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10)
210화 현상범 이야기 (1)
에드워드는 밴시의 영웅적 희생을 직접 못 봤다. 그러므로 게 냄새를 지적한 것에 대한 처분이 지나쳤다.
그게 밴시가 내린 결론이었다. 숙소 로비에서 리안나는 종이와 깃펜을 쥐고 말했다.
“저도 글 쓸래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강제로 개종당하고 난폭한 기사의 순례길에 동참하여 헌옷과 고기를 벗 삼아 마침내 기적적으로 성지에 도착한 앵글리아 출신 요정 리안나가 들려주는 자신의 생애 중 가장 끔찍하며 기이하고도 놀라운 모험 이야기>!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다들 알아야 돼!”
“아직 성지 아닌데. 코앞이긴 하지만.”
카치운이 점잖게 태클을 걸었다. 가르달은 코웃음을 쳤다.
“생애 중 가장 끔찍하다고? 과연 그럴까?”
밴시는 그 불길한 예고에 반발했다.
“그거 앞으로 더 끔찍한 일이 있을 거란 소리죠?!”
가르달은 대답 대신 파이프에 연초를 채웠다. 스텔라가 끼어들어서 깐죽거렸다.
“넌 기사님 모험담에 등장하는 쫄따구일 뿐이지. 그걸 누가 읽어?”
“원래 기사도 모험담에서 서민들한테 가장 인기 좋은 게 종자잖아요! 종자를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도 나오고! 저도 그렇게 될래요!”
가만히 듣고 있던 에드워드가 중얼거렸다.
“그럴싸해. 괜찮은 계획이야. 그런데 글 쓰려면 소재거리가 필요하겠지?”
리안나는 도망쳤다. 가르달은 짐짝 점검과 헌옷 간수를 핑계로 쏜살같이 도망치는 요정의 뒷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요정이 글을 쓴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소.”
“그러게. 나도 못 들었네. 왜지?”
에드워드의 의문에 드워프 상인은 씹어 내뱉듯 말했다.
“뻔하잖소. 종이가 존나 비싸거든. 겉도는 요정이 그런 걸 어떻게 대량으로 사?”
에드워드의 환생 전 세상은 종이가 흔했다. 하지만 이곳의 종이는 재료부터가 갈대부터 헝겊이나 가죽까지 그 종류가 다양했으며, 어떤 것이든 하나하나가 가격이 만만찮았다. 자급자족 따위 불가능하므로, 제대로 된 종이가 전량 수입품인 지방이 한둘이 아니었다. 간단한 메모용으로는 나무판, 점토판, 도기 파편 따위가 더 애용될 지경이다.
기사도의 노래도 암송과 구전으로 전해지는 게 보통.
“꿈이 없고 단순한 이유군. 그럼 노래뿐인데, 밴시가 노래할 줄 아나?”
“기사 양반은?”
“일단 배우긴 했는데, 창작은 무리.”
노래도 기사의 기본 소양이긴 했다. 전통적 연애시가 대개 남성 파트만 존재하는 이유도 그것. 그러나 전문적으로 노는 것은 역시 음유시인의 영역이다. 에드워드는 이 시대의 노래에 소질이 있는 타입이 아니었다.
가르달은 파이프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밴시의 필력도 솔직히 미심쩍고……. 음유시인을 고용하는 게 더 싸고 빠를걸.”
“그건 뭐 싼값이겠나.”
에드워드는 웃어 버렸다. 음유시인은 귀족이나 기사 출신들로, 절대 싸게 굴릴 사람들이 아니었다. 빨래하는 밴시한테는 민중과 방랑자들 사이의 길거리 악사 정도가 한계치.
카치운이 자기 파이프를 좀 늦게 꺼내면서 질문했다.
“기사 양반 서사시는 누군가 만들어 주겠지?”
“잘하면 교회서 공짜로 만들어 주지 않을까?”
에드워드의 농담에 사람들은 웃어 버렸다. 그때, 공작이 숙소 안으로 들어왔다.
“그만 쉬고 나와라. 다시 작업이다.”
“공작님, 그러시니 무슨 작업반장 같습니다.”
“손수 모범을 보이는 중이다.”
가르달과 카치운은 자기들의 파이프를 가리켰다.
“우린 이거 피고 갈 거요.”
고된 일 하는 직장일수록 흡연자가 많은 이유. 에드워드는 비흡연자에서 흡연자로 전직하는 걸 진지하게 고민했다. 물론 공작이라면, 에드워드가 파이프에 불을 붙였어도 끌고 갔겠지만.
에드워드는 궁시렁거리면서 공작을 따라갔다. 세트렛 약탈자들은 도망쳤지만, 도시는 여전히 멍청한 게 떼들로 그득했다. 세트렛 해적선들이 물러서자 게들은 더 이상 전진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알아서 바다로 돌아가지도 않았다.
때문에 도로 바다로 밀어 넣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냥 다 먹어버리면 좋겠습니다.”
“이미 그러고 있다만, 살이 많은 게도 아니더라.”
“대신 널렸잖습니까?”
“물과 연료는 뭐 공짜겠냐?”
에드워드는 길거리 곳곳에 놓인 화로와 그 위에 놓인 솥을 보았다. 에드워드네 짐꾼들도 그 주변에 있었다. 에드워드는 진심 어린 조언을 반복했다.
“찌라고! 삶지 말고! 니들이 게 맛을 알아?!”
그러나 화로 주변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공작은 껄껄 웃었다.
“저 사람들은 네가 뭐라든 신경도 안 쓸 거다. 이해도 못 할 테고.”
“기대도 안 합니다.”
“저들이 이해하길 기다리는 것보단, 네가 저들을 이해하는 게 더 빠르지. 바다로 도로 쓸어 넣거나, 휴경지에 퇴비로 뿌리는 게 고작인 것들이다. 먹는 데도 성의가 들어갈 리가 없지.”
게다가 순례자와 노동자 등, 많은 사람이 해산물에 익숙한 바닷가 주민이란 법은 없다. 각지에서 몰려오니까.
뒤이어 한 무리의 병사들이 흐느끼면서 지나갔다. 성유골 수송함을 호위하던, 다티니아 군함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성유골을 지키지 못한 자신들의 부족함을 책망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유골이 무사히 돌아온 데 거듭 기뻐하였다.
그들 중 하나는 회개한 세트렛 포로였는데 여기저기 붕대를 감고 부목을 댄 몰골임에도 불구하고 신앙 간증을 해댔다.
에드워드는 그닥 공감이 안 가는 행동들이었다. 그는 열성적인 외침에서 귀를 떼고 툴툴거렸다.
“이해라.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요. 사내는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고도 하니.”
“누가 한 말인지는 몰라도 그럴싸하군. 그래, 이해는 중요하지. 사람들이 널 이해해주는 것도, 네가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도.”
공작은 휘하 부하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몇 가지 지시를 더 내렸다. 그의 부하들은 어느 사이엔가 부쩍 늘어나 있었다. 게 떼 소란에 보여준 모습에 감명받아서 합류한 사람들이 많았다. 에드워드는 소감을 짧게 말했다.
“부하들 많이 안 데려오셨다더니, 여기서 새 부하들을 모집하셨군요.”
“사실, 그래서 골치다. 스스로 따라오겠다는 순례자들을 내칠 수는 없는데, 이대로는 시오니아 국경을 통과하지 못해.”
“예? 이유가 뭡니까?”
“군대, 정확히 말하면, 거대한 무리가 시오니아 쪽 항구에 바로 상륙할 수 없어. 그쪽 권력자들이 질색팔색하거든. 미리 교섭하고 허락을 받아야 하지. 다티니아가 이 도시에 순례자들의 무리를 내려놓는 이유가 그거야.”
에드워드는 납득했다. 아무리 용병이 급해도, 거대한 무리를 갑자기 받아들이는 건 항구에 큰 부담이 된다. 제멋대로인 순례자 무리들은 그 자체로도 치안불안요소다.
“그래서 다티니아가 여기서 재미 보는군요.”
“그렇지. 시오니아, 베르세바, 아지지야 등으로 골라 보내는 재미지. 그리고 순례자들은 자기 방식대로 움직여.”
공작은 에드워드를 돌아봤다.
“네가 성지로 간다는 이야길 들었을 때부터, 잘 적응하리란 것은 의심하지 않았다. 찰리도 패트릭도 너만큼 적응하지는 못할 거야.”
배신과 폭주를 거듭하다 악마의 노리개가 된 불운한 동기, 그리고 시오니아의 공주와 결혼을 종용받는다는 최고의 행운아 동기. 에드워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실적이란 뜻일까?’
공작은 계속 말을 이었다.
“이곳은 기사를 찾는 수요가 높다. 그리고 넌 재능을 타고났지. 순례길에서도 증명했다. 기사로서의 무력은 물론이고, 부대를 이끄는 군사적 재능도. 애꿎은 목숨들을 구하기 위해 적절히 물러서는 절제도 보여줬다. 내가 들은 소식들이 틀린 게 아니라면 말이다.”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공작님께 칭찬받는 건 오랜만이네요.”
“하지만 하나가 빠졌지. 네가 정착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그거, 잘 싸우면 다 잘 풀리는 일 아닙니까?”
“마음이 안 붙으면 소용이 없지…… 다시 떠나게 돼. 네가 했던 말대로,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네가 이해해야 하지.”
공작은 도로 고개를 돌려 게 무더기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는 에드워드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질문했다.
“그 사제 아가씨는 어떠냐?”
“무슨 의미십니까?”
“이 순례길에서 널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여자 중 하나 아니냐. 육욕의 문제와 일정 거리를 둔 상태로는 유일할 테고. 그런 그녀가 널 이해하지 못한다면, 널 이해해 줄 사람은 현세에 아무도 없겠지.”
에드워드는 찔끔했다. 베르세바에서 있었던 대화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색하지는 않았다.
“이해해 주면 어떻게 합니까? 걔랑 연 맺고 교회기사로 전업할까요?”
공작은 침묵했다. 그는 한참 뒤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
“그런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겠다. 그게 공정할 거야.”
“공정요?”
“난 네 선택에 개입할 수 없다. 당연하지 않느냐?”
에드워드는 공작한테 안 들리게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백작가 사정이나 귀띔받을까 했는데 말이죠. 정보가 너무 없네요.”
“시르티카 백작령이라. 굳이 하나 조언해 주자면…….”
공작은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그건 네가 못 먹는다.”
에드워드는 좀 더 큰 한숨을 내쉬고는, 다소 건들거리는 투로 말했다.
“기대도 안 했습니다요.”
* * *
에드워드 일행은 케이파를 떠나 북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는 붉은 옷의 기사들과 사제들 중 하나로서. 시오니아 쪽으로 방향을 잡은 사람들도 많았는데, 시오니아 쪽이라 퉁쳐서 말하긴 했지만 그 방향도 여러 갈래길이 있었다. 갈래길을 지나칠수록 무리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마침내 에드워드 일행만 남게 되었을 때, 스텔라가 조심스럽게 에드워드에게 다가왔다.
“제가 상속법 약간 들여다봤거든요? 여자 형제의 배우자한테로 상속 우선순위가 가게 하려면…….”
“초짜가 상속법 함부로 건드렸다간 교회한테 걷어차인다. 그리고 임마, 나더러 베로니카의 오빠가 죽으라고 기도회라도 열란 말이야?”
에드워드는 스텔라의 간악한 혀 놀림을 차단했다. 스텔라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제일 완벽한 방법이긴 하잖아요. 사제님이랑 결혼에 골인하면서 백작령을 접수! 기사님한테 이보다 달콤한 이야기가 어딨어요?”
“베로니카의 오빠가 한 서른 살쯤 더 많으면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그건 아닐걸. 그 아래 다른 후계자가 있으면 말짱 꽝이고. 네 음모론을 현실로 옮기려면 대체 몇 명이 죽어야 할지 가늠이 안 된다. 왜 그렇게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꺼내?”
“비서로서 기사님한테 가능한 출세 루트를 몇 가지 제시할 뿐이에요.”
“그래야 후원을 받으니까?”
“그래야 후원을 받으니까요!”
에드워드는 떫은 표정을 지었다. 전생의 어떤 중세 유럽 배경 게임은, 그놈의 상속 때문에 개족보를 만들다 못해 온갖 음모와 사건 사고를 연출해야 했다. 스텔라가 말하는 건 그것과 다를 게 없었다.
“너 의외로 무시무시한 애였구만. 베로니카가 들으면 널 매달아버릴지도 모르겠다.”
“제 고용주는 기사님이지, 사제님이 아니잖아요.”
“그렇긴 한데.”
“그리고 저나 기사님이 손에 피 묻혀야 한다고 제가 그랬나요? 어디까지나 가능한 시나리오 이야기에요. 영주의 통치에는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막말로, 사냥과 전쟁과 마상시합에 나갔다가 죽는 영주는 결코 드물지 않다고요?”
마법사의 혓바닥이 다시 굴렀다.
“사제님 가족관계부터 자세히 파봐요. 어딘가엔 활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에이, 됐다. 관둬. 공작님이 백작령을 내가 먹을 일은 없댔으니 아마 소용 없을걸. 실현 가능성이 낮은 일에 기대를 거는 건 효율이 안 나와. 게다가 그런 거 노렸다간 베로니카랑 괜히 껄끄러워지기만 할 거다.”
에드워드의 빠른 포기에, 스텔라는 바로 흥미를 잃었다.
“기사님, 성지 가까워지니까 덕행이 신경 쓰이긴 하나 봐요? 여자 후리는 일도 영 줄어든 것 같고. 항구에 널린 게 매춘부였는데.”
에드워드는 피식 웃어버렸다. 실은 공작에게 부려 먹힌 데다 게딱지 냄새가 쉽게 안 빠져서 매춘부들 볼 정신도 없었던 게 크지만, 에드워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뭐, 그런 게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성지가 코앞이니.”
그때였다. 제일 앞장서 가던 길잡이가 뭐라고 소리쳤다. 에드워드는 그 언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뭐래?”
스텔라가 해석해 주었다.
“지금부터 시오니아래요.”
몇몇 동행들은 황급히 땅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별로 달라진 걸 느끼지 못했다.
“역시 시오니아 국경을 넘자마자 저주가 풀리는 일은 없군.”
길잡이는 계속해서 뭐라 더 소리쳤다. 스텔라가 그 말도 번역해 주었다.
“오늘은 이 근방 감시 초소에 신세를 질 거라네요. 식사가 맛있대요.”
그 말을 들은 가르달이 음울하게 말했다.
“삶은 게딱지만 아니면 뭐든지 환영이다.”
그때였다. 동쪽길에서 웬 남녀가 나타난 것은. 둘 다 말을 탔는데, 여자는 꽁꽁 묶여 뒤따라오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그걸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저게 뭘로 보이냐?”
“납치범?”
스텔라의 예시 답안이었다. 에드워드는 그녀를 향해 턱짓을 했다.
“뭔지 물어보고 와.”
“엑. 제가요?”
“너 심심한 것 같아서.”
카치운이 끼어들었다.
“그럴 것 없소. 누군지는 몰라도 직업은 알겠군.”
“직업? 뭔데?”
카치운은 목소리를 더 낮춰 말했다.
“현상금 사냥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