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12)
212화 현상범 이야기 (3)
가르달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입에 가득 넣었던 스튜를 요란한 소리와 함께 뱉었다. 그리고는 순례 여행 중 역대 제일 절박한 목소리로 외쳤다.
“독이다! 스튜에 독이 들었…….”
다들 기겁하는 와중에, 초소의 기사가 후다닥 달려가 드워프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기사는 그릇에 남은 음식물의 냄새를 맡아보았다.
“독? 잘 모르겠는데.”
다들 자기 스튜를 두고 물러섰다. 어떤 사람은 토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르달은 리안나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네년 짓이지?!”
“밴시한테 누명을 씌우다니, 드워프 아저씨는 악당! 죽기 전에 회개하고 가세요!”
“독 넣었네, 저거! 내가 저년을 솥에 접근시키지 말았어야 했는데!”
“밴시는 억울해요!”
이상한 소동 속에서 에드워드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야, 리안나.”
“왜요?”
“가르달의 스튜를 먹어 봐.”
“네? 왜요?”
“진짜 독이면 넌 그냥 잠들 뿐이잖아.”
“와, 기사님! 이젠 기미까지 시킨다!”
“해봐. 누명 쓸래?”
리안나는 투덜거리면서 기사가 든 그릇을 뺏어다 한 숟갈 입에 넣었다. 그리고는 가르달처럼 격하게 뿜어버렸다. 밴시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식초!”
잠시 뒤, 스텔라의 억울한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독이라니, 실례예요! 식초는 매운맛을 줄이고 풍미를 더해 주는 좋은 조미료라고요! 스튜가 좀 맵길래 식초를 썼을 뿐인데!”
에드워드는 그릇에 남은 스튜를 한 숟갈 떠먹어 보았다. 머리를 때리는 강렬한 신맛, 그리고 음식물 속 복병처럼 뛰쳐나오는 한발 늦게 올라오는 구린 냄새. 식초 꽤 쓰던 앵글리아에서도 쉽게 맛보기 힘든 신맛이었다.
밴시는 벽난로 위에서 보온 중이던 커피로 입을 헹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입 안에서 식혀가며 굴린 끝에, 리안나는 여마법사를 규탄할 기회를 얻었다.
“여마법사가 식초로 드워프를 독살하려 했대요!”
가르달의 소감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신맛을 좋아해도 정도가 있지! 넌 밴시랑 함께 솥 접근금지다!”
“너무하네! 겨우 이정도 신맛도 버티지 못해요?”
여마법사는 투덜거리면서 자기 스튜를 한 숟갈 떠먹었다. 그리고 뿜었다.
“셔!”
“술사가 자폭했다!”
밴시가 비명을 질렀다. 카치운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신맛을 좋아하는 것과 적절한 양을 아는 건 별개의 문제긴 하지. 그래도 네 몫은 남기지 말고 다 먹어라.”
가르달도 자기 그릇의 남은 스튜를 죄다 스텔라에게 넘겼다. 스텔라는 신맛을 희석하기 위해 물까지 부은 그릇을 보고 중얼거렸다.
“이거 다 먹을 수 있으려나…….”
깜짝 놀랐던 초소의 책임자들, 그리고 다른 손님들은 그 광경에 실소했다. 그걸로 일단락. 동행인들이 한바탕 벌이는 소동을 본 에드워드는 다시 현상범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소동 내내 그녀의 표정은 복잡했지만, 적어도 독을 넣은 다음 그 효과를 확인해보는 사람의 표정은 아니었다. 벙찐 것에 더 가까웠다.
“너네 일행은 대체…….”
“어디 가서 자랑하기는 좀 부끄러운 장면인데, 평소엔 다들 쓸만해.”
옆에서 그 말을 들은 헬레나가 웃어 버렸다.
“당신이 그런 말을 하는 날도 다 오네요. 역할이 바뀐 것 같아요.”
수도사는 껄껄 웃어 버렸다. 누구보다 빠르게 음식을 비운 그는 밴시한테서 커피 주전자를 넘겨받으며 말했다.
“이곳 책임자인 기사 양반이 크게 놀랐겠군요.”
지목받은 기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식초를 얼마나 넣었기에, 드워프가 다짜고짜 독이라는 소리부터 한 건지. 손님들이 이런 소동을 일으키는 건 참 오랜만이오.”
“아예 없었던 건 아닌가 보군요.”
“내가 영주님한테서 이 초소를 떠맡고 한 달쯤 됐을 때였나…….”
수도사와 기사가 커피를 나눠마시며 두런두런 얘기하는 걸 보고 에드워드는 중얼거렸다.
“기사는 귀족 같은데. 억양은 트레베리아계지?”
“그냥 여기 정착해버린 순례자겠지.”
베로니카가 말했다. 그녀는 가림벽 너머 자기네들 공간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기사네 아내와 딸들을 보곤 소리를 낮춰 말했다.
“여자쪽 신분이 낮은 것 같네.”
“가진 게 없는 귀족기사 순례자가, 변방의 초소를 맡고, 평민과 결혼한 후, 숙박업을 하는 중이다?”
“드물지는 않은 이야기지. 한계에 부딪히거나 몰락한 기사가 신분이 낮은 사람과 동거하거나 결혼하는 건.”
신분 차이가 나는 사람들끼리 결혼할 경우, 그 자손은 낮은 쪽 신분을 따른다. 즉, 기사 부부의 아들딸들은 전부 평민. 명백하게 손해인 듯하지만, 성직자나 수도사도 아닌데 독신생활을 할 수는 없는 게 이곳 사람들의 사정이었다.
“큰소리로 할 얘기는 아니군.”
“뭐, 그래도 이정도면 나름대로 만족할지도. 미니 사이즈 영주놀이잖아. 결혼식도 없이 매춘부의 기둥서방 노릇하다 죽는 사람도 있는 판인데.”
성지가 싸움과 기회의 땅이라지만 모두가 성공하는 건 아니다. 에드워드는 입맛을 다셨다.
“미니 사이즈 영주놀이라. 성이라면 성이긴 하지, 여기도.”
“넌 어때? 일이 꼬여도, 이정도 성과면 만족할 수 있겠어?”
짓궂은 질문이었다. 별로 진지하지 못한 질문이기도 했고. 에드워드는 간단히 대답했다.
“디테일에 따라 다르겠지.”
“어떤?”
“끼고 사는 애인이 실은 미녀의 사제라던가?”
베로니카는 에드워드의 정강이를 살짝 걷어찼다.
둘의 대화에 헬레나가 약간 늦게 끼었다.
“하지만 성이라고 하기엔 미묘하군요. 기사를 빼면 병사는 서넛에 불과한데, 손님은 우리까지 스무 명 가까이 받아요. 이렇게 외부인을 많이 받아들이는데, 방어가 될까요?”
“무슨 말이야?”
에드워드의 물음에 헬레나는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보았다.
“간첩이라도 섞여 들어온다던가, 손님 무리 전체가 실은 도적이라던가…….”
쿠웅.
뭔가가 바닥으로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사람들의 시선이 소리가 난 곳을 향했다. 밴시 리안나가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 에드워드는 그 모습에 뭔가 불길함을 느꼈다.
“야, 자냐?”
응답 없음. 헬레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리안나에게 다가갔다. 밴시를 살펴본 엘프는 짧게 상황을 설명했다.
“기절했는데요?”
“크어어어어억!”
뒤이어 수도사가 쓰러졌다. 그는 배를 움켜잡고 비명을 질렀다.
“소, 속이 불타는 것처럼…….”
베로니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번엔 진짜 독이야! 어느새?!”
기사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이 그다음으로 쓰러졌다. 다들 일찌감치 식사를 마쳤던, 기사 측 사람들이나 손님이었다. 기사의 부인과 딸은 놀라서 뛰쳐나왔다.
“대체 이게 무슨…….”
수도사는 자기 잔을 가리켰다.
“커, 커피! 커피에 독이 있소!”
에드워드는 현상범한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아까의 당황하고 복잡한 표정이 아니라, 뭔가 안도감까지 느껴지는 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바로 그녀의 멱살을 붙잡아 식탁 위로 끌어당겼다. 와당탕! 나무 그릇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둔탁한 소리를 냈다.
“네 짓이냐?”
“힘 좋은데, 기사 나리. 그렇지만 당신도 봤잖아? 난 수도사와 계속 같이 있었고, 식탁 앞에서 겨우 손이 풀려났어. 그런 내가 어떻게 커피에 독을 넣지?”
“독이 쓰일걸 알고 있던 주제에 말이 많군.”
“그래, 알고 있었지.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아?”
다른 놈이 독을 탔다. 에드워드는 현상범을 더 끌어당겨 자기 발밑으로 내팽개친 다음, 열쇠검을 뽑아 겨누었다.
“독을 타는 걸 봤거나, 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거군. 네 동료 짓이냐?”
“그렇지. 하지만 누군지는 나도 몰라. 그러니 협박하거나 고문해도 소용없어.”
“널 협박할 필요는 없지.”
에드워드는 주변의 손님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짐꾼이나 하인들은 다들 밖에 있고, 2층에 올라올 수 있던 손님 중 남은 사람은 에드워드 일행을 제외하고 세 명. 에드워드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자수하지 않으면 이 여자 목을 날려 버리겠다!”
응답 없음. 에드워드는 인상을 썼다.
“현상범 동료를 구하려고 몰래 잠입할 정도의 놈들이 이제 와서 모른 척하긴가?”
그때, 쓰러진 사람들을 살펴보던 베로니카가 말했다.
“그들이 아닐 수도 있어.”
“뭐?”
“사교도 집단의 주술사라면 작은 동물을 부리는 것도 가능하거든. 쥐나 새 따위가 독을 넣었을지도 모르지. 아니면 아래 창고에서 커피콩을 올려보낼 때 이미 섞었을 수도 있고. 사교도니까 이곳 기사의 하인들 중 누군가 넘어갔을지도 모르지.”
“그런 게 흔한가?”
“하나하나가 그리 높은 가능성은 아니지만, 방법이야 많아. 그러니 사교도가 골치지.”
에드워드는 남은 손님들을 돌아보았다.
“그 뭐냐. 타란티노 작품 보면, 손님들이 독을 쓴 놈과 전부 한 패던데.”
손님들의 낯이 흙빛이 되었다. 그들이 각자 꺼내는 말들이, 독에 중독된 사람들이 내지르는 비명과 섞여 아수라장이 되었다. 헬레나는 귀를 막고 싶은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베로니카에게 질문했다.
“쓰러진 사람들은 치료가 가능하겠어요?”
베로니카는 고개를 저었다.
“사제가 독을 전부 해독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크게는 독 자체를 정화하거나, 회복될 때까지 독의 증상을 가라앉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이번엔 둘 다 안 통하나 보죠?”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골치 아픈 고급 독이네요. 정확한 정체는 모르겠지만, 먹으면 되돌릴 수가 없거나 해독제가 필요한 놈일 거예요.”
에드워드는 다시 현상범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협상을 하고 싶으면 후자의 독을 썼겠지.”
현상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건 특별한 독이야. 오래전, 동쪽의 대왕 ‘죽음의 주술사’가 내게 계시로 가르쳐 준 독이지.”
“네가 그런 거물과 끈이 닿는다고?”
“대왕의 지혜와 계시는 필요한 곳에 닿아. 악마들처럼.”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힐끗 보았다. 반박 없음. 아주 틀린 말은 아닌 듯했다. 현상범은 계속 말했다.
“곧 죽진 않지만, 놔두면 반드시 죽어. 날 풀어주면, 해독제를 주지.”
“너한테 해독제가 있지는 않겠지. 네 몸을 뒤지면 얻을 수 있을 테니. 그럼 네 동료가 갖고 있을 것 같은데.”
에드워드는 손님들을 힐끗 보았다.
“몸수색을 해볼까?”
현상범은 웃어 버렸다.
“그렇게 쉽게 해독제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당연히 이 초소 밖에 있지.”
그때 밖이 소란스러워지더니, 한 경계병이 허겁지겁 뛰어 들어왔다. 그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수상한 놈들이 말을 타고 몰려왔습니다! 현상범을 내놓으라고…….”
기사와 병사들이 제일 먼저 뻗어 버린 상황이니 초소의 남은 전력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에드워드는 기사 부인을 슬쩍 살펴보았다. 불행히도 그녀는 남편 곁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전부였다.
“하긴, 진짜 귀족 부인들도 외부의 위협에 항상 올바르게 대처하지는 못하지. 야, 적은 모두 몇 명이야?”
“열둘입니다!”
병사가 대답했다. 헬레나가 벽 밖으로 귀를 기울였다.
“제대로 훈련된 놈들은 아니고, 부랑배 같군요. 하지만 설칠 정도의 실력은 있겠죠.”
현상범은 의기양양해서 말했다.
“너희가 이 알량한 벽 속에서 버틸 수 있을까? 계속 음식에 독이 들어갈걸 걱정하면서?”