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03)
203화 식민도시 케이파 (2)
턱까지 기른 풍성한 콧수염에 약간 나온 배, 정수리가 약간 벗겨진 회색 머리, 고집스러운 눈매, 파란색 바탕에 흰 황소 문장의 서코트.
베레스포드 공작은 에드워드 일행네 탁자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가 대성당 직원을 정중한 감사말로 돌려보내는 동안, 드워프는 도낏자루를 만지작거렸다. 가르달이 에드워드에게 눈빛으로 물었다.
‘칠까?’
드워프식 해결법에 에드워드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베레스포드 공작을 향해, 매우 어렵게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공작님.”
베레스포드 공작은 베로니카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실례합니다, 사제님. 잠시 소란스러워질 것 같군요. 오랜만에 만나는 사이라서요.”
부드러운 목소리에 정중한 말투였다.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괜찮아요. 천천히, 그리고 ‘차분히’ 이야기하시죠.”
베레스포드 공작은 얼굴에 자애로운 웃음을 띄면서 에드워드 앞에 섰다. 그리고는 그를 끌어안으려는 듯 양손을 내밀었다.
“안 다치게 조심해라.”
잠시 뒤, 에드워드는 언젠가 수플렉스 기술을 그한테 보여준 걸 크게 후회했다.
붉은 옷의 기사는 숙소의 소란스러운 공기를 가르며 나무바닥에 메다 꽂혔다. 쿠우웅! 어마무시한 소리에, 시장바닥보다 소란스럽던 숙소가 물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바로 그거야!”
정적 속에서 리안나가 소리쳤다. 뒤이어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숙소를 메웠다. 드워프마저 천천히 일어나 박수를 쳤다.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군.”
* * *
에드워드는 육체적 고통보다 상황의 끔찍함 때문에 기절하고 싶었다. 그는 리안나의 안내와 베레스포드 공작의 손으로 방까지 끌려온 다음, 공작과 단 둘이 남았다. 리안나는 그 자리에 남고 싶었지만 공작이 등을 떠밀어서 내보냈다.
“필요한 것 있으면 뭐든지 말씀해 주세요!”
리안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베로니카한테 손 잡혀 끌려갔다.
“넌 뒷감당 어쩌려고 그러니?”
“어차피 맨날 안 되는 게 그 뒷감당인데요!”
“어머나, 그러네.”
스텔라는 복도 밖에서 헬레나를 붙잡고 그 간악한 혓바닥으로 설득을 시도했다.
“무슨 이야기 오가는지 좀 알려주세요! 엘프님은 벽에 붙어서 주의만 기울이면 바로 들을 수 있잖아요!”
“그런 취미 없어요!”
“엘프님은 안 궁금해요?!”
“궁금하다고 다 저지르니 마법사 팔자가 그 따위죠!”
“와! 폭언인데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가 없다!”
탁. 문이 닫기면서 아웅다웅하는 소리들이 사라졌다. 베레스포드 공작은 한숨을 깊게 내쉰 다음, 주전자의 물을 컵에 따랐다.
“떠먹여주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다. 에드워드는 컵을 밑에서 받치는 식으로 조심스럽게 받았다. 다만 마실 생각은 안 들었다. 공작이 말을 이었다.
“찾기 참 힘들더군. 모험 중인 붉은 옷의 기사가 어디 한둘이어야지. 그나마 베니아 시 소식까지는 들었는데, 네가 바다 건너고 나서부터는 남의 이야기가 네 이야기와 마구 섞이더라.”
“저하고 비슷한 놈이 그렇게 널렸습니까?”
“이야기속 괴물들이 널렸지.”
뭔가 알 것 같은 대답이었다. 에드워드는 생각을 바꿨다. 그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물었다.
“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너무 빠른데.”
“뱃길이지. 너 그거 몰랐냐?”
“예?”
“남부 아퀴타니아 항구 중 하나가, 국왕 폐하께서 도착하기도 전에 항복했다.”
에드워드는 ‘이 근성없는 아퀴타니아 이단자 새끼들’이라고 욕하고 싶어졌다. 이해는 가지만.
“폐하께서는 지금 비텔리아 도시국가들에게 수소문한 함대를 기다리시지. 앵글리아 함대의 도착을 기다릴 시간도 아까우신 모양이더라.”
“비텔리아요?”
“다티니아나 제나나…… 뭐 그렇지. 아퀴타니아인들의 함대를 빌리는 것도 생각은 하고 계신다.”
“지금 폐하는 어떠십니까?”
“기껏 가져온 초대형 투석기가 아깝다고 항복한 도시의 벽에다 쏴보신댄다. 불행히도 난 못 보고 왔다. 폐하께서 임무를 맡기셔서.”
“사전작업입니까?”
“군대가 1만이나 몰려가는데, 시오니아 국왕을 비롯한 이 근처 지배자들의 협력도 미리 받아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냐?”
“1만이요? 6천 아닙니까? 제가 듣기로는…….”
“불었다.”
짧은 설명이었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왜 불었는가 묻지 않았다. 본국의 병력 6천에 온갖 인간들이 들러붙은 것이다.
“아, 그래서 공작님이…….”
“난 군대 동원 안 하고 호위병들만 데려가겠다니까 이거 맡기더라. 망할 놈의 왕.”
마지막 문구는 유독 작은 목소리였다. 에드워드는 마시던 물을 뿜을 뻔했다.
“덕택에 뱃사람들에게 짐짝 취급도 당해봤지. 뱃길이란 게 참 고되더군. 불도 물도 마음대로 못 쓰지, 마구 흔들리지…… 쾌속선이란 게 다 이따위면 난 바다 두 번 다시 안 볼란다.”
“돌아갈 때는 육로로 가실랍니까?”
“그럴 순 없으니 문제지…….”
베레스포드 공작은 그 뒤로 말이 없었다. 에드워드가 먼저 화젯거리를 꺼내야 할 판.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뭐냐, 아델레 누님 건은, 죄송합니다.”
“됐다. 네 잘못이겠냐? 내 딸내미 성정이 그런 거고, 내가 교육을 잘못 시킨 거지. 걔가 먼저 유혹했다며?”
“어…… 그나저나 어떻게…… 저와 아델레 누님 사이의 일을 아셨습니까?”
어딘가 달관한 듯한 표정이었다. 공작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속이 타는 듯 주전자째로 물을 들이켰다. 그는 입안 가득 넣은 물을 한 번에 삼키고는, 쥐어짜 내는 목소리로 말했다.
“걔 또 피임 실패했다.”
에드워드는 주먹으로 이마를 짚었다. 피임약은 수상쩍고, 콘돔은 기대 이하로 원시적인 시대다. 임신이 쉽게 되는 것도 아니라지만, 그렇다고 젊은 남녀 사이에서 불의의 축복이 안 내려오는 것도 아니다.
“앞의 둘과 달리 이번엔 범인놈을 빨리 찾아서 신나게 갈궜지. 그런데 그 과정에서 아델레가 숨겨놓은 편지 꾸러미를 찾았다. 첫째는 거기에도 단서가 없었지만, 둘째는 너네 편지와 시기가 비슷하더라.”
어째서 들켰는지 이제 이해가 갔다. 에드워드는 교수대에 올라간 심정으로 말했다.
“그 뭐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베레스포드 공작은 다시 물을 들이켜고는 말했다.
“나가자. 술 한잔해야겠다.”
“아래층에서 안 하시고?”
“네 일행들 있는 데서 이야기하기는 싫다. 특히…… 사제 앞에서는.”
에드워드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로 모실까요?”
* * *
잠시 뒤, 베레스포드 공작은 꽐라가 되었다. 에드워드와 호위병들이 필사적으로 그를 부축해야 했다.
아무리 타지에 수행원도 별로 안 데려온 상황이라지만, 엄격하고 독실한 공작이 망가지는 꼴은 에드워드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공작은 ‘술의 이슬’을 써서 도수를 더 높인 술들을 빠르게 들이켰고 그 대가를 치렀다. 에드워드는 손아귀 힘에 각별히 주의하면서 팔뚝만으로 그를 붙들었다.
“세상일이 원래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잖습니까.”
본래는 그가 하기 적절한 말이 아니었다. 베레스포드 공작은 혀가 꼬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 말이 그 말이다. 이 망할 놈의 딸내미. 내가 걔 수녀원장 출셋길에 얼마나 돈지랄을 하는지 알기나 하는 건지.”
비밀스러운 임신과 출산은 수녀원장 출셋길에 큰 걸림돌 중 하나. 말 안 듣고 뛰쳐나간 딸내미라도, 일단 큰딸이다. 그리고 그 딸이 수녀원장을 맡는 건 집안의 경사다. 베레스포드 공작이 투자를 할 만했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생아라지만 그래도 외손주들이라고, 가끔 맡겨놓은 데 놀러 가서 본다. 귀엽더라.”
에드워드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침묵했다. 공작의 신세한탄은 계속 이어졌다.
“나도 회개해야 할 판이지. 수백 명이 넘는 기사들을 키워냈는데 정작 내 딸내미는 제대로 못 키워냈고, 오히려 죄만 짓고 있어. 훗날 신께서 ‘무슨 생각으로 걔를 수녀원장 자리에 꽂았냐?’ 하면 솔직히 할 말이 없다.”
에드워드는 작게 중얼거렸다.
“뭐, 어떻게든 키워낸 시점에서 이미 책임은 다 끝난 것 같은데요.”
“너 임마, 너 빨리 결혼해라. 결혼해서 애 낳아라. 아델레 같은 딸내미로 낳아라! 너도 낳아서 키워보면 내 심정 알 거다! 너 내가 저번에 말했지? 얼른 자리 잡을 생각하라고!”
“그게 그런 의미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만!”
“물론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 의미다!”
공작은 한참을 더 에드워드와 투닥거리다 겨우 어느 골목길 입구쯤, 폐자재 위에 털썩 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에드워드는 손등으로 목을 줄줄 흐르는 땀을 닦아낸 다음, 호위병에게 말했다.
“잠시만 쉬지.”
“옙.”
호위병들은 골목과 대로 경계에, 에드워드와 공작은 골목 안에. 에드워드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직 저녁놀이 힘을 잃지 않았다.
도시는 축제 분위기인데 에드워드는 죽을 맛이었다. 분위기에 취한 건 일행이고, 술에 취한 건 공작.
“축제를 즐기기는 개뿔…….”
에드워드가 낮게 투덜거렸다. 공작은 고개를 가슴팍까지 푹 숙인 채 중얼중얼거렸다.
“뭔 업적을 이거저거 세웠대서, 어? 너답지 않은 이야기도 한둘 있기에 기대했는데 말이다, 변한 게 없어, 변한 게. 이눔시키…….”
그리고 공작은 코를 골기 시작했다.
“아이고, 내 팔자야.”
에드워드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러나 깨우는 건 좀 더 있다. 그도 쉬어야 했다. 에드워드는 상당수의 술을 마시는 척하고 몰래 쏟아버린 자신의 지혜를 되씹었다.
“기사님, 기사님.”
그때 한 여자 목소리가 에드워드의 귀를 간지럽혔다. 낮고 간지러운 목소리로, 골목길 더 안쪽에서 들려왔다. 에드워드는 그쪽을 보지도 않고 손을 내저었다.
“창녀 필요 없다. 안 산다. 가라.”
“기사님, 조금만 더 안쪽으로.”
에드워드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골목 안쪽을 바라보았다. 온몸을 천으로 가린 여자. 몸의 굴곡 때문에 여자인 줄 겨우 알아볼 판이었다. 에드워드는 낮게 말했다.
“지금 여자 살 기분도 상황도 아니라니까. 축제날이니 매춘부들이 극성부리는 건 이해가 간다만.”
“그런 이야기 아니에요!”
목소리가 조금 더 높아졌다. 여자는 머리를 덮은 후드를 조금 걷었다. 에드워드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기겁했다.
“어…… 뭘로 불러줘야 해? 너 여기 왜 있어?”
“아무거나요. 지젤보다는 이제 펠리샤가 더 익숙하지만요.”
갈색 피부의 가짜 여전사, 펠리샤는 에드워드를 향해 손짓했다.
“서둘러요. 시간이 없어요.”
에드워드는 졸고 있는 공작을 가리켰다.
“이분 곁을 못 떠나. 그냥 거기서 말해.”
“그럼 조금만 더 이쪽으로 오세요.”
에드워드는 대로쪽을 경계하는 호위병들을 힐끗 본 다음, 별수 없이 슬쩍 발을 들이밀었다. 그 순간 낄낄거리는 다쉬사베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수녀를 환속시키고 공작가 사윗감이 되는 것도 나쁘진 않을 텐데.”
에드워드는 펠리샤의 뒤통수를 떠도는, 주먹 크기의 뭉게구름을 발견했다. 그는 그 구름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세웠다.
“그랬다간 수플렉스가 아니라 체어샷이다, 이 자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