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04)
204화 악마의 귀띔 (1)
에드워드가 공작과 함께 나간 뒤, 스텔라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술을 홀짝였다.
“예비 장인어른이라니 정말정말 재미난 소재인데.”
“절대 장인어른은 아니에요.”
베로니카가 잘라 말했다. 그녀는 자기 몫의 술잔을 비우며 말했다.
“베레스포드 공작의 큰딸은 이권이 여럿 얽힌 큰 수녀원의 원장 코스를 밟고 있거든요. 이제까지 들인 돈이 아까워서라도 절대 포기 안 하겠죠.”
“현명한 투자법은 아닌 듯하네요.”
“도박중독자가 할 소린 아닌데요.”
“에이, 그건 잠시 잊기.”
잊을 리가 없다. 축제판에 도박판이 빠질 리가 없으니. 베로니카는 매서운 눈으로 스텔라를 바라보았다.
“이젠 날리면 안 돼요. 그것도 쓸데없이 주목 받는 길이라고요.”
“넵.”
스텔라는 흔쾌히 대답했다. 한편, 카치운은 주변 사람들의 대화를 주워듣다 말했다.
“성인의 유골이 온다지만, 난 듣도 보도 못한 성인이군. 누군지 아시오?”
“세트렛인들의 성벽을 무너뜨린 기적을 일으키고 죽은 걸로 유명하죠.”
“도시에 모실 업적으로는 좀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
“그런 건 상관없어요. 성인의 유골을 모신 곳마다 같은 기적이 반복되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건 인기죠.”
베로니카는 쓰게 웃었다.
“인기가 있어야 순례자들도 많이 오니까요. 적의 성벽을 무너뜨린 성인이라니, 출전을 앞둔 무장순례자들이 좋아할 것 같지 않아요?”
“아, 그렇게 생각하면 적절한 배치인가.”
“원래는 무너지는 성벽 아래에 깔려 적군과 같이 죽었는데, 나중에 파냈다죠. 조각나고 으스러졌기 때문에, 여러 곳이 인수했다고 들었어요.”
“그렇군. 혹시 여기 오는 것은?”
“두개골요. 제일 인기 있는 부위 중 하나죠. 최소한 사람 뼈라는 게 확실히 보이니까요. 가짜 성유골 중에는 사람 뼈도 아닌 돼지 뼈 따위를 쓰는 것도 있거든요.”
“저런 천벌 받을 놈들.”
카치운의 말에 가르달은 껄껄 웃었다.
“뭐, 속는 놈들은 눈썰미가 없는 게지.”
“드워프 상인도 그런 가짜 상품을 파나요?”
헬레나의 빈정거림이 뒤를 이었다. 가르달은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릴! 드워프는 신의가 있는 종족이야! 문제가 있다면, 항상 고객이 충분한 설명을 듣지 않을 뿐일세!”
드워프의 우직함과 상인의 간교함이 타협을 보는 지점. 베로니카는 웃어 버렸다.
리안나는 대화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밴시는 실망한 표정으로 발을 흔들고 고기를 우물거렸다.
“그나저나 기사님은 언제 오실까요?”
“왜? 걱정하는 건 아닐 텐데.”
가르달의 말에 밴시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 기사님이 성인을 뵐 정도로 두들겨 맞고 나오길 기대했는데, 별일이 없이 두 발로 나가셨잖아요. 무슨 일이 이어질지 따라가서 구경도 못 하고.”
“이 간악한 요정을 보소.”
“이때가 아니면 기사님이 고통받는 걸 언제 보나요? 그것도 저는 안락한 상태에서!”
그걸 들은 스텔라가 이죽거렸다.
“곧 고통받는 밴시로 돌아갈 거야.”
“밴시가 고통받는다고 마법사가 고통받지 않는 건 아니다 예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부서질 기세로 열렸다. 밴시는 화들짝 놀라 식탁 아래로 기어들어 갔다.
“기사님 왔어요?”
다행히 아니었다. 주정뱅이와 무장순례자의 경계에 있는 한 병사였다. 그는 술병을 든 채 소리 높여 외쳤다.
“저주받은 세트렛 도시, 아브멜렉이 불탔다!”
* * *
“아브멜렉이 불탔다고?”
“정확히는, 내전 중이에요. 다쉬사베스와 제가 공 좀 들였죠. 이제 아브멜렉은 소대가리 악마 몰렉의 도시가 아니에요.”
펠리샤가 말했다. 그녀는 지금 세트렛 도시 아브멜렉의 귀족 여전사. 에드워드가 그쪽 사정은 잘 모르지만,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대체 무슨 짓들을 하고 다니는겨…… 뭐, 그 사업 잘되길 빌어줄게.”
“그걸로 끝이 아니에요. 아브멜렉은 몰렉을 섬기는 세트렛 도시 중 어디 속한 데가 없는 독립세력이었어요. 강력한 함대와 환생군단을 굴렸고, 피라미드와 빛을 접한 최전선으로서 명성과 명분을 유지했죠.”
“그런데?”
“하지만 그런 도시가 무너지면, 다른 세트렛 도시들이 가만있지 않아요. 산벡이 나섰어요.”
“산벡이 어디더라…….”
펠리샤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에드워드를 봤다.
“기사님이 미노타우로스와 시서펜트를 죽인 걸로 박살 냈다는 해적함대의 본진요. 기억 안 나세요?”
“아, 맞다. 내가 세트렛 도시들은 일일이 기억 안 해서. 그래서?”
“다른 세트렛 도시들이 아브멜렉의 혼란과 공백을 차지하려고 해요. 동시에, 그들은 빛의 개입을 막기 위한 공작을 할 필요도 느꼈죠.”
“무슨 의미야?”
펠리샤는 숨을 약간 들이마신 다음, 다시 말을 이었다.
“이 도시에서 또 사건이 이어질 거예요. 그리고 그건 몰렉과 레피림의 수작일 가능성이 커요.”
“레피림은 아지지야에서 따돌린 줄 알았는데.”
“다른 출입구로 나갔네.”
다쉬사베스가 끼어들었다. 그는 주먹 크기의 분신을 부르르 떨었다.
“나간 곳이 세트렛 도시들이었지. 그년이 몰렉과 정식으로 동맹을 체결했어. 자기 옛 주인인 내가 움직이는 것에 공포를 느낀 소대가리는 멍청한 선택을 한 거지.”
“댁 잘못이잖수. 왜 벌써 기어 나와? 몸도 안 성한 양반이.”
“내가 매우 장기적인 계획을 짜고 있는 건 맞네만, 그렇다고 눈앞의 기회를 놓칠 생각도 없어서.”
“아브멜렉을 지킬 수는 있는 거요? 펠리샤를 살려둘 수는 있고?”
다쉬사베스는 껄껄 웃었다.
“내가 왜 아브멜렉을 지키나? 그 소대가리놈의 도시들은 다 불태워도 시원찮은데.”
에드워드는 고개를 옆으로 크게 기울였다. 까딱.
“빛의 승리에 공헌하시겠다?”
“그렇게 해석해도 상관없네.”
“그래서야 어둠이 언제 빛에게 이기겠수?”
“빛의 진영도 툭하면 바보짓하고 유혹에 넘어가는데, 뭘. 거기 술 취한 공작님 딸내미처럼 방종 맞은 사람도 흔하고. 어차피 메시아가 돌아와 다 불태우기 전에는 누가 유리하든 불리하든 거기서 거기야.”
“악마 주제에 매사 회의적이시구만.”
“기사 양반도 안 끝나는 전쟁을 한 만 년 해봐. 회의 안 생기나.”
그때 골목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소리를 높여 외치기 시작했다.
“아브멜렉이 불탔다!”
“저주받은 도시가 무너졌다!”
“성인의 가호! 성인의 가호다!”
“다티니아 공화국 만세!”
에드워드보다 한발 늦게 소식을 접한 사람들. 에드워드는 기쁨과 흥분을 넘어 광기에 가까운 모습까지 엿볼 수 있었다.
“여하튼, 빛에 좋은 소식만 들고 온 건 아니지?”
“아까도 말했지만, 산벡이 이 도시에 수작질을 부릴 거야. 그 수작질은 레피림과 몰렉의 합작품일 테고.”
“소대가리 악마는 무슨 능력이 있소?”
“그놈은 바다 거품에서 태어난 놈이라, 바다 악마들과 각별한 사이지. 시서펜트를 산벡 해적함대에 내준 것도 그 내력 덕이라네. 아마 이번에도 바다 괴물들을 동원하지 않을까 싶기는 한데…… 자세한 건 나도 몰라.”
“도움이 안 되는군. 때는?”
“성자의 유골이 입항하는 내일이겠지. 유골이 오기 전에 깽판칠 생각이건, 유골째로 박살낼 생각이건. 나라도 그럴 테니까.”
“그렇군. 그 정보를 아는 사람들은?”
“일단 이 도시의 지도자들한테 귀띔을 해보긴 해봤는데…….”
다쉬사베스는 말끝을 흐렸다. 펠리샤가 뒤이어 말했다.
“진지하게 믿는 사람이 없더군요. 미친 점술사 취급당하고 쫓겨났어요. 제가 세트렛 도시에서 온 밀사라는 식으로 포장도 해봤지만, 먹히는 사람은 한둘에 불과하더군요.”
“그 한둘은 지금 뭐 해?”
“자기 재산을 도시 밖으로 빼고 있죠.”
에드워드는 환생 전 주식쟁이들을 떠올렸다. 돈이 중요한 인간은 거기서 거기다. 다쉬사베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괜히 ‘밀사’ 펠리샤만 더 위험해졌지. 뭐, 추적자들은 내가 재주껏 없애주고 있지만.”
“그렇군. 안 됐네.”
“그런 고로, 기사 양반이 소대가리 문제를 좀 해결해줬으면 좋겠소.”
“아니, 내가 왜?!”
“업적이잖아. 업적 좋잖아.”
한때의 자칭 업적게이 에드워드는 벌레 씹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긴 한데, 내가 아는 어느 광대 왈, 잘하는 건 공짜로 해주지 말랬어.”
“그러다 저주 걸려서 공짜 해결사로 끌려다니는 주제에.”
다쉬사베스는 껄껄 웃더니 공작의 머리 위로 날아가 맴돌았다.
“뭐, 자네는 싫어도 나서야 하겠지. 자네의 이단심문관도 마찬가지고.”
“문제가 있어. 그 이단심문관이 주목받지 않고 조용히 지나가고 싶어 해.”
다쉬사베스는 몸을 뒤집었다.
“자네들이 그럴 처지인가?”
아니다. 에드워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필 공작님이 있을 때 사건이 터진다니. 난 운도 없군.”
“공작 앞에서 기사가 겁쟁이마냥 내빼는 모습을 보이면, 두고두고 욕먹겠지.”
“노린 거냐?”
“글쎄. 누가 노렸을까? 나? 레피림? 선장? 아니면 지금 오고 있는 성인의 두개골?”
다쉬사베스는 껄껄 웃었다. 에드워드는 손을 휘저어 그를 공작의 머리 위에서 내쫓았다.
“알았다. 그만 꺼져라.”
에드워드는 펠리샤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넌 이제 어디로 가냐?”
“아브멜렉으로 돌아가야죠.”
“빛의 진영에 안 남고?”
“할 일이 남아서요. 사실, 세트렛인들을 불태우는 건 제 소원이기도 했거든요.”
에드워드는 펠리샤의 눈에서 익숙한 빛을 봤다. 언제나 분노와 경멸로 불타던 진짜 펠리샤의 눈빛을. 순간 그는 지젤과 펠리샤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이해했다. 어찌 보면, 그도 원래 모습을 버리고 지금 모습에 적응한 것이다. 지젤보다야 천천히, 오래 시간을 들였지만.
에드워드는 그에게 안 어울리는 조언을 했다.
“늦기 전에는 빠져나와라.”
펠리샤는 작게 웃었다.
“노력할게요.”
펠리샤와 다쉬사베스는 곧바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에드워드는 아직 인사불성인 공작을 돌아봤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 * *
다음날, 에드워드는 리안나를 숙소 문짝 옆에 거꾸로 매달았다. 이번엔 단순히 거꾸로 매달기보다는 응용. 손님들은 기겁했다.
“자동문의 요정이다!”
“빨래의 요정이거든요!”
리안나가 항의했다. 물론 소용없는 짓이었다. 밴시와 무게추와 밧줄과 도르래는 완벽히 작동해서, 사람이 손잡이를 놓는 순간 문을 저절로 닫았다. 물론 그때마다 밴시는 거꾸로 매달린 채 위아래로 오르내렸다.
“아브멜렉의 함대는 작년 방주기사단과의 전투에서 큰 타격을 입었는데, 이번엔 도시 자체가 내전을 시작했고, 환생군단은 급하게 귀국. 이 도시 입장에서는 호재가 줄을 잇는군요. 전성기에요.”
지난 소식을 정리한 스텔라의 말이었다. 에드워드는 졸린 눈을 손등으로 비비며 말했다.
“하지만 좋은 일에는 마가 낀댔지. 다들 흥분해 지쳤거나 숙취에 시달리는 지금이 문제야.”
“그 악마 말을 믿으세요?”
“안 믿을 근거가 더 없어. 레피림과 다쉬사베스가 원수지간인 건 아지지야에서 봤으니.”
“사제님은 어떻게 보실까요?”
“솔직히 걔한테 이야기 꺼내기는 좀 부담스러운 소재긴 해. 다쉬사베스가 나한테 날뛰라고 사주했다는 건.”
“분명히 화내시겠죠. 주목받지 않기로 했으니까요. 하지만 성인의 유골이 얽힌다면, 짜증 내면서도 결국 나서실 듯요.”
“얽힐걸. 십중팔구는 얽힐 거야. 그래서 내가 공작님을 모셔다드린 직후에 지형정찰 다녀왔잖아.”
“지형정찰이라. 원하던 건 찾으셨어요?”
“일단 시나리오 한둘은 짜놨는데, 그렇게 잘 풀릴지는 상황이 닥쳐봐야 알겠지.”
“신중하시다. 뭔지 설명 좀 해주세요.”
“쉽게 말하면, 절대 영웅은 되지 않을 방법이야.”
“뭐에요, 그게.”
“아직은 비밀.”
“저 카드놀이판 안 가고 계속 기사님이랑 같이 머리 굴리는데, 그 정도도 말 안 해줘요?”
“카드놀이판 가고 싶냐?”
“축제 때는 판이 커지거든요.”
그때 드워프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그는 허공을 오르내리는 밴시의 비명을 무시하고 소리쳤다.
“게 떼요!”
에드워드는 인내심을 발휘했다.
“드워프식 축약은 하지 말고 설명 좀 해주쇼.”
“진짜 게 떼라니까!”
가르달이 다시 소리쳤다. 에드워드가 이해하지 못하고 버벅거리는 사이, 도시 전체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2층에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울렸다.
“배가 기운다!”
그 말에 에드워드는 바다가 보이는 2층으로 올라갔다. 각 방과 복도의 창문마다 사람들이 달라붙어 바깥을 구경하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그들 머리통 사이로 겨우 상황을 확인했다.
입항하거나 정박 중이던 다티니아의 커다란 배들이, 차례차례 옆으로 기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