차 마부석에 누워 있었다.
“저는 그냥 시체예요. 요정 아니에요. 말 걸지 마세요.”
뿔이 난 짐꾼들에게 추가비용을 치르던 베로니카는 일행으로 돌아와 말했다.
“짐꾼들은 돈만 주면 불평이 없어서 좋네.”
“우리 불평도 좀 굽어 살펴주면 좋겠다.”
에드워드가 볼멘소리를 했다. 베로니카는 얼굴을 찌푸렸다.
“어쩔 수 없잖아. 오빠가 파브리스만 보냈을 거란 확신이 없다고. 잘못하면 오빠가 보낸 심부름꾼들에게 포위당할지도 몰라.”
“군대라도 오는 거냐?”
“안팎으로 바빠서 그러지는 않을 것 같지만, 파브리스와 비슷한 해결사라면 몇 더 올지도 모르지.”
“너네 집안은 하이브리드 기사만 둘인데 또 뭐가 더 있냐? 너네 오빠의 취미가 별종 해결사 수집이야?”
베로니카는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대답을 머뭇거리더니, 곧 입을 열었다.
“약간 그런 기질이 있어.”
“환장하겠네.”
에드워드가 투덜거리자 가르달은 껄껄 웃어 버렸다.
“남매가 기질이 비슷하니, 베로니카 양도 에드워드 경을 주워온 것 아니겠소?”
베로니카는 드워프를 무시했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부하들이 천태만상이라, 어떤 의미로는 인재 복이 터졌지.”
“뭐 그런 가문이 다 있냐.”
“성지잖아.”
짧은 설명이지만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별별 종자들이 다 모이는 곳. 에드워드는 한숨을 내쉬었고, 베로니카는 행동의 근거를 덧붙였다.
“파브리스나 올리비아가 쫓아오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걸.”
“베르세바 군주의 감옥이 그렇게 만만하겠냐?”
“외부의 지원을 받는다거나, 우리 오빠가 석방을 종용하는 편지를 보낸다든가 하는 방법도 있거든. 시나리오는 여러 개를 상정해두자고.”
“그래 봤자 내가 또 이기면 돼.”
“불확실해. 네 꼼수들은 이미 파브리스에게 밝혀졌잖아. 몰래 잠입시킬 수 있는 허리띠, 잡을 만큼 가까운 거리의 사람은 기절시킬 수 있는 밴시, 시선 끌기 최적화 드워프 등등. 올리비아에겐 검 던지기 기술을 썼다며?”
“그랬지.”
“그게 두 번 통할 거라고 봐?”
안 통한다. 검 던지기는 뭔가 비겁하거나 초라해 보이는 것과 달리 굉장히 고급 기술이다. 던지라고 만든 게 아닌 검을, 평범한 자세를 취하면서 기습적으로 던져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어려운 일인데, 빗나가면 비무장이 되는 리스크까지 안는다.
올리비아에게 검 던지기가 통한 건, 다른 검을 쓰지 못하는 에드워드의 상황에 전혀 안 어울리는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즉, 의외성.
“안 통하겠지…….”
“거 봐. 중요한 건 꼼수 대결이 아니야. 우리가 여행을 마치는 거지.”
에드워드는 진저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이단 잡는 것보다 더 열심이네.”
“어쩌겠니. 난 이단심문관이고, 도망치는 건 안 익숙한걸. 공을 들이는 수밖에.”
에드워드는 베로니카의 말을 어느 정도는 이해했다. 집안의 봉신이나 부하가 ‘모시러’ 온 것과 ‘납치하러’ 온 것은 문제가 다르다.
“그래도 시오니아 국경만 들어가면 별문제 없을 것이라고 생각은 하는데…… 그 전이 문제기도하고, 만에 하나 그 이후에도 과격하게 나온다면 골치고.”
“뭐, 이해는 한다. 네 오빠네 사람들과 내가 쌈박질하는 꼴은 더 보기 싫겠지.”
“바로 그거야.”
에드워드는 허리를 피고는 도시를 살펴보았다. 베로니카가 그를 나지막하게 말했다.
“새 방침 하나. 절대 눈에 띄지 않기.”
“그게 되나?”
“성지 순례객은 가지각색이야. 붉은 옷의 여사제뿐만 아니라 엘프, 드워프도 널렸지. 모이다 흩어지기도 하고. 우리 일행도 눈에 안 띌 수 있단 뜻이야.”
에드워드는 일행들을 돌아봤다. 요정, 엘프, 드워프, 여마법사, 유목민 기병.
“이게?”
“정 안 되면 변장하거나 최소한 옷이라도 바꿔입는 것을 각오해야겠지.”
“흠. 옷이라.”
에드워드는 슬쩍 농담을 건넸다.
“네가 정보상 아가씨로 분장했던 때가 생각난다. 그 설정 마음에 들었는데.”
베로니카는 에드워드의 등짝을 때렸다.
* * *
산을 내려가 도시로 들어가 보니, 훨씬 익숙한 풍경에 가까워졌다. 사막의 별천지들보다는 훨씬 더 서방쪽에 가까운 양식들. 폴라에서 배 타기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순례자들, 병사들, 기사들, 성직자들, 장사꾼들. 곳곳에 모여 앉은 사람들과 그들 사이에서 휘날리는 깃발은 흡사 전쟁터의 모습 같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의 전쟁터와는 명백하게 다른 풍경도 있었다. 베로니카의 말대로, 순례객들은 온갖 종족이 다 모여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을 힐끗 본 헬레나가 조그맣게 말했다.
“폰티아 엘프들이네요.”
“저번의 걔들이야?”
“아뇨. 하지만 여기 있을지도 모르죠. 여기 있는 엘프들 중 대부분이 폰티아 출신인 듯해요.”
가르달은 다른 드워프들의 출신지에 신경 쓰지 않았다. 드워프는 엘프들보다는 숫자가 많았고 서로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면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니까. 대신 그는 흔치 않은 종족들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서 드워프는 별종 취급도 못 받겠어.”
거기다 별종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붉은 옷의 고위 사제들도 심심찮게 지나갔고, 붉은 서코트의 기사들은 사제보다 더 많았다.
“와, 기사님! 기사님이랑 똑같은 서코트를 입은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어요!”
밴시 리안나가 소리쳤다. 그녀의 손가락 끝에는 과연 한 무리의 교회 기사들과 그 종자들이 모여 있었다. 다들 붉은 서코트를 입었는데 문장은 교리법무성의 흰 망치 문장부터 교단 문장까지 가지각색이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교회 쪽 사람들인가 보네. 오는 게 힘들긴 했지만 잘 왔다. 녹아들기는 적절하네.”
베로니카는 벌써 한 무리의 성직자들 사이에 끼여서 정보교환을 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붉은 사제복의 여자 이단심문관도 하나 있었는데, 불행히도 에드워드 취향은 아니었다. 나이가 너무 많았으니까.
잠시 뒤, 베로니카는 일행한테로 돌아왔다.
“도시가 분주할 만하네.”
“응? 왜?”
“축제 중이래. 성인의 유골이 도착한다나 봐.”
베로니카가 꺼낸 이야기는 간단했다. 비텔리아의 상업 도시 국가 다티니아 해양 공화국은 바닷길 각지에 교역거점용 식민도시를 건설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각지에서 수집한 성유물들을 ‘재분배’해서 각 식민도시의 성당에 모셨다. 상업의 번영을 기원하면서.
케이파에는 어떤 성인의 유물들이 배당되었는데, 얼마 전 그의 성유골을 다티니아가 구입하는 데 성공하면서, 유골과 유물을 한 자리에 모시기로 결정이 되었다.
다티니아 해양 공화국의 선박이 바로 근처까지 왔으며 빠르면 내일, 늦어도 모레에는 도착한다.
“아, 축제할 만하네…… 이건 큰일 났군.”
에드워드가 중얼거렸다. 카치운도 고개를 끄덕였다.
“숙소 잡기 힘들겠어.”
도시 밖에 천막이 즐비한 꼴이 이해가 갔다.
한참 뒤, 에드워드 일행은 교회의 힘을 빌어 겨우 숙소 하나를 잡았다. 그곳도 무장한 기사, 병사들과 순례자들로 버글거렸고 가격은 만만찮았지만.
“돈은 비싸게 받는데 식사는 내장구이와 내장탕이라니, 뭔가 허탈하네요. 삥 뜯기는 기분이야.”
스텔라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항해의 필수품인 염장 고기를 만들고 남는 내장들. 남아돌기 때문에 헐값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메뉴가 되기엔 딱 적절한 정도로. 그리고 내장은 살코기보다 선호도가 크게 떨어졌다.
에드워드는 내장 자체에는 그닥 거부감이 없었다. 잘 손질했냐가 중요할 뿐. 다행히 냄새는 크게 안 났다.
“뭐, 군대와 순례객으로 넘쳐나는 항구라는 게 이런 거지.”
다진 마늘과 레몬즙을 왕창 가져온 에드워드의 말이었다. 베로니카도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서방 군대의 보급거점이기도 하니까, 더 심할 거야.”
“싼 것도 있지. 향신료라던가. 산지보다는 가격이 더 붙겠지만.”
카치운도 한마디 덧붙였다. 에드워드는 베로니카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이제부터 뭐하면 돼?”
“별거 없어. 그냥 축제를 즐겨. 그동안 난 편지들 확인하고 쓰면서 뒷공작 좀 할 테니.”
“뭐야, 뒷공작이란 게.”
“그런 게 있어. 어쨌거나, 성인의 유골이 도착하고 축제가 끝난 뒤 순례객들이 흩어질 때쯤 우리도 나가면 돼.”
시끄러운 식당을 배경으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남자가 숙소로 들어왔다. 베로니카는 그를 알아보았다. 이 숙소를 알아봐 준 대성당 직원. 그는 에드워드를 향해 걸어와 말을 걸었다.
“잘 쉬고 계셨습니까?”
“덕택에. 무슨 일이오?”
“기사님을 만나고 싶다는 분이 계셔서요. 며칠 전부터 이 도시에 계셨는데, 성직자와 동행하는 앵글리아인 기사를 보면 연락 달라고 하시더군요.”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돌아봤다.
“우리 생각보다 금방 추적이 되는데? 누구야?”
직원은 바로 손을 내저었다.
“앵글리아인 기사분들이 어디 한둘입니까? 새로 오시는 분이 있을 때마다 확인하는 것뿐이죠. 그분도 앵글리아인이시니 지인을 찾는 듯한데. 허탕을 몇 번이나 치시던지.”
그 순간, 에드워드는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앵글리아에서 에드워드를 찾아오는 사람.
“설마…… 싶긴 한데. 어디 계시오?”
“곧 오실 겁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숙소 문이 벌컥 열렸다. 에드워드는 그쪽을 돌아보고는 주먹으로 이마를 짚었다.
“살기 싫어진다.”
“누군데요?”
별 불만 없이 내장을 우물거리던 리안나의 물음에 베로니카가 쓴웃음을 지었다.
“에드워드의 은사. 수많은 기사후보생을 엄청난 양의 고기로 길러내신 앵글리아 귀족이시지.”
헬레나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럼 저분이…….”
에드워드는 짧게 답변했다.
“베레스포드 공작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